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뭘 해도 정부/공기관 사이트가 가장 말썽이다.
안 그래도 일반 사기업 웹사이트에서도 불편한 온라인 결제 또는 공인인증 관련된 작업이 정부 사이트에서는 문제가 몇 배로 증폭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여기서는 그 여러 경우들 중에서 우체국 쇼핑몰의 사례를 설명한다.
*발단: 우체국에서 쇼핑을 하고 싶을 뿐인데...
아내가 집 컴퓨터(윈도우 10)에서 우체국 쇼핑(http://mall.epost.go.kr)에서 대추차를 사려고 했는데, 크롬 브라우저에서도 실패하고,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도 마찬가지로 결제가 안돼서 주문을 실패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한테 사이트 링크를 보내 주면서 대신 좀 결제해 달라고 요청을 해 왔다.
이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래도 플러그인 설치가 좀 많을 뿐이지 문제없이 잘 될 거라 생각하고, 연구실 PC에서 크롬 브라우저를 통해 우체국 쇼핑몰에 들어가 보았다.
*문제의 시작
일단 맨 처음 우체국 쇼핑몰 사이트에 들어가면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던지 관계없이 다짜고짜 nProtect Online Security 1.0부터 설치를 강요한다. 이미 내 PC에는 금융권 사이트를 방문하기 때문에 nProtect Online Security가 설치되어 있지만 그런 것은 전혀 상관없다. 무조건 설치해야 한다.
사실 nProtect 자체를 설치하는 과정에서는 문제가 일어난 적은 없었기에, 군말 없이 그냥 설치했다. 설치를 거부하고 맞서 봐야 웹페이지가 더 진행되지도 않을 테니 얻을 수 있는 이득도 없고...
본격적인 문제는 "결제"를 진행할 때부터 일어났다. 일단 상품 페이지에서 결제하기 버튼을 눌렀더니, 이제 크롬에서는 NPAPI를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결제를 할 수 없다는 안내가 뜬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저기 최상단에 표시되는 KG Inicis 로고만 봐도 알 수 있다.
KG Inicis도 간편결제 서비스가 있겠지만, 아마 우체국 쇼핑몰에 붙어 있는 것은 액티브X 같은 플러그인 방식이니까 저런 경고가 떴겠지. 만약 결제 옵션이 정말로 카드결제밖에 없었다면, 저 안내 메세지는 사실이고 나는 선택의 여지 없이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썼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주문 페이지의 맨 아래쪽에 가 보면 저 경고 메세지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간편결제" 옵션이 그것도 한두 개도 아니고 다섯 개나 있다.
(우체국 쇼핑몰에서 2017년 3월 현재 지원하는 간편결제 옵션들.)
아니 왠일로 우체국 쇼핑몰에서 간편결제를 다섯 개나 지원하는 것일까?
나는 간편결제가 단 한 개도 없을 줄 알았는데, 저 정도면 꽤 잘 해주는 거잖아?
그러면 우체국 쇼핑몰이 간편결제의 본래 목적과 의미를 알고 있는지 의심이 가기 시작한다.
간편결제는 운영체제나 브라우저, 플러그인에 상관 없이 어디서나 문제없이 동일한 방법으로 결제하기 위해서 나온 개념이다. 윈도우를 쓰든, 맥OS를 쓰든, 리눅스를 쓰든, 심지어 스마트폰 OS에서도 아무 웹브라우저나 켜서 결제를 진행해도 문제없이 잘 되어야 간편결제다. 따라서 간편결제에서는 크롬 브라우저가 NPAPI가 되고 말고가 상관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체국 쇼핑몰은 결제 옵션에서는 간편결제를 걸어 놓고, 팝업창에서는 크롬에서 더이상 결제할 수 없다는 이율배반적인 안내를 하고 있다.
우체국 쇼핑몰에서 "신용카드(일반)" 또는 "휴대폰결제" 같은 옵션을 선택했을 경우에는 저 경고가 유효했을 텐데 그걸 선택적으로 표시하지 않고 일단 무조건 경고창이 뜨도록 웹페이지를 잘못 만든 것은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본다.
*비극의 정점
일단 간편결제 옵션이 있고 간편결제 본래의 목적을 믿으니까, 나는 위의 팝업 경고를 무시하고 결제를 진행해 보기로 했다. 마침 계정을 가지고 있는 "시럽페이"를 선택하고 "결제하기" 버튼을 눌렀더니...
(윈도우10, 크롬 브라우저에서 "시럽페이" 간편결제를 진행하고 나서 표시된 먹통 상황)
...역시 헛된 기대를 했던 것일까?
시럽페이 결제를 진행하는 팝업 페이지까지는 떴는데, 그 뒤로 더는 진행하지 못하고 결국 크롬은 먹통이 되었다.
저 화면에서 팝업창을 종료하고, 크롬 브라우저 창까지 종료 버튼을 눌렀는데 거의 10여 초를 넘게 기다리고 나서야 종료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렇게 결제만 실패하고 상황이 종료되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것이다. 이후로 윈도우10은 거북이마냥 대부분의 명령에 반응을 한참 느리게 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작업 관리자"는 아예 실행조차 되지 않았다. 분명히 우체국 쇼핑몰에서 결제하기 전까지는 멀쩡하던 컴퓨터가 위와 같이 결제 시도를 한번 하고 나서는 아주 못 쓸 상태가 되고 말았다.
결국 재부팅하기로 결정하고 윈도우10에서 시스템 재시작을 시켰는데, 그마저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다시 시작하는 중" 화면만 10분이 지나도록 바뀌지 않는 상황을 겪고 나서, 결국 본체의 Reset 버튼을 눌러야만 했다. 리셋 버튼을 누르는 행위가 PC 하드웨어에 무리를 줄 위험이 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내 PC는 우리은행, 국민건강보험 사이트 외에는 들어가서 뭔가 설치한 적이 없는 꽤나 청정한(?) 상태였고, 오피스나 개발환경 외에 특별한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지도 않은 상태였다.
...이렇게 내 연구실 PC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시럽페이 소개 페이지의 일부.
간편결제는 위와 같이 아무 데서나 잘 되니까 간편한 것이다.)
*간편결제도 간편하지 않게, 이것이 정부의 능력?
정말 여러가지 의미로 대단하다.
일개 사기업의 간편결제 따위는 정부 앞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간편결제도 불편하게 만드는 공기업의 능력이 참 대단하다.
개인 쇼핑몰만도 못한 안정성을 개선할 생각은 없고, 모든 사용자를 강제로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쓰도록 해서 군말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나 하라는 경직된 문화가 어쩜 이렇게 온라인 상에서도 예외 없이 일관되게 나타나는지 참 대단하다.
*인생사 새옹지마?
윈도우 PC가 재부팅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혹시나 해서 연구실에서 쓰고 있는 우분투(Ubuntu; 리눅스 운영체제의 한 종류)에서 우체국 쇼핑몰을 방문해 보았다. 정말로 아무런 기대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냥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심정이었다.
...어?
원래 윈도우 PC에서는 일단 방문하자마자 nProtect Online Security부터 설치하라고 시키더니 여기서는 아무 것도 뜨지 않는다. 로그인을 하는 동안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일단 사려고 했던 대추즙 주문 페이지까지 가 보았다.
크롬에서 NPAPI 때문에 결제할 수 없다는 경고창조차 뜨지 않았다. (?!)
갑자기 기대감이 생겨서 시럽페이를 선택하고 결제하기 버튼을 눌렀더니...
...어? (2)
여기서부터는 윈도우 PC의 크롬 브라우저에서는 안되던 것인데 결제가 계속 문제없이 진행이 되는 것이었다.
(우분투에서 시럽페이를 통해 우체국 쇼핑몰 결제가 완료된 화면)
...어? (3)
결국 우분투에서 결제까지 문제없이 완료했다.
...
......
..........
...뭐지 이 이상한 기분은?
윈도우에서는 페이지 하나 넘어가기도 힘들고 PC가 통째로 먹통이 되는 그 난리통에, 거의 기대할 수 없는 다른 운영체제에서 아무 문제없이 간편결제 본연의 기능을 써서 결제를 성공하다니. 그것도 공공기관 사이트에서?
굳이 이유를 알 필요가 있겠냐마는, 추측해 보자면 윈도우가 아닌 다른 운영체제에 대해서 예외처리를 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절차상 걸리는 것 없이 잘 진행된 것이 아니었을까? (물론 일반 카드결제를 시도하면 당연히 안 될 것이다.)
이 상황을 더 이상은 어떻게 설명을 못하겠다. =_=;;
결론을 내리자면, 국민 대다수가 쓰는 윈도우 운영체제에서는 있는 대로 권력을 행사해서 플러그인 설치를 강요하고 웹 브라우저 선택권을 박탈할 뿐만 아니라 간편결제마저 무력화시키는 우체국 쇼핑몰이, 의외로 윈도우가 아닌 다른 운영체제에서 기대치 못한 편의성을 보여 주었다는 것?
(이게 뭐냐고 ㅜㅜ)
우체국 쇼핑몰은 자사의 매출을 올리고 싶으면 제발 구색만 갖추지 말고, 간편결제는 진짜로 본연의 기능대로 잘 작동할 수 있도록 결제 시스템을 치밀하게 수정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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