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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링크드인 프로필을 틈틈이 고치다 보면 헤드헌터나 HR로부터 콜드메일을 종종 받는다. 그 중 특이했던 경험을 기록으로 남겨보려 한다.

 

누구나 아는 클라우드/데이터센터 분야 미국 테크기업 A사의 한국 지사에서 HR 담당자가 Senior Data Center Network Technician이라는 JD와 함께 콜드메일을 보내 왔다. 내가 그 직무에 매우 적합해 보인다며 긍정적인 검토를 바란다면서.

그런데 직무 이름에 엔지니어가 아닌 테크니션이 적혀 있어서 기분이 좀 쎄했지만, 미국에서 일한 적이 없다 보니 그래도 뭔가 미국 테크기업에서 배울 점이 있고 성장의 기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결국 헛된 희망)이 있어서, 궁금증을 못 이기고 HR과 전화통화를 했다.

결론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직무였다. 예상대로 테크니션 타이틀은 그 어떤 창의적이거나 주체적인 일을 할 수 없고, 오로지 다른 엔지니어/아키텍트가 설계해 놓은 내용을 그대로 설치만 하는 단순/반복 업무였다. 혹시나 기획/설계/개발 같은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지 물어봤지만 못 한다고... 그러면 일단 테크니션으로 입사해서 엔지니어나 아키텍트로 업무를 변경할 수도 있는지 물어봤는데 그것도 안 된다고 한다.

더 놀라운 건 연봉 밴드가 지금 다니는 국내 대기업의 원천징수 소득보다도 낮다는 점이었다. 요즘 회사 상태가 나빠서 인센티브가 줄어들어서 그 수준으로 희망연봉을 불렀는데도 맞추기 어려울 수 있다고... 회사가 정해 놓은 연봉 밴드의 최상단 어쩌구 저쩌구라며 말을 길게 하던데, 결국 희망연봉을 못 맞춰 준다는 의미겠지.

 

헤드헌터가 잘 모르고 엉뚱한 직무를 소개하는 것은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데, 그 외국계 기업에 정식 소속된 HR 담당자가 해당 분야를 연구한 박사에게 고졸도 할 수 있는 단순노무직을 적극 추천한 이유가 무엇일지 잠시 고민했었다. (사실 그냥 검색에 걸려서 콜드메일 수신처에 포함됐을 테니 절대 깊게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한편으로는 내가 박사과정을 졸업하는 시점에 국내 대기업 HR로부터 제안을 받았을 때의 경험이 나쁘지 않았어서 (의외로 내 연구분야에 근접하는 직무를 잘 소개해 줬었다.) 외국계 HR에게 더 많은 기대를 했던 것 같다.

통화 후 얻은 교훈은,

  • 링크드인에서 키워드 검색에 걸려든 사람들에게 무지성으로 뿌리는 콜드메일에 너무 의미부여 하지 말자.
  • HR은 생각보다 직무 적합성을 잘 모른다. 
    (그래도 박사한테 테크니션을 추천하는 HR은 반성이 필요하다.)
  • 외국계 회사의 job title의 차이를 미리 이해해 두자.
    (테크니션, 엔지니어, 아키텍트, 리서처는 서로 차이가 있고, pre-sales/customer 같은 수식어가 있으면 영업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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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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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 수록, 인터넷에서 내가 참고할 만한 커리어 경로에 대한 정보를 찾기 어려워진다. 넓게 보면 사기업에 취업한 공학 박사의 성장 경로 혹은 이직 경로와 사례는 차고 넘치지만, 구체적으로 내가 공부/연구했던 분야나 내가 지금 하는 일에 맞춰서 필터링하면, 회사에서 일하는 경험이 쌓여갈 수록 점점 내가 참고할 만한(솔직하게는 내가 따라가고 싶은) 커리어 경로에 대한 경험담이나 사례를 찾기 어려워지는 기분이다. 나는 예측 가능한 삶을 원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미 지나가면서 표준화(?) 된 커리어 경로와 노후의 모습을 예측하기는 어려워졌다.

마치 게임을 할 때, 한국인 특유의 "최적의 공략법"부터 찾아내서 그것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처럼, 나도 내 인생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안심하며 따라가고 싶은 어떤 인생의 공략법을 찾아 헤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마음이 있다.

 

"남들 다 하는 대로." 

나도 전형적인 한국인이기에, 이 말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한다. 언제 어떤 사회적 위치에 이르러서 언제 결혼하고 어디서 살고 언제 자녀를 낳아서 어떻게 키우고 등등... 바로 이 전형적인 "남들"의 삶에 맞추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생기는 이유는 내가 여전히 자존감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내 삶은 그런 표준화된 "남들"을 따라가기에는 너무 달라졌다. 2010년대의 관점에서 평균 초혼 연령과 전혀 맞지 않는 이른 나이에 결혼했고, 남들이 보통 자녀를 낳는 조건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첫째를 낳았고, 지금은 대한민국이 멸망할 것만 같은 합계출산율을 찍는 상황에서 그 평균치를 아득히 벗어난 아웃라이어가 되어 세자녀를 키우고 있으니, 이미 내가 생각하는 "남들"의 이미지는 내 앞길에서 거의 다 사라졌다.

이제 내 인생에 대해 남들의 시선과 평가를 찾지 말고 오직 내 스스로 나를 평가하며 앞길을 개척해야 한다. 용기를 내고 자존감을 높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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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회사에 입사한 지 만 5년이 되어 간다. 그동안 가정에서, 회사 안에서, 회사의 대외적인 환경 측면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모든 것이 변했다.

먼저 가정적으로는 3인 가족에서 5인 가족으로 변했고, 그에 맞춰 집안 구조와 차량까지 모두 재편되었다. 코로나 인플레이션의 직격탄을 맞아서 하루아침에 전세값이 1.5배가 되는 경험도 했고, 미국 출장 중에 처음으로 들은 아내의 셋째 임신 소식에 대한 감정은 사실 지금 좌충우돌 커가는 아이들을 정신없이 돌보다 보니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미 충분히 커서 다른 의미로 육아가 필요한 첫째, 일곱 살이나 어린 둘째, 그리고 연년생 셋째를 동시에 키우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적이 얼마나 많았겠느냐마는 솔직히 말해서 너무 정신이 없어서 그 감정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나의 육체적인 한계가 아쉽다. 그나마 사진과 영상이 많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고, 사실 지금도 세 아이들 모두 너무 사랑스럽게 한창 커 가고 있어서, 정말 매우 힘들면서 동시에 매우 좋은 양가감정을 매일 느낀다. 그래도 다자녀 가구라는 장점 덕분에 최근 미쳐 돌아가는 수도권 집값 상황에서 그나마 돈을 절약할 수 있는 분양을 원하는 곳에 받을 수 있었던 점은 어찌 보면 막내딸의 효도일 수도 있겠다.

회사 내부 상황은 사실 입사 후 약 1년쯤 지나고 보니 여러 경로를 통해 안좋은 소문을 들으면서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인지했으나, 당장은 그런 문제점이 표면적으로 이 거대한 회사 전체에 영향을 주지 않았기에 이직과 같은 중대한 고민을 하지는 않았었다. (지금은 내부/외부 모든 방향성을 다 열어두고 고민하고 있지만...) 입사 후 약 2년까지는 회사의 안좋은 분위기가 싹트는 상황을 감지하고 떠나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왜냐하면 대학원을 제외하면 내 입장에서는 처음 겪어 보는 회사이고 또 처음 본격적으로 해 보는 사회생활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첫 회사에 계속 남아 있으므로 여전히 다른 회사를 직접 겪어본 적은 없지만, 그나마 커뮤니티(LinkedIn, facebook, Thread 등)와 거래처/협력사 등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다른 회사는 대략 어떨지 짐작은 가능하다.

수년 전부터 싹터 온 회사 내부의 문제는 이제는 전 국민이 다 알 정도로 대외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제 언론사의 좌우 여부에 관계 없이 모든 언론사가 회사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있고, 전 국민이 회사를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거의 전 국민이 우리회사 주식에 물려 있을 테니까) 그런데 나는 비록 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회사와 같은 배를 탔지만, 내가 그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는 주체는 아니기 때문에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정말 회사의 명운을 돌이킬 주역은 다른 사업부/다른 부서의 핵심 인력들이고, 그 사업부와 부서들은 이미 발생한 큰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정도만 소식을 들을 뿐이다.

 

*갑자기 찾아온 기회

내가 이 회사의 main business는 아니지만 중요도는 높은(장애나면 회사 이익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IT 인프라 직무로 만 5년을 채우면서 어느 정도 성과를 만들었고, 부서 내부에서 약간의 인정도 받게 되었다. 초반에는 최소 1인분은 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다양한 일에 다 참여해서 배우려고 했고, 그러다 보니 정말 박사로써 맡을 필요가 없는 (어쩌면 맡지 말았어야 하는) 일까지 제대로 해내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박사로써의 커리어를 망쳤지만 회사가 돈을 쓰는 방식과 프로젝트가 돌아가는 구조를 이해할 수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 내가 원하는 일을 벌일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비록 회사에서 박사수당을 받아 가며 일하고 있지만, 정말 입사 초기에는 대학원 생활에 대한 상처가 너무 깊어서 교수 소리만 들어도 PTSD가 올 지경이라 박사라는 타이틀을 일부러 꽁꽁 숨긴 채 '일'만 했다. (결국 사람들은 다 내가 박사인 줄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부서장 이상 레벨의 사람들이 나에게 갖는 기대는 여전히 '박사'로써의 무언가임을 최근 들어 인지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리더쉽을 가진 박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을 인지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최근 부서장으로부터 "부장으로 조기 진급할 생각이 있는지" 질문을 받은 직후부터였고, 이 때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나의 위치와 Value Proposition

그렇다면 나의 선택은 무엇이 최선일까? 나의 선택을 뒷받침하는 나의 가치는 무엇일까? (1) 경제적인 측면, (2) 나의 회사 내 위치, (3) 내가 회사에 줄 수 있는 가치 제안(value proposition), 그리고 (4) 나를 여전히 품고 있는 회사 그 자체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았다.

(1)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과장으로 좀더 있으면서 연봉을 더 많이 높인 채로 부장이 되는 것이 유리하다. 왜냐하면 과장에 비해 부장은 연봉 상승률이 매우 낮아서 사실상 연봉이 정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발탁진급을 굳이 기회가 왔는데 마다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이, 일단 기회가 왔을 때 잡지 않으면 나중에 정상 진급할 시기에 아예 사라져서 오히려 정상 진급은커녕 진급 누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래 일, 특히 사기업의 미래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2) 부장으로 발탁 진급을 하는 케이스는 한편으로는 임원 코스를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내가 부서 내에서 적어도 현재까지는 좋은 평판을 쌓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점은 분명히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임원은 전체 직원의 단 0.1% 정도밖에 안되기 때문에, 임원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만 해도 이 거대한 회사 내에서 같은 직무로만 봐도 수십 명은 될 것이고, 수많은 돌발 변수에 의해서 얼마든지 그 후보에서 이탈할 이유가 훨씬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위 사람들이 가끔씩 임원이라는 바람을 자꾸 나에게 집어넣는 것은 어쨌거나 박사학위 + 기본적인 업무역량 + 부서 내 나의 포지션 + 최근 만들어낸 성과 등이 합쳐진 결과물일 것이다.

(3) 그러면 과연 나는 회사에 어느 정도 기여를 하는 존재일까? 만약 박사 타이틀을 떼고서 순수하게 일하는 것만으로 보자면 일을 못하는 축에 속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문제는 여기에 박사 타이틀이 붙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연구성과로만 평가받는 국책연구소 연구원이나 대학 교수 말고, 사기업(연구개발 조직 제외)에서의 박사는 뭔가 연구개발에 몰두하기보다는 '문제 정의' 능력을 활용하여 해결책을 체계적으로 수립/실행하여 회사의 이익에 기여하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어쩌다 보니 나도 대규모 신축 프로젝트에 여러 번 투입되면서 돈을 잘 쓰려고(투자를 효율적으로 하려고) 신경을 많이 썼는데, 이런 점이 도움이 되었을까? 그리고 겪어보지 못한 문제들이 계속 터지는 상황에서 이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상대방 부서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연락하고 회의해서 회의록을 쓰고 윗선에 결과를 보고하다 보니 수백 페이지의 문서가 쌓였는데, 이것이 도움이 되었을까? 사실 이 부분은 MBTI 첫글자가 I인 사람이 강제로 E를 탑재해야만 하는 어려움을 참고 이겨내야 한다. 이것 때문에 내가 만성 위염이 낫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르게 부장으로 진급하고, 거의 불가능하더라도 임원을 생각하며 일해야 한다면, 부장 이후에는 리더쉽도 기본사양으로 탑재해야 할 것이다. 나 혼자만 잘하는 게 아닌, 구성원 전체가 같은 목표에 맞춰져서 일하도록 만들고 추진하는 능력이 나의 value proposition이 되어야, 허상과도 같은 임원이라는 직책의 그림자라도 언젠가 붙잡게 되지 않을까?

(4) 마지막으로, 현재 대외적으로 너무 상황이 안 좋은 이 회사에서 진급하는 것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어찌보면 큰 회사라면 어디서나 겪을 수 있는 잠깐의 짧은 내리막일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르게 보면 역사적으로 하나의 회사를 비가역적으로 멸망시키는 결정적인 분기점에 진입했을 수도 있다. 정말 도무지 판단할 수가 없다. 대우그룹처럼 철저하게 망하게 될지, 현재진행형인 인텔과 완전히 똑같은 길을 갈지, IBM처럼 최대/최강은 아니더라도 특정 영역에서 엣지를 유지한 채 롱런하게 될지, 다시 회복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지금 극복하기 쉽지 않은 어려운 문제를 만나서 고생중인 상황인 것은 모두가 아는 듯 하다. 문제는 지금 여기서 버티면서 내가 좀더 성장하는 것과, 이직해서 다른 곳에서 자리를 잡는 것 중에서 뭐가 더 나을지조차도 나는 도무지 예측할 수 없다. 

 

*결론: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위와 같은 네가지 관점 외에 외벌이 가장으로써 가족의 미래까지 생각하면, 내가 하는 선택이 무엇이 최선일지 예측하는 것은 사실상 하나님의 영역과 다름없다. 이런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려고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차라리 내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가치와 인생관에 따라 내가 원하는 방향을 설정하고, 그 방향에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쓸데없는 고민으로 잠을 못 자는 것보다, 내가 어느 길을 선택하든 그 길에서 보게 될 의미있는 것들에 집중하며, 운명론은 아니지만 그 길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용기를 내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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