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은 두서없이 쓴 일기입니다.
가끔 육아와 가장의 짐을 짊어진 채 여전히 불투명한 박사학위를 앞두고 부족한 시간을 두고 싸우는 내가 처량할 때가 있다.
아무도 내 고민을 자세하게 모르는 것 같다. 실험은 실험대로 잘 안되고, 하루라도 빨리 논문을 써야 하는데 신경쓸 것은 너무 많고, 연구에 최고의 집중력과 시간을 들여야 하지만, 온갖 잡다한 일처리들 다 하고 나면 내게 주어지는 '자원'은 이미 체력을 소진한 육체와 늦은 저녁시간밖에 없다. 그 때가 되어서야 겨우겨우 집에서 도망치듯이 나와서 연구실에 와서 실험이든 논문 작성이든 시작할 수 있다. 이미 그런 늦은 시간에 와 봐야 졸리기 시작하고 집중도 잘 안되고, 기껏 주어지는 시간에도 제대로 실험 진행이 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시간은 시간대로 허비하고, 그렇다고 일처리 제대로 되지도 못한 채 그냥 잠을 자려니 그냥 허비해 버린 하루가 너무 아까워서 잠을 자려고 생각하면 화가 난다. 뭔가 조금이라도 해둬야 할 것 아닌가? 그렇게 쓸모없이 새벽을 맞이한다. 말 그대로, 진심으로 내 인생이 속상하다.
집에 PC를 잘 설정해 놓고 듀얼모니터까지 갖췄지만 아무 소용없다. 나를 제외한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같은 공간에 있는 이상 꾸준히 집중해야 뭐가 됐든 진행이 되는 연구인데 그럴 수가 없는 환경인 건 너무 당연하다. 정말 예쁘고 귀여운 딸이지만, 잠들기 전까지 딸과 놀아주고 밥 먹여주고 씻겨 주고 어지럽혀진 집안 정리를 해야 하는데, 아내가 그 뒤치다꺼리를 대부분 맡아 준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 옆에서 그 정신없는 집안에서 혼자 연구한다고 PC 앞에만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뭘 도와줘도 도와줘야 안심이 되고, 실제로도 딸아이가 나한테 계속 오니까 수시로 봐줘야 한다.
이러니 아내에게 너무나 미안하지만, 정말로 실험이든 연구든 진행을 시키려면 주말에 모처럼 시간이 주어졌을 때 독하게 마음먹고 집을 박차고 나와야만 한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렇게 안할 수가 없다. 가정적인 남자? 당연히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졸업도 못했고 영영 졸업 못할 위기에 놓인 내가 가정적인 남자가 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나에게는 엄청난 사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토요일 하루 정도를 정말 독하게 마음 먹고 가정에서 가정적인 남자로 '희생'해야만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말 그대로 그냥 하루가 없어진다. 그 하루 동안에 연 5억짜리 정부 과제의 연차보고서 한 편을 끝낼 수 있고, 관련연구 논문 10편 정도를 발췌 형식으로 읽을 수 있고, 실험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모듈 하나 정도의 기능과 버그는 해결할 수 있을 텐데, 가장 좋은 컨디션과 집중력을 모두 아기에게 쏟아부어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가정적인 남편이자 아빠가 되고 싶다.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졸업요건을 맞출 수 있는 논문을 내야 되는 상황에서 하루를 온전히 소비하는 것은 나한테는 시간낭비이고, 우리 가족 전체의 불확실성과 고생을 향해서 한 발짝씩 더 전진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당장 가정적인 게 다 무슨 소용인가? 매일매일 이런 갈등이 단 한 번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근본적인 것부터 생각하자면, 박사과정을 하는 동안 육아를 할 생각을 절대로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나도 아내도 너무 순진했다. 아기는 혼자서 그냥 잘 클 줄 알았지만, 나 또는 아내의 모든 시간을 다 쏟아붓는 것이 전제조건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게다가 돈도 이렇게나 많이 들 줄도 몰랐다. 매달 적자가 나다가 가끔 들어오는 대학원생 세금 환급이나 장려금 같은 걸로 겨우 카드값을 메꾸고, 그 다음 달 부터 또다시 적자가 시작된다.
이래서 인생에서 타이밍이 정말 중요한 것이다. 제때 졸업했어야 하고, 제때 노력했어야 하고, 제때 인생의 각종 선택이 주는 결과와 의미들을 깨달았어야 하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게 대략 2년씩 늦어졌다. 지금의 졸업에 대한 고민을 2년만 더 일찍 심각하게 시작했더라면 내가 이토록 고민에 휩싸이지 않았을 텐데... 나는 왜 이리도 느리고 능력이 부족한 것일까? 정말 속상하고 답답하다. 더 똑똑하고 더 이해속도와 코딩 속도도 빠르고 영어도 더 잘 하고 싶다. 남의 논문은 잘 봐주고, 정부과제 정도는 이제 손쉽게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 개인연구만 생각하기 시작하면 정말 동기부여가 약해지고, 하기도 싫어지고, 잘 진행도 안되고, 어렵기까지 하다. 정말 속된 말로 거지같다.
단 하루라도 가족과 함께 놀기만 하느라 연구실에 나가지 못하거나 컴퓨터를 쓰지 못하면 불안해지는 내 감정 상태를 놓고 보면 워커홀릭인데, 정작 또 연구실에 가서 일을 하려고 하면 쉽사리 진행하지 못하는, ADHD 같은 증상을 겪기도 한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제발 이 거지같은 굴레를 벗어나고 싶다.
연구실에서 정부 과제 제안서 작성, 과제 실무책임 역할만 지나치게 강화한 것 같은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내 졸업연구 주제와 관련은 없지만 주제 그 자체로 놓고 보면 트렌디하고 중요한 편에 속하는 과제를 맡아서 운영했었는데, 내 핵심 실력을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부수적인 실력들만 키우는 것 같아서 아주 속상하다. 이런 멀티플레이어 따위 되어서 어디다 쓸 지 회의감만 들 뿐. 지금 배운 이 역량이 쓰일 만한 시기도 대략 10~20년 뒤일 것 같은데 내 핵심 역량을 키워야 할 시간에 리더쉽 역량이나 키우고 있으니 이것 또한 거지같다. 내가 학부 때 진작부터 온갖 다양한 활동들 해 보면서, 이런 활동을 하면 어떤 폐단이 있고 저런 활동을 하면 어떤 수고를 해야 된다는 등의 견적을 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나 보다. 역시나 앞서 얘기한 대로 내가 대략 2년씩 남들보다 뒤처지는 느낌이 들어서 아주 속상하다. 진작에 잘 했으면...
내가 다시 3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자녀 계획을 전면 취소했을 것이고, 그외 내 인생에 잡다하게 걸쳐져 있던 연구와 관련없는 여러가지 사회적인 활동들도 다 중단했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개인연구 주제에 대해서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하던 그 시절에 내가 내 인생이 망가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고조시켜서 하루라도 빨리 실제 실력을 키우려는 노력을 기울였어야 한다. 인생은 결국 핵심 역량에 대한 실력으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축구 공격수는 골을 넣어야 하고, 골키퍼는 공을 막아야 한다. 박사과정은 좋은 저널 논문이나 좋은 학회 논문을 써야 한다. 그 외의 잡다한 활동들로부터 얻는 실력을 논문 말고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결국 논문이 없으면 실력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가 되고 만다. 연구실에 온갖 기여를 하고, 과제 관리를 잘 해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푼돈밖에 안되는 연구비 외에 내가 얻는 것은 죄다 눈에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들이고, 인생의 중년과 노년이 되어서야 쓰일 만한 것들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핵심 역량을 입증하지 못한 채 습득하는 그런 곁가지 능력들은 결국 쓰임받을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썩어버릴 것이다.
공부해야 할 때 제대로 해야 하고, 제대로 공부해야 하는 시기를 놓침으로써 생기는 인생의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이런 심각성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좋게 말해서 믿음이고, 나쁘게 말해서 멍청함이다. 더 이상은 멍청이가 되고 싶지 않다. 제발 프로페셔널 답게 실력을 갖고 싶다. 내 실력으로 내가 박사학위 받을 만한 존재임을 드러내고 싶다. 최근 들어서야 이러한 열망이 생겼지만, 애석하게도 지금 내 인생은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방해물이 너무 많이 생겼다. (어떻게 자기 딸아이를 보고 방해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운가? 나와 똑같은 상황이 되어 보라고 하고 싶다. 겉으로는 아기와 행복하게 즐겁게 놀아 주고 함께 좋은 추억은 의무감으로 만들어 가고 있지만 지금 내 속은 우리 가족을 사지로 내몰고 있는 듯한 걱정에 새카맣게 타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누가 알아 줄까? 내가 아기의 정서발달에 악영향을 주고 싶지는 않아서 의무감에서라도 놀아 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인 상태다.)
속상하고 답답하다. 이 분노의 마음을 동력으로 삼아서라도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시간에 실험이 좀더 진행되기를 바라며, 이렇게 답답한 마음을 글을 통해서라도 쏟아내고, 훌훌 털고 연구를 조금이라도 더 가볍게 진행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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