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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 강연 링크: http://tv.naver.com/v/960111



이 강연에서는 "마음 챙김"이라고 부르는 훈련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다. 중독에 빠져드는 (예를 들어, 흡연이나 달콤한 음식을 끊임없이 찾는) 인간의 행동이 작동하는 과정을 계기, 행동, 보상의 과정을 거쳐서 뇌가 반복적으로 학습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것은 전산학의 인공지능(기계학습) 분야에서 요즘 많이 주목받고 있"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의 개념과 유사하다.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나쁜 습관은 이를 촉발(trigger)시키는 초기 자극에 대한 행동의 결과를 "좋은 것(달콤한 느낌,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 등)"으로 반복 학습하면서 뇌 속에서 그 중요도가 점점 커지면서 생겨난다.

초기 자극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기분이 좋지 않을 때"와 같은 조건이 되고, 그 때 당사자는 주어진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것과 상관없는 행동(흡연, 단 것 먹기)을 했는데, 그 때의 경험이 짜릿하고 기분이 좋다는 결과로 나타나면서 이를 보상으로 생각하고 뇌 속의 저장소에 저장하는 것이다.


강화학습의 경우, 현재 환경에 대한 상태를 입력값으로 제공받는 컴퓨터가, 그 환경에서 수행 가능한 행동들 중 하나를 선택해서 수행하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새로운 상태에 대해서 보상을 학습한다. 이 과정을 반복해서, 긍정적인 보상이 최대화되는 행동을 알아내게 된다. 즉, 컴퓨터가 처음에는 취할 수 있는 행동 중 하나를 랜덤으로 선택하지만, 여러 가지 다른 행동들 중에서 보상이 높은 행동에 가중치를 부여함으로써 나중에 동일한(유사한) 상태가 다시 주어지면 빠르게 특정 행동을 취하도록 적응한다.


예를 들면, 스마트 전등이 있고 주어지는 입력값이 시간, 근처에 있는 사용자 이름만 주어지는 아주 단순한 환경을 상상해 보자. 저녁 7시에 사용자 A가 그 전등 근처에 오자, 스마트 전등은 랜덤하게 아무 색깔이나 골라서 불을 켜 주었고, 전등의 색깔에 대해서 사용자가 임의의 점수를 준다고 생각해 보자. 몇몇 색깔의 불에 대해서 높은 점수를 주지 않던 사용자 A가 어느 날 노란색 불을 보고 가장 높은 점수를 주었다. 그리고 며칠 동안 노란색 불이 켜질 때마다 가장 높은 점수를 주게 되면, 스마트 전등은 다음부터는 자동으로 저녁 7시에 사용자 A가 근처에 오면 노란색 불을 켜 주게 된다.


만약 사용자가 갑자기 노란색 불이 싫어서 더이상 노란색 불이 켜지지 않게 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동안은 지금까지 학습된 데이터 때문에 자동으로 노란색 불이 켜지겠지만, 사용자가 지속적으로 노란색 불이 켜질 때마다 가장 낮은 점수를 주게 되면, 어느 순간 노란색 불에 대한 보상이 다른 색깔들과 별 차이가 없게 되는 지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 지점에서 스마트 전등이 더이상 보상의 메리트가 없는 노란색보다 오히려 미세하게나마 보상이 더 큰 다른 색깔(또는 맨 처음처럼 또 랜덤으로 선택)의 불을 켜주게 될 것이고, 이 때 사용자가 좋아하는 다른 색깔에 대해서 높은 점수를 주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스마트 전등은 더이상 노란색 불을 켜지 않고 다른 색깔의 불을 켜 주게 된다.

한 술 더 떠서, 노란색 불이 켜질 때마다 최하 점수를 주는 사용자가 그 직후에 직접 전등의 색깔을 파란색으로 바꾼 다음, 파란색 불이 켜진 상태에 대해서 최고 점수를 부여하게 되면 더 빠른 속도로 노란색 불을 켜서는 안된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노란색보다 파란색에 대한 보상이 더 커지므로 파란색 불을 켜는 행동을 빨리 하게 된다.


결국 TED 강연에서 언급되는 "마음 챙김"의 핵심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나쁜 습관을 거의 기계적으로 행동에 옮기도록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보상을 주고, 나쁜 습관을 행동에 옮기지 않는 것(나쁜 습관을 실행하지 않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행동)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보상을 주면 된다. (참 쉽죠? ㅋㅋ.. ㅠㅠ)


물론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제안되는 해결책이 나쁜 습관이 발현되는 과정과 나쁜 습관 그 자체를 호기심을 갖고 따져 보라는 것이다. 저드슨 브루어는 왜 내가 지금의 나쁜 습관을 행동에 옮기고 있는지, 그 과정을 왕성한 호기심을 갖고 탐구하라고 조언한다.


사실 전두엽은 나쁜 습관을 행동에 옮기는 것이 나쁘다는 사실을 이성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전두엽의 활동을 꺼뜨리지 말고 호기심, 탐구정신과 같은 연료를 줘서 계속 생각해 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한 나쁜 습관을 지켜보는 즐거운(?) 탐구를 통해서 나쁜 습관이 초래하는 나쁜 결과와 나쁜 습관을 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기쁨/성취감에 대해서 잘 기억해 두자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게 탐구하고 잘 기억해 두는 과정을 반복하면 그것이 나쁜 습관과는 반대 방향으로 강화학습을 수행하는 과정이 된다.


이게 말처럼 쉬운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나도 그 의심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나쁜 습관을 행동에 옮기는 것이 나쁘니까 스스로를 자꾸 더 자책하여 몰아붙이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히려 나쁜 습관을 내려놓는 것이 더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필이면 나쁜 습관을 행동에 옮기는 초기 자극의 대부분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이기 때문이다. 나쁜 습관을 행동에 옮기고 나서 주어지는 뇌 속 호르몬(도파민)의 즐거움이 끝나고 나서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자책하면 뇌는 또다시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그 스트레스는 알다시피 나쁜 습관에 대한 초기 자극이 되므로 다시 나쁜 습관을 갈구하게 된다.



그러면 내 상황에 적용해 보자. (부끄럽지만 ㅠㅠ)


중요하면서 어려운 일을 앞두고서 그 일을 처리하는 것이 괴로워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내가 자꾸만 SNS에 들어가 보거나 무의식중에 인터넷 뉴스를 켜서 재미있고 자극적인 내용의 소식을 찾는 경우가 많다. 뉴스 기사나 페이스북 포스팅 몇 개 읽어보는 것이 그리 많은 시간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가끔 신기하거나 충격적인 소식을 새롭게 접하면서 어딘지 모를 즐거움까지 느낀다. 일이 어려워서 손에 잘 안 잡힐 때마다 SNS, 뉴스기사를 잠깐씩 찾아보는 행동이 뇌에 일시적으로 도파민을 분비시키고 잠깐 즐겁게 해 주는 동시에 어려운 일처리에 대한 스트레스를 잊게 만든다.

바로 "시험기간에는 시험공부를 제외한 모든 것이 재미있다"는 말과 비슷하다.


결국 일은 일대로 진행이 느리게 되고, 마감 시한이 임박해서까지도 나는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더 강한 자극으로 스트레스를 달래고자 방금 전에 이미 다 찾아봤던 SNS와 포털 사이트를 또다시 뒤지고 다니면서 뭔가 새로운 자극적인 소식을 갈구한다. 그러다가 가끔 나무위키와 같은 사이트로 흘러들어가서는 지금 당장 일처리에 필요하지 않은 광범위한 상식들을 읽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하기까지 한다.


나는 왜 자꾸 일을 미루면서, 스트레스 유발의 주 원인이 되는 일을 빨리 해결하는 대신 그와 상관없는 지식들을 찾아서 머릿속에 넣으려고 하는 것일까?

대학원의 특성상 해당 일처리는 반드시 누군가의 리뷰를 거치는데, 내 결과물을 리뷰하는 대상이 누가 됐든지 상관없이 나는 모두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고, 특히 그 일이 무엇이든 상관 없이 일을 못한다는 소리는 정말 너무 듣기 싫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 쉽게 해결이 안되는 꽤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주어지면, 이것을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함으로써 얻게 되는 리뷰어의 부정적인 평가가 싫은 것이다.


사실은 나한테 어려운 일은 같이 그 일을 진행시켜야 하는 동료들(지도교수, 선배, 후배, 옆 연구실, 정부기관 등 모두 포함) 입장에서도 똑같이 어렵고, 그들도 답을 정확히 모르기도 한다. 따라서 내가 미지의 숲을 헤쳐 나가서 완벽하지 않게나마 얻어낸 중간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를 같이 고민하는 과정이 연구다. 그런데 나는 나 혼자서 완벽하게, 물 흐르듯이, 빈틈없이 일을 처리해서 그들로부터 잘 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은 것이 아닐까?


지금 나는 그런 단기적이고 피상적인 주변의 평가로부터 얻는 즐거움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즐거움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해 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내 앞에 주어진 이 도전적인 일을 처리해서 얻는 결과물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이를 통해 이 세상에서 이전까지 안되던 일을 되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가장 근본적인 것,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연구가 내 가치관으로 봤을 때 정말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되새겨야(remind) 한다. 그 일을 성취해 나가는 과정이 마치 아름다운 정상을 향해서 등산을 하는 것처럼 몸이 좀 힘들지만 즐거운 과정임을 인지해야 한다.

또한 그 일처리 과정에서의 세세한 부분에서 내가 실수를 하거나 남들보다 더디게 진행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에는 연습하고 익숙해져서 그리 멀지않은 미래에는 내가 원하는 긍정적인 평가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 모르는 것 때문에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고,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하는 연구는 내 가치관 측면에서 정말로 보람차고 매력적인가? 이것은 맞는 것 같다. 내가 이런 보람찬 일을 한다는 사실을 왜 망각하는 것일까? 왜냐하면 박사과정 졸업을 해야 하는데 자꾸 원치않게 연구기간이 연장되면서, 그 즐거운 일을 계속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무 못한다고 자책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자책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명심해야 하겠다. 좀 더디게 성장할 수도 있지, 방향이 틀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껏 쌓아 온 지식과 실력이 그리 못 쓸 정도로 엉망이지도 않다. 단지 원하는 때에 졸업요건에 해당하는 논문 실적이 나오지 못한 점 하나만 아쉬운 것이다.


지금 내가 하는 연구와 이 연구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얻는 기쁨, C/C++ 코딩 능력을 점차 확장시켜 가는 데서 얻는 성취감, 네트워크 시뮬레이터에서 점차 제 모습을 찾아가는 나만의 모듈들의 유연한 작동 과정을 보는 기쁨을 생각하며, 꾸준하게 즐겁게 연구를 이어 나가고 싶다.


이 글을 쓰기 직전에 나는 분명히 나의 연구의 큰 그림을 실현하기 위한 네트워크 시뮬레이터 코드에서 3일 넘게 나를 괴롭히던 버그를 고쳤다. 그러니까 이제 자고 일어나서 또 즐겁게 다음 모듈을 만들어 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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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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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를 할 때, 자꾸 이전에 읽었던 논문을 다시 가져와서 그 논문이 풀고자 했던 문제가 무엇이고 어디까지 해결했는지 새로 검토를 하고, 그렇게 내가 논문을 쓰려는 분야 논문들을 새로 살펴보는 경향이 나한테 있는 것 같다.


한번 읽을 때 정리를 잘 해뒀어야만 이런 revisit이 사라질까? 그냥 며칠 시간을 잡고 오로지 관련 연구들만 계속 읽어서 논문의 Related Work 섹션을 만들어 내야 하는 걸까?


보다 근본적으로, 자꾸만 내가 내 논문을 위해서 만들어낸 "문제 정의"가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

분명히 기존 연구 논문들을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고려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 상황은 머릿속에서 이미 수 차례 검증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그 방법론이 충분히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으면 문제 정의가 제대로 안 된 것인지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 내가 무언가를 제안할 때, 자꾸만 남들이 보기에 이정도는 되어야 쓸만하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빨리 primary idea를 검증해야 할 때조차도 아주 길게 생각하고 아주 많은 상황을 동시에 고려해서 이를 수학적인 분석으로까지 만들어 내려는 내 욕심이 문제인 것 같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뭔가 결벽증 같은 것.


그래서 아이디어는 있고 문제 상황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 내는데도 불구하고, 실제로 아이디어를 검증할 시뮬레이션이나 실험은 천년만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 지금 내 상황인 것 같다. ㅠㅠ


실험환경이 좀 문제가 있어도 좋으니, 선택과 집중을 해서 일단 문제의 핵심이 최소한으로 해결되는지부터 보기 위해서 먼저 간단하게 (자꾸 복잡해지지 말고!! ㅠㅠ) 코딩을 해서 결과부터 만들어 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번주에는 결벽증 성향을 마음 속 한켠에 봉인해 놓고, 빨리빨리 시뮬레이션 일처리를 진행하기 위해서 노력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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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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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9

Life/대학원 생활 2016. 8. 9.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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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과정 졸업 예비사정표를 보았고, 다른 모든 요건이 끝났지만 바보같이 학과에서 인정해 주는 저널 실적 하나를 미리부터 만들지 못해서 졸업신청을 해야 할 지, 차라리 휴학을 해야 할 지 고민하는 상황에 와 있다.


내가 얼마나 속상한지는 솔직히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내가 이렇게나 멍청한가 하는 자책, 아기가 커 가면서 재정도 점점 더 모자라게 되고 시간도 더 많이 쓰이고, 아파서 병원에도 자주 가면서 연구에 오롯이 집중하기는 점점 어려워져 가는 상황, 그 와중에 할 거 다 하면서 편하게 살고 있는 것만 같은 죄책감에 시달려서 오늘 오전이 지나기 전에 벌써 한숨만 수십 번 나온다.


이 박사학위가 도대체 뭐라고 내가 이렇게 아둥바둥 난리를 치는 것인가? 애초에 박사학위 따위 나한테 맞지 않는 것인데 내가 억지로 추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그냥 포기하고 지금 당장 필드에 나서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써 뭐든 할 수 있는데 (업계가 바라는 수준의 코딩을 하려면 조금은 더 실력 연마를 하긴 해야겠지만), 매달 재정 부족과 시간 부족에 시달려서 아기와 많이 놀아 주지도 못하면서 이 불안정한 생활을 언제까지 지속해야 하는 것인지... 반면에 또 아기와 어쩔 수 없이 놀아 줘야만 하는 (즉, 내가 아기를 봐 줘야만 하는) 상황이 되면 그 시간에 실험을 진행하지 못하니까 버려지는 금 같은 시간들이 한없이 아깝게 느껴진다. 이렇게 답답한 마음 때문에 가족으로써 누려야 할 것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남들과 마찬가지로 공평하게 나에게도 똑같은 양의 시간과 비슷한 연구환경이 주어졌는데, 유독 나는 왜 이렇게도 저널 논문을 제대로 써 내지 못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면 내가 무슨 ADHD 환자라도 된 것 같다. 이런 바보가 꾸역꾸역 박사학위를 받아 보겠다고 애초에 안될 일을 무리해서 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자존심도 무진장 상하고 그냥 스트레스 투성이다. 카이스트에서 자살하는 대학원생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어디 가서 소리지를 곳도 마땅치 않고, 멀쩡히 잘 있는 연구실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쳐서 쓸데없는 주목을 받고 싶지도 않고, 시커멓게 타 들어가는 속을 달래기 위해서 그저 마른 입술을 깨무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애꿎은 아랫입술만 매일 부르터서 아물지를 않는다.


그래도 가족이 중요하다는 말... 남들이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정작 나는 아내와 아기에게 그저 무책임한 가장의 모습만 보여주는 것 같아서 미칠 지경이다. 정말 인생의 밑바닥을 걷는 기분이다. 빨리 튀어오르고 싶은데 언제쯤 그럴 수 있을까? 제발 가만히 실험하고 논문만 쓸 수 있도록 나를 옭아매는 모든 것들로부터 잠시나마 단절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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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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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개인연구 실험을 위해서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 인지 네트워크 아키텍처에서, flow 기반 라우팅 모듈과 traffic shaping 모듈 각각의 모듈 테스트를 성공한 지 어느새 2주 정도가 지났다. 그 외에도 이웃 노드들의 link quality를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모듈은 진작에 몇 개월 전부터 완성되어 있었고, 서비스의 요구사항을 인식하는 부분도 오래 전부터 조금씩 완성도가 높아져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연동해서 실제로 서비스가 요청하는 경로 하나를 만들어 내는 것까지 검증하는 연동 테스트에서 계속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ㅜㅜ 모듈 테스트에서 예외상황을 처리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잊고 처리하지 못한 부분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에러가 발생하고, 미처 생각지 못한 파라미터 값의 불확실성으로 인해서 예외 상황도 새로 생겨났다.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서 치밀하게 코드를 짜려고 했지만, 그리고 최대한 모듈들 간에 인터페이스를 미리 맞춰 두려고 했지만, 결국 실제로 모듈의 기능을 구현/개선하는 과정에서 미리 약속해 둔 인터페이스가 변경되는 일도 발생한다.


설계 단계에서부터 명확하게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피상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현장에 뛰어들어서 직접 코딩하다 보면 그게 말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설계를 잘 하려고 해도, 커널에 근접해 있는 각종 네트워크 기능들을 충분히 이해하는 상태라야 가능한 영역이 있어서 어려움을 겪곤 한다. 일단 요구사항만 주어진 채 달려들어서 user level 프로그램의 입장에서 구현을 시작하다 보면, (나는 서비스를 도와 주는 미들웨어를 개발하는 입장이니까 일차적으로 user level API에서 Kernel level로 메세지가 전달되는 구조이다.) 커널 영역에서는 실제로 더 많은 세부사항들을 정의해 주어야 하고, user level에서 제시하는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결국 다시 user level 모듈부터 재설계를 해서 다시 Kernel level에 제대로 모든 정보가 흘러들어가는지 확인해야 한다.


두세 번 이렇게 반복하면 설계 단계에서 무슨 정보를 줘야 하는지는 확실해지긴 하지만, 그 다음으로 겪는 어려움은 실제로 주어진 정보를 가지고 원하는 기능이 작동하도록 구현을 하는 것이다.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원하는 기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구현하는 것이다. 사실 효율성이라는 것도 겪어보지 않은 작동 과정을 상상하면서 어디서 어떤 비효율이 발생하는지 예상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잘 상상이 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실제로 어느 정도 의미 있는 데이터의 범위를 갖고 돌려 보고 나서야 어느 과정에서 비효율이 발생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내가 1년 정도만 더 일찍 지금과 같은 노력을 시작했으면 좋았겠다는 후회가 될 때도 있지만, 지금이라도 제대로 실험환경을 구축하고 역량도 키워가는 과정이라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마음을 다잡곤 한다. 박사과정 학생 신분으로 연구를 자유롭게(?) 계속할 수 있는 기한도 이제 많지 않은데, 그 전에 최대한 경험치와 역량을 쌓고 싶다. 그 동안의 더디게만 올라가던 learning curve가 이제 조금 가파르게 상승할 것 같은 기대감이 생기는 시기에 와 있는데, 이번에 실험환경 구축이 잘 되면 꼭 좋은 논문을 만들어 내야겠다. 일단은 급하게 써야 하는 논문부터 먼저 만들어 내고...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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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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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글은 두서없이 쓴 일기입니다.


가끔 육아와 가장의 짐을 짊어진 채 여전히 불투명한 박사학위를 앞두고 부족한 시간을 두고 싸우는 내가 처량할 때가 있다.

아무도 내 고민을 자세하게 모르는 것 같다. 실험은 실험대로 잘 안되고, 하루라도 빨리 논문을 써야 하는데 신경쓸 것은 너무 많고, 연구에 최고의 집중력과 시간을 들여야 하지만, 온갖 잡다한 일처리들 다 하고 나면 내게 주어지는 '자원'은 이미 체력을 소진한 육체와 늦은 저녁시간밖에 없다. 그 때가 되어서야 겨우겨우 집에서 도망치듯이 나와서 연구실에 와서 실험이든 논문 작성이든 시작할 수 있다. 이미 그런 늦은 시간에 와 봐야 졸리기 시작하고 집중도 잘 안되고, 기껏 주어지는 시간에도 제대로 실험 진행이 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시간은 시간대로 허비하고, 그렇다고 일처리 제대로 되지도 못한 채 그냥 잠을 자려니 그냥 허비해 버린 하루가 너무 아까워서 잠을 자려고 생각하면 화가 난다. 뭔가 조금이라도 해둬야 할 것 아닌가? 그렇게 쓸모없이 새벽을 맞이한다. 말 그대로, 진심으로 내 인생이 속상하다.


집에 PC를 잘 설정해 놓고 듀얼모니터까지 갖췄지만 아무 소용없다. 나를 제외한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같은 공간에 있는 이상 꾸준히 집중해야 뭐가 됐든 진행이 되는 연구인데 그럴 수가 없는 환경인 건 너무 당연하다. 정말 예쁘고 귀여운 딸이지만, 잠들기 전까지 딸과 놀아주고 밥 먹여주고 씻겨 주고 어지럽혀진 집안 정리를 해야 하는데, 아내가 그 뒤치다꺼리를 대부분 맡아 준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 옆에서 그 정신없는 집안에서 혼자 연구한다고 PC 앞에만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뭘 도와줘도 도와줘야 안심이 되고, 실제로도 딸아이가 나한테 계속 오니까 수시로 봐줘야 한다.

이러니 아내에게 너무나 미안하지만, 정말로 실험이든 연구든 진행을 시키려면 주말에 모처럼 시간이 주어졌을 때 독하게 마음먹고 집을 박차고 나와야만 한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렇게 안할 수가 없다. 가정적인 남자? 당연히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졸업도 못했고 영영 졸업 못할 위기에 놓인 내가 가정적인 남자가 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나에게는 엄청난 사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토요일 하루 정도를 정말 독하게 마음 먹고 가정에서 가정적인 남자로 '희생'해야만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말 그대로 그냥 하루가 없어진다. 그 하루 동안에 연 5억짜리 정부 과제의 연차보고서 한 편을 끝낼 수 있고, 관련연구 논문 10편 정도를 발췌 형식으로 읽을 수 있고, 실험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모듈 하나 정도의 기능과 버그는 해결할 수 있을 텐데, 가장 좋은 컨디션과 집중력을 모두 아기에게 쏟아부어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가정적인 남편이자 아빠가 되고 싶다.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졸업요건을 맞출 수 있는 논문을 내야 되는 상황에서 하루를 온전히 소비하는 것은 나한테는 시간낭비이고, 우리 가족 전체의 불확실성과 고생을 향해서 한 발짝씩 더 전진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당장 가정적인 게 다 무슨 소용인가? 매일매일 이런 갈등이 단 한 번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근본적인 것부터 생각하자면, 박사과정을 하는 동안 육아를 할 생각을 절대로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나도 아내도 너무 순진했다. 아기는 혼자서 그냥 잘 클 줄 알았지만, 나 또는 아내의 모든 시간을 다 쏟아붓는 것이 전제조건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게다가 돈도 이렇게나 많이 들 줄도 몰랐다. 매달 적자가 나다가 가끔 들어오는 대학원생 세금 환급이나 장려금 같은 걸로 겨우 카드값을 메꾸고, 그 다음 달 부터 또다시 적자가 시작된다.


이래서 인생에서 타이밍이 정말 중요한 것이다. 제때 졸업했어야 하고, 제때 노력했어야 하고, 제때 인생의 각종 선택이 주는 결과와 의미들을 깨달았어야 하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게 대략 2년씩 늦어졌다. 지금의 졸업에 대한 고민을 2년만 더 일찍 심각하게 시작했더라면 내가 이토록 고민에 휩싸이지 않았을 텐데... 나는 왜 이리도 느리고 능력이 부족한 것일까? 정말 속상하고 답답하다. 더 똑똑하고 더 이해속도와 코딩 속도도 빠르고 영어도 더 잘 하고 싶다. 남의 논문은 잘 봐주고, 정부과제 정도는 이제 손쉽게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 개인연구만 생각하기 시작하면 정말 동기부여가 약해지고, 하기도 싫어지고, 잘 진행도 안되고, 어렵기까지 하다. 정말 속된 말로 거지같다.


단 하루라도 가족과 함께 놀기만 하느라 연구실에 나가지 못하거나 컴퓨터를 쓰지 못하면 불안해지는 내 감정 상태를 놓고 보면 워커홀릭인데, 정작 또 연구실에 가서 일을 하려고 하면 쉽사리 진행하지 못하는, ADHD 같은 증상을 겪기도 한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제발 이 거지같은 굴레를 벗어나고 싶다.


연구실에서 정부 과제 제안서 작성, 과제 실무책임 역할만 지나치게 강화한 것 같은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내 졸업연구 주제와 관련은 없지만 주제 그 자체로 놓고 보면 트렌디하고 중요한 편에 속하는 과제를 맡아서 운영했었는데, 내 핵심 실력을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부수적인 실력들만 키우는 것 같아서 아주 속상하다. 이런 멀티플레이어 따위 되어서 어디다 쓸 지 회의감만 들 뿐. 지금 배운 이 역량이 쓰일 만한 시기도 대략 10~20년 뒤일 것 같은데 내 핵심 역량을 키워야 할 시간에 리더쉽 역량이나 키우고 있으니 이것 또한 거지같다. 내가 학부 때 진작부터 온갖 다양한 활동들 해 보면서, 이런 활동을 하면 어떤 폐단이 있고 저런 활동을 하면 어떤 수고를 해야 된다는 등의 견적을 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나 보다. 역시나 앞서 얘기한 대로 내가 대략 2년씩 남들보다 뒤처지는 느낌이 들어서 아주 속상하다. 진작에 잘 했으면...


내가 다시 3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자녀 계획을 전면 취소했을 것이고, 그외 내 인생에 잡다하게 걸쳐져 있던 연구와 관련없는 여러가지 사회적인 활동들도 다 중단했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개인연구 주제에 대해서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하던 그 시절에 내가 내 인생이 망가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고조시켜서 하루라도 빨리 실제 실력을 키우려는 노력을 기울였어야 한다. 인생은 결국 핵심 역량에 대한 실력으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축구 공격수는 골을 넣어야 하고, 골키퍼는 공을 막아야 한다. 박사과정은 좋은 저널 논문이나 좋은 학회 논문을 써야 한다. 그 외의 잡다한 활동들로부터 얻는 실력을 논문 말고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결국 논문이 없으면 실력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가 되고 만다. 연구실에 온갖 기여를 하고, 과제 관리를 잘 해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푼돈밖에 안되는 연구비 외에 내가 얻는 것은 죄다 눈에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들이고, 인생의 중년과 노년이 되어서야 쓰일 만한 것들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핵심 역량을 입증하지 못한 채 습득하는 그런 곁가지 능력들은 결국 쓰임받을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썩어버릴 것이다. 


공부해야 할 때 제대로 해야 하고, 제대로 공부해야 하는 시기를 놓침으로써 생기는 인생의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이런 심각성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좋게 말해서 믿음이고, 나쁘게 말해서 멍청함이다. 더 이상은 멍청이가 되고 싶지 않다. 제발 프로페셔널 답게 실력을 갖고 싶다. 내 실력으로 내가 박사학위 받을 만한 존재임을 드러내고 싶다. 최근 들어서야 이러한 열망이 생겼지만, 애석하게도 지금 내 인생은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방해물이 너무 많이 생겼다. (어떻게 자기 딸아이를 보고 방해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운가? 나와 똑같은 상황이 되어 보라고 하고 싶다. 겉으로는 아기와 행복하게 즐겁게 놀아 주고 함께 좋은 추억은 의무감으로 만들어 가고 있지만 지금 내 속은 우리 가족을 사지로 내몰고 있는 듯한 걱정에 새카맣게 타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누가 알아 줄까? 내가 아기의 정서발달에 악영향을 주고 싶지는 않아서 의무감에서라도 놀아 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인 상태다.)


속상하고 답답하다. 이 분노의 마음을 동력으로 삼아서라도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시간에 실험이 좀더 진행되기를 바라며, 이렇게 답답한 마음을 글을 통해서라도 쏟아내고, 훌훌 털고 연구를 조금이라도 더 가볍게 진행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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