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심리적으로 매우 안 좋을 때 작성한 글입니다. 글 전반에서 부정적인 표현이 많은 점 양해를 바랍니다. 항상 이렇지만은 않습니다.
*글을 대대적으로 수정하려다가, 그냥 아직 어린 신앙인이 갖는 솔직한 고민이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놔두기로 했습니다. 대신 이후로 점차 변해 가는 마음가짐을 새 글로 써서 공유하겠습니다.
<관련 글타래>
*과연 교회는 기혼자 대학원생을 올바르게 양육할 수 있는가?, http://skylit.tistory.com/208
*회피성 성격장애와 번아웃 상태를 극복하고 싶다, http://skylit.tistory.com/211
요즘 주어지는 시간에 비해 맡은 일을 처리할 때 역량 발휘가 충분히 되지 않는 것이 느껴진다. 연구실 일뿐만 아니라 주일에 교회에 가서도 비슷한 상황이다.
솔직히 주일에 예배 드리러 어차피 가는 것이고, 단지 나는 예배드리는 시간에 extra로 약간의 수고를 더해서 15분 정도 앞에서 찬양팀과 같이 찬양을 하는 정도인데, 그마저도 부담을 느낄 정도로 마음이 편하지 않다. 노력의 절대량으로 봐서 어려운 점이 있다기보다는, 찬양인도에 대한 동기를 많이 상실해서 자꾸만 부담을 느끼는 것이 문제다. 내가 무슨 대단한 선교단체의 찬양팀을 꾸리는 것은 아니고 음악적인 완성도를 철저하게 추구해야 하는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하지만, 토요일에 짧게 연습하고, 주일에도 조금 더 일찍 가서 잠깐 연습하고, 예배 중간에 앞에 나가서 찬양하는 이 모든 시간과 노력이 그저 부담스럽게 되었다. 마음이 지쳤다.
*연구에 대한 인식 변화
그에 비해 연구는 차라리 상황이 좋아진 것 같다. 개인 연구주제에 대해서 이와 비슷한 번아웃 상황을 이미 3-4년 전에 겪었고, 그 뒤로 조금씩 실력을 쌓으면서 이제는 좀 괜찮아졌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연구와 실험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으므로 많이 좋아졌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실험을 하거나 논문을 쓰다가 중간에 어떻게 해결할 지 모르겠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에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이 답답해지지만, 그래도 조금씩 해결해 가고 있어서 좋다.
박사과정 고년차인 지금쯤 되어서 돌이켜 보니,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어렵더라도 진득하게 그 문제를 계속 해결하기 위해서 고민해 보고, 실패와 쪽팔림을 무릅쓰고 주변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얘기해 나갈 때, 바로 이 때 조금씩 내 역량이 성장해 왔었다. 지도교수님이 석사과정은 내가 맡은 분야의 연구와 '연애'를 하는 것이고, 박사과정은 해당 연구와 '결혼'을 해서 인생 전체를 쏟아붇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박사과정 기간은 인생 전체에 있어서 최고로 집중해야 하는 시기이며, 박사과정 시기에 그렇게 집중을 해야 나중에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도 그 진가가 드러난다고 하셨다. 요즘 지도교수님의 이 표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만큼 최고로 집중해서 아직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내는 것이 박사과정의 역할이고, 그렇게 집중적으로 하지 않으면 단 한발짝도 진전이 없다. 내가 그렇게 박사과정 초반의 2년 반 정도를 날려먹었다. (과제 관리 기술 말고는 내 연구주제에서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는 암흑기였다.)
*또 하나의 변수, 육아
하지만 실제로 결혼을 하고 육아를 시작하면서부터 내 삶의 상당 부분(집중력, 시간, 체력 등)이 육아에 할당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박사과정으로써 꾸준히 집중을 지속하는 시간은 짧아질 수밖에 없었다. 꾸준히 집중하는 연속된 4시간을 쪼개서 2시간씩 써 봤자, 연구를 진전시키는 데 아무 도움이 안되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꽤 절망하기도 했다.
어떻게든 꾸준히 집중할 시간을 만들어서 하루라도 빨리 졸업요건을 채울 수 있는 논문을 만들어 내고자, 최근 몇 달 간은 저녁시간부터 늦은 새벽까지 아예 연구실에 상주하면서 연구를 진행했는데, 이게 초반에는 꽤 효과가 있었지만 이런 상태가 지속되자 만성피로와 수면부족에 시달리면서 집중을 많이 못하게 되었다.
잠깐 쉬고 다시 달려야 하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하루라도 빨리 원하는 실험 결과를 찍어내고 싶은 마음에, 이 실험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해서 교수님과의 미팅도 자꾸만 미뤄지는 상황에 대한 조급함 때문에 지금도 멈추지 못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연구실에 다시 왔다. 방금 전에 아내와 아기와 함께 외식을 하고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졌고, 잠시나마 캠퍼스에서 산책도 하면서 아기와 놀아줬으니 그나마 최소한의 육아는 했고, 집에 아내와 아기를 차로 태워다 주고 나서는 집에 계속 있으려는 유혹을 뿌리치고 다시 연구실로 핸들을 돌렸다.
정말 멈출 수 없는 '화차'가 된 심정이다.
이렇게 육아가 인생의 대부분을 동원해야 할 정도임을 글로만 이해하고 몸으로 알지 못했다가, 이제 와서 몸으로 알게 된 것이다. 진작에 몸으로 이정도인 줄 알았더라면 절대로 박사학위를 받기 전에 아기를 갖지 않았을 텐데... (지금 커 가는 아기가 싫다는 의미가 절대로 아니다. 딸아이가 커 가는 모습은 정말 너무나 사랑스럽고 예쁘다. 하지만 아기를 가져야 하는 선택의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무조건 졸업 뒤로 미룰 것이다.)
*결국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문제
내가 딱 1년 전에 지금과 같은 연구 역량과 지식을 습득하고 있었다면 이정도로 답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1년 정도면 SCI 논문 어디든지 써서 결과를 받을 수 있고, 그 동안 좋은 학회논문들을 다작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작년까지도 나는 바보같이 프로젝트와 연구실 전체적인 연구 조율(석사과정들의 논문 2저자 참여) 등을 핑계로 개인연구에 이기적으로 많은 시간을 쏟아붇지 못했기에 이제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채 개인연구만 하고 있다. 이제서야 제대로 된 실험환경이 갖춰졌고, 여기서 조금만 더 집중적으로 노력하면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더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라는 것만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청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결혼하고 나서도 우리 부부는 예배 찬양팀 여기저기 사역하느라 바빴고,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야 모든 사역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그리고 아기가 돌이 지나자, 다시 간곡한 부탁(?)에 의해서 사역이 점점 치고 들어오고 있다.
이제는 더이상 순진하게 간곡한 부탁들을 수용할 수가 없다. 앞으로 그 어떤 사역 요청이든지 매몰차게 모두 거절할 것이다. 누가 내 인생을 책임지는가? 하나님께서는 충분히 내 인생을 보시고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은 비록 그 사람이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결코 믿을 수 없다. 대신 박사학위를 받아줄 것도 아니니까.
자꾸 생각하다 보면 크리스천으로서 박사학위를 굳이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까지 될 때도 있지만, 이건 지금의 번아웃 상황을 극복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므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찌 보면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기도 하다. 일단 세상에서 내 앞에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람직한 신앙인의 자세다. 세상에서 아무 영향도 끼치지 못하고 오히려 민폐를 끼치면서 교회 사역을 열심히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그런데 내가 요즘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될까봐 두렵다. 그래서 더더욱 지금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감당해야 하는 사역들이 부담이 되는 것이다. 내가 교회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위로는 더이상 위로가 아니다. 더욱 더 부담을 가중시킬 뿐이다. 아무래도 안식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대학교 교수도 안식년이 있고, 심지어 목사와 선교사도 안식년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평신도 사역자는 개인이 스스로를 알아서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이 현실이 씁쓸하다. 도대체 무엇이 교회 공동체인가?
*결론
프로야구팀은 지금 등판해 있는 에이스 투수가 잘 던지다가도 어느 순간 조금 흔들리는 기색이 보이면 가차없이 투수를 교체한다. 정신력을 고취시키고 격려만 하면서 그 에이스 투수가 계속 경기를 끌어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왜냐하면 결국 에이스 투수는 투수대로 소진되고, 팀은 자칫 대량실점으로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선수 개인과 팀 전체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충분히 몇 이닝 더 던질 수 있을 것 같은 선수조차도 강판시키는 게 야구인데, 교회는 지금 던지는 투수의 물리적인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응원만 열심히 하는 식으로 경기가 끝날 때까지 평신도를 사역에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요즘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누구나 다 바쁘거나 어렵기는 매한가지인 것을 나도 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도 신앙의 역량이 충분해서 척척 맡은 일을 해낼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교회 내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 사람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사역을 꽤 오랫동안 해 온 사람이라고 해서 또 다 그렇게 매우 훌륭한 신앙으로 무장해 있는 것만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훌륭한 신앙의 사람조차도 어느 순간 여러 변수에 의해서 힘든 시기를 충분히 겪을 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럴 때에 그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신앙 안에서 회복할 수 있게 사역 일선에서 끌고 내려와서 쉬게 하고 '구원투수'를 등판시킬 수 있는 체계가 과연 교회에 있는지 묻고 싶다.
내가 약해빠진 신앙의 초보라는 사실이 주변에 널리 인식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에는 정말 좀 쉬어야겠다. 그리고, 가능하면 박사학위 받고 나서 최소 주 단위로 여행이라도 좀 다녀오면서 마음을 정리해야겠다. 그리고 내 비전을 다시 정리할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을 것이고, 사역 대신 성경공부와 같은 양육훈련부터 신경쓸 것이다. 이타적인 삶을 넉넉히 살아내기 위해서 지금 이기적으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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