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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잡으면서 2020년 3월에 직장 근처 아파트에 대해 2.6억 보증금으로 전세를 계약했고, 그 후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작년에는 임대차3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그걸 비웃듯 집값과 전세값은 천정부지로 올랐고, 지금도 오르는 중이다. 올 여름에 보니 같은 아파트단지의 매매 가격은 내가 전세계약 할 때의 매매 시세 대비 1.5~2배 올랐고, 전세 가격 역시 최소 4억원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집주인은 올 여름부터 집을 팔기 위해 매물로 내놓았고, 추석 연휴 직전까지 집을 보러 사람들이 꽤 많이 다녀갔지만, 거래가 성사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어느덧 계약 만료를 6개월 앞둔 시점이 되었고, 나는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기 위해 집주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OO아파트 OO동OO호 세입자입니다.
저희가 2022년 3/OO 전세계약 만료와 관련해서 계약갱신청구권을 통해 전세계약을 연장하려고 합니다.
혹시 협의가 필요한 부분은 언제든지 말씀해 주시면 맞춰서 준비하겠습니다.

 

오전에 내가 보낸 문자에 한동안 대답이 없던 집주인은 오후 늦게 되어서 '죄송하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실거주를 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의 답변을 정중하게(?) 보내 주었다.

임대차 3법 덕분에 세입자는 2년 전세계약 후 집주인의 정당한 사유 없이는 5% 이하의 인상분으로 2년을 더 연장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은 것 같지만, 그에 맞서는 집주인은 '본인 혹은 직계가족의 실거주'를 이유로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다. 물론 세입자의 입장에서 집주인이 실거주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면 손해배상청구 등의 수단을 쓸 수는 있겠지만, 그래 봐야 집주인은 차라리 벌금을 내거나 이사 비용을 물어주고 말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기존 세입자를 내보냄으로써 얻는 이득이 최소 억 단위인데 누군들 안 내보내려고 할까?

그리고 집주인 입장에서는 손해배상할 것도 없이 본인 가족의 일부 구성원만 세대분리 시키고(예를 들어, 4인 가족이라면 아내와 자녀 1명), 그들만 기존에 전세를 놓았던 집으로 전입신고한 뒤에 간단한 가재도구와 침구만 갖다 놓고서 주말에 가끔 들러서 거주하는 척 하면 그만이다. 그런 식으로 잠깐 실거주하다가 '집주인 거주 매물'로 부동산에 다시 내놓거나, 거의 2배쯤 올린 전세 보증금으로 세를 놓으면 순식간에 팔려 나가니까 말이다. 나 때문에 전세 낀 매물이 되어서 잘 팔리지도 않는 상황을 지켜보던 집주인 입장에서는 우리 가족이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짜증이 나서 지금 전세로 거주하는 집을 내가 살 수 있는지 알아보니,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현재 호가 중에 가장 낮은 가격이 6억원이고, 지금 살고 있는 동네가 투기조정지역이라서 주택담보대출이 50%까지만 나온다. 그러면 주택담보대출로 3억원까지만 가능하고, 나머지 3억원은 다른 방법으로 마련해야 한다. 나는 사회에 발을 디딘 게 늦은 죄로 그동안 악착같이 전세대출금을 상환하고(인센티브 받을 때마다 대부분 상환) 그 전부터 모은 돈을 합쳐 보니 1.3억원쯤 되고, 여전히 나머지 1.7억원을 다른 방법으로 조달해야 한다. 그나마 가능해 보였던 신용대출은 최근 들어 틀어막히는 중이고, 퇴직하신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불효를 최대한 안하고 싶지만 한다손 쳐도 1.7억원이나 지원해 주실 수도 없다. 마침 최근에 주택담보대출에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를 우대하기 위해서 나온 10% 추가 혜택이 있기는 한데, 부부합산 소득 9000만원 이하라는 조건이 있었다. 나는 대기업에 다니는 외벌이라서 원천징수 연 소득을 기준으로 9000만원을 넘으므로 그 혜택도 받을 수 없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지금 사는 곳에서 조금 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대규모로 여러 아파트 단지를 분양할 예정인 곳이 있어서 그곳에 분양을 낼 때까지만 현재 있는 곳에서 버텼으면 좋겠는데, 사실 분양도 받을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 대학원생 시절에 마음이 맞아서 일찍 결혼했더니 신혼부부 조건(혼인신고 후 7년 이내)을 넘어 버려서 신혼부부 특별공급에 청약할 수 없고, 같은 행정구역에 거주한 기간 역시 아직 2년이 채 되지 않아서 내년 4월 전까지는 분양 공고가 나오더라도 가장 순위가 낮은 일반 분양밖에 낼 수 없다. 무엇보다도 최근과 같은 강력한 대출 규제가 앞으로 몇 년간 지속된다면, 정작 나중에 입주할 때가 되어서 주택담보대출이 막혀서 잔금을 내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도 미리 생각해 둬야 한다.

결국 나는 박사과정이 너무 오래 걸린 것 때문에, 뒤늦게 회사에 들어오면서 표면적으로 연봉이 높아 보이지만 당장 돈이 없어서 집과 관련된 것은 거의 전부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인데... 현재 기준으로는 입사 후로 지금까지 회사에서 받는 소득 전부를 한 푼도 쓰지 않고 다 모아도 최근에 오른 전세금 충당은커녕 주택담보대출 50%를 받고서도 집을 살 수 없는 벼락거지가 되었다.

블라인드 앱에서 우스갯소리로 우리회사에 최근에 입사한 박사들이 제일 불쌍하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게 바로 내 얘기가 되었다. 모은 돈은 별로 없고, 미세하게 높은 연봉 갖고는 내집마련에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고, 상환능력을 근거로 최대한 대출을 받고 싶어도 정부가 대출을 못하게 하니 직장 근처에 실거주를 위한 집을 구할 수 없는 신세 말이다. (서울은 전혀 바라지도 않는다.)
차라리 석사 졸업 후 일찌감치 취업해서 미리 돈을 좀 모으거나, 지금처럼 정부의 미쳐 돌아가는 정책 변경과 그에 발맞춰 미쳐 돌아가는 집값이 되기 전에 집을 마련했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후회해 봐야 내 뼈만 삭을 뿐이니 후회는 최대한 하지 말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나 잘 생각해 봐야겠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딸의 교우관계를 생각해서(안 그래도 이 동네에 유치원 중간에 들어와서 친구가 거의 없다) 같은/주변 아파트단지에서 전세를 구해야 할것 같고, 전세대출마저 막히기 전에 빨리 전세계약을 하고, 부자지간에 차용증도 쓰고 해야 할 것이다. 나이 먹고 독립했는데도 오히려 더 큰 돈이 나가는 불효자식의 입장에서 부모님께 죄송하고, 오히려 그런 내게 걱정 말라시는 부모님의 위로가 또 감사하다. 전세 매물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있어서 다행이고, 또한 내년에 여러 아파트 단지에 (살아남기 위한) 분양을 기대할 수 있음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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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입사하면서, 나는 내 이력에서 박사 타이틀을 떼어 버리고 오로지 열심과 업무수행 능력으로만 인정받고 싶었다. 내 입장에서 박사학위는 분수에 맞지 않지만, 그간 고생한 이력이 불쌍해서 학교가 나에게 "옛다" 하고 마지못해 쥐어 준 것이었다. 그런 부끄러움 때문에 채용 과정이 끝난 뒤에는 소셜 네트워크에서 학력을 다 없애 버렸다. 그러나 부서에 배치받고 나서 일을 하면 할 수록, 주위 동료들과 상사들은 나를 더욱 더 '네트워크 박사'의 이미지로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모름지기 공학박사는 특정 분야의 기술적인 한계가 어디인지 알고, 인간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기술적인 문제를 정의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체계적인 절차와 방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돌이켜 보면 내가 잘 했던 것은 특정 기술분야의 정점이 어디인지를 비교적 빨리 찾아내는 것이었다. 문제 정의는 지도교수의 가르침에 비해 평균 또는 그 이하여서 지도교수의 도움을 자주 받았던 것 같다. 해결 방법에 대해서는 문제 정의가 되기도 전에 먼저 움직이려고 하거나, 정작 문제 정의를 해결하는 가장 핵심적인 action item 말고 곁가지를 먼저 챙기는 실수를 자주 했었다. 뭘 실험으로 증명해야 되는지 스스로 이해하기도 전에 실험 환경을 만드는 성급함이랄까...

그런데 회사에서 연구를 중심으로 하지 않는 부서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박사의 문제 정의 능력이 필요한 업무는 여전히 존재한다. 무엇보다 상사의 상사의 상사쯤 되는, 경영진까지 보고를 해야 하는 일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문제의 핵심을 제한된 분량의 슬라이드나 문서로 정확하게 표현해야만 한다.

입사 후 초반 몇 개월 동안은 내가 회사가 돌아가는 그 자체를 익히느라 중요한 일을 맡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 회사의 현황을 어느 정도 알게 되면서 가끔 부서 차원의 결정에 관여하거나 윗선에 보고해야 할 때, 사람들은 나에게 박사로서의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게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회사가 나보다 더 체력도 좋고 두뇌 회전도 좋으며 (요즘은 인적성 검사가 IQ 테스트 빨리 풀기 대회니까) , 인건비까지 더 싼 신입사원을 뽑지 않고 굳이 경력직으로 (업무 경력으로 보면 신입과 똑같은) 박사를 채용하는 이유는 그렇게 쓸 곳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뽑혀 와서는, 경력 없는 일반 신입사원과 똑같은 종류의 일들만 열심히 한다면,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처리를 한다고 한들 주위 사람들의 기대에는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의 자격지심 때문에 박사 타이틀을 일부러 없애면서 주어지는 모든 종류의 일을 닥치는 대로 열심히'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내가 좋든 싫든, 나는 회사가 현재 갖고 있는 challenge와 그 이면에 숨겨진 근본적인 기술적 문제를 드러내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체계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 주는 것이 제대로 인정받는 길이다. 졸업할 때까지 연구능력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면, 이제부터라도 능력을 키우고 발휘해서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한 마음가짐일 것이다.
스스로 박사의 무게감을 덜어 내려 하지 말고, 그 무게감이 오히려 진짜임을 증명하기 위해 이번주도 노력하자.

Keep learning, keep thin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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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말, 집 이사를 끝으로 길었던 대전에서의 생활을 정리했다.

태어난 곳 다음으로 긴 시간을 보내며 나의 20대와 대학원 생활, 결혼, 출산, 육아 등 중요한 이벤트가 모두 있었던 대전인데, 떠날 때는 진심으로 미련이 단 한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추억이 많았지만, 그만큼 내 영혼을 가장 많이 찌그러뜨려 놓은 곳이 대전이니까. 

세어 보면 결코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지만, 자괴감가 함께 파묻어버린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미숙한 연구 조각이 화석처럼 새겨진 곳.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자니 죽을 것 같았고, 모든 것을 남탓으로 돌리자니 내 부족한 역량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곳. 졸업 후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 하나만 가지고 결혼과 육아를 하며 가족에 대한 부채의식을 쌓았고, 실제로 부모님께 손 벌리고 카드 결제일이 돌아올 때마다 걱정하며 재정적 부채 역시 함께 쌓여갔던 곳. 나에게는 시간과 실력과 돈이 모두 부족했던 삶으로 점철된 곳이 대전이었다. (그래도 아내와 아이는 나의 극단적인 표현이 무색하게 대전을 즐겁게 지냈던 곳으로 생각해 주어서 다행이다.)

그렇게 십수 년 동안 썩지는 않았지만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져 가던 나에게 일어난 생활환경의 전적인 변화가 너무나 반가웠다. 홀가분하게 대전을 벗어난 후, 오로지 회사에서 일만 하고 남는 시간에는 집에서 쉬기만 하면서 내 머릿속에 들어찬 독기를 빼내듯, 해독의 시간을 보냈다. 아직도 우울증 약은 계속 필요하지만, 대략 10년 만에 잘 먹고 잘 자는 평범한 삶이 내게 주어져서 감사하다.


작년 한해 동안 나는 실패한 박사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난 적이 없었는데, 요즘은 잊을 만하면 한번씩 불쑥 떠오르는 정도로 줄어들었다. 시간과 실력과 재정의 결핍 중에서 시간이 해결되었고, 재정도 조금씩 해결되기 시작하면서 이제서야 나 자신을 삐뚤어진 시각이 아닌 정상적인 시각으로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도교수는 졸업할 때 온전하게 증빙하지 못했던 내 '실력'을 만회할 수 있도록 아직도 연구에 코멘트를 해 주시고, 나는 일주일 중 겨우 3시간밖에 쓰지 못하지만 그 얼마 안되는 시간을 써서 논문 진도를 나가고 있다. 사실 평일 퇴근 후 저녁시간과 주말 전체 시간이 다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지만, 지금은 그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에 쓰고 있다. 박사과정 내내 방치했던 가족을 향한 일종의 부채 상환이기 때문에 연구 시간으로 쓰면 안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무리하지 않고 주어지는 시간 안에서 실력을 쌓아 가야겠다. Keep lea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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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졸업하고 4개월이 지났다.

그 동안 연구실 동료와 공동으로 논문 작업을 하였고, 내 개인연구는 실험까지 끝내지는 못하고 시뮬레이션 환경을 새로 구축하며 데이터를 뽑을 준비를 마쳤다.

연초부터 해외, 특히 유럽 쪽으로 포닥을 가기로 결심하고 LinkedIn, ResearchGate를 매일같이 검색했지만, 1월 말에 연구주제가 일치하는 핀란드의 딱 한 곳을 제외하고는 적합한 포지션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그 일치한다는 주제도 내 졸업논문 주제가 아니라, 막바지에 동료와 함께 새로 배워서 시작한 분야라서 여전히 배울 것이 많은 분야였다.) 물론 일일이 주요 대학교의 관련 학과 홈페이지와 연구주제가 일치하는 교수들의 홈페이지를 하나씩 다 뒤져보며 포닥 채용 공고를 찾거나 직접 이메일을 보내 보는 방법도 있지만, 집안일에도 조금 더 신경을 쓰다 보니 그렇게까지 할 겨를이 없었다. 

연구주제가 일치하는 핀란드의 대학교에 이력서와 research statement 등의 문서를 보냈더니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와서 스카이프로 해당 교수와 두 차례 면접을 보았다. 하지만 나 말고도 지원자가 여럿 있다 보니 경쟁이 치열해서 떨어졌다. 아마도 향후 연구 계획에 대해서 알고리즘 측면의 자세한 아이디어를 원했던 것 같은데, 사실 그 정도면 지금 당장 논문을 한 편 쓸 수 있는 수준으로 개념이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나는 해당 연구 주제에 대해 앞으로 재미있게 연구할 수 있는 방향성을 중심으로 설명하며, 가서 열심히 공부해서 성취하겠다는 식으로 대답하는 것이 최선이었기에, 아마 나보다 더 자세하게 해당 분야를 연구했던 박사가 채용이 되었을 거라고 짐작된다.

그 동안 헤드헌터들을 통해서 몇몇 대기업과 IT 기업들의 박사급 채용 진행에 대한 제의가 들어왔지만, 방향을 포닥으로 잡았기에 다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결국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그 때 차라리 해당 기업들에 입사하지 않더라도 채용 진행을 미리 해 둘 걸 그랬을까?

어쨌든 집 계약기간도 끝나 가고, 상반기 중에 어디든 결정이 나서 이동을 해야겠다는 나름의 계획을 세운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지만, 정말로 하루하루 시간만 흘러가는 듯 했고, 나의 생활과 재정을 비롯한 환경의 변화가 박사과정 때와 별 차이가 없자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졸업 직후에 느꼈던 홀가분함은 한달 정도 지나니 흐려졌다. 박사과정 때와 같은 연구실의 포닥으로 남아 있는 것도 내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잠시 기다리는 목적으로써의 의미는 있었지만, 이 생활 자체가 1년 이상 장기화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 가까워지자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과연 맞게 가고 있을까?'


아마 결혼 전의 나 혼자만 있는 상황이었다면 고민이 덜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 나를 꽤 오랫동안 기다려 준 아내와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딸아이를 바라볼 때마다 과연 이대로 괜찮은지에 대한 고민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결정적으로, 둘째를 계획했지만 자연유산으로 인해 잘 되지 않으면서 아내의 몸과 마음이 더 나빠지는 것을 보면서 더이상 지난 수 년간의 똑같은 생활에 그저 나 혼자 익숙해져 있는 지금의 상태를 유지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새로운 환경으로 나가야 하는데, 역설적으로 나는 연구실 환경에 그 어느때보다도 더 많이 익숙해져 있었다. 내가 지지부진하게 살면서 가족을 망가뜨린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서 아내보다도 더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연구결과를 멋지게 만들고서 졸업하지는 못했고, 박사과정 막바지에 거의 죽을 것만 같은 벼랑 끝의 상황에서 겨우 졸업했다고 스스로 생각했기에 늦게라도 멋진 연구결과를 만들어서 만회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만회하고픈 심정에 걸맞게 독하게 연구하는 자세를 보여주기는커녕 졸업의 안도감이라는 가랑비에 은근히 젖어들어 지난 몇 개월간 안일하게 살았던 것 같다. 오랜 기간 동안 억눌려 있던 내 마음이 수 년만에 해방되면서 오는 반작용이라서 쉽게 다잡을 수는 없었다고 변명해 본다.

결국 지도교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회사로 방향을 돌렸다. 교수님을 통해서, 연구실 졸업생을 통해서, 그리고 링크드인을 통해 때마침 연락이 온 헤드헌터를 통해서 이력서를 몇몇 회사에 보냈다. 면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고, 그동안 프로젝트는 이것저것 많이 해 왔기에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 오히려 말이 너무 많아서 면접관이 부담을 느낀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아직 채용이 결정된 곳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지난 수 년간 익숙해져 있던 환경을 정리해야 하는 시기가 더 가까이 왔음을 나뿐만 아니라 가족이 모두 느끼고 있다. 작년에 막연하게 예상했던 대로의 삶도 아니고, 올해 초에 '포닥'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나름 구체적으로 상상했던 삶도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이 걱정스럽지 않다. 그저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질척거릴 정도로 매몰되어 있던 나의 본토(창세기의 성경구절 그대로 표현하자면, 본토 친척 아비 집)를 떠나서 새로운 곳에서 다시 한 번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매너리즘을 벗어 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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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졸업이 되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절정에 달할 때쯤, 박사학위 디펜스를 마쳤다. 물론 박사학위논문심사는 비 오는 날에 먼지가 날리는 수준으로 탈탈 털렸다. 애초에 커미티(committee) 구성이 국내 무선 네트워킹 분야에서 어벤저스 정도는 될 만한 교수님들을 모셨기에, 각오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그분들 앞에서 그분들의 중요한 시간을 빼앗아 가면서 참 부끄러운 연구를 내놓고서 디펜스를 한 것 같아서 죄송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교수님들로부터 나의 후속 연구가 어느 부분을 발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의견을 받을 수 있었기에 감사했다. 그만큼 앞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것에 희망을 둬야겠다.

디펜스 직후에는 사실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고, 학위수여식 날짜가 지나고 나서야 졸업을 했다는 것이 좀 실감이 났다. 이제는 나를 적극적으로 껴안고 이끌어 주는 '대학'이라는 무형의 존재가 나를 더이상 껴안아 주는 게 아니고, 나는 이제 그 품을 벗어나야 한다. 학생이라는 신분 덕분에 내 인생의 '자기주도적 설계'에 대한 고민을 미뤄둘 수 있었는데, 이제는 더이상 미뤄둘 수 없다. 어쩌면 그래서 졸업식을 영어로 commencement (시작)라고 부르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이제부터 내가 온전히 주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박사과정 중간에는 거의 매년 힘들 때마다, 학교를 벗어나면 연구는 절대로 쳐다보지 않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지만, 역설적으로 향후 진로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연구 쪽으로 계속 이어나가는 옵션이 나에게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게 싫지도 않다. 오히려 연구를 계속 해보는 게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어이가 없을 뿐이다.

내 성격도 그렇고 나를 잘 알고 있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일관된 평가가 있었는데, 나는 오랜 시간 동안 그것을 애써 부인해 왔다. '어딜 가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우리 연구실보다는 나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무한경쟁과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재미있는' 산업계에 발을 들여놓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어디든 갈 수 있게 된 상황에서 고민을 하면 할 수록 빠른 변화에 맞추어 재미있고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연구계에 발을 들여놓아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한다.

줏대없는 인간이라고 나 자신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더이상 자존감을 낮출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은 어디일까?' 이 생각이 이끄는 대로, 그리고 세상에서 나에게 주는 여러 가지 기회를 잘 선택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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