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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태스킹을 하는 사람을 쳐다보면 굉장히 바쁘게 쉴 새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열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열심히 무언가 하는 것은 맞지만, 생산성이나 결과물 측면에서는 열일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도 발생한다.

실제로 멀티태스킹이 생산성에 좋지 않다는 연구 결과도 찾아보면 많이 있고, 그냥 직접 멀티태스킹을 해 보면 어느 정도 체감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사회가, 특히 대학원 환경이 나에게 멀티태스킹을 강요한다는 데 있다.


석사과정 때는 수업을 들으면서 동시에 연구실에서 공부하라고 주는 논문들을 읽고, 가끔 연구과제와 관련해서 지시하는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 만약 연구실에 과제가 여러 개 있다면 과제 개수에 비례해서 서로 호환되지 않는 일처리 개수가 늘어난다.


박사과정이 되면 수업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만, 일단 개인 연구가 마치 백그라운드 프로세스처럼 절대로 멈추지 않고 지속된다. (관련 분야 논문을 읽거나, 해야 할 실험을 하거나, 논문을 조금씩 고치거나) 그리고 다른 어떤 일이 오더라도 이 개인연구는 절대 놓아서는 안 된다. 물론 현실은 시궁창ㅠㅠ 개인연구가 다른 덜 중요하면서 대신 더 급한 일처리에 침범당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박사과정에게 연구과제는 조금 더 관리 측면에서 신경쓸 것이 많아진다. 교수님뿐만 아니라 재정을 지원해 주는 갑(정부 또는 회사), 때로는 과제의 규모가 좀 클 경우 과제 내의 다른 연구팀(다른 교수님들의 연구실, 참여기업 등)과 수시로 연락해서 일정을 조율하고 연구내용을 서로 맞추고, 진행상황을 검토하는 등의 일들을 해야 한다. 보통 1년 단위인데 연초에는 제안서를 쓰고 과제 제안 발표자료를 만드느라 바쁘고, 중간에는 정기적으로 회의를 소집해서 진행해야 하고, 가을 쯤에는 중간 진도점검 준비를 하느라 바쁘고, 연말에는 연차보고서와 연차평가 발표자료를 만드느라 바쁘고, 만약 뭔가 연구개발 결과물을 구현하기로 계획되어 있다면 프로그램 개발을 하느라 바쁘다. 이런 연구과제가 1개만 있으면 괜찮은데 2개 이상으로 늘어나면 그 때부터는 정신이 없어진다. 게다가 연구과제가 다루는 내용이 내 개인연구와 관련성이 낮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_=

여기에 후배이자 공동저자인 석사과정 학생들의 논문도 봐 주고, 가끔 연구내용을 가지고 특허 출원도 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일들이 수시로 나에게 다가오는데 이것들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열심히 바쁘게 이것저것 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아무 것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 지속되기도 한다.


최소한 연구 주제 1개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고민하고, 그 안에서 여러가지 다양한 일들이 발생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것은 싱글 태스크로 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연구과제를 단 1개만 제대로 집중해서 진행할 수만 있다면 그 연구과제는 꽤 좋은 성과를 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연구과제를 단 1개만 하고서 연구실 운영을 제약 없이 해낼 수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멀티태스킹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직장생활을 본격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해 본 직장에서의 생활도 멀티태스킹을 강요하기는 매한가지인 듯 하다. 결국 지금 멀티태스킹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이것을 최대한 싱글 태스크처럼 잘 해내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말이 전략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쯤 들어 보았을 만한 뻔한 방법을 쓰면 된다. 일을 중요도와 시급성 두 축을 기준으로 4등분해서 우선순위를 매기고 그에 맞추어 처리하면 된다. 이것을 알고 모르고의 차이가 아니라, 알고 있는 대로 일의 우선순위를 잘 매겨서 그대로 진행하는 "실천을 하고 못하고의 차이"일 뿐이다.


트렐로(trello)를 이용해서 내 앞에 주어진 수많은 일들을 분류하고 중요도와 시급성을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매겨 보았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는 명확히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우선순위를 매긴 대로 하루하루 일처리를 성공적으로 해내기가 정말 쉽지가 않았다. 이렇게 task를 잘 정의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자잘한 일들은 여전히 많았고, 가끔 아기를 아내 대신 봐 준다거나, 몸이 아프다거나, 계획상의 일이 생각보다 너무 어려워서 그게 미뤄져서 줄줄이 다른 일도 못하는 등 변수가 산적해 있었다. 게다가 막상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뻔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 일에 집중을 못하고 시간만 허비하는 경우도 여전히 자주 있었다. 정말 이게 가장 속상하다. 나는 왜 이토록 의지박약인 것일까??


내가 하려는 그 일에 동기부여가 충분하지 못해서 일이 하기 싫거나, 갑자기 하던 일이 도무지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아서 어렵거나 해서 동기를 상실했을 때, 나는 높은 확률로 페이스북에 들어가거나 네이버 뉴스를 보면서 1시간 넘게 허비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알았으면 고쳐야지. 그런데 참 생각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자, 이제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어지는 모든 일이 마냥 재미있지 않다. 동기를 부여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심지어 자기최면 수준으로 생각을 고쳐야 될 때도 있다. 그렇게까지 나 자신을 왜곡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애초에 내 성향이 그다지 낙천적이지는 않아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나 스스로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쏠 때가 자주 있다. 이 습관 역시 좋지 않으므로 고쳐야 하는데, 이것도 노력 부족인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의 문제가 되고 만다. 하지만 어쨌든 이 쳇바퀴를 탈출해야 한다는 목적에는 변함이 없다.


내가 조금 더 자존감이 높아지고, 좀더 집행력이 좋아지고, 좀더 미래를 위해 현재의 어려움을 참아낼 수 있는 인내심과 집중력이 더해진다면 지금보다 상황이 나았겠지? 그러면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자. 이것이 나의 기도제목이다. 일 잘하는 사람 그 자체를 목표로 한다면 그것은 우상이 되겠지만, 적어도 그렇게 되고 나서야 무엇이든 내 앞에 언젠가 주어지는 사명(calling)을 감당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아니, 멀리 볼 것도 없이 지금 당장 내 삶의 작은 부분에서도 말씀대로 살고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지금 멀티태스킹의 늪에서 쓸데없이 세월을 낭비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뭐, 박사학위를 포기하고 지금 당장 연구실을 뛰쳐나와 다른 일을 시작하면 상황이 나아질 수는 있겠지만, 박사학위를 아직까지는 포기할 생각이 없으므로 결국 멀티태스킹을 최대한 생산적으로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


힘내자, 노력하자. 싸우고 참아내고 이겨내고 극복하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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