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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tAPI uvicorn으로 PostgreSQL 접속할 때 설정의 URL 문자열은 보통 아래와 같다.

postgresql+asyncpg://[ID]:[PASSWORD]@[IP_ADDRESS]:[PORT]/[DATABASE-NAME]

(예) 로컬호스트의 testdb 데이터베이스에 postgre 계정과 passw0rd 비밀번호로 접근하는 경우:

postgresql+asyncpg://postgre:passw0rd@localhost:5432/testdb

 

그런데 비밀번호에 '@' 특수문자를 사용할 경우, '@'를 그대로 쓰면 문제가 발생한다.

postgresql+asyncpg://postgre:p@ssw0rd@localhost:5432/testdb

이러면 첫번째로 나오는 '@'를 구분자로 쓰면서 URL이 "ssw0rd@localhost"가 되면서, DB 접속 에러가 발생한다.

  File "uvloop/loop.pyx", line 1982, in create_connection
socket.gaierror: [Errno -2] Name or service not known

ERROR:    Application startup failed. Exiting.

 

*해결 방법

암호 문자열에 포함되는 '@' 문자를 %40으로 대체한다.

postgresql+asyncpg://postgre:p%40ssw0rd@localhost:5432/test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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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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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말, S전자에서 외국계 회사의 한국 지사로 이직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내 예상보다 일찍, 내 예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게다가 이직 준비 기간 동안, 2년 전 분양받은 집으로 이사하는 일까지 겹쳐서 정말 정신없게 시간이 흘러갔고, 이직한 지 2개월이 된 이제서야 지난 몇 달 간 있었던 일들을 글로 정리하며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그러나 진지하게 온 스카웃 제의

6월 초, 평소 잊을 만 하면 받는 헤드헌터의 링크드인 콜드메일이 아닌 해당 회사의 직접적인 연락(문자)을 받았다. 문자를 받고 전화 통화를 해 보니, 직접적으로 같이 일하자는 스카웃 제의였다. 그 회사는 작년쯤에 나의 전 직장에 기술 소개/발표하러 온 적이 있는 회사였다. 그 당시 회사 소개와 기술 발표를 하던 당시에는 그저 '미국에서는 저런 회사가 도움이 되겠지, 하지만 한국에는 모르겠어'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었다. 그런데 전화 통화를 해 보니 상대방은 생각보다 훨씬 진지하게 나에게 채용 제안을 하였다.

그 회사는 미국에서 이미 경쟁력을 확보하고 아시아 쪽에서도 성장중인 회사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국내 IT 인프라 시장에서는 기존 대기업 집단(IT 인프라를 구매하는 모그룹, 그 모그룹을 전폭 지원하는 IT 계열사, 해당 IT 계열사와 돈독한 관계를 갖는 각 벤더의 국내 파트너사)의 입지가 공고한 한국에서 과연 사업이 잘 될까 싶었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해서 연락하신 분의 점심 식사 제의를 받아들이고 식당에서 직접 만났다.

직접 만나 보니, 나에게 연락한 분은 그 회사의 한국지사 지사장이었다. 설명을 들어 본 회사(현재 내가 이직한)는 그저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것보다는 확실히 더 크고 경쟁력 있고 사업구조도 확실했다. IT 인프라 및 IT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야는 이미 레드오션이겠지만, 미국 내 입지는 주요 고객사들의 면면을 보니 정말 확고해 보였고, 기술적으로도 충분히 배울 점이 있어 보였다. (지금 다시 생각하면, 정말이지 저 때 나의 평가는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이 회사에서 배울 점이 충분하다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 나는 우물 안 개구리같은 부족한 존재였음을 여실히 느끼며 하루라도 빨리 더 professional 해져야겠다는 압박을 느끼고 있다.)

 

*마침 (전 직장에서) 하던 일이 재미있어지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나는 올해('25) 전 직장(S전자)에서 맡은 일이 이제 막 재미있어지던 참이었다. AI를 활용하여 네트워크 인프라에 대한 가시성을 확보하고, 운영자의 업무 효율을 높이면서 실수를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며, 내가 직접 전체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도전적이기는 했지만 참 재미있었다.

전 직장에 입사했던 첫 해에는 도대체 나를 왜 뽑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부서에 배치되어 협력사 운영/유지보수 업무에 대한 비용 정산을 했었고 (사실 여기서도 대기업에서 돈이 어떻게 흐르는지 이해하는 등 배울 점이 많았다.), 이후 긴급하지만 남들은 바빠서 못하는 단기 태스크 포스에 투입되는 시기를 지나, 입사 3년차부터는 미국 공장을 신규 구축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회사에 직접 기여하는 일을 했었다.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빈 땅에서부터 기획 - 예산 확보 - 네트워크 인프라 설계 - 투자 - 구축 과정 전체를 다 직접 겪어볼 수 있었고, 그러면서 각 단계마다 발생하는 문제들(그 중 몇개는 최고 경영진까지 욕먹을 각오로 이슈로 보고해야 될 정도로 중대한 일도 있었다.)을 해결했었다. 이 때가 내 권한을 벗어나는 문제 해결을 위해 어려운 보고를 윗선에 자주 해야 돼서 일이 가장 힘들었지만, 이후 프로젝트가 실제로 진전되며 미국에서 공장이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며 보람도 참 많이 느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회사 전체 비즈니스가 별로 좋지 않아서 미국 신규 공장 가동을 계속 미루면서 내가 맡은 신규라인 구축 업무는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정말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걸어가며 네트워크 인프라를 아주 조금씩만 설치하며 협력사의 인건비를 소비할 수밖에 없는 지지부진한 과정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경영진에게 10회 넘게 투자심의 발표를 하며 프로젝트가 좌초되지 않도록 신경써야 했다. 2024년 말쯤 되니, 슬슬 내 상사들도 내가 이 프로젝트에 계속 묶여 있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던 때였다.

그리고 올해('25) 갑자기 전 직장의 소속 사업부 이름이 바뀌었다. 원래 반도체 공장 내에서 그저 IT를 운영하던 조직에서, 아예 사업부 이름에 AI가 들어갔다. 사업부 수장(센터장)이 바뀌었고, 심지어 연구소에서 AI 하던 사람들까지 전부 데려오는 매우 큰 조직 개편이 일어났다. 전 직장 입장에서는 당시 초고속 성장하는 AI 시장에 올라타지 못한 채 경쟁사(H사)에 완전히 패배하여 영업이익이 고꾸라지면서 다른 모든 사업부가 긴축 모드로 조직개편하는 와중에 유일하게 나의 소속 사업부만 덩치를 키웠다. 신임 센터장은 AI에 완전히 혈안이 되어 있었고, AI를 사용하여 회사 전체의 업무를 개선해야 한다는 missin을 외쳤다. 내가 보기에도 센터장의 목표 제시와 리더쉽은 분명히 맞았다. 다만 갑자기 사업부 이름만 AI로 바꾼다고 해서 소속 직원들이 갑자기 AI를 할 줄 알게 되는 것만 틀렸을 뿐... 기존에 그나마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던 부서는 큰 충격이 없었지만, 내가 속해 있던 네트워크 인프라를 운영하던 조직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하루아침에 AI 에이전트를 만들어 내라는 경영진의 명령은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원래 하던 일(하드웨어 투자 계획 대비 진척율을 들여다 보며, 미국 공사 현장에서 일어나는 건설사, 전기팀, 내가 파견보낸 네트워크 협력사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을 중재하던 일)을 벗어나 네트워크에 AI를 적용하는 일을 맡을 수 있었고, 정말 이것은 다시 생각해봐도 나에게는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2024년까지는 미국에 몇주짜리 출장을 매년 한두 번씩 가서 공사판에서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확인하고, 그 과정에서 계획대로 구축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을 중재하고, 내가 원하는 모양대로 네트워크 인프라가 구축되도록 신경써야 했다. 그리고 이 정도로 자주 출장을 갈 거면 차라리 미국에 아예 가족들을 데리고 장기파견을 가는 게 나았을 텐데, 실제 장기파견은 다른 부서가 가고 나는 계속 단신으로 출장을 가야만 했던 여러가지 사정도 있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그 일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가족과 매년 한두 번씩 이산가족이 될 필요 없이, 수만 대의 네트워크 장비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가시성을 높이기 위한 자동화 기술 구현 방법, AI 에이전트를 사용하여 네트워크 인프라로부터 인사이트를 얻는 방법, 디지털 트윈을 사용하여 안정적인 네트워크 운영에 기여하는 방법 등을 고민하고 차례대로 그것들을 개발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내가 직접 회사 내부 네트워크 인프라를 위한 디지털 전환 로드맵과 디지털 트윈, AI 에이전트를 구현하고 기능을 확장하는 계획을 세워서 경영진께 보고하고, 그것을 개발 능력이 있는 몇 안되는 동료들과 함께 직접 만들어 가는 과정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이런 것들을 가지고 경영진에게 보고하는 것도 부담스럽기는커녕 인정받을 수 있어서 뿌듯했다.

사실 내가 이대로 바로 미국의 빅테크 혹은 국내에 잘 알려진 IT 회사에 가서 같은 일을 한다고 그랬다면 무능한 직원으로 취급당했을 지도 모른다. 감사하게도 전 직장은 AI에 대한 목표는 확실한데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부족했고, 그 덕분에 나는 AI와 디지털트윈을 비록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보기에 많이 단순하고 부족하더라도 시간을 갖고 이것들을 개발하며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네트워크 인프라를 위한 디지털 트윈을 소규모로 구현해서 경영진에게 보여주기도 했고, AI 에이전트도 비록 퇴사할 때까지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네트워크 인프라를 잘 이해하는 그래프 DB 구조를 설계하여 수천 대의 스위치 데이터와 함께 LLM과 연동해서(GraphRAG) 환각이 거의 없는 네트워크 인프라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는 방법을 데모로 보여주기도 했었다. 20여명 남짓 있는 네트워크 운영 조직 내에서 유일한 AI 기획/개발이 가능한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일이 재미있다고 느끼던 타이밍에 갑자기 훅 들어오는 진지한 스카웃 제의라니... 그것도 전혀 성격이 다른 일(기술영업)을 해야 한다니? 어쩌면 내가 이것을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직 동기를 유발한 두 가지

그러나 나에게 스카웃 제의한 외국계 기업 지사장은 내가 전 직장에서 아쉬워하던 부분을 너무 정확하게 짚었다. 첫번째는 글로벌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 두번째는 충분한 보상. 그리고 추가로 일방적으로 무조건 좋다고 제안하는 것이 아닌, 내 입장에서도 기존에 맡아서 하던 일에서 새로 해야 되는 일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지는 측면에 대해서 미리 충분히 생각해 보라는 여지도 남겨 주었다.

지금 다시 돌아 보면, 전 직장 입사 후 6년차가 되어서야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그 전까지 맡았던 일은 연구능력이나 개발능력을 사용하는 일도 아니었고, 문서화 역량을 사용해서 상사에게 때맞춰 잘 보고하면서 문제와 갈등을 잘 중재하여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무리짓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과거에 대학원에서 갈고 닦은 경험 덕분에 문서화 작업이 그리 스트레스 받는 일은 아니었지만, (가끔 내가 잘 정리한 보고 자료를 혼자서 다시 보며 뿌듯해하기도 했었다. 나도 활자중독이 좀 있는 것 같다.) 그게 딱히 재미있지는 않았다. 힘들고 하기 싫다는 부담감을 억누르며 프로젝트를 문제없이 잘 마무리해야겠다는 목표 하나에만 집중해서 결과적으로 회사에 수백억 수준의 비용절감 기여까지 했지만, 정작 나에게 돌아오는 보상이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주말 출근 없이 평일 근무만으로 거의 주 52시간을 다 채워가며 프로젝트가 좌초되지 않도록 이끌었고 재무적 성과와 실제 결과물까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현장의 다양한 공종 중 그나마 큰 문제 없이 계획대로 잘 구축되고 있던 것이 네트워크 인프라였다.), 그렇게 좋은 성과를 냈던 시기에 인사평가에서 최상 등급은 다년간 부장 진급을 누락하던 다른 사람에게 양보했어야 했다. 사실 그 때는 아파트 청약을 신청하고 계약금과 중도금을 내야 하는 시기였고 (사실상 5억 미만의 분양가는 이 때가 마지막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무리 재정적으로 쪼들렸어도 이 때 분양을 받은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셋째딸도 커 가면서 돈이 많이 들던 때였는데 부족함을 메꿀 만큼의 연봉 상승이 되지 못했고, 그 와중에 회사는 경쟁사(H사)에게 완전히 패배하며 적자를 내면서 보너스는 아예 0%로 못 받으면서 정말 한 푼이라도 아쉬웠던 시기였다.

그 다음 해에도 다시 인사평가 최상 등급과 함께 부장 진급을 위해 맡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지만, 그 사이에 소속 사업부 이름이 바뀌며 나를 진급시키는 권한을 가진 나를 기억하던 임원들(센터장-실장-팀장)이 모두 교체되며, 나는 또다시 나보다 더 진급이 절실한 다른 분들에게 인사평가와 진급 TO를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 시간을 뛰어 넘어서 회고하자면, 그 당시 새로 부임한 팀장님은 내가 존재감이 전혀 없어서 왜 나를 진급시켜야 되는지 몰랐다고, 나와 퇴사 면담을 할 때가 되어서야 후회하듯 언급하셨다. 뭐든 다 인연과 타이밍이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나서 마침내 올해('25), 내 앞에 이제 내가 진급이나 인사평가를 양보해야 할 대상은 더이상 남아 있지 않았고, 나는 이름까지 AI로 바뀐 사업부 내에서 AI 프로젝트를 직접 추진하는 사람으로 상사들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올해 새로 부임한 팀장의 MBO (임원 인사평가 대상이 되는 업무 목표) 과제를 계획 대비 초과달성하고 있었으며, 연초에 계획에도 없던 네트워크를 위한 AI 에이전트의 일부 조각을 구현해서 데모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올해 말에는 인사평가 최상 등급을 받고 부장 진급을 무난히 하면서 새로 분양받은 집 대출금을 갚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만큼 생계형으로 일을 열심히 해야만 했다.

그런데 외국계 회사의 지사장이 첫 만남에서 식사 중에 제시한 처우는... 내가 위와 같이 내년에 희망회로를 돌린 결과로 기대하는 소득을 확실히 뛰어넘는 액수였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나는 그동안 정말로 낮게 후려쳐진 계약연봉을 받고 있던 상태였고, 여전히 회사는 경쟁사 대비 사업 분위기가 여전히 나빠서 내년초 보너스도 별 기대가 없던 상태였다. 심지어 내년에 기대하는 계약연봉 상승률과 그나마 기대되는 최소 수준의 보너스를 합친 원천징수 금액보다 이직처의 계약연봉이 더 컸고, 여기에 보너스까지 합치면 비교가 불가능한 차이였다.

(결과적으로, 최종 오퍼는 심지어 지사장의 최초 제안보다도 더 높아져서 앞자리 숫자가 달라져 버렸고, 나는 퇴사 통보 후 전직장 인사팀에게 엄청나게 시달리며 받은, 그들 피셜로 최선을 다해 승인받은 카운터오퍼로도 처우의 차이를 메꿀 수 없었다.

지사장은 일단 부담갖지 말고 채용 프로세스(면접 등)를 진행하고 나서 오퍼 받는 시점까지 충분히 고민해 보고 결정하라고 제안했고, 그렇게 결국 면접을 보게 되었다.

 

(다음 글에 이어서 계속...)

<다음 글 주제>
*면접의 과정
*전 직장이 나를 붙잡은 과정, 그러나 이타심이 아닌 이기심을 처음으로 사용했던 때
*입사하고 보니...
*앞으로의 각오와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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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연구조직이 아닌 일반적인 사업부에서 박사로 일하다 보면, 연구동향 조사를 하거나, 가끔 산학연구 대상 연구실을 찾고 컨택한다거나, 대학원 졸업생 채용에 참여하는 등, 여전히 연구과 관련된 일에 관여하는 경우가 생긴다. 보통은 이런 종류의 일이 부서 안에서 가장 먼저 나에게 할당된다. 비록 지금은 연구를 중단한 채 일반적인 회사원으로 나의 정체성을 확립한 채 일하더라도, 주변에서는 여전히 나를 박사로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기술이 조금이라도 필요한 일이나 임원의 기술적인 요구사항이 발생하면 결국 과거에 논문을 쓰면서 겪었던 과정과 유사한 업무를 하게 된다. 결국 나도 배운 일이 다 그런 종류다 보니, 기술에 대한 근거자료를 찾고(그것도 논문이나 매거진 아티클부터 찾게 됨), 그 기술에 대한 회사의 현재 수준을 파악하고, 문제점(할일)을 파악해서 향후 방향을 제시하는 식의 정리를 하게 된다.

작년에 사내 confluence에 업무하면서 만든 문서 중의 상당수는 결국 논문 요약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결국 내가 연구를 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말하는 것도 어딘가 이상하다. 오히려 불완전 연구를 계속 하는 상황에 가깝다. (논문만 안 썼지 연구의 앞 단계는 계속 하니까)

문제는 내가 각 잡고 연구만 매진하는 연구원은 아니고 여러가지 일반적인 회사원으로써의 일을 하면서 연구와 관련된 요구사항도 따로 주어지는 상황이다. 그런 요구사항이 올 때마다 배운 대로, 하던 대로 조사/분석/제안 등을 항상 해 왔지만, 어느 순간 드는 생각은, 연구활동을 어느 정도 하지만 결실(논문 발표 혹은 그외 산출물)을 맺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럴 거면 연구에 전념하고 논문을 출판하는 것이 맞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부서의 상황은 온갖 운영 업무를 비롯한 회사를 굴러가게 하는 일들이 매일 쏟아진다. 연구원으로 정체성을 가져가려고 하면, 논문 실적을 내지 못하는 무능력한 박사로 매일 자괴감을 느껴야만 하고, 반대로 일반 회사원으로 정체성을 가지려고 하면 손에 잡히는 구현이나 결과물을 빠르게 만들어 내지 못하는 포지션에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부정적인 감정만 가진 채 악순환 속에서 침몰할 수는 없으니, 그냥 전 세계에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지금의 나만이 현재 위치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 부서에 신기술을 지속적으로 가져와서 공유하며 발전하도록 자극시키고, 연구 방법론을 활용해서 회사의 실질적인 문제를 예측 가능한 방법과 절차대로 해결하도록 돕고, 그 과정에서 업무 프로세스 개선,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는 시스템 구축 등... 내가 만들어 내는 긍정적인 효과와 가치에 집중해서 이것을 더 잘 해내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또다른 기회가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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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링크드인 프로필을 틈틈이 고치다 보면 헤드헌터나 HR로부터 콜드메일을 종종 받는다. 그 중 특이했던 경험을 기록으로 남겨보려 한다.

 

누구나 아는 클라우드/데이터센터 분야 미국 테크기업 A사의 한국 지사에서 HR 담당자가 Senior Data Center Network Technician이라는 JD와 함께 콜드메일을 보내 왔다. 내가 그 직무에 매우 적합해 보인다며 긍정적인 검토를 바란다면서.

그런데 직무 이름에 엔지니어가 아닌 테크니션이 적혀 있어서 기분이 좀 쎄했지만, 미국에서 일한 적이 없다 보니 그래도 뭔가 미국 테크기업에서 배울 점이 있고 성장의 기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결국 헛된 희망)이 있어서, 궁금증을 못 이기고 HR과 전화통화를 했다.

결론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직무였다. 예상대로 테크니션 타이틀은 그 어떤 창의적이거나 주체적인 일을 할 수 없고, 오로지 다른 엔지니어/아키텍트가 설계해 놓은 내용을 그대로 설치만 하는 단순/반복 업무였다. 혹시나 기획/설계/개발 같은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지 물어봤지만 못 한다고... 그러면 일단 테크니션으로 입사해서 엔지니어나 아키텍트로 업무를 변경할 수도 있는지 물어봤는데 그것도 안 된다고 한다.

더 놀라운 건 연봉 밴드가 지금 다니는 국내 대기업의 원천징수 소득보다도 낮다는 점이었다. 요즘 회사 상태가 나빠서 인센티브가 줄어들어서 그 수준으로 희망연봉을 불렀는데도 맞추기 어려울 수 있다고... 회사가 정해 놓은 연봉 밴드의 최상단 어쩌구 저쩌구라며 말을 길게 하던데, 결국 희망연봉을 못 맞춰 준다는 의미겠지.

 

헤드헌터가 잘 모르고 엉뚱한 직무를 소개하는 것은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데, 그 외국계 기업에 정식 소속된 HR 담당자가 해당 분야를 연구한 박사에게 고졸도 할 수 있는 단순노무직을 적극 추천한 이유가 무엇일지 잠시 고민했었다. (사실 그냥 검색에 걸려서 콜드메일 수신처에 포함됐을 테니 절대 깊게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한편으로는 내가 박사과정을 졸업하는 시점에 국내 대기업 HR로부터 제안을 받았을 때의 경험이 나쁘지 않았어서 (의외로 내 연구분야에 근접하는 직무를 잘 소개해 줬었다.) 외국계 HR에게 더 많은 기대를 했던 것 같다.

통화 후 얻은 교훈은,

  • 링크드인에서 키워드 검색에 걸려든 사람들에게 무지성으로 뿌리는 콜드메일에 너무 의미부여 하지 말자.
  • HR은 생각보다 직무 적합성을 잘 모른다. 
    (그래도 박사한테 테크니션을 추천하는 HR은 반성이 필요하다.)
  • 외국계 회사의 job title의 차이를 미리 이해해 두자.
    (테크니션, 엔지니어, 아키텍트, 리서처는 서로 차이가 있고, pre-sales/customer 같은 수식어가 있으면 영업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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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 수록, 인터넷에서 내가 참고할 만한 커리어 경로에 대한 정보를 찾기 어려워진다. 넓게 보면 사기업에 취업한 공학 박사의 성장 경로 혹은 이직 경로와 사례는 차고 넘치지만, 구체적으로 내가 공부/연구했던 분야나 내가 지금 하는 일에 맞춰서 필터링하면, 회사에서 일하는 경험이 쌓여갈 수록 점점 내가 참고할 만한(솔직하게는 내가 따라가고 싶은) 커리어 경로에 대한 경험담이나 사례를 찾기 어려워지는 기분이다. 나는 예측 가능한 삶을 원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미 지나가면서 표준화(?) 된 커리어 경로와 노후의 모습을 예측하기는 어려워졌다.

마치 게임을 할 때, 한국인 특유의 "최적의 공략법"부터 찾아내서 그것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처럼, 나도 내 인생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안심하며 따라가고 싶은 어떤 인생의 공략법을 찾아 헤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마음이 있다.

 

"남들 다 하는 대로." 

나도 전형적인 한국인이기에, 이 말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한다. 언제 어떤 사회적 위치에 이르러서 언제 결혼하고 어디서 살고 언제 자녀를 낳아서 어떻게 키우고 등등... 바로 이 전형적인 "남들"의 삶에 맞추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생기는 이유는 내가 여전히 자존감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내 삶은 그런 표준화된 "남들"을 따라가기에는 너무 달라졌다. 2010년대의 관점에서 평균 초혼 연령과 전혀 맞지 않는 이른 나이에 결혼했고, 남들이 보통 자녀를 낳는 조건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첫째를 낳았고, 지금은 대한민국이 멸망할 것만 같은 합계출산율을 찍는 상황에서 그 평균치를 아득히 벗어난 아웃라이어가 되어 세자녀를 키우고 있으니, 이미 내가 생각하는 "남들"의 이미지는 내 앞길에서 거의 다 사라졌다.

이제 내 인생에 대해 남들의 시선과 평가를 찾지 말고 오직 내 스스로 나를 평가하며 앞길을 개척해야 한다. 용기를 내고 자존감을 높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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