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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마이뉴스, "조정래, 서울대에서 '나라 망했다' 생각한 까닭은? 국회 교육희망포럼 초청, 신작 <풀꽃도 꽃이다> 토크콘서트", 2016.07.27.

*기사 원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30348&rccode=lvRc



평소에 문학을 많이 읽지 못해서 조정래 작가의 신작을 읽지는 못했지만, 이분이 토크 콘서트에서 했던 발언 일부가 여러 모로 공감이 간다. 조정래 작가가 중간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중략) ... 제가 서울대에 가서 학생들 모인 곳에서 물었어요. '너희가 머리가 좋아 서울대에 왔는데 그게 너희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그랬더니 90%가 손을 들어요. 아, 이 나라 망했다고 생각했어요. 그 사람들은 0.01%의 행운을 타고난 거예요. 머리 좋은 건 자신의 능력이 아니고 머리 나쁜 자를 대신해 받은 행운이에요. 그러니 나머지를 무시하면 안 되는 겁니다. 재능에 대한 겸손이 없으면 인간이 아닌 거예요. (이하 생략)"


사회과학 측면에서 검증해 보면 좋겠지만, 꼭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순전히 개인의 능력이라고만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의 상당수의 학부모가 조기교육, 사교육에 엄청나게 열정을 쏟아붓는 현실만 놓고 봐도, 한 아이가 서울대에 가는 것이 오로지 자기 자신의 능력만으로 되기보다는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도 비록 성적에만 초점을 두고 쓰는 말은 아니지만, 조정래 작가의 발언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가상의 아이가 태어나서 대학교에 가기까지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상황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태어나서부터 유아기에 부모의 사랑을 잘 받았는지, 관심이 많은 부모가 자꾸 말도 시키고 낱말카드와 지능 발달에 도움이 되는 장난감도 사 주었는지, 이후로도 가정불화나 아동학대 없이 아이가 정서적인 피해 없이 잘 자랐는지, 부모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었는지, 부모가 아이가 커 가는 과정을 방치하지 않고 관심을 갖고서 올바르게 크도록 꾸준히 지도했는지, 부모나 아이 본인이 건강에 큰 문제가 없었는지, 이혼이나 별거 같이 가정을 깨뜨리는 상황이 없었는지, 성장하는 과정에서 학교에서 괴롭힘을 받지는 않았는지, 나쁜 선생님을 만나서 교육이나 특정 과목에 대한 반감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범죄 등 사회적인 위험 요소에 노출되지 않았는지, 그외 사고와 같은 불가항력적인 요소로 인해 피해를 입지는 않았는지 등등... 우리 주변에서 누군가는 겪었을 만한 일들, 안타깝지만 본인도 어느 하나에 해당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이 한 아이의 성장에 영향을 끼친다. 꼭 성적에만 국한되지 않고, 아이의 전인적인 발달 (지, 덕, 체) 측면에서 모두 해당된다.


그런데도 서울대에 간 학생이 그저 본인이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가 우월해서 그저 자기 능력 하나만으로 서울대에 갈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중에는 정말로 지능발달이 유별나게 좋아서 위에 열거한 어려운 상황들을 한꺼번에 겪고서도 서울대에 들어가는 경우도 극히 소수겠지만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일반화시킬 수 없는 영재와 천재의 영역이다. 서울대에 있는 만 명이 넘는 학생 전체가 모두 영재이자 천재일 수 없고, 그 중에는 평범한 지능지수를 갖고 있으면서 노력해서 이룬 "수재"들이 절대다수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한 아이가 처해 있는 주변 환경의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특권에 관한 짧은 이야기" [1] 만화에서도 주변 환경의 차이로 인해 정해져 버리는 두 아기의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불평등한 현실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수천 년의 시간을 거쳐서 지금과 같이 형성되었고, 아직도 유토피아가 되기에는 갈 길이 멀다. 다만, 이렇게 태어날 때부터 불평등한 환경에서 자라 왔으므로, 더 나은 환경에서 더 좋은 교육의 기회를 얻어서 더 똑똑한 사람이 되어서 상위권 대학교에 갔다면, 본인이 남들보다 더 많은 것들을 누려서 지금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만큼 사회에 다시 베풀어야겠다는 최소한의 겸손한 마음가짐은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런 생각을 갖고서 여전히 불평등이 만연한 이 사회에 본인이 남들보다 더 많이 얻고 누린 것들을 바탕으로 그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기회의 평등을 조금이라도 더 보장해 주려고 노력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고, 실제로 그러한 교육 기회의 평등을 더 잘 보장해 주는 국가들이 독일, 핀란드 등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나라들이기도 하다. 지금이 신분제 사회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엘리트"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의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최근 흙수저와 금수저 논란과 헬조선이라는 절망적인 단어들을 없앨 수 있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참고자료>

[1] 특권에 대한 짧은 이야기(번역),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209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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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크롬에서 민원24 사이트(http://www.minwon.go.kr) 로그인부터 서류 발급 신청 절차는 정상적으로 잘 되었는데, 결정적인 단계에서 가장 결정적인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바로 인쇄 기능이다. ㅡㅡ;


(구글 크롬에서 민원24 사이트에 접속하면 위 스크린샷과 같이 문서 출력을 할 수 없다.)



크롬에서 민원 신청만 할 수 있고, 인쇄는 결국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다시 켜서 같은 페이지에 다시 로그인해 들어와서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럴 거면 크롬 브라우저에서 민원 신청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수 없이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켜고 다시 로그인해서 민원 발급 페이지에 갔더니, 플러그인 프로그램을 또 설치하라고 한다. 크롬에서는 안되는 인쇄 기능까지 포함된 인터넷 익스플로러 전용 플러그인이 당연히 필요한 거겠지만,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exe 프로그램인데 크롬에서는 안되면서 인터넷 익스플로러에는 되는 것도 이상하고, 브라우저가 다르니까 또 별도로 플러그인을 설치해야 하는 것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 민원 신청 또는 민원 발급 페이지에 들어갔을 때 추가로 플러그인 설치를 

요구하는 화면. 해당 플러그인은 민원 신청과 인쇄 페이지 양쪽에서 같은 이름으로 표시되므로, 

인쇄 모듈이 별도로 있는 것은 아니고 민원신청 기능까지 모두 포함된 통합 플러그인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전자정부가 어떤 기준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세계 3위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심지어 액티브X로 도배되어 있던 초창기 전자정부 (지금이 전자정부 3.0이니까 1.0~2.0 시절)가 세계 1위를 하던 적도 있었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기능이 있고 없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과 사용성에도 많은 신경을 써 줬으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현재 세계 1위인 영국의 전자정부 시스템이 너무나 부럽다. 운영체제와 브라우저 종류, 심지어 모바일 기기를 통해서 접속해도 모두 원하는 정보를 제한 없이 얻을 수 있고, 게다가 모바일 기기와 PC 화면 각각에 대해서 최적의 가독성을 갖도록 디자인에서 배려가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부 사이트는 그저 예뻐 보이는 게 우선이고, 애니메이션처럼 화려하게 움직이는 플래시로 상단 메뉴 바를 도배해 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듯 한데, 이건 국민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해당 정부부처 어딘가에 있을 고위직 공무원이 보기에 좋은지부터 생각하며 눈치를 보는 듯 하다나름대로 디자이너들의 팔을 비틀어서 깔끔해 보이게는 만들고 있지만, 그마저도 전부 이미지로 도배되어 있으니 해외에 거주하는 국민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것이다.


그냥 공인인증서를 없애고, PDF 파일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신청서류를 발급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대신 PDF로 발급할 때 문서의 유효성을 검증할 수 있는 일련번호 같은 것을 잘 이용해서 유효기간도 정의할 수 있으면, 사용자가 나중에 같은 파일을 또 인쇄하더라도 무효화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모르는 복잡한 문제가 있는 걸까? (이미 지금 플러그인을 통해서 민원신청서류를 인쇄해 봐도 문서확인번호가 있다.)


그리고 어차피 인터넷으로 발급할 때 일부 문서(예: 주민등록등본)는 무료인데, PDF로 저장해 뒀다가 나중에 또 인쇄해서 쓰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개인이 다른 개인을 상대로 지금과 다른 오래 전 문서를 인쇄해서 사기를 칠 것이 염려돼서 그러는 것일까? 그런 경우에는 문서의 유효성을 확인할 수 있는 간단한 웹서비스를 만들어서 문서를 받는 사람이 조회해 볼 수 있도록 하면 될 것 같은데 말이다. 여전히 내가 너무 편하게 생각하는 것인지, 정부가 알면서 안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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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9

Life/대학원 생활 2016. 8. 9.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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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과정 졸업 예비사정표를 보았고, 다른 모든 요건이 끝났지만 바보같이 학과에서 인정해 주는 저널 실적 하나를 미리부터 만들지 못해서 졸업신청을 해야 할 지, 차라리 휴학을 해야 할 지 고민하는 상황에 와 있다.


내가 얼마나 속상한지는 솔직히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내가 이렇게나 멍청한가 하는 자책, 아기가 커 가면서 재정도 점점 더 모자라게 되고 시간도 더 많이 쓰이고, 아파서 병원에도 자주 가면서 연구에 오롯이 집중하기는 점점 어려워져 가는 상황, 그 와중에 할 거 다 하면서 편하게 살고 있는 것만 같은 죄책감에 시달려서 오늘 오전이 지나기 전에 벌써 한숨만 수십 번 나온다.


이 박사학위가 도대체 뭐라고 내가 이렇게 아둥바둥 난리를 치는 것인가? 애초에 박사학위 따위 나한테 맞지 않는 것인데 내가 억지로 추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그냥 포기하고 지금 당장 필드에 나서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써 뭐든 할 수 있는데 (업계가 바라는 수준의 코딩을 하려면 조금은 더 실력 연마를 하긴 해야겠지만), 매달 재정 부족과 시간 부족에 시달려서 아기와 많이 놀아 주지도 못하면서 이 불안정한 생활을 언제까지 지속해야 하는 것인지... 반면에 또 아기와 어쩔 수 없이 놀아 줘야만 하는 (즉, 내가 아기를 봐 줘야만 하는) 상황이 되면 그 시간에 실험을 진행하지 못하니까 버려지는 금 같은 시간들이 한없이 아깝게 느껴진다. 이렇게 답답한 마음 때문에 가족으로써 누려야 할 것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남들과 마찬가지로 공평하게 나에게도 똑같은 양의 시간과 비슷한 연구환경이 주어졌는데, 유독 나는 왜 이렇게도 저널 논문을 제대로 써 내지 못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면 내가 무슨 ADHD 환자라도 된 것 같다. 이런 바보가 꾸역꾸역 박사학위를 받아 보겠다고 애초에 안될 일을 무리해서 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자존심도 무진장 상하고 그냥 스트레스 투성이다. 카이스트에서 자살하는 대학원생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어디 가서 소리지를 곳도 마땅치 않고, 멀쩡히 잘 있는 연구실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쳐서 쓸데없는 주목을 받고 싶지도 않고, 시커멓게 타 들어가는 속을 달래기 위해서 그저 마른 입술을 깨무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애꿎은 아랫입술만 매일 부르터서 아물지를 않는다.


그래도 가족이 중요하다는 말... 남들이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정작 나는 아내와 아기에게 그저 무책임한 가장의 모습만 보여주는 것 같아서 미칠 지경이다. 정말 인생의 밑바닥을 걷는 기분이다. 빨리 튀어오르고 싶은데 언제쯤 그럴 수 있을까? 제발 가만히 실험하고 논문만 쓸 수 있도록 나를 옭아매는 모든 것들로부터 잠시나마 단절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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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개인연구 실험을 위해서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 인지 네트워크 아키텍처에서, flow 기반 라우팅 모듈과 traffic shaping 모듈 각각의 모듈 테스트를 성공한 지 어느새 2주 정도가 지났다. 그 외에도 이웃 노드들의 link quality를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모듈은 진작에 몇 개월 전부터 완성되어 있었고, 서비스의 요구사항을 인식하는 부분도 오래 전부터 조금씩 완성도가 높아져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연동해서 실제로 서비스가 요청하는 경로 하나를 만들어 내는 것까지 검증하는 연동 테스트에서 계속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ㅜㅜ 모듈 테스트에서 예외상황을 처리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잊고 처리하지 못한 부분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에러가 발생하고, 미처 생각지 못한 파라미터 값의 불확실성으로 인해서 예외 상황도 새로 생겨났다.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서 치밀하게 코드를 짜려고 했지만, 그리고 최대한 모듈들 간에 인터페이스를 미리 맞춰 두려고 했지만, 결국 실제로 모듈의 기능을 구현/개선하는 과정에서 미리 약속해 둔 인터페이스가 변경되는 일도 발생한다.


설계 단계에서부터 명확하게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피상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현장에 뛰어들어서 직접 코딩하다 보면 그게 말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설계를 잘 하려고 해도, 커널에 근접해 있는 각종 네트워크 기능들을 충분히 이해하는 상태라야 가능한 영역이 있어서 어려움을 겪곤 한다. 일단 요구사항만 주어진 채 달려들어서 user level 프로그램의 입장에서 구현을 시작하다 보면, (나는 서비스를 도와 주는 미들웨어를 개발하는 입장이니까 일차적으로 user level API에서 Kernel level로 메세지가 전달되는 구조이다.) 커널 영역에서는 실제로 더 많은 세부사항들을 정의해 주어야 하고, user level에서 제시하는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결국 다시 user level 모듈부터 재설계를 해서 다시 Kernel level에 제대로 모든 정보가 흘러들어가는지 확인해야 한다.


두세 번 이렇게 반복하면 설계 단계에서 무슨 정보를 줘야 하는지는 확실해지긴 하지만, 그 다음으로 겪는 어려움은 실제로 주어진 정보를 가지고 원하는 기능이 작동하도록 구현을 하는 것이다.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원하는 기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구현하는 것이다. 사실 효율성이라는 것도 겪어보지 않은 작동 과정을 상상하면서 어디서 어떤 비효율이 발생하는지 예상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잘 상상이 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실제로 어느 정도 의미 있는 데이터의 범위를 갖고 돌려 보고 나서야 어느 과정에서 비효율이 발생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내가 1년 정도만 더 일찍 지금과 같은 노력을 시작했으면 좋았겠다는 후회가 될 때도 있지만, 지금이라도 제대로 실험환경을 구축하고 역량도 키워가는 과정이라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마음을 다잡곤 한다. 박사과정 학생 신분으로 연구를 자유롭게(?) 계속할 수 있는 기한도 이제 많지 않은데, 그 전에 최대한 경험치와 역량을 쌓고 싶다. 그 동안의 더디게만 올라가던 learning curve가 이제 조금 가파르게 상승할 것 같은 기대감이 생기는 시기에 와 있는데, 이번에 실험환경 구축이 잘 되면 꼭 좋은 논문을 만들어 내야겠다. 일단은 급하게 써야 하는 논문부터 먼저 만들어 내고...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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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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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글은 두서없이 쓴 일기입니다.


가끔 육아와 가장의 짐을 짊어진 채 여전히 불투명한 박사학위를 앞두고 부족한 시간을 두고 싸우는 내가 처량할 때가 있다.

아무도 내 고민을 자세하게 모르는 것 같다. 실험은 실험대로 잘 안되고, 하루라도 빨리 논문을 써야 하는데 신경쓸 것은 너무 많고, 연구에 최고의 집중력과 시간을 들여야 하지만, 온갖 잡다한 일처리들 다 하고 나면 내게 주어지는 '자원'은 이미 체력을 소진한 육체와 늦은 저녁시간밖에 없다. 그 때가 되어서야 겨우겨우 집에서 도망치듯이 나와서 연구실에 와서 실험이든 논문 작성이든 시작할 수 있다. 이미 그런 늦은 시간에 와 봐야 졸리기 시작하고 집중도 잘 안되고, 기껏 주어지는 시간에도 제대로 실험 진행이 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시간은 시간대로 허비하고, 그렇다고 일처리 제대로 되지도 못한 채 그냥 잠을 자려니 그냥 허비해 버린 하루가 너무 아까워서 잠을 자려고 생각하면 화가 난다. 뭔가 조금이라도 해둬야 할 것 아닌가? 그렇게 쓸모없이 새벽을 맞이한다. 말 그대로, 진심으로 내 인생이 속상하다.


집에 PC를 잘 설정해 놓고 듀얼모니터까지 갖췄지만 아무 소용없다. 나를 제외한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같은 공간에 있는 이상 꾸준히 집중해야 뭐가 됐든 진행이 되는 연구인데 그럴 수가 없는 환경인 건 너무 당연하다. 정말 예쁘고 귀여운 딸이지만, 잠들기 전까지 딸과 놀아주고 밥 먹여주고 씻겨 주고 어지럽혀진 집안 정리를 해야 하는데, 아내가 그 뒤치다꺼리를 대부분 맡아 준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 옆에서 그 정신없는 집안에서 혼자 연구한다고 PC 앞에만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뭘 도와줘도 도와줘야 안심이 되고, 실제로도 딸아이가 나한테 계속 오니까 수시로 봐줘야 한다.

이러니 아내에게 너무나 미안하지만, 정말로 실험이든 연구든 진행을 시키려면 주말에 모처럼 시간이 주어졌을 때 독하게 마음먹고 집을 박차고 나와야만 한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렇게 안할 수가 없다. 가정적인 남자? 당연히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졸업도 못했고 영영 졸업 못할 위기에 놓인 내가 가정적인 남자가 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나에게는 엄청난 사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토요일 하루 정도를 정말 독하게 마음 먹고 가정에서 가정적인 남자로 '희생'해야만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말 그대로 그냥 하루가 없어진다. 그 하루 동안에 연 5억짜리 정부 과제의 연차보고서 한 편을 끝낼 수 있고, 관련연구 논문 10편 정도를 발췌 형식으로 읽을 수 있고, 실험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모듈 하나 정도의 기능과 버그는 해결할 수 있을 텐데, 가장 좋은 컨디션과 집중력을 모두 아기에게 쏟아부어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가정적인 남편이자 아빠가 되고 싶다.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졸업요건을 맞출 수 있는 논문을 내야 되는 상황에서 하루를 온전히 소비하는 것은 나한테는 시간낭비이고, 우리 가족 전체의 불확실성과 고생을 향해서 한 발짝씩 더 전진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당장 가정적인 게 다 무슨 소용인가? 매일매일 이런 갈등이 단 한 번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근본적인 것부터 생각하자면, 박사과정을 하는 동안 육아를 할 생각을 절대로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나도 아내도 너무 순진했다. 아기는 혼자서 그냥 잘 클 줄 알았지만, 나 또는 아내의 모든 시간을 다 쏟아붓는 것이 전제조건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게다가 돈도 이렇게나 많이 들 줄도 몰랐다. 매달 적자가 나다가 가끔 들어오는 대학원생 세금 환급이나 장려금 같은 걸로 겨우 카드값을 메꾸고, 그 다음 달 부터 또다시 적자가 시작된다.


이래서 인생에서 타이밍이 정말 중요한 것이다. 제때 졸업했어야 하고, 제때 노력했어야 하고, 제때 인생의 각종 선택이 주는 결과와 의미들을 깨달았어야 하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게 대략 2년씩 늦어졌다. 지금의 졸업에 대한 고민을 2년만 더 일찍 심각하게 시작했더라면 내가 이토록 고민에 휩싸이지 않았을 텐데... 나는 왜 이리도 느리고 능력이 부족한 것일까? 정말 속상하고 답답하다. 더 똑똑하고 더 이해속도와 코딩 속도도 빠르고 영어도 더 잘 하고 싶다. 남의 논문은 잘 봐주고, 정부과제 정도는 이제 손쉽게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 개인연구만 생각하기 시작하면 정말 동기부여가 약해지고, 하기도 싫어지고, 잘 진행도 안되고, 어렵기까지 하다. 정말 속된 말로 거지같다.


단 하루라도 가족과 함께 놀기만 하느라 연구실에 나가지 못하거나 컴퓨터를 쓰지 못하면 불안해지는 내 감정 상태를 놓고 보면 워커홀릭인데, 정작 또 연구실에 가서 일을 하려고 하면 쉽사리 진행하지 못하는, ADHD 같은 증상을 겪기도 한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제발 이 거지같은 굴레를 벗어나고 싶다.


연구실에서 정부 과제 제안서 작성, 과제 실무책임 역할만 지나치게 강화한 것 같은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내 졸업연구 주제와 관련은 없지만 주제 그 자체로 놓고 보면 트렌디하고 중요한 편에 속하는 과제를 맡아서 운영했었는데, 내 핵심 실력을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부수적인 실력들만 키우는 것 같아서 아주 속상하다. 이런 멀티플레이어 따위 되어서 어디다 쓸 지 회의감만 들 뿐. 지금 배운 이 역량이 쓰일 만한 시기도 대략 10~20년 뒤일 것 같은데 내 핵심 역량을 키워야 할 시간에 리더쉽 역량이나 키우고 있으니 이것 또한 거지같다. 내가 학부 때 진작부터 온갖 다양한 활동들 해 보면서, 이런 활동을 하면 어떤 폐단이 있고 저런 활동을 하면 어떤 수고를 해야 된다는 등의 견적을 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나 보다. 역시나 앞서 얘기한 대로 내가 대략 2년씩 남들보다 뒤처지는 느낌이 들어서 아주 속상하다. 진작에 잘 했으면...


내가 다시 3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자녀 계획을 전면 취소했을 것이고, 그외 내 인생에 잡다하게 걸쳐져 있던 연구와 관련없는 여러가지 사회적인 활동들도 다 중단했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개인연구 주제에 대해서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하던 그 시절에 내가 내 인생이 망가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고조시켜서 하루라도 빨리 실제 실력을 키우려는 노력을 기울였어야 한다. 인생은 결국 핵심 역량에 대한 실력으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축구 공격수는 골을 넣어야 하고, 골키퍼는 공을 막아야 한다. 박사과정은 좋은 저널 논문이나 좋은 학회 논문을 써야 한다. 그 외의 잡다한 활동들로부터 얻는 실력을 논문 말고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결국 논문이 없으면 실력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가 되고 만다. 연구실에 온갖 기여를 하고, 과제 관리를 잘 해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푼돈밖에 안되는 연구비 외에 내가 얻는 것은 죄다 눈에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들이고, 인생의 중년과 노년이 되어서야 쓰일 만한 것들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핵심 역량을 입증하지 못한 채 습득하는 그런 곁가지 능력들은 결국 쓰임받을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썩어버릴 것이다. 


공부해야 할 때 제대로 해야 하고, 제대로 공부해야 하는 시기를 놓침으로써 생기는 인생의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이런 심각성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좋게 말해서 믿음이고, 나쁘게 말해서 멍청함이다. 더 이상은 멍청이가 되고 싶지 않다. 제발 프로페셔널 답게 실력을 갖고 싶다. 내 실력으로 내가 박사학위 받을 만한 존재임을 드러내고 싶다. 최근 들어서야 이러한 열망이 생겼지만, 애석하게도 지금 내 인생은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방해물이 너무 많이 생겼다. (어떻게 자기 딸아이를 보고 방해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운가? 나와 똑같은 상황이 되어 보라고 하고 싶다. 겉으로는 아기와 행복하게 즐겁게 놀아 주고 함께 좋은 추억은 의무감으로 만들어 가고 있지만 지금 내 속은 우리 가족을 사지로 내몰고 있는 듯한 걱정에 새카맣게 타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누가 알아 줄까? 내가 아기의 정서발달에 악영향을 주고 싶지는 않아서 의무감에서라도 놀아 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인 상태다.)


속상하고 답답하다. 이 분노의 마음을 동력으로 삼아서라도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시간에 실험이 좀더 진행되기를 바라며, 이렇게 답답한 마음을 글을 통해서라도 쏟아내고, 훌훌 털고 연구를 조금이라도 더 가볍게 진행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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