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포스트에서 썼듯이, 아내가 유산을 겪으면 남편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며칠간 입원을 하거나 친정에 한동안 가 있더라도 남편의 정신적, 육체적 도움이 필요하며, 만약 입원이나 친정에서의 요양을 하지 않고 부부가 같이 있는 경우에는 더더욱 중요합니다.
일단 요약해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산한 아내를 돌보는 것은 "산후조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산후조리보다도 더 신경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유산은 충분히 익은 과일이 나무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설익은 과일을 억지로 따는 것과 같은 의미로 보기 때문입니다.
비록 아내가 겉모습이 멀쩡해 보이고 당장 일상생활도 할 수 있어 보이더라도 절대로 아내를 평소와 같이 내버려 두면 안됩니다. 최소한 1~2주 동안은 산후조리하듯이 아내를 푹 쉬게 하고, 몸을 따뜻하게 해 주고, 찬물에 손대지 못하게 하고, 미역국을 충분히 끓여서 먹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와 비슷하게 나중에 아내가 고생하게 됩니다. (e.g. 산후조리할 때 안정을 취하지 않고 관절을 많이 쓰거나 차갑게 해서 나중에 관절염을 겪는 경우)
제 경험이 결코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정답은 아니지만, 비슷한 상황을 겪어야 하는 가정의 남편들에게 조금이나마 유용한 정보가 되기를 바라며 몇 가지 정리하고자 합니다.
*진심으로 공감하고 위로할 것
아기를 떠나보내는 슬픔을 굳이 비교하지 않더라도 남편과 아내 모두 충분히 슬프다는 것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직접 품고 있던 아내가 느끼는 슬픔과, 이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남편의 슬픔은 어쩔 수 없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당연히 남편 입장에서 저도 많이 슬프고 같이 울었지만, 아내가 몸소 체험하는 공허함과 상실감을 온전하게 100%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유산을 겪은 아내는 임신에 맞춰져 있던 몸의 균형이 갑작스럽게 보통 사람으로 돌아오면서 호르몬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감정의 기복 또한 매우 심해집니다. 특히 슬플 때 한없이 슬퍼지는 것을 봅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슬픔에 빠진 아내를 가장 가까이서 위로해주는 사람이 남편이기에, 남편의 공감과 위로는 정말 중요합니다. 특별히 아래의 두 가지 측면 사이에서 균형을 갖고 아내를 도와주면 좋을 것입니다.
- 아내가 수시로 슬픔에 빠질 때, 왜 그런지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그 슬픔에 가급적 감정이입하고 함께 슬퍼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 아내가 슬퍼할 때 같이 한없이 침울해지지만 말고, 결국은 희망적인 기대감과 결심을 갖도록 남편이 든든히 서 있는 기둥 역할을 해야 합니다.
위 두 가지는 상충되는 내용이 아니고, 다르게 표현하면 적극적으로 슬픔에 공감해 주면서도 그 슬픔이 장기화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아내의 감정을 이끌어야 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당신의 슬픔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 "하지만 새롭게 만나게 될 아기를 기대하며 우리 힘내서 건강한 부모가 됩시다"의 조합으로 아내를 이끌고자 노력했습니다.
*아내를 혼자 두지 말 것
유산 직후 며칠 동안은 아내를 혼자 두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앞서 감정의 변화에서 설명한 대로 한동안 아내가 감정 기복이 심해지는 동안에는 특히 혼자 있을 때 슬픔이 더 극심해지게 됩니다. 대부분의 남편은 변함없이 직장에 가야 하겠지만, 휴가를 쓸 수 있다면 2-3일 정도라도 휴가를 써서 가급적 아내 곁에 같이 있는 것이 좋습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아내가 당분간 친정에서 24시간 가족들 중 누군가와 같이 있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심한 경우 우울증이 될 수도 있으므로 곁에서 대화상대가 되어 줄 사람이 항상 있는 것이 좋습니다.
*이번만큼은 남편이 집안일을 도맡자.
이 항목은 유산 후 아내가 남편과 함께 둘이서만 지내야 하는 경우에 해당됩니다. (제가 여기에 해당되었습니다) 산후조리 중인 아내에게 청소, 설겆이를 시키지 않듯이, 유산한 아내를 위해서 이 기간만큼은 남편 역시 힘들더라도 집안일을 도맡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시기에 아내가 힘을 쓰거나 무거운 것을 들고 찬물을 만지면 관절에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도 휴가를 써가며 처음 3일 정도 집에 있고 나서는 다시 연구실에 출근해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낮에는 집안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내에게 설겆이 같은 일들을 하지 말라고 한 뒤에 퇴근해서 저녁식사 후에 다같이 설겆이하는 식으로 집안일을 도와 주었습니다.
*미역국 충분히 끓여줄 것
산후조리와 마찬가지로 미역국은 유산한 아내의 몸 회복에 큰 도움이 됩니다. 가급적 매 끼니마다 미역국을 꼭 챙겨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미역국 끓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2-3일 먹을 분량의 미역을 물에 넣어서 불리고, 들기름에 미역을 잠시 볶고, 물을 붓고 다진 마늘을 넣어서 끓이고 간장으로 간을 맞추면 됩니다. 여기에 들깨를 추가해서 들깨 미역국으로 만들 수도 있고, 소고기 국거리를 넣어서 소고기미역국으로 만들어도 좋습니다. 다음 항목에서 설명하겠지만, 단백질 섭취도 중요하기 때문에 그냥 미역국도 좋지만 소고기미역국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규칙적인 식사와 함께 단백질 섭취 충분히
단백질 섭취를 충분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내의 기력 회복과 자궁의 건강한 회복을 위해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식사 때마다 오직 육류만 먹으라는 의미는 아니고, 규칙적이고 균형 잡힌 식사에 더해서 충분한 단백질이 공급되어야 합니다.
*영양제 챙겨줄 것
임신 초기에 구입했던 영양제를 유산 후에 중단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모두 비타민, 칼슘 등 우리 몸에 필요한 주요 영양소이기 때문에 음식으로 모두 채우지 못하는 영양소를 영양제를 통해서 채울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빈혈이 쉽게 올 수 있기 때문에 철분과 칼슘 섭취는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임산부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영양제가 아닌 다른 약을 먹기에 꺼려진다면 의사와 충분히 상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부 관계는 나중을 위해서 당분간 금할 것
일반적으로 유산 후 한 달 정도 부부 관계를 금하라고 얘기합니다. 소파수술 후 산부인과 의사도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수술 후에도 당분간은 조금씩 하혈을 하게 되고, 자궁이 충분히 회복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산 후 성급하게 다음 임신을 빨리 계획하기보다는 3개월 이상 기다리면서 남편과 아내 모두 몸을 건강하게 만든 후에 의사의 상담을 거쳐서 임신을 계획하는 것이 좋습니다.
*포인트를 다 쓰지 않은 고운맘 카드(국민행복 카드)가 있다면 적극 활용
2013년 현재 임신을 하면 KB국민카드, 신한카드에서 고운맘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고, 고운맘 카드에는 정부의 지원으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50만 포인트가 들어 있습니다. 고운맘 카드의 포인트는 임신중일 때 뿐만 아니라 출산 후에도 60일까지 임신, 출산 관련된 의료 비용 결제에 쓸 수 있습니다. 유산도 출산과 마찬가지로 유산 후 60일 이내에 유산 후 치료 비용을 결제할 때 고운맘 카드를 쓸 수 있습니다.
저희는 소파수술 일주일 경과하고 나서 산부인과 진료를 받을 때 진료비 결제에 썼고, 지정 한의원(고운맘 카드 결제가 되는 한의원이 정해져 있습니다)에서 한약 처방에도 썼습니다. 다만 임산부가 먹는 영양제를 구입할 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서 고운맘 카드를 쓰지 못했습니다.
<내용 추가>
2019년 현재 고운맘 카드는 "국민행복 카드"로 이름이 변경되었고, 지원금은 60만원으로 올랐네요.
발급 가능한 카드사는 비씨, 롯데, 삼성카드입니다.
비록 남편의 입장에서도 업무 등 여러 모로 바쁘겠지만, 아내에게 특별히 중요한 시기인 만큼 적극적으로 아내를 도와서, 유산의 슬픔을 더 빨리 이겨내고 부부 사이도 더욱 가까워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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