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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연구조직이 아닌 일반적인 사업부에서 박사로 일하다 보면, 연구동향 조사를 하거나, 가끔 산학연구 대상 연구실을 찾고 컨택한다거나, 대학원 졸업생 채용에 참여하는 등, 여전히 연구과 관련된 일에 관여하는 경우가 생긴다. 보통은 이런 종류의 일이 부서 안에서 가장 먼저 나에게 할당된다. 비록 지금은 연구를 중단한 채 일반적인 회사원으로 나의 정체성을 확립한 채 일하더라도, 주변에서는 여전히 나를 박사로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기술이 조금이라도 필요한 일이나 임원의 기술적인 요구사항이 발생하면 결국 과거에 논문을 쓰면서 겪었던 과정과 유사한 업무를 하게 된다. 결국 나도 배운 일이 다 그런 종류다 보니, 기술에 대한 근거자료를 찾고(그것도 논문이나 매거진 아티클부터 찾게 됨), 그 기술에 대한 회사의 현재 수준을 파악하고, 문제점(할일)을 파악해서 향후 방향을 제시하는 식의 정리를 하게 된다.

작년에 사내 confluence에 업무하면서 만든 문서 중의 상당수는 결국 논문 요약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결국 내가 연구를 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말하는 것도 어딘가 이상하다. 오히려 불완전 연구를 계속 하는 상황에 가깝다. (논문만 안 썼지 연구의 앞 단계는 계속 하니까)

문제는 내가 각 잡고 연구만 매진하는 연구원은 아니고 여러가지 일반적인 회사원으로써의 일을 하면서 연구와 관련된 요구사항도 따로 주어지는 상황이다. 그런 요구사항이 올 때마다 배운 대로, 하던 대로 조사/분석/제안 등을 항상 해 왔지만, 어느 순간 드는 생각은, 연구활동을 어느 정도 하지만 결실(논문 발표 혹은 그외 산출물)을 맺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럴 거면 연구에 전념하고 논문을 출판하는 것이 맞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부서의 상황은 온갖 운영 업무를 비롯한 회사를 굴러가게 하는 일들이 매일 쏟아진다. 연구원으로 정체성을 가져가려고 하면, 논문 실적을 내지 못하는 무능력한 박사로 매일 자괴감을 느껴야만 하고, 반대로 일반 회사원으로 정체성을 가지려고 하면 손에 잡히는 구현이나 결과물을 빠르게 만들어 내지 못하는 포지션에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부정적인 감정만 가진 채 악순환 속에서 침몰할 수는 없으니, 그냥 전 세계에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지금의 나만이 현재 위치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 부서에 신기술을 지속적으로 가져와서 공유하며 발전하도록 자극시키고, 연구 방법론을 활용해서 회사의 실질적인 문제를 예측 가능한 방법과 절차대로 해결하도록 돕고, 그 과정에서 업무 프로세스 개선,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는 시스템 구축 등... 내가 만들어 내는 긍정적인 효과와 가치에 집중해서 이것을 더 잘 해내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또다른 기회가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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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링크드인 프로필을 틈틈이 고치다 보면 헤드헌터나 HR로부터 콜드메일을 종종 받는다. 그 중 특이했던 경험을 기록으로 남겨보려 한다.

 

누구나 아는 클라우드/데이터센터 분야 미국 테크기업 A사의 한국 지사에서 HR 담당자가 Senior Data Center Network Technician이라는 JD와 함께 콜드메일을 보내 왔다. 내가 그 직무에 매우 적합해 보인다며 긍정적인 검토를 바란다면서.

그런데 직무 이름에 엔지니어가 아닌 테크니션이 적혀 있어서 기분이 좀 쎄했지만, 미국에서 일한 적이 없다 보니 그래도 뭔가 미국 테크기업에서 배울 점이 있고 성장의 기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결국 헛된 희망)이 있어서, 궁금증을 못 이기고 HR과 전화통화를 했다.

결론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직무였다. 예상대로 테크니션 타이틀은 그 어떤 창의적이거나 주체적인 일을 할 수 없고, 오로지 다른 엔지니어/아키텍트가 설계해 놓은 내용을 그대로 설치만 하는 단순/반복 업무였다. 혹시나 기획/설계/개발 같은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지 물어봤지만 못 한다고... 그러면 일단 테크니션으로 입사해서 엔지니어나 아키텍트로 업무를 변경할 수도 있는지 물어봤는데 그것도 안 된다고 한다.

더 놀라운 건 연봉 밴드가 지금 다니는 국내 대기업의 원천징수 소득보다도 낮다는 점이었다. 요즘 회사 상태가 나빠서 인센티브가 줄어들어서 그 수준으로 희망연봉을 불렀는데도 맞추기 어려울 수 있다고... 회사가 정해 놓은 연봉 밴드의 최상단 어쩌구 저쩌구라며 말을 길게 하던데, 결국 희망연봉을 못 맞춰 준다는 의미겠지.

 

헤드헌터가 잘 모르고 엉뚱한 직무를 소개하는 것은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데, 그 외국계 기업에 정식 소속된 HR 담당자가 해당 분야를 연구한 박사에게 고졸도 할 수 있는 단순노무직을 적극 추천한 이유가 무엇일지 잠시 고민했었다. (사실 그냥 검색에 걸려서 콜드메일 수신처에 포함됐을 테니 절대 깊게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한편으로는 내가 박사과정을 졸업하는 시점에 국내 대기업 HR로부터 제안을 받았을 때의 경험이 나쁘지 않았어서 (의외로 내 연구분야에 근접하는 직무를 잘 소개해 줬었다.) 외국계 HR에게 더 많은 기대를 했던 것 같다.

통화 후 얻은 교훈은,

  • 링크드인에서 키워드 검색에 걸려든 사람들에게 무지성으로 뿌리는 콜드메일에 너무 의미부여 하지 말자.
  • HR은 생각보다 직무 적합성을 잘 모른다. 
    (그래도 박사한테 테크니션을 추천하는 HR은 반성이 필요하다.)
  • 외국계 회사의 job title의 차이를 미리 이해해 두자.
    (테크니션, 엔지니어, 아키텍트, 리서처는 서로 차이가 있고, pre-sales/customer 같은 수식어가 있으면 영업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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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잡으면서 2020년 3월에 직장 근처 아파트에 대해 2.6억 보증금으로 전세를 계약했고, 그 후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작년에는 임대차3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그걸 비웃듯 집값과 전세값은 천정부지로 올랐고, 지금도 오르는 중이다. 올 여름에 보니 같은 아파트단지의 매매 가격은 내가 전세계약 할 때의 매매 시세 대비 1.5~2배 올랐고, 전세 가격 역시 최소 4억원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집주인은 올 여름부터 집을 팔기 위해 매물로 내놓았고, 추석 연휴 직전까지 집을 보러 사람들이 꽤 많이 다녀갔지만, 거래가 성사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어느덧 계약 만료를 6개월 앞둔 시점이 되었고, 나는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기 위해 집주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OO아파트 OO동OO호 세입자입니다.
저희가 2022년 3/OO 전세계약 만료와 관련해서 계약갱신청구권을 통해 전세계약을 연장하려고 합니다.
혹시 협의가 필요한 부분은 언제든지 말씀해 주시면 맞춰서 준비하겠습니다.

 

오전에 내가 보낸 문자에 한동안 대답이 없던 집주인은 오후 늦게 되어서 '죄송하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실거주를 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의 답변을 정중하게(?) 보내 주었다.

임대차 3법 덕분에 세입자는 2년 전세계약 후 집주인의 정당한 사유 없이는 5% 이하의 인상분으로 2년을 더 연장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은 것 같지만, 그에 맞서는 집주인은 '본인 혹은 직계가족의 실거주'를 이유로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다. 물론 세입자의 입장에서 집주인이 실거주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면 손해배상청구 등의 수단을 쓸 수는 있겠지만, 그래 봐야 집주인은 차라리 벌금을 내거나 이사 비용을 물어주고 말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기존 세입자를 내보냄으로써 얻는 이득이 최소 억 단위인데 누군들 안 내보내려고 할까?

그리고 집주인 입장에서는 손해배상할 것도 없이 본인 가족의 일부 구성원만 세대분리 시키고(예를 들어, 4인 가족이라면 아내와 자녀 1명), 그들만 기존에 전세를 놓았던 집으로 전입신고한 뒤에 간단한 가재도구와 침구만 갖다 놓고서 주말에 가끔 들러서 거주하는 척 하면 그만이다. 그런 식으로 잠깐 실거주하다가 '집주인 거주 매물'로 부동산에 다시 내놓거나, 거의 2배쯤 올린 전세 보증금으로 세를 놓으면 순식간에 팔려 나가니까 말이다. 나 때문에 전세 낀 매물이 되어서 잘 팔리지도 않는 상황을 지켜보던 집주인 입장에서는 우리 가족이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짜증이 나서 지금 전세로 거주하는 집을 내가 살 수 있는지 알아보니,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현재 호가 중에 가장 낮은 가격이 6억원이고, 지금 살고 있는 동네가 투기조정지역이라서 주택담보대출이 50%까지만 나온다. 그러면 주택담보대출로 3억원까지만 가능하고, 나머지 3억원은 다른 방법으로 마련해야 한다. 나는 사회에 발을 디딘 게 늦은 죄로 그동안 악착같이 전세대출금을 상환하고(인센티브 받을 때마다 대부분 상환) 그 전부터 모은 돈을 합쳐 보니 1.3억원쯤 되고, 여전히 나머지 1.7억원을 다른 방법으로 조달해야 한다. 그나마 가능해 보였던 신용대출은 최근 들어 틀어막히는 중이고, 퇴직하신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불효를 최대한 안하고 싶지만 한다손 쳐도 1.7억원이나 지원해 주실 수도 없다. 마침 최근에 주택담보대출에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를 우대하기 위해서 나온 10% 추가 혜택이 있기는 한데, 부부합산 소득 9000만원 이하라는 조건이 있었다. 나는 대기업에 다니는 외벌이라서 원천징수 연 소득을 기준으로 9000만원을 넘으므로 그 혜택도 받을 수 없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지금 사는 곳에서 조금 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대규모로 여러 아파트 단지를 분양할 예정인 곳이 있어서 그곳에 분양을 낼 때까지만 현재 있는 곳에서 버텼으면 좋겠는데, 사실 분양도 받을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 대학원생 시절에 마음이 맞아서 일찍 결혼했더니 신혼부부 조건(혼인신고 후 7년 이내)을 넘어 버려서 신혼부부 특별공급에 청약할 수 없고, 같은 행정구역에 거주한 기간 역시 아직 2년이 채 되지 않아서 내년 4월 전까지는 분양 공고가 나오더라도 가장 순위가 낮은 일반 분양밖에 낼 수 없다. 무엇보다도 최근과 같은 강력한 대출 규제가 앞으로 몇 년간 지속된다면, 정작 나중에 입주할 때가 되어서 주택담보대출이 막혀서 잔금을 내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도 미리 생각해 둬야 한다.

결국 나는 박사과정이 너무 오래 걸린 것 때문에, 뒤늦게 회사에 들어오면서 표면적으로 연봉이 높아 보이지만 당장 돈이 없어서 집과 관련된 것은 거의 전부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인데... 현재 기준으로는 입사 후로 지금까지 회사에서 받는 소득 전부를 한 푼도 쓰지 않고 다 모아도 최근에 오른 전세금 충당은커녕 주택담보대출 50%를 받고서도 집을 살 수 없는 벼락거지가 되었다.

블라인드 앱에서 우스갯소리로 우리회사에 최근에 입사한 박사들이 제일 불쌍하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게 바로 내 얘기가 되었다. 모은 돈은 별로 없고, 미세하게 높은 연봉 갖고는 내집마련에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고, 상환능력을 근거로 최대한 대출을 받고 싶어도 정부가 대출을 못하게 하니 직장 근처에 실거주를 위한 집을 구할 수 없는 신세 말이다. (서울은 전혀 바라지도 않는다.)
차라리 석사 졸업 후 일찌감치 취업해서 미리 돈을 좀 모으거나, 지금처럼 정부의 미쳐 돌아가는 정책 변경과 그에 발맞춰 미쳐 돌아가는 집값이 되기 전에 집을 마련했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후회해 봐야 내 뼈만 삭을 뿐이니 후회는 최대한 하지 말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나 잘 생각해 봐야겠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딸의 교우관계를 생각해서(안 그래도 이 동네에 유치원 중간에 들어와서 친구가 거의 없다) 같은/주변 아파트단지에서 전세를 구해야 할것 같고, 전세대출마저 막히기 전에 빨리 전세계약을 하고, 부자지간에 차용증도 쓰고 해야 할 것이다. 나이 먹고 독립했는데도 오히려 더 큰 돈이 나가는 불효자식의 입장에서 부모님께 죄송하고, 오히려 그런 내게 걱정 말라시는 부모님의 위로가 또 감사하다. 전세 매물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있어서 다행이고, 또한 내년에 여러 아파트 단지에 (살아남기 위한) 분양을 기대할 수 있음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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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입사하면서, 나는 내 이력에서 박사 타이틀을 떼어 버리고 오로지 열심과 업무수행 능력으로만 인정받고 싶었다. 내 입장에서 박사학위는 분수에 맞지 않지만, 그간 고생한 이력이 불쌍해서 학교가 나에게 "옛다" 하고 마지못해 쥐어 준 것이었다. 그런 부끄러움 때문에 채용 과정이 끝난 뒤에는 소셜 네트워크에서 학력을 다 없애 버렸다. 그러나 부서에 배치받고 나서 일을 하면 할 수록, 주위 동료들과 상사들은 나를 더욱 더 '네트워크 박사'의 이미지로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모름지기 공학박사는 특정 분야의 기술적인 한계가 어디인지 알고, 인간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기술적인 문제를 정의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체계적인 절차와 방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돌이켜 보면 내가 잘 했던 것은 특정 기술분야의 정점이 어디인지를 비교적 빨리 찾아내는 것이었다. 문제 정의는 지도교수의 가르침에 비해 평균 또는 그 이하여서 지도교수의 도움을 자주 받았던 것 같다. 해결 방법에 대해서는 문제 정의가 되기도 전에 먼저 움직이려고 하거나, 정작 문제 정의를 해결하는 가장 핵심적인 action item 말고 곁가지를 먼저 챙기는 실수를 자주 했었다. 뭘 실험으로 증명해야 되는지 스스로 이해하기도 전에 실험 환경을 만드는 성급함이랄까...

그런데 회사에서 연구를 중심으로 하지 않는 부서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박사의 문제 정의 능력이 필요한 업무는 여전히 존재한다. 무엇보다 상사의 상사의 상사쯤 되는, 경영진까지 보고를 해야 하는 일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문제의 핵심을 제한된 분량의 슬라이드나 문서로 정확하게 표현해야만 한다.

입사 후 초반 몇 개월 동안은 내가 회사가 돌아가는 그 자체를 익히느라 중요한 일을 맡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 회사의 현황을 어느 정도 알게 되면서 가끔 부서 차원의 결정에 관여하거나 윗선에 보고해야 할 때, 사람들은 나에게 박사로서의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게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회사가 나보다 더 체력도 좋고 두뇌 회전도 좋으며 (요즘은 인적성 검사가 IQ 테스트 빨리 풀기 대회니까) , 인건비까지 더 싼 신입사원을 뽑지 않고 굳이 경력직으로 (업무 경력으로 보면 신입과 똑같은) 박사를 채용하는 이유는 그렇게 쓸 곳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뽑혀 와서는, 경력 없는 일반 신입사원과 똑같은 종류의 일들만 열심히 한다면,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처리를 한다고 한들 주위 사람들의 기대에는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의 자격지심 때문에 박사 타이틀을 일부러 없애면서 주어지는 모든 종류의 일을 닥치는 대로 열심히'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내가 좋든 싫든, 나는 회사가 현재 갖고 있는 challenge와 그 이면에 숨겨진 근본적인 기술적 문제를 드러내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체계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 주는 것이 제대로 인정받는 길이다. 졸업할 때까지 연구능력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면, 이제부터라도 능력을 키우고 발휘해서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한 마음가짐일 것이다.
스스로 박사의 무게감을 덜어 내려 하지 말고, 그 무게감이 오히려 진짜임을 증명하기 위해 이번주도 노력하자.

Keep learning, keep thin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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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말, 집 이사를 끝으로 길었던 대전에서의 생활을 정리했다.

태어난 곳 다음으로 긴 시간을 보내며 나의 20대와 대학원 생활, 결혼, 출산, 육아 등 중요한 이벤트가 모두 있었던 대전인데, 떠날 때는 진심으로 미련이 단 한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추억이 많았지만, 그만큼 내 영혼을 가장 많이 찌그러뜨려 놓은 곳이 대전이니까. 

세어 보면 결코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지만, 자괴감가 함께 파묻어버린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미숙한 연구 조각이 화석처럼 새겨진 곳.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자니 죽을 것 같았고, 모든 것을 남탓으로 돌리자니 내 부족한 역량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곳. 졸업 후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 하나만 가지고 결혼과 육아를 하며 가족에 대한 부채의식을 쌓았고, 실제로 부모님께 손 벌리고 카드 결제일이 돌아올 때마다 걱정하며 재정적 부채 역시 함께 쌓여갔던 곳. 나에게는 시간과 실력과 돈이 모두 부족했던 삶으로 점철된 곳이 대전이었다. (그래도 아내와 아이는 나의 극단적인 표현이 무색하게 대전을 즐겁게 지냈던 곳으로 생각해 주어서 다행이다.)

그렇게 십수 년 동안 썩지는 않았지만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져 가던 나에게 일어난 생활환경의 전적인 변화가 너무나 반가웠다. 홀가분하게 대전을 벗어난 후, 오로지 회사에서 일만 하고 남는 시간에는 집에서 쉬기만 하면서 내 머릿속에 들어찬 독기를 빼내듯, 해독의 시간을 보냈다. 아직도 우울증 약은 계속 필요하지만, 대략 10년 만에 잘 먹고 잘 자는 평범한 삶이 내게 주어져서 감사하다.


작년 한해 동안 나는 실패한 박사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난 적이 없었는데, 요즘은 잊을 만하면 한번씩 불쑥 떠오르는 정도로 줄어들었다. 시간과 실력과 재정의 결핍 중에서 시간이 해결되었고, 재정도 조금씩 해결되기 시작하면서 이제서야 나 자신을 삐뚤어진 시각이 아닌 정상적인 시각으로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도교수는 졸업할 때 온전하게 증빙하지 못했던 내 '실력'을 만회할 수 있도록 아직도 연구에 코멘트를 해 주시고, 나는 일주일 중 겨우 3시간밖에 쓰지 못하지만 그 얼마 안되는 시간을 써서 논문 진도를 나가고 있다. 사실 평일 퇴근 후 저녁시간과 주말 전체 시간이 다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지만, 지금은 그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에 쓰고 있다. 박사과정 내내 방치했던 가족을 향한 일종의 부채 상환이기 때문에 연구 시간으로 쓰면 안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무리하지 않고 주어지는 시간 안에서 실력을 쌓아 가야겠다. Keep lea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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