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 분쟁에 대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중재를 앞두고, 중국이 자국에 불리한 판결을 예상하고 미리 군사적인 움직임을 보인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늘 (2016.07.12) 중국이 주장하는 구단선(nine-dashed line)이 법적 근거가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남중국해를 끼고 있는 여러 국가들(대략 중국, 대만,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이 각자 서로 다른 해안 국경선을 그리면서 영유권 분쟁을 지속하는 이유는 당연히 남중국해에 돈이 되는 자원이 많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 중에서 중국이 인공섬을 만들고 군사시설을 구축해 가면서까지 적극적으로 영유권을 행사하면서 주변국의 활동(주로 어업일 듯)에 피해를 입혔고, 이를 보다 못한 필리핀이 PCA에 제소를 하면서 지금에 이르렀으며, 결국 필리핀이 승소했다. 하지만 PCA의 판결 자체가 집행 능력을 갖는 것은 아니라서 중국이 이미 실효 지배하는 섬들을 반환하도록 강제할 수는 없다. 필리핀 입장에서는 국제사회의 공감을 얻어 냈기 때문에 중국이 더이상 무분별한 인공섬 건축과 군사적인 위협을 끼치지 못하도록 하는 데 목소리를 키울 수는 있게 됐고, 필리핀과 비슷한 입장을 갖고 있는 다른 국가들도 PCA에 제소를 해서 승소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남중국해 분쟁의 근본 원인은 매장된 자원이겠고, 파생되는 이유 중에는 각국의 군사적인 목적도 있는 듯 하다. 중국이 남중국해를 온전히 자국의 영해로 만들지 않게 되면, 그 바다에는 세계 어느 나라라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된다. 그러면 '항행의 자유'를 주장하는 미국이 자국의 항공모함을 이끌고 중국 본토와 더 가까운 곳을 아무 제지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의미이고, 중국 입장에서는 자국의 바로 아래를 지나다니는 강력한 군사적 존재를 지켜볼 수밖에 없으므로 보통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어쨌든 필리핀은 유엔 해양법협약(UNCLOS; 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을 기준으로 중국이 필리핀의 주권 행사를 방해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국제법에 호소를 했고, 반면에 중국은 대략 1948년부터 구단선을 정의한 자국의 지도를 기반으로 하는 역사적인 이유를 들어서 남중국해 대부분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이번 판결에 영향을 끼친 요소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섬'에 대한 개념이 특히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것 같다. 국제법상 근거가 있고 이미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이 합의하고 비준한 UNCLOS (심지어 중국도 비준했다. 황당하게도 미국은 비준에 참여하지 않았다.)의 기준도 모두 대륙 또는 섬의 해안선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UNCLOS에서는 섬, 암초, 간출지, 인공섬은 아래와 같이 간주한다:
- '섬(island)'은 바다 위로 항상 드러나 있는 영역이 존재하고, 그 드러나 있는 땅에서 인간의 삶을 유지시킬 수 있는 경우에 해당된다. 섬은 영해와 배타적 경제 수역을 모두 주장할 수 있다.
- '바위(rock)'는 암초 중에서 물 위로 항상 드러나는 부분이 존재하는 경우에 해당하고, 다만 그 자체로 인간의 삶을 지속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암초는 영해만 주장할 수 있고, 배타적 경제 수역을 주장할 수 없다. 물속에 잠긴 부분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 '간출지(low-tide elevation)'는 땅의 일부가 간조(low-tide)일 때에만 물 위로 드러나는 경우이다. 간출지는 영해로 주장할 수 없고, 당연히 배타적 경제 수역의 기준으로도 쓸 수 없다.
- '인공섬(artificial island)'은 원래 섬이 아닌 부분을 인간이 살 수 있도록 인위적으로 건축해서 만든 경우인데, 국제법상 이것을 '섬'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영해와 배타적 경제 수역 모두 주장할 수 없다.
중국이 여러 개의 인공섬을 건축하고, 군사시설을 짓고 사람도 살게 하는 등 여러 방법을 동원했지만, 그렇게 만든 곳 모두 PCA로부터 영해라고 주장할 효력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중국뿐만 아니라 대만도 스프래틀리 군도 중에서 땅으로 드러난 영역이 가장 큰 이투아바 섬(Itu Aba Island)을 실효 지배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암초에 해당하기 때문에 영해의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고 한다. 대만은 이 섬에 약 1200미터의 활주로까지 건설해 두었는데 결국 소용 없게 되었다 (지못미) (여전히 실효 지배하고 있는 상태를 다른 국가가 내쫓을 수는 없겠지만).
스프래틀리 군도의 이투아바 섬 (출처: 위키피디아 [4])
대만은 그나마 섬처럼 보이는 가장 큰 이투아바 섬 1개를 실효지배하고 있는데도 효력을 상실했고, 반면에 중국은 스프래틀리 군도에서 그보다 작은 아주 많은 영역과 인공섬들을 가지고 영해를 주장하고 있었는데, 결국 이번 판결을 통해서 스프래틀리 군도에서 섬은 하나도 없다는 것과 당연히 배타적 경제 수역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공고히 하게 됐다.
이에 따라 앞서 언급했듯이 남중국해의 가운데 영역은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바다(international sea)가 되었고, 미국이 항행의 자유를 근거로 중국을 더욱 압박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남중국해로부터 얻는 직접적인 이익이나 손해는 없지만, 우리나라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두 강대국의 힘싸움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참고자료>
[1] Philippines vs. China: Court to rule on South China Sea fight, http://edition.cnn.com/2016/07/11/asia/philippines-china-south-china-sea-hague-ruling/
[2] 남중국해에 인공섬 만드는 중국의 꼼수, http://weekly.donga.com/List/3/all/11/98934/1
[3] 상설중재재판소 "中, 남중국해의 구단선(九段線) 법적 근거 없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7/12/2016071202817.html
[4] 이투아바 섬 위성사진, https://en.wikipedia.org/wiki/Taiping_Island#/media/File:Taiping_Island_and_Zhongzhou_Reef_IS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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