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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고 빠른 것이 중요할 수는 있지만 최우선 순위가 되지는 않는다. 아쉽지만 나는 일에 있어서 빠르지는 않다. 그렇다고 학부 졸업하던 당시의 아주 느린 수준은 벗어났지만, 조금 더 빠르면 좋겠다는 2%(사실은 체감하기로 12%쯤) 부족한 현실에 시달린다. 이것이 바로 이상과 현실의 괴리.


제한된 체력과 함께, 나 스스로 절대로 인정하지 않지만 30대가 주는 이상한 피곤함이 기회비용을 가중시킨다. 나는 시간이 결코 많지 않다. 하지만 내가 무엇 하나 정리하고 알아내는 데에는 신선이 바둑돌 한 수 놓듯이 세월을 허비한다. 그렇게 습득한 지식과 기술이 어디 도망가지는 않지만, 이렇게 선택과 집중을 하고 빨리 실적을 만들어 내야 하는 시기에 왜 나는 더 빠를 수 없는 것인가? 한탄스럽다.


내가 완벽주의를 조금이라도 더 버려야 하고,

우선순위에 맞춰서 일처리를 하기 위해서 일을 계획하고 새로 정리하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말아야 하고,

장기적으로 바라봐야 할 일을 불나방처럼 하루 밤만에 불태워서 해보겠다고 덤벼들지 말아야 하고,

혹여나 동기부여를 상실해서 이토록 일이 안되는가 싶어서 인생의 근본적인 동기도 재점검 하고,

그외 다수 등등...


이미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실 어느 정도 알고는 있다.

하지만 마음과 육신의 괴리는 그다지 좁혀지지 않는 것 같다.

시기적절하게 다가오는 주변 환경의 변수들은 말할 것도 없다.

생각대로 몸이 바로 움직여만 준다면 이런 고민도 필요없을 것이다.


결국 아침에 좀더 자겠다는 귀차니즘을 이겨내기 위해 허벅지를 찌르고 참아내며 일어나는 노력,

피곤해서 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 정신을 환기시키고 하던 일을 끝내고야 말겠다는 노력,

논문을 읽다가 잘 모르겠어서 다음에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오기로 이해하고 말겠다고 이를 악무는 노력,

잠깐 다른 일로 인해 집중력이 흐트러졌을 때 쉬려는 마음을 누르고 다시 일에 복귀하는 노력,

결국 이렇게 스스로 뼈를 깎는 노력이 있지 않고는 지금의 지지부진한 상황이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프로페셔널(professional)은 날씨가 좋을 때를 기다리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정확하게 목표에 적중시키는 최고의 양궁 선수와 같은 사람이다. 이미 나는 날씨가 좋아지기를 더이상 기다릴 수도 없는 상황이고, 예전에 진작에 연습이 되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이제서라도 하던 연습을 빨리 끝내고 프로페셔널이 빨리 되는 길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


제발 나는 내 연구와 맡은 일들을 지금보다 더 잘 하고 싶다.

크든지 작든지 방해에 휘둘리지 않고 싶다.

정신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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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고 기계적인 일은 직접 하지 않고 가능하면 석사과정에게 시키는 것이 박사과정이 가져야 할 능력일까?

위와 같은 이상한 질문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이렇다.


  • 내가 관리해야 할 연구과제 수가 여럿 있고, 각 과제마다 중요하면서 오래 걸리는 일과 덜 중요하지만 빨리 처리할 일들이 있다.
  • 중요도/긴급함과 전혀 상관 없이, 그동안 내가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시키려면 시킬 대상에게 개념과 도구, 각종 용어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해 주고 나서야 시킬 수 있는 일들이 꽤 많이 있다.
  • 결국 누군가에게 일을 시키기 위해서 자료를 전달하고 설명을 해야 하는 노력 + 후배가 일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내가 그냥 직접 처리하는 것이 더 빠르다고 판단되면, 나는 그냥 내가 일처리를 하고 만다.
  • 지도교수님이 보시기에는 박사과정 고년차가 되어 자기 연구에 집중해야 되는데 과제의 소소한 작업을 처리하느라 바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석사과정들에게 일을 좀 잘 시켜 보라고 말씀하신다.


사실 일차적으로는 교수님의 의견에 충분히 동의하고, 그만큼 내가 context change 없이 개인연구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니까 일을 잘 시키는 것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제 때에 적절한 일들을 석사과정들에게 시키지 않으면, 그들이 제 때에 적당한 일들을 배우지 못하기 때문에 나중에 연차가 올라가서는 오히려 그 연차에 걸맞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불상사도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이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처리가 되지는 않고, 항상 플랜 B가 필요한 경우가 더 많다. 정작 급하게 일을 시키고 싶을 때 생각처럼 빠르고 간단하게 업무를 지시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면 내가 시키려는 일에 대해서 후배가 배경 지식이 부족해서 추가적인 공부가 필요한 경우가 되겠다. 사실 이것은 후배들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나를 향한 지적이다. 왜냐하면 평소에 그 후배가 나와 연구 진행 상황에 대한 동기화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해서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일을 시킬 때, 뭘 어떻게 시켜도 알아듣지 못하고 진행을 못할 정도로 실제로 능력이 부족한 경우는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 대부분은 시키는 사람의 입장에서 목표를 정확하게 제시하고 일을 자세한 task item들로 나눠서 어떤 도구를 쓰고 어디를 참고하라는 정도의 내용을 알려 주면 꽤 완성도 있게 일을 처리해 준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일을 시키기 위해서 이메일을 쓰거나, 문서에 work item을 나열하기 시작하면 그걸 시키는 당사자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쓰는 데에만 꽤나 오래 걸릴 때가 있다. 그 시간에 차라리 내가 일을 시작하거나 프로그램을 돌리면 진작 끝냈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학생에게 일을 시켜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지금 이렇게 가르쳐 둬야 나중에 비슷한 업무를 더 적은 노력으로 시킬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구체적이고 정확한 목표가 설정된 업무를 효율적으로 시키려면 결국 평소에 미리 노력해서 후배와 일부러 토의를 하고, 지도교수와 토의한 결과나 과제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그때 그때 갱신시키는 수밖에 없다. 적당히 바쁘지 않을 때 미리미리 후배를 성장시켜 놓아야 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이쯤 되면 내가 박사학위도 없으면서 지도교수 노릇을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나는 여전히 일단 무슨 일이든지 내 선에서 내가 알아서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다. 내가 일이 넘쳐서 누군가에게 일을 시켜야 할 때가 되면 대부분 내가 시키려는 일의 디테일을 모르기 때문에 누구에게 맡겨야 좋을 지 고민이 될 때도 많다. 어떤 일들은 오히려 지나치게 간단해서 시키는 노력은 별로 들지 않지만, 그로 인해 시간이 더 걸려서 일이 전체적으로 밀리는 경우도 있다.


나 혼자 능력을 키우는 것과, 어떤 단체 속에서 단체를 함께 성장시키는 것은 매우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나 혼자 능력을 키우는 것은 전적으로 내 시간관리와 내 책임으로 다 귀결되는 데 반해, 단체가 함께 성장하려면 치밀한 조직관리 skill이 필요하다.


적어도 나는 나중에 어느 회사나 연구소를 가든지 중간관리자 이상의 위치에 갔을 때 실무자의 실무적인 이슈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

다. 적어도 그 실무자가 하려는 일을 내 선에서 내 능력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상황에서 그 실무자와 토의를 해서 가장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쩌면 나는 이러한 욕심이 과도해서, 후배들에게 너무 일을 나눠주지 않고 나 혼자서만 능력을 키우려는 이기주의에 잡혀 있지는 않는지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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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너무 답답해서 내 진로와 지금 박사과정을 지속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해 보았는데, 단순히 나 자신의 경제적 이익 추구만으로는 더는 설명이 되지 않는 듯 해서 신앙적인 관점에서 생각을 해 보았다.


신앙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고, 나도 지금의 내 상태에서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어떻게 다듬어지고 발전해 갈 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걸어오고 생각해 왔던 것들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삶에 큰 틀에서나마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그 과정에서 최대한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근본적인 인생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들을 끄집어 내어 정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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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할 만큼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선택의 문제들이 알고보면 중요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정말로 중요하고 확실한 하나님의 뜻?

-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마가복음 12:30-31)

- 남을 용서하고, 용납하고, 이해하는 것.

-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데 힘쓰는 것.

- 그외 다수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흔히 말하는 선택 문제:

- 졸업하고 회사로 갈지 연구원으로 갈지?

- 졸업하고 해외로 포닥을 다녀올지 바로 취업할지?


어딜 가든지 하나님께서 이미 확실하게 자기 뜻이라고 성경에 말씀해 주신 것들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만 해도 할 일이 가득하다. 어느 것을 선택해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약속하신 것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디를 가든지 함께 하겠다, 어디를 가든지 너를 지키겠다, 눈동자와 같이 너를 지켜보고 보호한다고 성경에서 여러 번 약속하셨다)


진로 등의 선택의 문제가 어려운 이유는 어느 선택이 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 예측이 잘 안되니까 그렇다. 주식도 전세계의 전문가들이 안간힘을 써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단기간에 일어날 변화를 예측해서 빠른 속도로 치고 빠지는 정도야 하겠지만, 확신을 가지고 어느 한 곳에 장기적으로 믿고 투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내 욕심, 내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주시겠다고 이미 약속을 하셨다. (마 6:26-28) 그러니 어디를 선택해도 하나님 입장에서는 차이가 없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마 6:26-28)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는 것이 하나님의 확실한 뜻이다. 이 하나님의 뜻을 달성하기에 어느 선택이 적합한지 생각해 보고 선택하면 된다. 모르겠으면 어딜 가나 비슷하다는 의미이므로 그냥 아무거나 고르면 된다.


내가 아무리 머리가 나빠도, 자기 이익을 챙길 수 있는지 없는지 생각하는 정도는 기본적으로 할 능력이 있다. (인간의 생존 본능) 마찬가지로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다. 예배자의 모습인지,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인지,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하는 태도인지 아닌지 답을 해 보자. 의외로 쉽게 답을 내릴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모르겠는 이 세상에서의 선택 문제는 알고보면 내가 어디서 어떤 손해를 볼 것인지 예측이 안되기 때문에 내 이익의 기대치가 정확히 계산이 안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뜻과 별 상관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명시적으로 말씀을 안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그냥 솔직하게 스스로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선택해라. 하나님께서 상관하지 않으시고, 주위 사람의 의견과 자신만 남게 된다. 하나님께서 상관하시지 않는데 주위 사람들의 의견에 너무 영향받지 말고, 정말로 자기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하자. 그 대신, 하나를 선택하고 난 후에도 계속 하나님께서 이미 확실하게 말씀해 주신 뜻들을 이루고자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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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죄 짓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서 선택을 고민하는 것인지는 한번 스스로 생각해 보라. 그것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 올라오는 양심의 호소는 하나님의 뜻이다. 성경공부하고 말씀 묵상하면서 배웠던 것들이 양심에서 발현되는 때가 있는데, 그것은 반론의 여지 없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최선을 다해라. 문제는 이 경우에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이 죄의 유혹 때문에 매우 어렵다. 이 선택은 정말 피 흘리기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선택이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서 어려운 것이 아니고, 무엇을 선택할지 이미 아는 상태에서 올바르게 선택하는 것이 정말로 어려운 것이다. 올바른 선택을 지켜내고 피 흘려 승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자.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럴 필요가 없는 선택의 문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연봉 약간의 차이와 복지의 차이, 지역의 차이 등은 그냥 스스로 생각해 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솔직하게 골라라. 하나님께 떳떳하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골랐다고 기도하고, 그 선택 이후의 삶에서 정말로 중요한 하나님의 뜻을 지켜내는 선택에 최선을 다 하자.


내가 박사과정을 선택해서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연구를 잘 못하는 상태를 쓸데없는 선택을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탓하지 말자. 하나님의 뜻이 어쩌면 박사과정 진학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 당시로 내가 다시 돌아가서 박사과정 대신 정부출연연구소에 전문연구요원으로 들어가는 선택을 했더라도 상관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박사과정 진학하고 나서도 하나님께서 이미 여러 차례 말씀해 주신 단순하고 정확한 뜻을 내가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거시적으로는 그래 왔던 것 같지만, 매일의 삶에서 의외로 자주 넘어진다. 내 생각을 통제하지 않고 죄된 마음을 지속적으로 묵상하게 내버려둔 적이 얼마나 많은가? 별 것 아닌 일로 생겨난 분노를 통제하지 않고 계속 키워서 정신 건강을 해친 적도 많고, 세상 돌아가는 게 궁금해서 뉴스를 보면서도 이곳 저곳에 있는 자극적인 미디어를 가감 없이 소비하며 마음을 음란한 생각에 내버려두는 경우도 많다. 부정한 행동인지 아닌지 알고도 행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므로 내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연구를 해 나가면서 얻는 즐거움을 추구하면, 그렇지 않은 작고 왜곡된 즐거움은 결코 내 마음 속 공허함을 채우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연구가 즐겁지 않은 이유를 찾아서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것들은 과감하게 버리고, 최대한 하나님의 뜻과 근본적인 지식 탐구의 즐거움에 집중하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인생의 다른 영역들(가족, 휴식, 다른 사람들과의 socializing 등)로도 나의 근본에서부터 출발하는 즐거움이 흘러가서 인생을 풍요롭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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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학회에 냈던 논문 하나가 떨어졌다. 관련 분야 A급 국제학회이면서 저널 issue로 1년에 4회 발행되도록 하는 특별한 구조를 올해 처음 적용하는 학회인데, 소셜 컴퓨팅 관련 주제로 분석 결과를 정리해서 냈다가 리뷰어로부터 그다지 좋은 소리를 듣지는 못했다.


애초에 소셜 컴퓨팅이나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에서 유명한 좋은 학회(우리학교 박사과정 졸업 요건으로도 쓸 수 있다)인데, 사실 소셜 컴퓨팅이 내 주 연구분야도 아니고 부족한 시간 속에서 기존에 다른 사람이 써두었던 논문을 일부 수정해서 내다 보니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원래 소셜 컴퓨팅을 핵심 주제로 하던 학생이 다른 국제학회에 냈다가 아깝게 떨어진 것을 고치고, 새로운 데이터를 추가하고 그에 대한 설명을 더해서 낸 것인데, 그러다 보니 이전 학회에서 지적당했던 단점이 이번에도 유사하게 지적을 당했고, 오히려 그 단점을 더욱 중요하게 평가하면서 reject 처리가 되었다.


학회 논문 떨어지는 게 한두 번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나 이게 박사 졸업요건으로도 쓰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아주 빠르게 reject 처리가 되면서 차라리 요행을 바라지 않고 원래 하던 연구에 계속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애초에 나의 메인 연구주제가 아닌 쪽으로 졸업요건을 만든다고 해도 결국 박사학위 심사에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게 뻔하기 때문에, 원래의 내 분야에서 졸업 요건을 만드는 것이 당연할 뿐만 아니라, 이제는 그게 유일한 방법이다.


어느 한 쪽에 집중해서 주제 1개만 연구를 했다면 더 효율적으로 좋은 실적을 더 빨리 만들었을 텐데, 마치 박사과정 2개를 복수전공 하는 듯한 지금의 상황으로 인해서 지금껏 이도저도 아닌 실적만 만들어 내고 있다. 연구실의 환경적인 요인이 원인 제공이 되기는 했지만, 결국 그 과정에서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한 것은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나의 문제다. 내가 줏대를 가지고 나의 제한된 능력과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하는데, 이것은 지도교수가 해 주지도 못하고, 연구실의 선후배 그 누구도 해 주지 않는다.


결국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지만, 무선 네트워크 기반의 분산 시스템과 소셜 컴퓨팅 양쪽에서 무슨 연구를 어떤 식으로 하는지에 대한 지식은 많이 쌓이기는 했다. 양쪽 다 신경쓰느라 결국 양쪽 다 결실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결과이다. 극복하려면 내가 1.5~2배로 노력해야 하는데, 그 와중에 결혼과 육아까지 병행하고 있으니 (그나마 육아에 거의 참여하지 못하는 나쁜 아빠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늘어지지 않는다면 내가 사기를 치는 것이 된다.


그냥 내 페이스대로, 내가 나만의 실력을 쌓아 가고 그 과정에서 내 실력으로 학교로부터 인정받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지만, 가끔씩은 위로받고 싶고, 과거의 수동적이기만 했던 내가 후회스럽고 그렇다. 최근 들어서 훨씬 자기주도적인 상태가 되긴 했지만, 박사 초중반에 가졌던 나의 나쁜 태도들(수동적이고, 연구의 동기부여를 상실하고, 코딩에 대한 실력 향상 의지조차 약했던 태도들)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고쳤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쓸모없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박사과정 졸업을 위해서 선택과 집중을 해 달라고 조르는 수많은 일들은 똑같이 잔뜩 쌓여 있다. 가끔 24시간 내내 집중력을 유지하는 초능력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한다. 그게 아니면 나의 쓸데없이 강한 책임감을 꾹꾹 눌러 담아서, 최대한 이기적으로 내 일처리만 하고 싶을 때도 많다. (생각만 그렇게 하지 행동은 반대로 되는 게 문제)


이런 마음가짐으로 나중에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 게 좋을 지도 잘 모르겠다. 개발능력, 내가 건드려 본 모든 연구주제에 대한 각각의 연구능력, 단체를 관리하는 능력까지 모든 게 다 어중간한 상태니까. 어느 쪽으로 가도 일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디로 가야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 그런 상황이다.

이번 여름이 분수령이다. 여름 동안에 내 주제로 논문이 문제없이 출간되어 졸업 요건을 채우게 되면 그 뒤로는 좀더 자유로운 마음 상태에서 내 진로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때에는 지금 나의 졸업을 늦춰 왔던 수많은 오지랖의 흔적들이 조금이나마 진로 선택에 도움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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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받지 않아도 될 스트레스를 받는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가면 넘어갈 수도 있지만, 괜히 오늘따라 굳이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내서 생각하며 혼자 답답해진다.

뭐 이런 날도 있는 거지.


공대 대학원 연구실이 운영의 대상인지부터 먼저 결정해야 하겠지만,

적어도 우리 연구실은 "운영"의 대상이 맞다.


과제는 정부과제와 산학과제를 막론하고 대부분이 여러 연구실이 한데 모여서 만드는 (대학교 치고는) 중형~대형의 과제인데, 지금껏 해온 그러한 과제들 중에서 95% 정도는 우리 연구실이 총괄을 맡아 왔다. 즉, 과제에 참여하는 교수님들은 여러 명이지만, 그 중에서 총괄책임자는 항상 우리 지도교수님이라는 의미다.

지금도 3개의 과제 중에서 총괄의 역할을 해야 하는 과제가 2개이다.

내 기준에서도 지금껏 내가 직접 제안 단계부터 종료 때까지 운영한 과제 1개, 제안 단계부터 이제 곧 종료 예정인 과제 1개, 중간에 연구실 선배로부터 이어받은 총괄 과제 1개, 이외에 떨어졌지만 총괄 연구실로써 제안했던 과제들만 해도 매년 2개 정도는 됐으니까 도대체 몇 개야...


박사과정이 되고 나면 과제 말고 석사과정 학생도 "운영"을 해야 한다. 같은 처지의 학생이 무슨 운영일까 하는 의문이 들겠지만, 우리 연구실은 석사과정들이 서로 겹치는 연구주제 없이 모두 단독으로 하고 있고, 이 전통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있어 왔다.


당연히 석사를 거쳐 온 지금의 박사과정들도 서로 각각 자기 주제를 갖고 있으며, 그 주제가 또 석사과정들과 다르다. 즉, 연구실 학생 전원이 자기 연구주제를 들고 있는데, 문제는 그 범위가 상당히 넓은 것이다.


분산 시스템을 하는 연구실이다 보니 IoT 시스템, 네트워크 아키텍처, 상황인지, 인공지능, 사회심리학(신뢰도, 공간의 사회성) 등 시스템에 필요한 굵직한 컴포넌트, 그 안에서도 중요한 주제 하나하나를 다 다루고 있다. 전체 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중요한 연구주제를 다루는 것은 좋은데, 서로 겹치는 주제가 없다 보니 지식이 누적된다기보다는 매번 그 연구를 처음 시작하는 석사 2년차 학생이 죽어라 공부해서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서야 연구를 처음 해보는 석사과정 입장에서 뭘 어떻게 해야할 지도 잘 모르는 상황이니까 박사과정이 "사수" 개념으로 붙어서 연구 방법부터 진행 상황 하나하나를 살펴 보고 알려 줘야 한다. 그 뒤에 지도교수님이 확인하시고 코멘트를 주신다.


박사과정이 본인 주제 안에서 커버할 수 있는 내용 중 하나를 석사과정이 연구한다면 이런 구조는 오히려 장점이 되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석사과정이 거의 매년 그 때의 IT 트렌드에서도 새롭다고 느끼는 부분을 맡아서 연구하기 시작하면 박사과정은 자기 졸업연구 주제와 단기적으로는 관련이 없는 내용을 같이 공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게다가 그렇게 봐줘야 하는 석사과정이 1명도 아니고 2-3명 정도 된다면? 여기에 또 때때로 학부생 인턴을 모집해서 연구과제에 필요한 구체적인 일을 시키려면 또 그 인턴도 어느 정도 가르쳐야 한다.


당연히 이 모든 일을 지도교수가 직접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박사과정이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맞는데, 하더라도 박사과정 본인의 영역 안에서 잘 하는 부분에 대해서 지식을 전수하는 것도 아니고 같이 공부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끌어야 하니까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뭐 지금 좀 힘들어도 내가 졸업하고 나서는 할 줄 아는 것도 많고, 연구과제 제안서와 운영도 이제 익숙하고, 내 연구주제가 아닌 분야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되니까 직장에 가면 좋은 자산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 정도는 갖고 있다.


하지만 내 분야에서 SCI 저널 하나 제대로 써내는 데에만 해도 상당히 많은 집중력과 시간이 투입되는데, 일주일 중에 절반 이상을 과제 관리와 학생들 관리에 소비하고, 남은 시간 중의 절반 정도는 가정에 최소한으로 충실해야 하고, 그제서야 남은 시간(그마저도 피곤에 쩔어 있는 상태로 확보하게 되는 시간)을 가지고 내 개인연구를 해야 한다. 가끔은 이렇게 내가 희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정말 속상하기 그지없을 때가 있고, 그게 바로 오늘이다.


시스템을 다루더라도 그 중에 정말 중요한 주제 1-2개만 가지고 연구실 전체가 집중적으로 연구를 해서 세계적으로 좋은 성과도 만들어 내고, 그 좋은 논문 실적으로 다음 과제를 따오는 데애도 도움을 얻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우리는 정말 중요한 주제가 지나치게 많다. 이쯤 되면 지도교수님의 욕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연구실에 박사과정이 한 6명 정도가 된다면 해결될 것 같은데, 지금은 그 절반밖에 있지를 않으니, 그 소수의 박사과정들에게 더 큰 무게가 지워지는 꼴이다. 게다가 그러한 박사과정들 중에서 가장 연차가 높은 내가 연구실 "운영"에 대해서 걱정을 안 할수가 있을까?


더 허탈한 점은, 그렇게 열심히 연구실을 "운영"한다고 해서 그렇게 많이 남는 게 없다는 점이다.

석사과정들은 1년차 때는 연구에 대해 거의 모를 뿐더러 수업을 열심히 들어야 하니까 한계가 있고, 본격적으로 자기 졸업연구를 수행하는 2년차부터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해서 6개월~1년 정도 지나면 이제 스스로 국제학회 논문 한 편 정도를 쓸 수 있는 상태가 된다. 하지만 그렇게 키워놓으면 거의 다 취업하러 나간다.

차라리 회사라면 신입사원을 교육시키고 키워서 활용하기도 하고, 그들이 승진해서 회사에 보탬이 될 텐데, 연구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놓으면 요즘은 전산 분야가 취업도 잘 되고 연구에 대한 관심을 갖는 학생이 많지가 않으니까 거의 다 나가고 없다. 이러니 연구실을 열심히 "운영"해 봐야 무슨 보람이 있는가? 차라리 지도교수님 입장에서는 본인의 제자가 어디에 가서든지 성공하면 보람이 있지만, 선배 입장에서 후배가 같은 연구실에서 연구활동으로써 도움을 주지 않는 이상 졸업해서 나가면, 나 또한 졸업생이 되기 전까지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영이라는 행위를 안 할수가 없는 이유는, 내가 책임감을 갖고 돌보지 않으면 결국 교수님이 석사과정 2년차부터 다른 후배들까지 직접 개입해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셔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평화롭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교수들 각자의 성격의 차이에 따라 그 지도의 강도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느 교수나 속으로 느끼는 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대체 왜 이따구야?" 그러한 "이따구" 소리를 최대한 줄이고 그나마 서로 토의를 할 만하게 중재하는 게 결국 박사과정의 역할이 될 수밖에 없다.


답답하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분명히 지도교수님께 내 의사를 전달할 것이다.

시스템을 다루더라도 선택과 집중을 좀 하자고.

과제도 2개 정도 선정됐으면 거기서 더 늘리지 좀 말자고.

내 졸업연구와 멀어도 너무 지나치게 먼 과제에 총괄 좀 맡지 말자고.

석사과정들 연구 주제 통제 좀 해서 그냥 박사과정의 sub-item으로 집중해서 일단 그 안에서 실험도 같이 하고, 박사과정의 논문 작성에도 공동저자로 참여해서 써 보고, 그 다음에 같은 주제에서 파생되는 문제를 찾아서 자기 연구주제로 쓰도록 만들자고.


...사실 지금 당장에라도 때려치고 나가면, 차라리 알고리즘과 코딩 연습 조금 해서 최근 트렌드에 맞는 기술들 조금 익히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지금처럼 호황인 시대에 나 자신이 썩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많다. (나는 교수 될 생각은 그다지 없다. 그나마 연구원 쪽이나 회사에서도 박사급으로 갈 수 있는 직군에는 생각이 좀 있어서 참고 남아 있는 거지.)


도대체 박사학위가 뭐라고, 정말 더러워서 지금까지 공부한 게 아까워서 내가 참고 이거 끝장을 내겠다고 남아 있는 이 상황에서, 연구실 운영에 대한 정답을 찾아낼 수 없는 어느 박사과정의 한탄이다.

같은 연구실 내의 박사과정들 말고 누가 내 고민을 이해해 줄 지 모르겠다.


그래도 가능하다면 우리 연구실과 후배들을 위해서, 내가 진짜 마지막 남은 운영에 대한 책임감마저 버리고 "나만 졸업하면 끝"이라는 생각을 갖기 전에 박사학위를 받고 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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