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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학회에 냈던 논문 하나가 떨어졌다. 관련 분야 A급 국제학회이면서 저널 issue로 1년에 4회 발행되도록 하는 특별한 구조를 올해 처음 적용하는 학회인데, 소셜 컴퓨팅 관련 주제로 분석 결과를 정리해서 냈다가 리뷰어로부터 그다지 좋은 소리를 듣지는 못했다.


애초에 소셜 컴퓨팅이나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에서 유명한 좋은 학회(우리학교 박사과정 졸업 요건으로도 쓸 수 있다)인데, 사실 소셜 컴퓨팅이 내 주 연구분야도 아니고 부족한 시간 속에서 기존에 다른 사람이 써두었던 논문을 일부 수정해서 내다 보니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원래 소셜 컴퓨팅을 핵심 주제로 하던 학생이 다른 국제학회에 냈다가 아깝게 떨어진 것을 고치고, 새로운 데이터를 추가하고 그에 대한 설명을 더해서 낸 것인데, 그러다 보니 이전 학회에서 지적당했던 단점이 이번에도 유사하게 지적을 당했고, 오히려 그 단점을 더욱 중요하게 평가하면서 reject 처리가 되었다.


학회 논문 떨어지는 게 한두 번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나 이게 박사 졸업요건으로도 쓰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아주 빠르게 reject 처리가 되면서 차라리 요행을 바라지 않고 원래 하던 연구에 계속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애초에 나의 메인 연구주제가 아닌 쪽으로 졸업요건을 만든다고 해도 결국 박사학위 심사에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게 뻔하기 때문에, 원래의 내 분야에서 졸업 요건을 만드는 것이 당연할 뿐만 아니라, 이제는 그게 유일한 방법이다.


어느 한 쪽에 집중해서 주제 1개만 연구를 했다면 더 효율적으로 좋은 실적을 더 빨리 만들었을 텐데, 마치 박사과정 2개를 복수전공 하는 듯한 지금의 상황으로 인해서 지금껏 이도저도 아닌 실적만 만들어 내고 있다. 연구실의 환경적인 요인이 원인 제공이 되기는 했지만, 결국 그 과정에서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한 것은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나의 문제다. 내가 줏대를 가지고 나의 제한된 능력과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하는데, 이것은 지도교수가 해 주지도 못하고, 연구실의 선후배 그 누구도 해 주지 않는다.


결국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지만, 무선 네트워크 기반의 분산 시스템과 소셜 컴퓨팅 양쪽에서 무슨 연구를 어떤 식으로 하는지에 대한 지식은 많이 쌓이기는 했다. 양쪽 다 신경쓰느라 결국 양쪽 다 결실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결과이다. 극복하려면 내가 1.5~2배로 노력해야 하는데, 그 와중에 결혼과 육아까지 병행하고 있으니 (그나마 육아에 거의 참여하지 못하는 나쁜 아빠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늘어지지 않는다면 내가 사기를 치는 것이 된다.


그냥 내 페이스대로, 내가 나만의 실력을 쌓아 가고 그 과정에서 내 실력으로 학교로부터 인정받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지만, 가끔씩은 위로받고 싶고, 과거의 수동적이기만 했던 내가 후회스럽고 그렇다. 최근 들어서 훨씬 자기주도적인 상태가 되긴 했지만, 박사 초중반에 가졌던 나의 나쁜 태도들(수동적이고, 연구의 동기부여를 상실하고, 코딩에 대한 실력 향상 의지조차 약했던 태도들)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고쳤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쓸모없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박사과정 졸업을 위해서 선택과 집중을 해 달라고 조르는 수많은 일들은 똑같이 잔뜩 쌓여 있다. 가끔 24시간 내내 집중력을 유지하는 초능력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한다. 그게 아니면 나의 쓸데없이 강한 책임감을 꾹꾹 눌러 담아서, 최대한 이기적으로 내 일처리만 하고 싶을 때도 많다. (생각만 그렇게 하지 행동은 반대로 되는 게 문제)


이런 마음가짐으로 나중에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 게 좋을 지도 잘 모르겠다. 개발능력, 내가 건드려 본 모든 연구주제에 대한 각각의 연구능력, 단체를 관리하는 능력까지 모든 게 다 어중간한 상태니까. 어느 쪽으로 가도 일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디로 가야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 그런 상황이다.

이번 여름이 분수령이다. 여름 동안에 내 주제로 논문이 문제없이 출간되어 졸업 요건을 채우게 되면 그 뒤로는 좀더 자유로운 마음 상태에서 내 진로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때에는 지금 나의 졸업을 늦춰 왔던 수많은 오지랖의 흔적들이 조금이나마 진로 선택에 도움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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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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