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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 OS: Ubuntu 16.04 Server (amd64)


서버가 고정IP(IPv4)를 사용하는 경우를 기준으로 작성했다.



1. brctl 도구를 이용해서 br0 인터페이스 추가

  브릿지 인터페이스 이름은 꼭 br0이 아니어도 상관은 없다.


$ sudo brctl addbr br0



2. 인터페이스 설정


/etc/network/interfaces 파일

auto 이더넷_인터페이스_이름

iface 이더넷_인터페이스_이름 inet manual


auto br0 

iface br0 inet static

    address 고정IP주소

    netmask 넷마스크

    gateway 고정IP에_해당하는_게이트웨이

    dns-nameservers 도메인_네임_서버_IP주소

    bridge_ports 위에_manual로_설정된_물리적_이더넷_인터페이스

    bridge_fd 0

    bridge_maxwait 0

    bridge_stp off


# lo 인터페이스라던가, 그외 별도로 다른 인터페이스에 대해 설정해둔 것은 그대로 둘 것


(예) 서버에서 쓰는 물리적 이더넷 인터페이스 이름이 eno1이고 고정IP를 10.0.4.11/24로 쓸 경우,


auto eno1

iface eno1 inet manual


auto br0 

iface br0 inet static

    address 10.0.4.11

    netmask 255.255.255.0

    gateway 10.0.4.1

    dns-nameservers 8.8.8.8

    bridge_ports eno1

    bridge_fd 0

    bridge_maxwait 0

    bridge_stp off 



3. 서비스 재시작 또는 재부팅해서 설정 적용


$ sudo /etc/init.d/networking restart  또는 sudo service networking restart

$ sudo /etc/init.d/libvirt-bin restart


아니면 그냥 깔끔하게 재부팅.



서버 쉘에서 ifconfig 쳤을 때, br0 인터페이스가 보이면서 고정IP주소가 제대로 설정되어 있고, HWaddr에 적힌 맥주소가 실제 물리적 이더넷 인터페이스와 똑같으면, 그리고 물리적 이더넷 인터페이스에는 아무 IP주소도 할당되어 있지 않으면 성공적으로 설정한 것이다.


혹시 재부팅 후에 SSH로 서버에 접근이 안되는 경우 (== 서버가 네트워크 연결을 못하는 경우), /etc/network/interfaces 파일에서 bridge_ports에 적힌 이름실제 물리적 이더넷 인터페이스 이름이 서로 맞지 않는지, 즉 오타가 없는지 먼저 점검할 것 (여기서 두 번 실수함. ㅠㅠ)

만약 물리적 인터페이스 이름을 정확히 매치하지 않으면, KVM (정확히 말하면 virt-manager GUI에서의 개별 VM 설정에서 네트워크 인터페이스 설정 창)에서는 br0이라는 이름 옆에 empty bridge라고 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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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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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원문 링크 http://www.ttimes.co.kr/index.html?no=2016062118327756834

제목: ‘종이로 읽을 때 vs 모니터로 읽을 때’ 이해도 차이


제목만 보고 예상하기로는 종이로 읽을 때의 이해도가 더 높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는데, 실험 결과를 보니 종이로 읽을 때와 모니터로 읽을 때에 내용을 기억하는 특징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종이로 읽을 때 글의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기가 더 좋고, 디지털 화면으로 볼 때에는 구체적인 내용을 더 잘 기억하게 된다고 한다.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정보를 모니터를 통해서 습득하는 내 입장에서 위의 실험 결과가 맞는 것 같다. 제아무리 크고 좋은 화질의 모니터가 있어도 논문 PDF 파일을 바로 모니터를 통해서 보는 것보다 인쇄해서 읽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경우가 많았다.


물론 위 실험에서는 통제된 환경 하에서 글을 읽도록 했겠지만, 내 경우에는 모니터를 통해서 인터넷도 수시로 들락날락 하고 메신저도 확인하고 이메일도 확인하는 등 너무나 쉽게 집중력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같은 내용이라도 종이에 인쇄해서 읽는 것이 더 좋은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논문의 경우는 맨 처음 인쇄하기 전에 내가 읽을 필요가 있는지를 제목과 초록(Abstract)을 통해서 먼저 판단하고, 그 뒤에는 서론부터 읽기 마련인데, 특히나 서론은 저자의 핵심 의도가 들어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일단 논문의 메인 아이디어를 파악하고 나서 직접 비교 실험을 수행해야 하거나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 해결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론의 제안 기법을 공부할 때에는 자세한 내용 자체를 잘 기억해야 한다. 결국 실험결과가 제시하는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같은 논문을 인쇄해서도 읽고, 모니터 화면상으로도 보는 수밖에 없다.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결국 논문 한 편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특히 카드뉴스 후반부에 인용된 CMU 교수의 "모니터로 읽다가 막히면 인쇄해서 본다"는 언급이 와닿는다. 사실 내 경우에는 모니터로 보는 것이 편하니까 그냥 인쇄하지 않고 모니터를 통해서 바로 논문을 읽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논문을 읽고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의도적으로 인쇄해서 읽는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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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학회 논문의 3저자 자격으로(1저자는 이미 졸업, 2저자는 다른 학회에 다녀왔고, 지도교수님은 가까운 시간 안에 다른 출장) 발표하러 미국 애틀랜타에 출장을 가게 됐다. 직항 대신 값싼 유나이티드 항공을 이용하면서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하게 되었고, 대략 11시간 정도를 샌프란시스코에서 머물게 되면서 시내를 구경하려고 공항에서 나왔다.


(잠깐이었지만 즐거웠던 샌프란시스코 시내 탐방)



여기저기 구경하고 다니다가, 롬바드 거리에서 시내 기차역까지 빨리 이동해야 해서 이 때 우버를 처음 써 보았다. 구글 맵을 통해서 길찾기 검색을 했더니 교통 수단 옵션 중에서 우버 풀(Uber Pool)이 연동되어서 뜨길래 우버 풀을 선택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내가 호출한 차가 도착해서 그 차를 타고 목적지까지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첫 사용으로 인해 약간 긴장이 되었지만, 한국에서 쓰던 카카오택시와 다를 바 없는 인터페이스 덕분에 사용이 어렵지는 않았다. (카카오택시가 우버보다 나중에 개발되었으므로 전체적인 구성을 참고했을 것이다.)


아무튼 우버 엑스(X)가 아니고 우버 풀(Pool)이었기 때문에, 중간에 다른 사람이 합승도 하고 먼저 내리기도 하는 등 합승 기능까지 처음으로 써보게 되면서 좀 특이한 경험이었다.


이렇게 긴장한 채 타고 가는데 더 신기한건, 그 와중에 내 스마트폰이 코딩 문제를 풀어볼 거냐고 나한테 묻는 것이었다. ㅡㅡ;;


(이건 앞서 한 문제를 풀고 나서 두번째 문제를 풀다 말고 찍은 스크린샷이다.

스크린샷은 제시된 알고리즘의 계산 복잡도를 묻는 문제.)



정신없던 당시의 기억을 돌이켜 보면, 우리와 같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코딩 문제를 한번 풀어보라는 식의 안내가 있었고, 그걸 수락했더니 바로 타이머와 함께 코딩 문제가 눈앞에 나타났다. ㄷㄷㄷ


첫 번째 문제는 주어진 퀵소트 코드 중에서 버그가 있는 라인을 찾으라는 거였는데, 그나마 몇 달 전에 퀵소트 코드를 연습했던 덕분에 주어진 시간 안에 정답을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위의 두 번째 문제를 풀다 말고 중단해야만 했는데, 저렇게 문제를 푸는 와중에 갑자기 사람이 합승도 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잠시 만나기로 한 친구에게서 페이스북 메신저로 메세지도 오는 등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찾아보니, 저 문제를 푸는 과정이 바로 우버의 채용과정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열심히 풀 걸 그랬다. ㅜㅜ


아무튼 처음 가 본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써 보는 우버에, 처음 쓰는 환승 기능에, 처음 겪는 해커 챌린지 문제풀이까지 정신없는 반나절이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 일 아닌데, 또 우버 쓰다가 위와 같이 물어보면 꼭 집중해서 풀어봐야겠다. 그런다고 해서 내가 문제를 다 맞출 거라는 보장은 전혀 없지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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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계약까지 바꿔 '메트로 출신' 임금 인상

URL: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60608215341410



이런 류의 뉴스를 볼 때마다 안타깝다.

어째서 실제로 궂은 일이면서 동시에 기술력이 필요한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젊은 기술직 직원의 임금이, 스크린도어 관련 지식이라고는 전혀 없는 무능하고 무식한 퇴직자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와서 받는 임금의 절반도 안될 수 있는가?


임원이나 간부급이라서 그에 맞는 임금 수준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번에 서울메트로를 퇴직해서 은성PSD로 간 직원들, 이른바 메피아들은 전문성이라고는 전혀 없고 업체 운영의 기본 원칙조차 지키지 않고 있으니 은성 PSD의 임원/간부가 될 자격이 없다. 고작 2주의 교육을 받았다고 그 정도면 된 것 아니냐고 묻는다면 내가 다시 거꾸로 묻고 싶다. 그 2주간 받은 교육으로 스크린도어 수리를 본인이 직접 할 수나 있는가? 그리고 고작 2주만에 습득할 만한 기술 수준이면 도대체 스크린도어가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인가?


선진국들은 기술자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들에게 기술적 난이도에 걸맞는 대우를 해 주는데, 우리나라는 이번 구의역 사고로 드러난 메피아의 실체 외에도 얼마나 많은 분야의 수많은 회사에서 기술자와 핵심 인력을 무시하고 차별하고 있을지 안 봐도 뻔하다.


스크린도어 작동 원리와 설치/정비에 통달한 전문가가 팀장, 부장으로 승진해야 하고, 그들이 지속적으로 품질을 개선할 수 있도록 회사에서 그들에게 인센티브 등으로 지원해 주어야 회사가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크게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윗선(임원급 이상)은 전혀 모르는 것 같다. 하긴 알 턱이 있나? 이번 메피아와 같이 무식한 자들이 윗선에 앉아서 뭐가 문제인지 보이기나 하겠는가? 선진국 문턱에 와 있다고 백날 떠들어 봐야 여전히 우리 사회의 후진성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이런 후진적인 시스템이 잘못된 줄도 모르고 고칠 의지도 없는 멍청이들이 윗선에 앉아 있다. 서울메트로가 계약을 해지하지 않는 이상 그 회사는 망할 일이 없으니까 결국 이렇게 불합리한 차별과 주먹구구식 운영 때문에 귀한 말단 기술자들만 계속 죽는 사단이 일어나는 것이다. 스크린 도어 사고가 이번이 최초도 아닌데 그들은 도무지 고칠 생각이 없다. 이 정도면 윗선의 사람들은 진작에 모두 퇴출되어야 하는데, 절망적인 것은 지금 있는 윗선을 퇴출시키더라도 새로 들어오는 윗선은 그전과 별 차이 없는 또다른 무능 자들이라는 점이다.


은성PSD에 비친 우리나라의 모습은 말단 기술자들을 진정한 전문가이자 회사의 발전을 이끌어 갈 고급 인재로 키울 생각이 전혀 없는 문화이다. 가장 말단에 있는 기술자들은 경험의 총량이 부족하므로 전문성이 아주 높지는 않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메피아들에 비하면 상당한 능력자들이겠지만.) 하지만 그들이 계속 기본적인 작업부터 반복하면서 손에 익고, 선배로부터 전수받는 기술들을 바탕으로 점차 성장하면 마침내 회사에 큰 도움이 되는 핵심 기술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현장에서 직접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스크린도어 수리를 더 안전하게 더 빨리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수도 있고, 애초에 수리할 일이 없도록 기존의 스크린도어를 더 튼튼하게 개선할 수 있는 방안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 회사는 경쟁력 있는 제품(기술)을 들고서 시장에서 성공하면 된다. 그런데 이런 선순환 구조를 염두에 두고 말단 직원에게 투자할 수 있는 윗선이 먼저 존재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스크린도어 뿐만 아니라 어느 업계를 막론하고 윗선이 핵심 기술자들이 알고 있는 핵심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식한 자들로 채워져 있으니 발전할 수 있겠는가? 그나마 본인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수성가한 케이스가 이런 선순환 구조를 지속시킬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우리 나라는 재계 상위 30명 중 자수성가한 사람이 7명뿐인 것이 부끄러운 현실이다. [1]



실제로 스크린도어를 더 효율적으로 수리할 수 있는 방법이나 잔고장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스크린도어를 제작할 수 있는 아이디어는 모두 실제로 스크린도어를 만져 보고 고쳐 본 말단 기술자들로부터 나오게 되어 있다. 그들과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를 해 보면 회사가 비용을 절감하고 품질을 개선해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 충분히 나올 텐데, 이런 방안을 실제로 집행할 수 있는 권력이 모두 임원/간부급에 있다. 윗선이 해당 분야 기술자 출신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어야 하는 이유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경영을 배운 전문가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차라리 그런 기술 전문가에서 승진한 중간 직원들이 별도로 경영을 배우고 더욱 더 윗선에 진출해야 한다. 기술 관련 스타트업을 시작할 때 경영과 관련된 전공 출신자들은 비용을 유발하는 구성원으로 계산하고, 엔지니어는 이익을 창출하는 구성원으로 정의하는 것은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빌 게이츠가 엄청난 코딩 능력을 가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고, 구글 공동 창업자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도 모두 전산학 전공 대학원생이었고,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도 본인이 직접 페이스북 초기 버전을 코딩했다. 그런데 이 나라는 어떻게 해당 분야에 대한 기술적인 이해가 전혀 없는 멍청이들을 간부, 그것도 심지어 공기업의 사장으로 앉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은성PSD는 140여명의 전체 직원 중에 실제 스크린도어를 고치는 실무를 담당하는 기술자가 40여 명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회사 운영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비용만 발생시키는 윗선이다. 기술자 외에도 회사 운영에 필요한 재무, 회계, 인사, 시설 등등 여러 분야의 인력이 필요한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메피아의 경우는 심해도 너무 심하다. 직급 피라미드에서 최하층에 기술직들이, 운영인력의 절반도 안되는 기술직들이 가장 적은 돈을 받으면서도 회사 운영의 핵심을 이끌고 있다. 구글은 가치 있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한 명을 뽑기 위해서 면접에 심혈을 기울이고, 뽑아놓은 직원이 최대한의 역량을 내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는데, 우리나라는 사농공상이라는 말이 나오던 아주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기술을 천시하고도 이렇게 국가가 유지되다니 정말이지 미쳐 돌아가는 사회다.


나라 전체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능력 없고 관련 지식도 없고 분야도 맞지 않는 퇴직자를 데려다가 임원으로 채용하는 그들만의 리그를 보는 젊은 세대는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인맥?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그 잘난 인맥으로 스크린도어 수리 기술을 수출이라도 했나, 핵심 기술을 개발해서 특허라도 등록했나? 매출의 대부분이 서울메트로밖에 없고 회사의 확장과 매출에 기여한 것도 없으므로 이 정도면 썩은 인맥이다. 회사는 시장에서 파는 물건(기술)의 품질로 인정을 받아야 하고, 입찰공고가 났을 때 입찰이 되어서 인정받아야지 인맥 같은 걸로 회사를 유지해 봤자, 오늘 진작에 망했어야 하는 회사가 하루쯤 더 연명하다가 망할 뿐이다. 그렇게 부실한 회사가 하루를 더 버틸 수록, 애꿎은 말단 핵심 기술자들만 피해를 입는다. 이런 풍조가 다 헬조선을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기술을 너무 천시하기 때문에, 극단적일 정도로 능력을 인정해 주는 사회로 바뀌도록 충격을 줘야 한다. 그래야 차라리 어느 정도 균형 잡힌 체계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서울메트로와 은성PSD가 이번 기회로 잘잘못이 낱낱이 까발려져서 아주 풍비박산 날 정도로 털린 뒤에 제대로 된 회사로 변모하기를 진심으로 원한다. 오늘날의 청년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공부하고 많이 배우고 복수전공에 영어능력, 봉사활동, 교환학생, 인턴쉽, 경진대회, 여러 개의 자격증 등 온갖 활동을 다 해보면서, 없는 스토리도 쥐어짜서 만들어 내며 능력을 키우고 있는데, 무능력한 윗선 때문에 취업도 제대로 못하고 성과를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풍조는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 능력이 없으면 그냥 망해야 한다. 그리고 경쟁력이 있는 회사가 제대로 성장해서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


나이도 많은데 일할 곳은 없고 서울메트로를 퇴직한 그 직원들도 나름대로의 사정이야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이 능력이 안 되는데 억지로 능력을 넘어서는 위치에 가면 재앙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실제로 최근 수 년간 스크린도어 수리 관련해서만 지금까지 사람이 셋이나 죽는 재앙이 있었으니까 맞는 말이다. 나이 많다고 나이로 깔아뭉갤 생각 하지 말고, 본인이 모르겠는 곳에서 제 2의 직업을 시작할 것 같으면 애초에 갈 생각을 하지 말거나, 굳이 계속 하고 싶으면 자신의 무지가 탄로날까 부끄러운 마음으로 뼈를 깎는 공부와 노력을 해서 전문가가 될 생각을 하길 바란다. 그리고 만약 그럴 의지가 없으면 빨리 퇴출당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로 인해서 사회에 퇴직자가 더 늘어나도 좋다. 그 대신 실제로 진정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자기 분야의 회사에서 원래 있어야 할 위치에 있으면서 인정받는 것이 백배 천배 낫다. 그렇게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할 줄 아는 능력자들이 자기 위치에서 그저 맡은 일을 열심히 해 주기만 해도, 대한민국은 훨씬 살 만한 곳이 될 것이고, 결국은 그 혜택을 능력이 없어서 퇴출당한 사람들도 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 앞으로 점점 줄어드는 젊은 층이 그나마 실력을 키워서 노년층을 부양하는 총량을 늘릴 수 있을 것 아닌가?


나도 항상 내가 내 능력이 부족한 것 같아서 부끄럽고, 어떻게든 지금 있는 위치에서 내 몫만큼은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결국 능력이 충분하지 못하면 지금 있는 위치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차라리 그렇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정도를 어기고 사기를 치거나 불합리한 방법으로 아래에 있는 누군가를 찍어누르는 짓은 결코 하고 싶지 않다. 내 수준에 맞는 일을 찾아서 하고 거기서 다시 성장하면 되는 것이니까.


제발 상식적인 사회 시스템, 상식적인 회사 운영 문화가 정착해서 우리나라에서 헬조선이라는 말이 사라지길 바란다.




<참고자료>

[1] 에스티마의 인터넷이야기, "상속자의 나라, 창업자의 나라." https://estimastory.com/2015/07/27/rich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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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필자의 심리적 갈등을 점차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작성중인 글이며, 아직 진행 중인 상황에 대한 글입니다.

*원인 파악과 해결의 과정은 보편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분석 과정이나 해결책에 대해서 신앙적/의학적/심리학적으로 더 나은 의견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관련 글타래>


*과연 교회는 기혼자 대학원생을 올바르게 양육할 수 있는가?, http://skylit.tistory.com/208

*번아웃 증후군이 온 것 같다, http://skylit.tistory.com/210



내가 요즘 왜 이렇게 번아웃 상태가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어렵지 않게 금방 얻어낸 중간 결론은, 내가 너무 완벽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완벽하게 만들어 내고 싶은데, 그러다 보니 목표는 더 어려워지고, 지금 당장 처리하기도 점점 더 어려워져서 오히려 절망의 사이클이 되어 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업무를 마주하는 내가 지금 일처리하는 것이 고통스러우니까 지금의 고통스러운 상황 자체만을 회피하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일은 해결되지 않고 시간만 많이 쓰이는 비효율적인 모습이 되었다.


그러면 내가 왜 이렇게 완벽주의에 집착하게 된 것일까? 인터넷 검색을 통에서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러한 사람들이 겪는 문제가 '회피성 성격장애'라는 정신 질환에 포함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정신질환' 상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실제적인 정신질환을 겪으면 내가 이렇게 내 상태를 진단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보통 사람에 비해서는 내가 회피성 성격이 상당히 컸었고 아직 줄여나가는 상태라는 것이다. 스스로를 조금 더 돌아본 결과, 내가 10대와 20대 초반에 회피성 성격이 정말 초 극단에 이르렀다가, 요즘은 많이 줄어든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이것을 알아내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10대와 20대 초반에 사람을 만나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고, 상대방이 아무리 나에게 우호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회피성 성격이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사실 사회성을 확립해 가던 시절에 내가 초등학교에서 겪은 좋지 못한 경험 때문이었는데, 이것까지 쓰면 너무 길어지므로 생략하겠다. 부모님께 죄송한 얘기지만, 20대 초반까지 나는 정말 부모님과도 대화하면서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다. (이미 부모님도 내가 눈도 안 마주치고 얘기하는 것을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계셨지만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셨던 것 같다.) 그러던 내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키워 가면서 이제야 정상적인 사람처럼 상대방과 아이컨택을 하며 얘기할 수 있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내가 지금의 상태가 된 것은 기적인 것 같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무튼...)




*회피성 성격과 교회 사역의 절묘한(?) 조화


그런데 나는 회피성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싶었다. 교회에 있는 내 동기 친구들이 형, 누나들과 자연스럽게 하하호호 즐겁게 이야기하는 것이 무척 부러웠다. 단지 내가 먼저 다른 사람에게 다가서는 것이 너무나 부끄럽고 두려웠다. 그래서 대안을 찾던 나는 10대 때부터 교회에서 '사역'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대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정상적인 대인 관계를 맺는 것이 힘드니까 차라리 사역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가서 이야기를 하고 그들과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생각은 대학생이 된 이후로 더 커졌는데, 좋은 교회 공동체에서 좋은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고 싶다는 열망이 엄청났다. 그래서 청년대학부로 출석하는 교회에 가서 적극적으로 사역을 맡아서 하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하나님과의 관계의 기쁨에서 오는 자발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비록 자발적인 행동이었지만, 그 자발성의 근원은 신앙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인정과 관심을 갈구하면서도 부끄러워서 남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내 회피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회피성 성격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교회에서 사람들을 자주 만나고, 연구실에서 억지로라도 과제를 리딩하며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점점 약화되어서 지금과 같은 상태에 이른 것 같다. (이런 면에서 나의 부족한 면을 옆에서 인식하면서도 끊임없이 나를 인정해 주고 세워 주려고 노력해 준 아내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적어도 누군가를 만나는 것 자체에 있어서는 그 거부감이 어릴 때에 비해 확연히 줄어들었다. 특히 여자공포증(?)이 많이 사라졌다. 여전히 동성을 대하는 것에 비하면 아주 약간은 두려움이 있지만...


하지만, 그 당시의 잘못된 동기에서 시작한 여러가지 사역들이 이제 와서 그 정체성을 의심받기 시작하는 상태라고 본다.

남들에게서 인정받고 싶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워서 차마 다가가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내가 다가설 수 있는 도구로써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는 사역이 매우 효과적인 도구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그 목적을 어느정도 달성하고 나니까 사역이 extra task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오는 참된 기쁨을 누리면서 자발적인 기쁨으로 하는 사역이 아니었다는 것이 충격적이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나의 객관적인 신앙의 현주소이다. 물론 그 중에 어느 정도는 실제로 신앙의 기쁨을 누리기도 했을 것이다. 찬양의 기쁨도 누리기는 했을 것이다. 성경공부 하면서 누렸던 기쁨이나 수련회에서의 감정적 경험을 나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100% 하나님과의 교제에 집중했었는지 작게나마 남들의 인정을 얻고자 하는 마음도 불순물처럼 포함되어 있었는지 돌이켜 보면 순도 100%가 아니었다. 




*회피성 성격으로 인한 번아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첫 번째로 참된 하나님을 진정성 있게 만나는 것이고, 

두 번째로 여전히 업무에 악영향을 끼치는 회피적인 성향의 잔재를 극복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식하기보다는 남들이 보기에 좋아 보이는 정도로만 신앙생활을 했던 것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헌신적'이라는 이미지로 내 신앙의 껍데기만 열심히 포장하고 있었는데 정작 속에 알맹이가 없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그동안 20년 가까이 교회에 다니면서 내가 설마 그렇겠냐는 생각도 버려야겠다. 정말 나는 머리로만 신앙을 인식했고 아직 하나님을 진정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유한한 존재, 속일 수 있는 존재로 간주했던 내가 얼마나 교만한 자인지 돌이켜 봐야 한다...

이것을 인식하는 것이 결코 절망적이지는 않다. 그 말은 이제부터 제대로 된 하나님을 만나면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교회 생활에 특별함이 없는 것 같다는 의심이 들려고 하는 지금 이 때가 바로 내가 그동안 제대로 만나지 못했던 참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때라고 생각한다.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는 사실을 믿는다. 그러므로 이제 다시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 남들이 내 겉모습만 보고 평가해 주는 내 신앙은 필요없다. 정말 예수님이 내 안에 없으면 다 헛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회복시켜 주시기를...


정말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떤 상태이든지 상관없이 나를 무한히 인정해 주시고, 내 영혼이 잘 되기를 진심을 바라고 계시며 나를 지켜보시는 전지전능하신 존재이다. 그렇게 내 모습 있는 그대로를 그 누구보다도 최고로 인정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지금껏 알던 것보다 더 확실하게 깨닫고 싶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성경의 어느 부분을 읽어야 할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요한복음과 로마서에서 시작해 봐야겠다고 생각중이다.


그리고 매사에 용기를 가지고 임해야겠다.

어릴 때부터 회피성 성격이면서 학교 성적만 좋았기 때문에, 공부를 잘 한다(==일을 잘 한다)는 평가가 나의 정체성을 유지시키는 큰 원동력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이 곳 카이스트에서 박사과정을 하면서 내가 정말 무능력한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인정받지 못할 게 뻔한 것을 알면서 그 일을 지속할 때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자꾸 완벽하게 일처리를 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그것은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보다는 내가 직면한 일을 더욱 더 어려워 보이게만 만들었었다. 그로 인해 직면해 있는 일을 돌파하고 싶어도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두려우니까 자꾸 회피하려고만 하고, 결국 일을 하다말고 조금만 어려움에 빠지면 자꾸 인터넷에 들어가서 온갖 뉴스기사나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찾아나서는 '인터넷 중독' 상태가 되고야 말았다. (잡다한 지식만 잔뜩 늘고 생산성은 떨어지고... 악순환의 고리가 되고 말았다)

이제라도 내가 이런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맡은 일에 용기를 갖는 것이다. 자신감을 갖고 코딩이든 문서 작성이든 설계든 하면 된다. 그리고 실패에서 배운 점이 무지 많고, 그로 인해 지금 내가 꽤나 많은 작업들을 잘 해내고 있다는 점도 인정하자.

그리고 일상 속에서 일처리를 하면서 겪는 작은 실패(아주 작게는 컴파일 에러, 중간 단계는 교수님의 지적 정도)로 인해서 오히려 거시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으므로, 내가 시도해서 실패를 맛보는 것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지적을 받거나 컴퓨터로부터 평가를 당해도(컴파일 에러조차 컴퓨터로부터 안좋은 평가를 듣는 것이라 생각할 정도로 내가 심각한 회피성향이 있는 것도 그냥 인정하자. 이제부터 해결하면 되니까.) 그들이 결코 나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잘 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존재임을 이해하자.


다시 한번 용기를 가지고 힘내서 실험하고 논문을 써 봐야겠다.

번아웃을 극복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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