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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다음 단계

Life/일상 2019. 11. 2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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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새로운 곳으로 출근하기까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그동안 삶의 모양과 가족 구성원의 변화에 따라 이사는 많이 했지만, 도시를 옮기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이번에는 거주하는 도시가 바뀐다. 지금 살고 있는 지역은 전반적으로 평화롭고 좋은 추억도 많지만,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고생한 기억도 많기 때문에 다 털고 떠나는 상황이 슬프지 않다. 다만 그동안 교제하던 친근한 사람들로부터 물리적으로 더 멀어지는 것은 아쉽다. 

초반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갈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가족이 함께 살 적절한 집을 구해야 하기 때문에 정신을 잘 차리고 있기를 스스로 다짐한다. 무엇보다 주제넘는 선택을 부추기는 자본주의적 욕심 때문에 집을 찾아보는 내 시야가 왜곡되지 않아야 할 텐데.

아마 지금껏 실험실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기술과 훨씬 거대한 규모의 전산화된 환경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모르는 것을 단기간에 알아내고 써먹어야 할 때, 굶주린 늑대처럼 구글 검색 결과를 헤집고 다니던 때의 내 마음가짐이 앞으로도 통했으면 좋겠다. 물론 대학원 연구실보다는 여러 모로 훨씬 체계적일 테니, 회사의 시스템이 나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Keep lea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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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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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일기] 2019.09.17 *

Life 2019. 9. 1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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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새벽 5시 경에 설핏 잠을 깼지만 새벽예배에 가지 못하고 계속 잠을 잤다. 예전의 습관을 되돌리는 것이 쉽지 않다. 내 안에 주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절실함이 아직 부족하다. 내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은 기도가 절실한 상황인데 내가 교만한 것이 아닐까?


<점심>

추석 연휴 동안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음식과 반찬을 가지고 비빔밥을 만들어서, 아내와 같이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정말 감사하다.


<세차>

일을 하려다가 즉흥적으로 실내세차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도안동으로 이동했다. 원래 실내세차만 하려고 했지만, 도착한 김에 간단하게 실외세차도 하고 싶어져서, 그냥 전체 세차를 하게 되었다. 폼건(foam gun)을 어설프게 쓰다가 시간이 금새 지나가서 전체를 세제로 덮지 못한 채 차를 닦고 있었는데, 주인 아주머니께서 중간에 폼건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고 도움을 여러 번 주셔서 고마웠다. 다만 내가 폼건을 쓰는 것이 서툴러 보여서 알려주게 되었다고 하시는 말씀 속에서, 내가 서투르게 보여졌다는 것이 상상이 되면서 혼자 살짝 부끄럽고 아쉬웠다.

이것은 나의 고질병과도 같다. '남에게 항상 잘 보이고 싶어하는 모습' 때문에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별 것 아닌 상황에서도 감정의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곤 한다. 하지만 이럴 때 나의 자존심을 세우는 것보다는 다음 번에 제대로 '개선'될 수 있도록 변화의 도움을 선택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더 좋다. 애초에 세차는 내 인생에 영향을 줄 정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서 고작 이런 일로 기분이 나쁠 것이 없지만, 이와 비슷하되 정도의 차이가 큰 상황은 앞으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이 일터나 가정이나 개인적인 인간관계 등 다양한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직면할 때, 내 자존심과 감정에 신경쓰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앞으로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것)을 얻을 수 있는지를 한번 더 생각하는 지혜를 가져야 하겠다. 어쨌든 세차가 만족스럽게 잘 되었고, 친절한 사장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누고서 기분 좋게 길을 나섰다.


<카페>

실외에 땡볕을 받아야 하고 주차할 공간도 부족한 스타벅스 대신, 그늘진 곳에 여유롭게 두 시간을 주차할 수 있는 커피더반 카페에 왔다. 커피맛은 스타벅스와 조금 다르지만 (어느 것이 더 좋다기보다는 스타벅스 아메리카노의 맛에 내 혀가 너무 익숙해졌다), 조용히 일하기에는 오히려 더 좋은 것 같다.


<여호수아>

요즘 매일성경에서 여호수아 성경구절이 이어지고 있다. 여리고 성에서 엄청난 기적과 큰 승리를 경험했지만, 그 속에는 극소수지만 일부 지도층의 탐심으로 인한 죄악(전리품 횡령)이 드러났다. 그 죄악으로 인해 두 번째 전투인 아이성 전투에서는 어이없이 패했다. 

마치 박사 디펜스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제 막 졸업한 박사가, 자기와 다른 분야를 연구하는 석사과정 1년차에게 잘난 척 하면서 훈수를 두다가, 최신 논문 분석도 제대로 못해서 완전히 잘못된 방향을 제시해서 지도교수한테 어이없게 혼나는 것과 비슷하다.

결국 다시 하나님께 회개하고 죄된 요소를 모두 제거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대는 아이성 전투를 철저하게 준비해서 무난하게 승리하였다. 이번에는 전리품도 자유롭게 취할 수 있게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물질적으로도 어느 정도 보상을 받았을 것이다.

크고 중요해 보이는 일에서만 기도하는 것과, 나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나와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인정해 드리며 매 순간 기도하며 결정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 나는 어떤 모습인가?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성령님)을 모르거나 없는 척 하며 살아가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싶다.



<받은 말씀>

욥기 7장


1. 이 땅에 사는 인생에게 힘든 노동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그의 날이 품꾼의 날과 같지 아니하겠느냐

2. 종은 저녁 그늘을 몹시 바라고 품꾼은 그의 삯을 기다리나니

3.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고통을 받으니 고달픈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4. 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까, 언제나 밤이 갈까 하며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구나

5.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 덩이가 의복처럼 입혀졌고 내 피부는 굳어졌다가 터지는구나

6.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희망 없이 보내는구나

7. 내 생명이 한낱 바람 같음을 생각하옵소서 나의 눈이 다시는 행복을 보지 못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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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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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일기] 2019.08.14

Life 2019. 8. 1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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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오늘은 새벽예배에 갈 수 있었지만, 아내가 많이 피곤해해서 가지 않았다. 내가 소윤이 바로 옆에 붙어서 같이 자고 있었는데, 내가 일어나서 자리를 비우면 옆에 사람이 없어서 허전함을 느끼는 소윤이가 결국 아내가 자고 있는 위치에 가서 안기고 아내의 숙면을 방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소윤이는 잘 때나 놀고 있을 때나 항상 아내 또는 나와 피부를 맞닿아서 붙어 있으려고 하는데, 그만큼 나와 아내를 믿고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요즘같이 더운 여름에 항상 붙어 있으려고 하니 가끔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기회가 넘칠 때에 많이 안아 주고 애정 표현을 많이 해 주려고 한다.


<오전>

어제보다 조금 더 일찍 하루를 시작하였다. 소윤이도 평소보다 일찍 어린이집에 등원하였다. 어제 목욕을 했기 때문에 머리만 얼른 감고 빨리 준비해서 집 밖을 나설 수 있었다. 덕분에 평소에는 항상 점심식사 이후에 왔었던 스타벅스에 아침부터 와서 여유롭게 주차를 하고 공부하기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요즘은 스타벅스에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독서실과 다를 바 없는 스터디카페에도 자주 갔었지만, 지나치게 조용해서 노트북을 갖고 뭔가 하기 어려운 곳보다는 적당히 소란스러운 곳이 더 좋다. 그리고 나는 주변 소음이 불편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하기 싫은 일을 스스로 지속하는 게 싫어서 딴짓을 하려는 경향이 가장 큰 문제), 스타벅스만큼 좋은 곳이 없다. 이렇게 된장남이 되어 간다. 그러나 나의 생산성을 높일 수만 있다면 평생 된장남이 되어도 상관 없다.

에스겔 21:18-32 를 묵상했다. 죄악과 불순종으로 점철된 원래 있던 이스라엘 왕이 칼의 심판에 넘어진 뒤에, "다스릴 권리가 있는 그 사람이 오면" 왕위를 그에게 넘겨 주겠다는 말씀이 있다. 새로 세워지는 왕은 역사적으로는 바빌로니아의 침공을 받은 뒤에 바빌로니아에서 직접 세운 왕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죄와 불순종에 있는 나 자신이 내 속에 있는 왕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앉으시는 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예수님을 주인 삼는 것이 글자처럼 쉬우면 좋겠지만, 평생 추구하고 지켜야 하는 싸움임을 조금씩 알아 간다. 오늘 예수님을 주인 삼기 위해 애쓰기로 다짐하였다.


<전산학 박사에 대하여>

컴퓨터 과학을 전공하면 취업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지만, 이것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상황에서 막상 살펴 보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에 실망하곤 한다. 박사학위 소지자는 경력직과 비슷하게 채용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산업계에서의 실무 경력과 비교하면 실무 수행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연구실에서 프로젝트를 많이 수행했지만, 프로젝트가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초보적인 수준의 구현에 머무른다. 

결국 박사에게 요구하는 것은 당장 생산 가능한 제품 개발보다는 프로토타이핑을 통한 연구개발에 가까운데, 이것을 다시 말하면 연구 측면에서 남들도 인정하는 성과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좋은 학회나 좋은 저널에 나의 연구 주제로 출판한 논문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상태로 회사나 연구소, 대학교에서 해당하는 연구 주제와 일치하는 채용 공고를 내서 내가 거기에 지원해야만 내가 채용될 확률이 가장 높다.

하지만, 인생의 수많은 결정 속에서 나는 가족을 먼저 선택했고, 프로젝트를 맡을 기회가 올 때마다 다양한 분야를 배우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고, 학교 내에 있는 외국인 친구들을 도와 주는 일에 집중하는 등의 선택을 통해 (누군가는 잘못된 선택이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나는 주어진 시간 동안 내 연구 주제에서 최대한의 성과를 내는 것에 실패했다. 프로젝트는 참 많이 했지만, 연구가 아닌 산업계에서는 그 어느 회사도 실무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 컴퓨터공학의 측면에서 내가 쓸 줄 아는 도구의 수는 많지만, 특정한 한 분야에서의 전문성(expertise)으로 나를 증명할 수 없었다. 다 제쳐두고 오로지 코딩 실력 하나만 놓고 보니, 정보올림피아드 대회를 경험해 본 학부 졸업생들에 비하면 나는 코딩을 못하는 인간이 되어서 그들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것저것 다 만져보며 연구실 서버들에 문제가 터지면 항상 내가 나서서 (그게 재미있었나 보다) 해결하다 보니, 내 연구주제보다는 DevOps 측면에서 오히려 더 잘하는 것 같지만, 요즘은 DevOps 엔지니어는 없어지는 추세인데 누가 뽑으려고 하겠는가?

이력서 상에서 나는 학위 기간은 평균보다 길고, 연구 실적은 많은 것 같지만 어느 한 분야에 특출나지가 않고, 프로젝트 수행을 많이 한 것이 그나마 봐줄 만 하지만 그것도 분야가 여러 갈래이고, 요즘 거의 모두가 맹목적으로 열광하는 인공지능이나 머신러닝 쪽으로 경험이 풍부한 것도 아니었다. 아마 내가 채용 담당자라고 해도 다른 박사의 이력서와 비교하다 보면 내 이력서를 거를 지도 모르겠다. 이력서의 문맥 사이에 감춰져 있는 나의 구구절절 스토리를 누가 알아 주겠는가?

그러나 여기서 자기연민이나 하며 계속 절망해 있으면 진짜로 나는 패배자가 될 뿐이다. 과거에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우울증이 심각해져서 기한이 임박한 일조차 미루면서, 자기 비하를 멈추지 못하면서 인생을 허비하던 내가 최근 들어서야 그 악순환에서 벗어났다. 다시 자기 비하의 늪으로 돌아갈 이유도 필요도 없다. 인공지능 관련 지식을 거의 컴퓨터와 연관된 거의 모든 회사에서 요구하기 때문에, 일상의 시간 중 일부를 떼어서 머신러닝 관련 지식과 도구 사용법을 습득하는 데 할당하면 되는 일이다. 박사까지 하고 보니,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 동영상 강의를 듣고 기억해 뒀다가 똑같이 따라하는 것이다.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는 강의들 중에서 괜찮아 보이는 것 하나를 정해서 그저 따라하면 된다. 코딩 실력도 알고리즘 분야별로 가르쳐 주는 동영상 강의와 문제 샘플과 풀이가 넘쳐나니, 그저 따라하며 이해를 하면 될 일이다. 온라인 문제 사이트에서 몇 개를 풀어 보니, 코딩 속도는 자연스럽게 높아지는 것 같으므로, 그냥 이것저것 쓸데없이 많이 생각하지 말고 해 보면 (just do it) 된다. 

마지막으로 논문을 한 편 쓰고 있으니, 이것도 쓰기 싫더라도 참고 써보자는 생각을 갖고 그저 손을 움직여서 실험을 하고 글을 쓰면 된다. '왜 나는 제대로 논문을 써내지 못할까?', '벌써 졸업하고 나서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난 논문 완성도 못하고 뭘 했나?'와 같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 때문에 오늘 해낼 수 있는 일도 내일로 미뤄지는 경우가 많다. 차라리, '오늘 논문 쓰는 것이 하기 싫지만, 나의 미래를 위해서 꾹 참고 조금만 고쳐 보자. 여기까지만 고치고 게임 한 판 해야지'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훨씬 나은 것임을 경험한다.

어제 또는 그저께와 비교할 필요도 없다. 오늘 주어지는 하루는 그냥 오늘일 뿐, 내가 개선되는 것에만 집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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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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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분야에 관계 없지만 굳이 한정짓는다면 전공 분야에서) 더 잘하기를 원했고, 더 잘하게 되는 만큼 내가 자력으로 맡은 일들을 더 잘 (많은 경우에서 더 빠르게) 진전시키는 것을 항상 바라고 살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나의 역량과 관계 없이 나에게 맡겨진 일이 소위 말해서 '하드캐리'로 진전되는 경험들이 하나둘씩 누적되다 보니 (물론 드러나지 않았을 뿐 실패도 같은 비중으로 누적), 바보같지만 더 잘하려고 애쓰는 시간의 일부를 떼어 내서 하늘을 올려다 보게 되었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요행을 바라기 싫어했지만, 정작 그것이 무시무시한 완벽주의로 돌아와서 더더욱 나를 짓눌러서 현재의 나를 지속적으로 망가뜨리는 광경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내게 맡겨진 일들은 과거부터 줄곧 그래 왔듯이 지금도 여전히 도전적이다. 내가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달려드는 도전적인 상황에서, 내가 내 역량이 더 뛰어나지 못해서 이것들을 멋지게 처리하지 못하는 것을 후회하면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후회를 멈추지 못할 것이다. 차라리 내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것을 잘 하는지, 나의 가치는 어디에서 가장 값질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길지 않은 삶을 행복하게 살아내고 싶다.


내게 주어진 일정량의 능력과 나의 특성을 합쳐서 어디에서 어떤 가치를 실현하며 행복을 누릴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면, 바보같지만 그저 하늘을 올려다 보며 기도하게 된다. 도전적인 환경 속에서 자발적으로 완벽주의에 갇힌 바보가 되는 것보다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내가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아 가는 행복한 바보가 되는 것이 백배 천배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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