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09

Life/대학원 생활 2016. 8. 9.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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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과정 졸업 예비사정표를 보았고, 다른 모든 요건이 끝났지만 바보같이 학과에서 인정해 주는 저널 실적 하나를 미리부터 만들지 못해서 졸업신청을 해야 할 지, 차라리 휴학을 해야 할 지 고민하는 상황에 와 있다.


내가 얼마나 속상한지는 솔직히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내가 이렇게나 멍청한가 하는 자책, 아기가 커 가면서 재정도 점점 더 모자라게 되고 시간도 더 많이 쓰이고, 아파서 병원에도 자주 가면서 연구에 오롯이 집중하기는 점점 어려워져 가는 상황, 그 와중에 할 거 다 하면서 편하게 살고 있는 것만 같은 죄책감에 시달려서 오늘 오전이 지나기 전에 벌써 한숨만 수십 번 나온다.


이 박사학위가 도대체 뭐라고 내가 이렇게 아둥바둥 난리를 치는 것인가? 애초에 박사학위 따위 나한테 맞지 않는 것인데 내가 억지로 추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그냥 포기하고 지금 당장 필드에 나서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써 뭐든 할 수 있는데 (업계가 바라는 수준의 코딩을 하려면 조금은 더 실력 연마를 하긴 해야겠지만), 매달 재정 부족과 시간 부족에 시달려서 아기와 많이 놀아 주지도 못하면서 이 불안정한 생활을 언제까지 지속해야 하는 것인지... 반면에 또 아기와 어쩔 수 없이 놀아 줘야만 하는 (즉, 내가 아기를 봐 줘야만 하는) 상황이 되면 그 시간에 실험을 진행하지 못하니까 버려지는 금 같은 시간들이 한없이 아깝게 느껴진다. 이렇게 답답한 마음 때문에 가족으로써 누려야 할 것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남들과 마찬가지로 공평하게 나에게도 똑같은 양의 시간과 비슷한 연구환경이 주어졌는데, 유독 나는 왜 이렇게도 저널 논문을 제대로 써 내지 못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면 내가 무슨 ADHD 환자라도 된 것 같다. 이런 바보가 꾸역꾸역 박사학위를 받아 보겠다고 애초에 안될 일을 무리해서 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자존심도 무진장 상하고 그냥 스트레스 투성이다. 카이스트에서 자살하는 대학원생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어디 가서 소리지를 곳도 마땅치 않고, 멀쩡히 잘 있는 연구실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쳐서 쓸데없는 주목을 받고 싶지도 않고, 시커멓게 타 들어가는 속을 달래기 위해서 그저 마른 입술을 깨무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애꿎은 아랫입술만 매일 부르터서 아물지를 않는다.


그래도 가족이 중요하다는 말... 남들이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정작 나는 아내와 아기에게 그저 무책임한 가장의 모습만 보여주는 것 같아서 미칠 지경이다. 정말 인생의 밑바닥을 걷는 기분이다. 빨리 튀어오르고 싶은데 언제쯤 그럴 수 있을까? 제발 가만히 실험하고 논문만 쓸 수 있도록 나를 옭아매는 모든 것들로부터 잠시나마 단절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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