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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졸업하고 4개월이 지났다.

그 동안 연구실 동료와 공동으로 논문 작업을 하였고, 내 개인연구는 실험까지 끝내지는 못하고 시뮬레이션 환경을 새로 구축하며 데이터를 뽑을 준비를 마쳤다.

연초부터 해외, 특히 유럽 쪽으로 포닥을 가기로 결심하고 LinkedIn, ResearchGate를 매일같이 검색했지만, 1월 말에 연구주제가 일치하는 핀란드의 딱 한 곳을 제외하고는 적합한 포지션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그 일치한다는 주제도 내 졸업논문 주제가 아니라, 막바지에 동료와 함께 새로 배워서 시작한 분야라서 여전히 배울 것이 많은 분야였다.) 물론 일일이 주요 대학교의 관련 학과 홈페이지와 연구주제가 일치하는 교수들의 홈페이지를 하나씩 다 뒤져보며 포닥 채용 공고를 찾거나 직접 이메일을 보내 보는 방법도 있지만, 집안일에도 조금 더 신경을 쓰다 보니 그렇게까지 할 겨를이 없었다. 

연구주제가 일치하는 핀란드의 대학교에 이력서와 research statement 등의 문서를 보냈더니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와서 스카이프로 해당 교수와 두 차례 면접을 보았다. 하지만 나 말고도 지원자가 여럿 있다 보니 경쟁이 치열해서 떨어졌다. 아마도 향후 연구 계획에 대해서 알고리즘 측면의 자세한 아이디어를 원했던 것 같은데, 사실 그 정도면 지금 당장 논문을 한 편 쓸 수 있는 수준으로 개념이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나는 해당 연구 주제에 대해 앞으로 재미있게 연구할 수 있는 방향성을 중심으로 설명하며, 가서 열심히 공부해서 성취하겠다는 식으로 대답하는 것이 최선이었기에, 아마 나보다 더 자세하게 해당 분야를 연구했던 박사가 채용이 되었을 거라고 짐작된다.

그 동안 헤드헌터들을 통해서 몇몇 대기업과 IT 기업들의 박사급 채용 진행에 대한 제의가 들어왔지만, 방향을 포닥으로 잡았기에 다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결국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그 때 차라리 해당 기업들에 입사하지 않더라도 채용 진행을 미리 해 둘 걸 그랬을까?

어쨌든 집 계약기간도 끝나 가고, 상반기 중에 어디든 결정이 나서 이동을 해야겠다는 나름의 계획을 세운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지만, 정말로 하루하루 시간만 흘러가는 듯 했고, 나의 생활과 재정을 비롯한 환경의 변화가 박사과정 때와 별 차이가 없자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졸업 직후에 느꼈던 홀가분함은 한달 정도 지나니 흐려졌다. 박사과정 때와 같은 연구실의 포닥으로 남아 있는 것도 내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잠시 기다리는 목적으로써의 의미는 있었지만, 이 생활 자체가 1년 이상 장기화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 가까워지자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과연 맞게 가고 있을까?'


아마 결혼 전의 나 혼자만 있는 상황이었다면 고민이 덜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 나를 꽤 오랫동안 기다려 준 아내와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딸아이를 바라볼 때마다 과연 이대로 괜찮은지에 대한 고민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결정적으로, 둘째를 계획했지만 자연유산으로 인해 잘 되지 않으면서 아내의 몸과 마음이 더 나빠지는 것을 보면서 더이상 지난 수 년간의 똑같은 생활에 그저 나 혼자 익숙해져 있는 지금의 상태를 유지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새로운 환경으로 나가야 하는데, 역설적으로 나는 연구실 환경에 그 어느때보다도 더 많이 익숙해져 있었다. 내가 지지부진하게 살면서 가족을 망가뜨린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서 아내보다도 더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연구결과를 멋지게 만들고서 졸업하지는 못했고, 박사과정 막바지에 거의 죽을 것만 같은 벼랑 끝의 상황에서 겨우 졸업했다고 스스로 생각했기에 늦게라도 멋진 연구결과를 만들어서 만회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만회하고픈 심정에 걸맞게 독하게 연구하는 자세를 보여주기는커녕 졸업의 안도감이라는 가랑비에 은근히 젖어들어 지난 몇 개월간 안일하게 살았던 것 같다. 오랜 기간 동안 억눌려 있던 내 마음이 수 년만에 해방되면서 오는 반작용이라서 쉽게 다잡을 수는 없었다고 변명해 본다.

결국 지도교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회사로 방향을 돌렸다. 교수님을 통해서, 연구실 졸업생을 통해서, 그리고 링크드인을 통해 때마침 연락이 온 헤드헌터를 통해서 이력서를 몇몇 회사에 보냈다. 면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고, 그동안 프로젝트는 이것저것 많이 해 왔기에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 오히려 말이 너무 많아서 면접관이 부담을 느낀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아직 채용이 결정된 곳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지난 수 년간 익숙해져 있던 환경을 정리해야 하는 시기가 더 가까이 왔음을 나뿐만 아니라 가족이 모두 느끼고 있다. 작년에 막연하게 예상했던 대로의 삶도 아니고, 올해 초에 '포닥'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나름 구체적으로 상상했던 삶도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이 걱정스럽지 않다. 그저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질척거릴 정도로 매몰되어 있던 나의 본토(창세기의 성경구절 그대로 표현하자면, 본토 친척 아비 집)를 떠나서 새로운 곳에서 다시 한 번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매너리즘을 벗어 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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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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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졸업이 되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절정에 달할 때쯤, 박사학위 디펜스를 마쳤다. 물론 박사학위논문심사는 비 오는 날에 먼지가 날리는 수준으로 탈탈 털렸다. 애초에 커미티(committee) 구성이 국내 무선 네트워킹 분야에서 어벤저스 정도는 될 만한 교수님들을 모셨기에, 각오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그분들 앞에서 그분들의 중요한 시간을 빼앗아 가면서 참 부끄러운 연구를 내놓고서 디펜스를 한 것 같아서 죄송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교수님들로부터 나의 후속 연구가 어느 부분을 발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의견을 받을 수 있었기에 감사했다. 그만큼 앞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것에 희망을 둬야겠다.

디펜스 직후에는 사실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고, 학위수여식 날짜가 지나고 나서야 졸업을 했다는 것이 좀 실감이 났다. 이제는 나를 적극적으로 껴안고 이끌어 주는 '대학'이라는 무형의 존재가 나를 더이상 껴안아 주는 게 아니고, 나는 이제 그 품을 벗어나야 한다. 학생이라는 신분 덕분에 내 인생의 '자기주도적 설계'에 대한 고민을 미뤄둘 수 있었는데, 이제는 더이상 미뤄둘 수 없다. 어쩌면 그래서 졸업식을 영어로 commencement (시작)라고 부르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이제부터 내가 온전히 주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박사과정 중간에는 거의 매년 힘들 때마다, 학교를 벗어나면 연구는 절대로 쳐다보지 않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지만, 역설적으로 향후 진로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연구 쪽으로 계속 이어나가는 옵션이 나에게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게 싫지도 않다. 오히려 연구를 계속 해보는 게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어이가 없을 뿐이다.

내 성격도 그렇고 나를 잘 알고 있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일관된 평가가 있었는데, 나는 오랜 시간 동안 그것을 애써 부인해 왔다. '어딜 가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우리 연구실보다는 나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무한경쟁과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재미있는' 산업계에 발을 들여놓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어디든 갈 수 있게 된 상황에서 고민을 하면 할 수록 빠른 변화에 맞추어 재미있고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연구계에 발을 들여놓아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한다.

줏대없는 인간이라고 나 자신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더이상 자존감을 낮출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은 어디일까?' 이 생각이 이끄는 대로, 그리고 세상에서 나에게 주는 여러 가지 기회를 잘 선택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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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정말 정보가 폭발하는 시대다. 인터넷 덕분에 각종 공부할 것들에 접근하기는 아주 쉬워졌다. 하지만 그로 인한 전 세계적인 시너지로 인해서 정보의 재가공 결과물이 또다시 인터넷에 아주 빠르게 대량으로 올라온다.

매달 내 연구의 큰 주제에 해당하는 무선 네트워킹, 사물 인터넷 등에서 생산되는 논문들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은데, 이걸 다 읽어보고 따라잡으려고 한다면, 다 읽기 전에 이미 엄청난 양의 새로운 연구 결과가 쌓여 있을 것이다.


결국 아주 세밀하고 자세한 분야에 대해서 깊이 있게 공부하지 않으면 엄청난 정보의 생산과 기술의 발전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것 같다. 물론 좀더 똑똑한 사람은 더 빨리 논문을 읽고, 더 빨리 자기 문제를 만들어 내서 기술 발전에 기여할 것이고, 나처럼 그렇지 못한 보통의 사람은 부족하게나마 아주 작은 기여라도 하려고 안간힘을 쓸 것이다.


'돈이 돈을 부른다'는 말처럼, 이렇게 지식이 새로운 지식의 생성/누적을 가속화시키는 정보의 지수 상승(exponential) 시대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연구실에서 광범위한 부분을 조금씩 공부했었다. 최근 들어서는 졸업의 압박 때문에 내 본래 연구주제만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수렴 국면에 접어들기는 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내가 생각하기에도 과할 정도로 넓은 분야를 조금씩 건드리고 있었다.


어쨌든 메인 연구주제는 상황인지 무선 네트워킹 기술이다. 서비스의 다양성을 네트워크가 지금보다 더 많이 이해해서 무선 네트워크의 세밀한 부분을 자동으로 맞춤형 조작을 해서 전체 성능을 높여 보려는 시도이다.

연구실은 오래 전부터 유비쿼터스 컴퓨팅 시스템을 가지고 대형 연구과제도 여러 번 수행했고, 지금도 과거의 유비쿼터스 컴퓨팅을 사물 인터넷(IoT) 플랫폼으로 발전시켜서 계속 개발하고 있다. 문제는 이 시스템(System)에 전산학의 대부분의 연구내용이 컴포넌트 또는 모듈로 들어가기 때문에 무엇이든 새로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왜 문제인지는 이어서 생각해 보겠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연구실 입장에서는 전체 시스템의 목적에만 부합한다면 끊임없이 새로운 연구를 적용시킬 수 있어서 좋고, 학생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연구주제가 막 적용되기 시작했을 때에 맞춰서 공부를 시작하면 더없이 좋지만, 얼마 전까지 공부했던 주제와 새로 중요성이 부각된 주제가 공존하는 시기에는 이 모든 주제를 다 공부해야 하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다. 

이것은 특히 박사과정에게 부담이다. 석사과정은 IoT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새로운 주제의 중요성을 인식할 때쯤 돼서 졸업해서 나가는 경우가 많고, 본격적으로 공부해야 할 때쯤 돼서 새로운 석사과정 신입생이 들어오기 때문에 대체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박사과정의 경우에는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 역할과 함께 석사과정의 사수가 되어서 같이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 석사과정에게 약간의 지도(지도교수만큼의 지도가 아니라, 지도교수까지 포함한 세 명이 함께 연구하는 상황에서의 도우미 역할)를 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지금 연구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여러 연구주제를 섭렵해야 한다.

 문제는 "서비스(service; application)"와 인접한 시스템, 또는 실제 응용되는 사례를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설계하는 시스템을 연구/개발할 때 특히 부각된다.


위와 같이 "동시에 우물을 파는 상황"은 어떤 연구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느냐에 따라서 더욱 심화되기도 한다. 우리 연구실은 전산학부 소속이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서 타 전공의 대학원 연구실들과 연합해서 공동연구 과제를 수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도교수님은 그 공동연구 과제의 총괄책임자가 되셨고, 자연스럽게 나는 실무책임자가 되었다.

IoT 시스템과 무선 네트워킹 기술 정도는 서로 포함되는 관계였고, IoT 환경에서 무선 네트워킹이 직접 쓰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컴퓨팅 시스템에서 네트워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성되고 어떤 역할을 현실적으로 맡아야 하는지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타 대학원과의 공동연구는, 사실 내 입장에서는 범위가 너무 넓어지고 말았다. 


공동연구과제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데이터를 기본적으로 활용한다. 여기에 웹의 각종 정보를 크롤링해 와서 분석하고, 그 분석결과를 가지고 새로운 정보를 추천하는 데이터마이닝을 핵심으로 하는 과제이다. 다른 연구실은 SNS 데이터 수집, 자연어를 형태소 분석해서 정형화하는 과정, 그 정형화된 데이터를 분석해서 각종 의미(감정, 행동 등)를 찾아내는 연구, 유사한 개념 간 연관성을 정의해서 정보 추론/추천을 하는 연구 등을 수행했다. 하지만 나는 우리 연구실에서 그동안 만들어 온 IoT 시스템이나 무선 네트워킹 기술에서 그 어떤 세부 컴포넌트도 적용시킬 수 없었다. 분야가 달라도 너무 달랐으니까. 공통점이 있다면 '컴퓨팅 시스템'이라는 것밖에 없었다.


IoT 시스템이나 그보다 소규모의 통신 시스템을 만들면서 배웠던 각 세부기술의 요구사항 분석, 각 세부기술을 대표하는 블록 정의, 블록 간 상호작용, 전체 시스템 구성 작업을 이 공동연구과제에 적용할 수는 있었지만, 한번도 시스템 구축을 해본 적 없이 각자 자기 세부 기술만 열심히 연구해 오던 학생들 데려다가 시스템 구축하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 우리 연구실도 그 '데이너 마이팅 시스템'에서 하나의 컴포넌트를 맡아서 연구해야 했으므로, 그나마 기존 IoT 시스템과 연관지을 수 있는 내용을 찾아서 골랐고, 이걸 바탕으로 실제로 구현까지 해야만 했다. 당시 과제는 사업화를 요구했기 때문에 이름은 원천기술 개발이지만 실제로 당장 창업해서 서비스를 돌릴 수 있을만한 완성도를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여담이지만, 정말 그 당시에 돈은 쥐꼬리만큼 주고 원천기술에 시장성까지 바라던 미래부가 그렇게 미울 수 없었다. 그래 놓고는 우리 과제가 논문 실적도 초과달성하고 정량적 목표치도 초과달성 했더니, 총 3년의 연구기간 중에서 2년차를 마치는 시점에서 이미 할 거 다 했으니 더 할 필요 없다면서 조기종료 시켜버렸다. 말이 좋아서 조기종료지, 원래 총 3년 동안 매년 5억씩 총 15억원을 지원하기로 약속해 놓고서 10억만 주고 과제를 잘라 버린 것이나 다름 없다. 짤렸는데 허울 좋게 '조기종료' 라는 말을 붙줬을 뿐. 

(여기서 미래부 내부에서도 예산 쟁탈전이 치열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예산이 없으면 결국 없는 논리도 만들어서 있는 과제를 잘라내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으며, 그래놓고 트렌드를 반영할 만한 새로운 주제로 그 돈을 다시 쏟아붓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이런 여건에서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원천기술"이 제대로 개발될 리가 없다. 일본이 IPv6를 꾸준히 지원해서 결국 IPv6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권위를 갖게 된 점을 본받아야 한다. 물론 IPv6 자체가 여전히 활발히 쓰이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다. 제대로 된 주제를 발굴하는 것은 별개의 영역이니까...)


아무튼 이런 과정 때문에 내 고통의 기간은 2년 더 늘어났다. 애초에 나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많이 떨어지는 과제를 관리해 오다가, 그 과제가 중간에 짤리니까 중단된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서 새로 제안서를 썼고, 결국 또다른 2년짜리 공동연구 과제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도 우리 연구실은 무선 네트워킹과 전혀 상관이 없는 데이터 마이닝에 관련된 세부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실제로 개발을 수행하는 석사과정 학생은 그게 본인의 석사과정 연구주제와 일치하기 때문에, 나는 논리와 방향이 맞는지 보고 방향을 설정하는 역할만 하는 것으로 부담이 줄어든 것이겠다. 물론 여전히 지도교수님이 총괄책임자시기 때문에 다른 연구실과의 상호작용 및 전체 시스템 구성은 결국 내가 해야 한다.)


이렇게 학제간 연구를 강요받으며 지금까지 왔다. 박사과정을 하면서 이렇게 생각외로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게 된 것이 장기적으로 결코 손실은 아닐 것이다. 결국 모두 도움이 되고, 생각의 지평을 넓혀 주기도 하고, 내가 잘 못하는 전체 그림을 그리는 훈련을 계속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이렇게 공부했던 분야들을 조합해서 아주 똑똑한 네트워킹 기술을 연구할 수도 있을 것이고, IoT 시스템의 데이터 마이닝 과정을 더 개선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졸업을 해야 하는 박사과정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지나치게 넓은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 독이 되는 것은 아닌지도 걱정될 수밖에 없다. 박사학위의 의미 [1]에서 보듯이, 하나의 세밀한 연구분야의 정점에 와서 그 벽을 뚫어 나가야 하는 것인데, 이렇게 다양한 여러 개의 분야에서 그 정점에 못 미치는 수준까지 공부하느라 정작 내 메인 연구주제를 소홀히 하게 되서 졸업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수시로 엄습해 오기도 한다.


이제는 더이상 박사과정을 오래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 만큼 시간이 많이 흘렀고, 남은 시간도 이제 얼마 없다. 이제 더이상 늘릴 수 있는 재학연한도 없는데 휴학까지 해 가면서 박사과정을 연장하고 싶지는 않다. 남들은 연차 이내에서 뚝딱 잘도 해내는데, 나는 위와 같은 과정을 겪느라 집중하지 못했다고 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변명을 하면서 지금 이 상태가 되었다. 정말 자존심 상하는 부끄러운 일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에는 여러 우물을 최대한 파 두는 것은 결코 손해볼 것이 없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지금만큼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때인 것 같다. 나는 그동안 너무 순진하게 주어지는 대로 닥치는 대로 다 공부해서 모두 다 소화시킬 수 있을 거라 착각하고, 그게 이렇게나 오래 걸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스스로의 역량을 과대평가 했거나 자신을 속여 왔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정말 슬프지만, 나는 잘 나가는 IT 천재들처럼 그렇게 똑똑하지 못하다.

현실을 직시하면서 동시에 지혜롭게 공부하고 싶다. 내 목표 달성을 위해서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결정해서 움직이고 싶다. 나는 언제쯤 이런 것들을 잘 조율해 가면서 내 인생을 내가 앞가림해낼 수 있을까? 바보같지만, 내일은 오늘보다는 덜 바보같기를 바라며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자.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좀더 지혜로운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오늘 남은 하루 동안에는 내 졸업연구 분야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뤘으면 좋겠다. 제발 집중 좀 해 보자. ㅜㅜ




<참고자료>

[1] 박사학위의 의미, http://wintree.tistory.com/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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