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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후배들이 고생하고 있던 국제학회 논문 작업에 갑작스럽게 due date를 5일 앞두고 참여했고, 결론적으로 논문 제출까지 어떻게든 성사를 시켰다. (그게 accept될 지는 알 수 없고, 현실적인 어려움도 크지만, 적어도 not bad라고는 말할 수 있는 레벨이었다.) 그런데 내가 내 졸업을 위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개인연구와 이를 위한 저널논문 작업은 거의 1년 반이 되도록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나의 생산성은 어째서 이런 엄청난 극단을 찍고 있는 것일까?

이대로라면 내 연구 주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거나, 내가 내 개인연구를 대하는 태도가 심각하게 잘못되었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은데, 아무래도 후자인 것 같다. 후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후배들과 같이 작업한 이 논문이었다.


이번에 후배들과 같이 작업했던 (원래 후배들이 이미 거의 5-6개월 전부터 연구를 시작해서 고생하고 있던) 논문을 작업하던 당시의 상황을 한번 되짚어 보았다.

  • 앞서 이미 언급했듯이, 나는 due date를 5일 남기고 지도교수의 요청에 의해 투입되었다. 
  • 그나마 후배들이 작성하던 이쪽 연구내용을 처음 구상할 때의 미팅에 몇 차례 참여했고, 후배들과 연구실에서 평소에 얘기를 나눴었기에 논문의 목표와 문제정의를 알고는 있었다.
  • 하지만 관련 분야 연구의 디테일은 약했기 때문에 후배들을 제대로 가이드하기 위한 related work가 절실했다. 5일 동안 우리 논문과 직접 연관된 논문 약 30편, 직접은 아니지만 작성 과정에서 참고하기 위해 약 10편, 합쳐서 약 40편 가량의 논문을 말 그대로 읽어'제꼈'다.
  • 연구내용을 따로 정리할 여유가 없어서, 오직 각각의 기존 연구 논문을 읽을 당시의 집중력과 기억에만 의존해서 바로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로 바꿔서 논문 여기저기에 써놓았고, 그걸 나중에 앞에서부터 읽어내려가면서 논지에 맞는 말로 바꾸려고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절반 가량은 버렸다.
  • 이미 아이디어를 검증하는 실험은 꽤 진행해 두어서 데이터가 있었지만, 그걸 설명하기 위한 구조 설계와 방법론에서 많은 보완이 필요한데 지도교수님도 그 부분은 제대로 확인해 주시지 않았기에 (새로운 패러다임 같은 거라서 vision 제시에 몰두하셨지만, 그걸 실현시키려는 여러 가지 실제적인 시도에 대한 지적에서 교수님의 일관성이 없었다. 교수가 학생이 아는 전체를 똑같은 수준에서 다 알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너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임) 지도교수의 vision과 후배들의 구현 사이를 최대한 이어붙이기 위한 설계를 매일 고쳤고, 제출 직전 몇 시간 전까지 구조 설계를 후배들과 같이 토의했다. 제대로 된 연구라면 당연히 좋은 방법이 아니다. 뭐 일단 완성해서 제출해야 하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 나름대로의 실험 결과가 있었는데 그걸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지도교수와 이야기해서 승인받고 진행하기에는 즉시 만날 수가 없어서 너무 느렸기에 내 선에서 후배들과 계속 얘기해서 '이 결과를 이렇게 보여주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해 계속 검토했다.
  • 서론과 바로 다음 섹션인 Motivation(연구의 필요성) 부분을 내가 전적으로 맡아서 썼고, 지도교수가 시나리오가 틀렸다고 하면 작성했던 시나리오 전체를 폐기처분하고 새로 썼고, 그게 실제로 실험했던 내용과 일치하는지 후배들과 틈틈이 검토했다.
  • 이미 써둔 부분에 대해서도 수정할 곳이 눈에 띌 때마다 고쳤는데, 결국 시간이 부족해서 전체를 다 내가 직접 수정할 수는 없어서 후배들에게 "이렇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했다"고 내용을 통째로 만들어서 그걸 영어로 써 달라는 구체적인 요청을 해서 검토하지 못한 부분을 마무리지었다.
  • 원래 개인적으로 쉬면서 포털 사이트 뉴스와 SNS를 보는 시간이 하루에 한 시간이 넘었는데, 이 작업을 진행하는 5일 동안 뉴스와 SNS를 보는 시간이 거의 없었. 사실 논문을 찾다가 얻어걸린 알파고 인공지능 관련 뉴스 기사가 하나 있었던 기억은 난다. 어이없는 것은, 그 쪽의 기술 진보가 신기해서 바쁜 와중에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 회사가 업로드한 arxiv 최신 논문을 또 읽어 보았. (...)
  • SNS 하는 시간 자체도 많이 줄어들었지만, 웃기게도 좋아요를 누르거나 내가 직접 포스팅을 쓰는 등의 활동에는 차이가 없었다. 즉, 한번 좋아요/댓글 등으로 반응했던 것을 또 보거나, 의미 없이 반복적으로 하던 눈팅이 논문 쓰는 동안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비록 후배 두 명과 같이 작업했고 이미 논문의 전체 뼈대와 실험 결과가 어느 정도 나와 있는 상태이긴 했지만, 논문을 제출하기 전 5일 동안 나는 '아, 내가 알고보니 이 정도까지도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라는 점을 깨닫게 해 준 매우 소중한 기회였다.

즉, 반대로 말하면, 내가 졸업하겠다고 선언한 나만의 연구주제에 대해서 거의 1년 반 동안 정말로 형편없는 집중력을 보여 주었음을 증명해 주는 생생한 반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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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비슷한 사례가 작년에도 있었던 것 같다.
나와 비슷하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던 후배가 재학 당시에 국제학회에 제출했던 (그 때도 내가 2저자로 같이 참여) 논문이 아쉽게 떨어지고 마침 후배는 졸업해서 나가는 바람에 리뷰를 보완한 후속 논문을 쓴다면 내가 혼자 작업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갑자기 지도교수님에 의해서 '어디어디 학회에 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당 국제학회 제출 마감 약 일주일을 남겨 두고 받게 되어서, 일주일 동안 실험을 더 하지는 못하고 대신 글을 많이 고쳤다. 특별히 서론의 시작 부분인 연구의 배경과 필요성 부분을 새로 썼고, 나머지 부분은 논리 진행을 유지한 채 문장과 표현만 바꿨다. 그렇게 해당 학회에 발표 게재가 되었다.

물론 그 당시에도 나는 지금 여전히 지지부진하고 있는 그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구체적으로는 실제 실험환경을 세팅해 놨다가 문제정의를 설명하지 못해서 개발을 중단하고 시뮬레이션 환경으로 포팅하던 중이었다. 기존의 실험 환경을 그대로 시뮬레이션으로 옮기는 것도 오래 걸렸지만, 새로운 문제정의에 맞게 보완하는 작업은 아직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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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것일까?
내가 온전히 책임을 질 수 있고, 그 책임으로 인한 피해가 나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 경우에 대해서는 내가 너무 마음을 놓아 버리는 것은 아닐까? 내가 책임감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위치에서는 그 반대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최근에 5일 만에 끝낸 논문 작업에 처음 투입되었을 때, 그 논문이 목표로 하는 학회는 분산시스템 분야에서 top을 달리는 유명한 국제학회였다. 내가 처음 투입되던 그 때의 논문의 작성 상태나 후배들과 지도교수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으로 인해 후배들이 제출할 수나 있을지 회의적인 마음이 컸었다. 무모한 도전이었고, 미친 짓 같아 보였다. 
나 스스로 내가 뭐하러 저 불구덩이에 뛰어드는가 하는 생각을 가졌을 법도 한데, 오히려 정 반대였다. 그 때 나는 이걸 뜯어고쳐서 "적어도 이 국제학회에 제출해도 부끄럽지는 않을 만한 구색을 갖춘 논문을 한번 만들어 보자"는 이상한(?) 목표의식이 생겨서, 스팀팩 맞은 테란의 마린마냥 날뛰었다. (...변태인가?) 후배들과 지도교수 사이에 거의 싸움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그 상황을 해결하고 싶었고, 후배들에게 결과물을 성사시켜 주고 싶었고, 이번 기회에 지도교수와 이 분야 연구하는 학생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간격을 최대한 좁혀야겠다는 쓸데없는 사명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 개인연구 주제로 논문 제출이 끝나면 바로 저기 후배들 연구에 뛰어들어서 공동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는데, 그게 강제로 실현되다 보니 마음껏 날뛸 수 있었던 측면도 있다.

내 것을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얼마 전의 그 5일 동안 느꼈던 이상한 희열(?)을 사실 내 개인연구에서 찾아야 하는데, 이게 참 어렵다.
내가 남들이 연관되어 있는 일에 대해서는 긴장감이 확 높아지는 반면에 나 자신만의 목표의식에 대해서는 역설적으로 책임지고 싶지 않은 것일까? 잘 하지 못해도 그 피해가 나를 넘어가지 않으면 그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는 쓸데없는 겸손 탓일까? (사실 이쯤 되면 겸손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겠지만...) 아니면 혹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 때문은 아닐까?

이번 겨울이 마지막 기회인데, 나 자신에 대해서 잘 생각해 봐야겠다.
나의 동기부여가 어디서 오는 것인지, 그걸 나 자신의, 내 인생을 위한 목표나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소명의식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를 잘 생각해 보고 내 개인연구에서도 목표를 향해 쉼 없이, 그리고 즐겁게 달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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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과정을 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와닿는 속담이 있다면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일 것이다.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해석할 수 있겠지만, 공통적으로는 잠재적으로 가치가 있는 자원을 많이 갖고 있더라도 그것을 정리하고 다듬는 등의 행동을 통해서 실제로 가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의미가 있다는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다.


논문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논문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그 동안 관련 분야에서 읽었던 논문들을 잘 정리하고 문제를 정의해서, 나만의 방법으로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이렇게 한 편의 논문을 만드는 과정이 구슬을 꿰는 과정과 다를 바가 없다. 


박사과정을 하는 동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여러 분야(사실 이 "여러 분야"가 문제다)에 대해서 많은 논문들을 읽었고, 그 덕분에 논문을 보면 석사과정 때보다 짧은 시간 안에 논문의 요점과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내 논문이 출판이 안 된다면 그동안 논문들을 읽어서 쌓아 놓은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게다가 그동안 열심히 읽었던 논문들 중에서도 실제로 내가 졸업하는 데 필요한, 나의 개인연구 주제에 관련된 논문들만 놓고 보면 논문의 개수가 줄어든다. 그 뿐만 아니라, 그동안 개인연구 주제로 만들었던 논문을 조금씩 고쳐서 제출했다가 reject 되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급한 불을 끄느라 동향 분석이 자꾸 미뤄지면서 "오래 되어 낡고 빛이 바랜 구슬"이 되어 가고 있다.

사실 내 논문이 reject 되었을 때 철저하게 분석해서 그 때 논문들을 새로 싹 정리하고 최신 논문들을 끊임없이 읽어서 정리해 두는 부지런함이 필요한데, 논문을 읽어 놓고 머릿속에 둔 채 방치했다가 점차 잊어버리는 경우도 많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못해서 파일 시스템 어딘가에 묻혀 있는 상태인 경우도 많았다.


내가 꼼꼼한 척 하면서도 무언가 하나를 할 때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던 과거의 습관으로 인해서, 지금처럼 졸업을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나의 개인연구 역량을 뿌리째 흔들고 있는 것만 같다. 이대로 계속 가면 안 그래도 기초가 부실한데 결국 논문을 내지 못하고 버리게 될 것이다.


이쯤 되니 오히려 내가 원래 연구하던 무선 모바일 네트워킹/라우팅 말고 지난 4년여 간 연구과제 실무책임을 맡으면서 타의에 의해서 습득한 소셜 컴퓨팅 쪽 지식을 정리해서 연구를 하는 게 더 빠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평소에 과제는 과제대로 수행하고, 나머지 시간을 최대한 잘 써서 내 개인연구를 게을리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나는 그동안 항상 과제를 최우선 순위로 두고 개인연구할 시간은 항상 뒤로 밀렸으며, 그마저도 개인적인 일들과 가정 등에 밀려서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 것이 지금의 나에게 더 큰 부담이 되어서 돌아왔다.


정말 인생이 쉽지 않다.

나의 부족한 노력과 체력, 그로 인한 연구역량 저하를 무엇으로 변명할 수 있겠는가?

정말 박사과정은 처절할 정도로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해야만 하는데, 그에 비해 나는 너무 자유로운 영혼인 것일까?

어쩌면 나는 박사과정이 내 적성에 안 맞는 것이었나?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하기에는 너무 심하게 늦었다.


어쩌다 보니 인생의 진도를 반대로 해서 결혼에 육아부터 먼저 시작해 버린 지금의 상황에서, 그렇다고 가족의 우선순위를 마냥 최하로 미루지도 못한다.

연구실에서 수행하는 여러 개의 과제를 최대한 덜 하려고 해도 이것조차 내가 그 동안 항상 나를 중심에 두고 모든 일처리를 하는 나쁜 습관 때문에 일에서 쉽게 빠지지도 못하고 있다. 그나마 교수님께서 많이 배려해 주시고 최대한 과제 일에서 빠지도록 해 주시는 것이 심리적인 위안이 될 뿐이고, 그렇다고 해서 실제로 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결국은 내가 내 스스로 manage해야만 한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의 내 습관과 과오를 곱씹으며 그때 좀더 잘 했어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할 만큼의 여유도 없다. 정말 내 모든 주의를 개인연구에 집중시켜서 빨리 논문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중대한 시기이다.


아무래도 아래의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 연구실의 연구과제가 정확히 내 개인연구 주제와 일치하는 경우는 국내에서는 거의 없기 때문에, (만약 그렇다면 엄청난 축복이다) 과제에 너무 목숨을 걸고 여기에 모든 시간과 노력을 다 쏟아서는 안된다. 명심하자. 나 자신의 노력과 나의 시간은 한정된 자원일 뿐더러, 개인연구에만 투자해도 충분하지 않을 정도로 소중한 자원이다. 중요한 곳에 우선순위를 두고 아껴 써야 한다.
  • 괴로워도 내 개인연구 주제와 관련된 논문을 나만의 익숙한 체계 (언제든지 무의식적으로라도 꺼내서 확인할 수 있는 상태; 그것이 물리적이든 사이버 공간이든 관계 없이) 안에서 꾸준히 정리해 두어야 한다. 당장 연구과제 연차평가가 내일이라고 하더라도 내 개인연구에 대한 생각의 흐름을 묻어 두면 안 된다. 경험상 3일이 넘어가면 잊어버리기 시작하고, 다시 흐름을 복구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며, 그러다가 보면 당장 하고 있는 실험 코딩을 하면서도 그것을 왜 하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마저 놓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 당장 어딘가에 제출하지 않더라도, 내 개인연구 주제 또는 평소에 생각하고 있는 내용을 항상 논문 형식으로 미리 만들어서 글을 조금씩 채워 놓아야 한다. 그게 단순한 메모 조각이어도 상관 없이, 논문의 틀에 어떻게든 글자들을 밀어넣어 두면 나중에라도 거기서부터 고쳐서 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하나도 쓰여있지 않은 채로 갑자기 논문을 쓰기 시작하면 due date가 잡히더라도 시간 안에 끝내지 못한다.


이제부터라도 구슬 서 말을 꿰어서 보배를 만들어야 한다. 구슬이 빛이 바래고 오래 되었으면 미련없이 버리자. 그렇게 해서 꿰어야 할 구슬이 모자라면 빨리 새로 모으자. 한번에 너무 크고 화려한 것을 만들 생각은 버리고, 졸업을 위한 최소한의 가치와 최단기간의 노력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생각을 하고 움직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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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학회에 냈던 논문 하나가 떨어졌다. 관련 분야 A급 국제학회이면서 저널 issue로 1년에 4회 발행되도록 하는 특별한 구조를 올해 처음 적용하는 학회인데, 소셜 컴퓨팅 관련 주제로 분석 결과를 정리해서 냈다가 리뷰어로부터 그다지 좋은 소리를 듣지는 못했다.


애초에 소셜 컴퓨팅이나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에서 유명한 좋은 학회(우리학교 박사과정 졸업 요건으로도 쓸 수 있다)인데, 사실 소셜 컴퓨팅이 내 주 연구분야도 아니고 부족한 시간 속에서 기존에 다른 사람이 써두었던 논문을 일부 수정해서 내다 보니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원래 소셜 컴퓨팅을 핵심 주제로 하던 학생이 다른 국제학회에 냈다가 아깝게 떨어진 것을 고치고, 새로운 데이터를 추가하고 그에 대한 설명을 더해서 낸 것인데, 그러다 보니 이전 학회에서 지적당했던 단점이 이번에도 유사하게 지적을 당했고, 오히려 그 단점을 더욱 중요하게 평가하면서 reject 처리가 되었다.


학회 논문 떨어지는 게 한두 번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나 이게 박사 졸업요건으로도 쓰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아주 빠르게 reject 처리가 되면서 차라리 요행을 바라지 않고 원래 하던 연구에 계속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애초에 나의 메인 연구주제가 아닌 쪽으로 졸업요건을 만든다고 해도 결국 박사학위 심사에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게 뻔하기 때문에, 원래의 내 분야에서 졸업 요건을 만드는 것이 당연할 뿐만 아니라, 이제는 그게 유일한 방법이다.


어느 한 쪽에 집중해서 주제 1개만 연구를 했다면 더 효율적으로 좋은 실적을 더 빨리 만들었을 텐데, 마치 박사과정 2개를 복수전공 하는 듯한 지금의 상황으로 인해서 지금껏 이도저도 아닌 실적만 만들어 내고 있다. 연구실의 환경적인 요인이 원인 제공이 되기는 했지만, 결국 그 과정에서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한 것은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나의 문제다. 내가 줏대를 가지고 나의 제한된 능력과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하는데, 이것은 지도교수가 해 주지도 못하고, 연구실의 선후배 그 누구도 해 주지 않는다.


결국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지만, 무선 네트워크 기반의 분산 시스템과 소셜 컴퓨팅 양쪽에서 무슨 연구를 어떤 식으로 하는지에 대한 지식은 많이 쌓이기는 했다. 양쪽 다 신경쓰느라 결국 양쪽 다 결실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결과이다. 극복하려면 내가 1.5~2배로 노력해야 하는데, 그 와중에 결혼과 육아까지 병행하고 있으니 (그나마 육아에 거의 참여하지 못하는 나쁜 아빠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늘어지지 않는다면 내가 사기를 치는 것이 된다.


그냥 내 페이스대로, 내가 나만의 실력을 쌓아 가고 그 과정에서 내 실력으로 학교로부터 인정받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지만, 가끔씩은 위로받고 싶고, 과거의 수동적이기만 했던 내가 후회스럽고 그렇다. 최근 들어서 훨씬 자기주도적인 상태가 되긴 했지만, 박사 초중반에 가졌던 나의 나쁜 태도들(수동적이고, 연구의 동기부여를 상실하고, 코딩에 대한 실력 향상 의지조차 약했던 태도들)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고쳤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쓸모없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박사과정 졸업을 위해서 선택과 집중을 해 달라고 조르는 수많은 일들은 똑같이 잔뜩 쌓여 있다. 가끔 24시간 내내 집중력을 유지하는 초능력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한다. 그게 아니면 나의 쓸데없이 강한 책임감을 꾹꾹 눌러 담아서, 최대한 이기적으로 내 일처리만 하고 싶을 때도 많다. (생각만 그렇게 하지 행동은 반대로 되는 게 문제)


이런 마음가짐으로 나중에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 게 좋을 지도 잘 모르겠다. 개발능력, 내가 건드려 본 모든 연구주제에 대한 각각의 연구능력, 단체를 관리하는 능력까지 모든 게 다 어중간한 상태니까. 어느 쪽으로 가도 일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디로 가야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 그런 상황이다.

이번 여름이 분수령이다. 여름 동안에 내 주제로 논문이 문제없이 출간되어 졸업 요건을 채우게 되면 그 뒤로는 좀더 자유로운 마음 상태에서 내 진로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때에는 지금 나의 졸업을 늦춰 왔던 수많은 오지랖의 흔적들이 조금이나마 진로 선택에 도움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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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원문 링크 http://www.ttimes.co.kr/index.html?no=2016062118327756834

제목: ‘종이로 읽을 때 vs 모니터로 읽을 때’ 이해도 차이


제목만 보고 예상하기로는 종이로 읽을 때의 이해도가 더 높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는데, 실험 결과를 보니 종이로 읽을 때와 모니터로 읽을 때에 내용을 기억하는 특징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종이로 읽을 때 글의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기가 더 좋고, 디지털 화면으로 볼 때에는 구체적인 내용을 더 잘 기억하게 된다고 한다.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정보를 모니터를 통해서 습득하는 내 입장에서 위의 실험 결과가 맞는 것 같다. 제아무리 크고 좋은 화질의 모니터가 있어도 논문 PDF 파일을 바로 모니터를 통해서 보는 것보다 인쇄해서 읽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경우가 많았다.


물론 위 실험에서는 통제된 환경 하에서 글을 읽도록 했겠지만, 내 경우에는 모니터를 통해서 인터넷도 수시로 들락날락 하고 메신저도 확인하고 이메일도 확인하는 등 너무나 쉽게 집중력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같은 내용이라도 종이에 인쇄해서 읽는 것이 더 좋은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논문의 경우는 맨 처음 인쇄하기 전에 내가 읽을 필요가 있는지를 제목과 초록(Abstract)을 통해서 먼저 판단하고, 그 뒤에는 서론부터 읽기 마련인데, 특히나 서론은 저자의 핵심 의도가 들어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일단 논문의 메인 아이디어를 파악하고 나서 직접 비교 실험을 수행해야 하거나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 해결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론의 제안 기법을 공부할 때에는 자세한 내용 자체를 잘 기억해야 한다. 결국 실험결과가 제시하는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같은 논문을 인쇄해서도 읽고, 모니터 화면상으로도 보는 수밖에 없다.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결국 논문 한 편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특히 카드뉴스 후반부에 인용된 CMU 교수의 "모니터로 읽다가 막히면 인쇄해서 본다"는 언급이 와닿는다. 사실 내 경우에는 모니터로 보는 것이 편하니까 그냥 인쇄하지 않고 모니터를 통해서 바로 논문을 읽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논문을 읽고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의도적으로 인쇄해서 읽는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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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에서 미래부 과제를 계속과제로 진행중이다. 2014년 3월부터 시작해서 2017년 2월에 끝나는, 3년짜리 과제이다. 


연구실에서 지난 연말에 제출한 국제학술대회 논문 중 여러 편이 선정(accept)이 되어서, 하나씩 학회 등록을 하고 출장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상당수의 학회가 과제수행기간을 기준으로 2차년도(2015년 3월~2016년 2월 사이)에 등록을 해야 하고, 실제 학회 개최 및 논문 발표는 3차년도(2016년 3월 이후)에 발생하게 되었다.


이 경우, 국제학회 등록비는 2차년도 예산에서 집행하고, 국제학회 출장비(항공료, 체제비 등)는 3차년도 예산에서 집행해야 하는데,  이렇게 예산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지금 수행중인 미래부 과제는 연차평가를 거쳐서 3차년도에도 변함없이 수행 예정이고, 지속적으로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논문 실적인데, 공교롭게 학회 등록과 출장 시기가 애매한 이유 하나 때문에 예산집행이 불가능하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오로지 실적으로만 생각해 보면 논문 게재/발표일을 기준으로 실적이 인정되니까 3차년도 기간 내에 학회 발표를 하면 되므로, 어쨌든 사사 문구(Acknowledgement)는 해당 미래부 과제로 표시해서 3차년도 실적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반면에 돈은 해당 연구주제와 관련성이 조금 떨어지는 다른 과제(가령 연구기간이 지난해 가을부터 올해 여름까지)에서 집행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문제는 계속과제를 수행중인 상황과 논문 실적이 이렇게 비동기식으로 발생할 가능성을 감안해서 미래부에서 보완 규정을 만들어서(즉, 규정을 다듬어서 규제를 완화) 해결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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