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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특히 이공계 대학원생에게 연구노트는 정말 중요하다. 연구노트를 그 목적대로 작성을 했을 경우, 연구의 진행 상황에 대한 기록이 모두 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매일매일 연구를 올바른 방향으로 진전시켜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실험 같은 것이 실패를 하더라도 그 기록이 모두 남으니까 어떤 형태로든 자산이 될 수 있다.


거의 대부분은 종이로 된 연구노트 책자를 쓰겠지만, 하고 있는 모든 일을 오직 PC 화면만 쳐다보면서 하는 입장에서 전자연구노트도 쓸만하다. 하지만 학교에서 제공하는 전자연구노트는 파일을 직접 업로드하는 방식이라서 내가 다른 프로그램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아니면 그냥 메모장, 또는 이미지 등)을 사용해서 일단 만들어야 한다.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실험 통계는 엑셀 파일, 랩세미나 발표를 하거나 교수님과의 의견 교환을 위해서 만든 슬라이드는 파워포인트 파일, 문서는 워드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내가 점점 MS 오피스 프로그램을 써서 직접 파일을 만드는 경우는 줄어들고, 그냥 웹 브라우저에서 구글 드라이브에 접속해서 문서/스프레드시트/프레젠테이션을 바로 만드는 경우가 많아졌다. 워드/엑셀/파워포인트만 가지고 논문 한 편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던 시절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이게 옛날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은 작업을 웹 기반으로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평소에 각종 개발이나 실험을 리눅스 환경에서만 하다 보니 그냥 아예 main PC를 리눅스로 쓰다 보니, 윈도우에 대한 접근성이 조금 떨어져서 더더욱 MS 오피스를 쓰지 않게 된 측면도 있다.


논문 작성은 Overleaf를 써서 tex를 웹 상에서 직접 고치고, 공동저자들에게 링크를 줘서 바로 확인하거나 서로 동시에 고치면 된다. 예전에는 tex를 쓰려면 프로그램을 별도로 써야 했지만, 웹 기반으로 하면서 훨씬 편해졌다. 게다가 MS 워드를 가지고 논문을 작성하면 예기치 않게 문서 레이아웃이 망가지거나 그림이 서로 겹치는 등 온갖 불편한 일이 생기는 데 비해, tex는 문법만 잘 알고 있으면 문서 레이아웃 망가질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으니 훨씬 좋다.

기본 아이디어에 대한 brainstorming 같은 일도 구글 문서나 구글 프레젠테이션에서 간단하게 만들어서 이것을 또한 링크로 공유해서 수정하면 된다. 이 단계에서는 MS 오피스가 제공하는 강력한 기능들까지 굳이 필요하지도 않고, 흰 바탕에 꾸밀 필요가 없는 검정색 텍스트와 간단한 도형 그림 정도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구글 스프레드시트는 아직까지는 MS 엑셀에 비해 기능과 편의성이 많이 부족해서 이 부분은 아쉽다.


그리고 기존에 PC에서 MS 오피스를 써서 작업할 때에는 항상 예상치 못한 PC의 다운이나 하드디스크 고장으로 인해 파일이 망가지고 사라지는 등의 위험 요소를 안고 가야 했는데, 요즘은 웹 기반으로 하다 보니 그런 걱정이 거의 사라졌다.

물론 순수하게 개인 PC에서만 모든 작업을 다 하던 시절과 지금의 완전한 웹 기반 환경 사이에 드롭박스(dropbox)를 활용해서 과거 저장 내역을 기억하고 만약의 사태에 파일을 복구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리고 dropbox는 여러 학생들이 참여하는 연구과제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문서들을 관리하는 측면에서는 지금도 도움이 많이 되고 있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 결코 없어지지 않을 hwp 파일들을 관리하려면 뭐..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hwp 파일만큼은 아직도 구글문서처럼 웹 기반으로 협업이 불가능하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 혼자 또는 나와 지도교수, 공동저자 학생 한두 명이 같이 연구를 진행하면서 논문을 쓰는 상황에서는 굳이 dropbox도 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실험이나 시뮬레이션을 하다 보면 결국 윈도우보다는 리눅스/맥이 더 편할 수밖에 없고, 윈도우 PC보다 리눅스/맥을 더 자주 활용하는 입장에서 구글 드라이브의 접근성이 MS 오피스에 비하면 훨씬 좋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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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위와 같은 여러 가지 이유를 종합해서, 서면연구노트는 거의 쓰지 않고, 전자연구노트는 연구과제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정기적으로 만들어지는 회의록, 발표자료, 보고서 파일들을 업로드하는 요도로만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전자연구노트를 개인연구에 잘 쓰지 않다 보니까 내 개인연구의 모든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이를 기반으로 연구를 차분하게 진행시켜 나가기 위한 기록 매체가 마땅치 않게 되었다.


순수하게 내 개인연구 진행 상황을 매일매일 잘 기록하고, 이를 기반으로 중간에 다른 일을 하다가 돌아오거나, 그 다음날에 다시 시작하더라도 기억을 더듬는 시간을 최소화시킬 만한 환경이 필요했다. 사실 이런 목적을 충족해 주는 도구는 이미 널리고 널렸지만, 왠지 모르게 내 손에 잘 잡히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이 분야에서 단연 에버노트가 막강하겠지만 이상하게 손이 잘 가지 않았다. 논문들을 잘 관리하는 측면에서는 멘델레이(Mendeley)가 좋은 도구가 되겠지만 논문 이외의 문서들 관리하기는 힘들다. 트렐로(tello)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task를 분류하고 todo list를 관리하기에 좋아 보였지만, 여기에 코딩하면서 발생한 버그, 해결 방법, 논문 아이디어, 시뮬레이션 환경 등등 이것저것 다 기록하다 보니 오히려 너무 기록할 수 있는 영역이 많아서(카드의 제목, 카드의 description, 카드 내부의 댓글, 카드에 추가할 수 있는 checklist, 거기에 카드 종류를 구분할 수 있는 custom label 등등...) 나만의 기준을 일일이 만들지 않으면 너무 중구난방으로 기록되는 바람에 나중에 오히려 찾아보기가 불편한 지경이 되었다. 게다가 일처리를 끝내면 보관(archive) 처리를 해서 사라지게 되는데, 그렇게 화면에서 완전히 사라져야 할 때도 있지만 어떨 때는 남아 있기도 해야 하고, 그렇게 카드 수와 카테고리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자 오히려 관리하기 어려웠다. 트렐로가 이 모양이니 이와 유사한 Todo 관련 앱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슬랙(slack)은 공동저자들과 협업을 하면서 발생한 대화 내용과 모든 파일이 다 시간순으로 기록으로 남아 있고 검색해서 찾아보기도 편했지만, 메신저의 대화창 자체를 기록을 저장하는 수단으로 쓰는 것은 너무 무리였다. (게다가 대화 개수가 10,000개를 넘어가면 그보다 과거의 내용은 돈을 내지 않으면 볼 수도 없다.)


위의 여러 가지 서비스들을 다 시도해 보는 과정에서, 모두 어느 정도 써 보다가 다 중단되었지만, 그러한 시도를 하는 동안에 병행해서 계속 기록을 남기던 가장 원초적인 수단은 결국 메모장(...)이었다.

그 어떤 서식도 넣을 수 없었지만, 그 안에서 내가 나만의 indent를 가지고 위에서 아래로 순서대로 기록을 남기고, 파일 이름은 날짜와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하고 (예: 180117_routing_table_update_issue.txt), 그 파일들을 dropbox 폴더에 모아 놓는 이 원시적인 작업만을 내가 멈추지 않고 해 오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강력한 도구보다는 불필요한 것이나 군더더기가 없으면서 접근성이 좋은, 미니멀리즘 비슷한 것을 원했던 것일까?


결국 위와 같은 고민을 거쳐서 지금은 구글 드라이브에 폴더 하나를 통째로 모든 공동연구자들과 공유하고, 그 아래에 워드 문서를 큼지막한 이슈 별로 만들고, 그 문서 안에서 매일매일의 날짜마다 새 페이지를 만들어서 그날 겪은 문제와 그 전날의 문제를 해결한 내역, 앞으로 할 일 등을 그저 텍스트로 작성하고, 해결이 안된 부분은 빨간 글씨, 해결 완료한 부분은 파란 글씨로 표시하는 최소한의 서식만 남겨 둔 채 사용을 해 보았더니, 현재로써는 이게 가장 생산성이 좋다.


사실 '서투른 목수가 연장 탓'을 한다는 속담도 떠오르고, 연구가 정말 절실하거나 교수님께서 나를 더 많이 쪼시거나(...) 하시면 도구 따위가 문제가 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내가 쓰기 편하고, 내 손에 잘 익으면 그만큼 마음의 거리낌이 줄어드는 만큼 연구에 집중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최근 5일 동안은 위와 같은 시도의 끝에 정착한 구글 드라이브와 최소한의 서식이 꽤 좋은 생산성을 실제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니까.


좀더 일찍 이런 손에 잘 익는 도구에 대한 고민을 했었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달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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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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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중순 들어서 암호화폐 시장에 꽤 큰 하락장이 왔다.

비트코인을 기준으로 12월 중순과 1월 초에 찍었던 고점에 비하면 절반 가량이 빠졌으니, 과거에 여러 차례 있었던 (다만 직접 겪은 적은 없었던) 하락장들에 비견될 만 하다. 작년에도 몇 차례 이렇게 폭락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국민이 다 '가상화폐'라는 단어를 알고 있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고 시가총액도 800조원에 육박하던 상태에서 폭락하다 보니 더 정신없는 것 같다.

암호화폐를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들어왔는데 폭락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아비규환이고, 투자(또는 투기)하지 않고 구경하고 있다가 '거 봐라 조심했어야지'부터 '모두 망해라'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고, '탈중앙화'를 적극적으로 반길 리가 없는 정부의 입장에서도 좋게 봐줄 리가 없고 (그 와중에 코스닥 시장의 좋은 소식은 시기적절하게 열심히 띄워주고 있다), 뉴스에서는 암호화폐 폭락으로 인해 발생한 사회문제 (화가 나서 TV를 부쉈다는 등의 인터넷 게시글 관련 보도)를 비롯해서 자극적인 소식을 내보내는 데 여념이 없다.


나도 암호화폐 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지 이제 한달을 조금 넘겼기에 이런 큰 폭락은 처음 겪는 중이다. 물론 12월 8일에 소액으로 비트코인을 조금 사 뒀다가, 금새 고점인 2500만원으로 오르다가 곧바로 1400~1500만원대로 폭락한 뒤에, 오래 걸리지 않아서 다시 2100만원대가 되는 경험은 했지만, 그 때는 워낙 짧았기에 뭐라 감정을 느낄 새도 없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이더리움을 비롯한 소수의 코인을 좀더 매수를 하면서 투입한 KRW가 커진 상태에서, 며칠에 걸쳐서 계속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진정한 하락장의 무서움은 이번에 제대로 느끼고 있다. ㄷㄷ 멘탈이 멀쩡하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신경이 쓰이지만 뭐 이제 와서 어떻게 할 수는 없고, 걱정과 경각심이 반반씩 있다.


작년 12월에 한국 정부에서 거래소를 폐쇄하겠다느니 하는 강경한 발언을 쏟아낼 때에도 시장이 흔들리긴 했지만, 역시 중국이나 미국에서 시작되는 매도세에 비할 바가 아닌 듯 하다. 그러면서 cryptowat.ch 사이트에서 내가 매수했던 코인들의 차트 기록을 하나씩 보고 있으면, '이번에는 정말 망하는 거 아니야?'라는 의구심도 쉽게 들게 되는 것 같다.


차트를 쳐다보기만 한다고 해서 그만큼 시세가 오르는 것도 아니기에 과거의 하락장이 어땠는지 그 당시의 상황을 다시 설명해 주는 인터넷 게시물들을 살펴 보았는데, 커뮤니티 규모나 알고 있던 사람들의 수는 작았지만 지금과 같은 패닉 상황에 대한 묘사는 똑같았고, 나쁜 소식이 더 극단적인 기제가 되어서 난리가 나는 등 지금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 때에도 '이번에는 망한다'는 사람과 '존버'를 외치는 사람 모두 있었고, 서로 자기 논리를 가지고 지금과 다를 바 없이 싸우고 있었고, 과거의 대하락장 당시의 코인 시장에 대한 악재들도 정말 무시무시한 것들이었다.

작년에 중국 암호화폐 거래소가 모두 폐쇄되는 일이 있었고 (우리나라도 똑같이 시도를 하다가 지금 보류 상태지만...), 그 때 비트코인이 크게 하락했었다. 비트코인은 세그윗(SegWit) 이슈 때문에 가격이 폭락했다가 결국 비트코인 캐시가 떨어져 나오는 등의 어려움을 겪었다. 이더리움은 DAO 해킹 사태 때문에 문제가 되는 블록을 치우고 하드포크를 해서 새로운 이더리움(ETH)이 시작하는데 갑자기 기존의 블록체인을 유지한 채 신규상장해 버린 이더리움 클래식(ETC)이 나오면서 이더리움이 거의 망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난리가 나기도 했었다. 아직은 초기라서 정보의 부족과 허술함을 악용하는 사기성(스캠) 코인이 나오고 그로 인해 시장이 충격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법무부가 암호화폐 전체 시가총액 중에서 100조원을 날려버릴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고, 중국에서는 암호화폐 거래소에 이어서 비트코인 채굴하는 회사 일부를 폐쇄시키는 과정에서, 중국 내의 모든 채굴장이 폐쇄될 것이라는 생각이 퍼져서 악재가 된 것 같다.


위에 말한 것들도 내가 작년부터 들어 왔던 일부분의 악재라서 실제로는 더 예전부터 더 많은 어려움에 시달려 오면서 지금까지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거품이라고 하기에는 아직은 1998~2001년의 닷컴버블 때의 IT기업들의 시가총액의 1/8보다 작은 수준이다 (닷컴버블 당시의 달러 가치를 지금의 달러 가치로 환산하면 더 차이가 클 수도 있음). 결과적으로는 닷컴버블 또한 거품이 꺼진 이후로 지금은 그 당시의 시가총액을 회복하였고,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회사는 잘 살아남아서 과거의 버블 때의 주가를 훨씬 뛰어넘었다.

그리고 매년 1월마다 변함없이 하락장이 있었고, 그 하락장이 아시아의 구정(음력 설날)을 앞둔 몇 주(24일 정도로 보는 시각이 있다) 사이에 발생했으며, 그러한 하락장이 지나고 나서는 결국 시세를 회복했다.


작년 내내 나는 '비트코인 가격이 벌써 N이라니 너무 비싸다'라는 생각을 했었고, 그 N은 300만원, 800만원, 1000만원, 1300만원, 2000만원으로 계속 달라졌던 기억이 있다. 물론 내가 들어오고 나서 2000만원 전후를 계속 왔다갔다 하고 있어서 2000만원은 실제로 비싼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은 드는데, 이것도 최근 한 달 동안 보면서 드는 생각이라서 몇 개월이 더 지났을 때 어떻게 되어 있을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질문이 있다.

 - 본격적인 버블이 이미 형성된 것일까, 아니면 아직 버블의 초반일 뿐일까?

 - 암호화폐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망하게 될까, 아니면 드라마틱하게 세계의 경제에 한 획을 그으며 영향력을 키우게 될까?

 - 이번 하락장은 정말로 심각해서 암호화폐를 망하게 만들까?


이것들의 답을 알았으면 마음이 편하겠지만, 뭐 알다시피 이 세상은 엔트로피가 너무 크고, 물리법칙에 의해 예상가능하게 움직일 것 같지만 나비효과에 의해 뭐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카오스의 세계다. 이쪽의 기술적 개념을 조금 살펴본 입장에서 코인을 '돌덩어리' 취급하는 사람들보다는 더 파급력이 크고 암호화폐 자체가 사장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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