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연구하는 무선 네트워크, 메쉬 네트워크, 오버레이 네트워크, Quality-of-Service (QoS), 라우팅(Routing), 엣지 컴퓨팅(Edge Computing) 등의 분야에서 내로라 하는 대단한 연구자들이 좋은 학회와 저널에 내는 논문들을 보면, 마치 명작 고전 문학 작품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물론 그 대단한 연구자들(일반적으로 대부분이 교수들)의 이름이 들어간 모든 논문이 다 명작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엄청나게 다작(多作)을 하는 중에 특별히 신경을 많이 쓴 몇몇 논문들은 누가 봐도 내용이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고, 이해하기 좋은 문장으로 쓰여져 있으면서도 내용에 깊이가 있다.
논문들 중에 간혹 맨 뒤에 저자의 약력(bio)이 한두 문단씩 첨부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평소에 굳이 저자들의 약력을 일부러 읽지는 않지만, 오늘은 잘 쓰여진 좋은 저널의 저자들(그래봤자 두 명이다)의 약력을 그냥 훑어보았다.
첫번째 저자는 박사과정 학생인데 중국에서 석사과정까지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간 상태였다 (출판 연도로 봤을 때 지금은 이미 박사가 되었을 것이다). 두번째 저자는 지도교수인데, 인도계 미국인으로 학부, 석사, 박사를 모두 미국에서 했고, 그 뒤에 미국의 여러 주립 대학교에서 방문 연구원(아마도 포닥 PostDoc.)으로 있었다. 포닥뿐만 아니라 1990년대~2000년대 초반 사이에 인텔, 파나소닉, HP, EMC 등의 회사에서도 일했었다. (지금은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회사의 위상이 워낙 강하지만, 1990년대~2000년대만 해도 인텔, HP 같은 회사들이 컴퓨터 공학 분야에서 갖는 위상이 상당했다. 지금도 연구 쪽에서는 아직 활발하기도 하고...) 아마 그 뒤에 교수가 된 듯 한데, 교수가 되고 나서는 top level 저널 여러 개의 에디터와 S급 국제학회의 세션 장과 리뷰어 등을 맡고 있다.
사실 다른 대부분의 잘 쓰여진 논문들도 논문 끝에 적혀 있는 저자 약력을 보면, 대부분이 위와 비슷하다.
내가 지금 내 연구를 느릿느릿 하는 입장에서 볼 때, 좋은 논문을 써 내는 미국대학의 교수들은 어떻게 저렇게 한결같이 열심히 자기 일을 해낼 수 있는지 신기하고 부럽다. 단 1년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열심히 살아야만, 아니 그렇게 살아도 달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 엄청난 분량의 성과를, 그것도 질적으로도 우수한 성과를 척척 달성해 내는 원동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마치 처음부터 연구와 관련된 능력을 타고난 인간들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잘 갖춰진 교육의 힘으로 전인적으로 올바르게 성장한 사람들 중에서 어느 정도 지능이 더해짐으로써 위와 같은 능력자가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부각되는 영재성을 비롯해서 선천적인 요소도 분명히 어느 정도 있겠지만, 그러한 원석을 잘 키워내는 후천적인 노력으로 우수한 연구자로 다듬어지고 만들어졌을 것이다.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은, "어떻게 저렇게 십수 년 동안 지치지 않고, 매너리즘에도 빠지지 않고 일관되게 자신의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top level의 연구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이다. 사실 연구 그 자체를 수행하는 데에는 비상한 머리도 도움이 되지만, 기존 연구들을 찾아보고 정리하고 분석해서 거기서 약간의 개선을 만들어 내는 꾸준한 노력이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여기에 공동 저자들의 분업이 잘 되면 금상첨화)
나는 가끔 내 연구가 정말 쳐다도 보기 싫을 때가 있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또 흥미가 생겨서 열심히 이것저것 찾아보고 글로 정리도 하는 등 마치 감정의 변화에 따라 생산성도 같이 따라 움직이는 듯한 취약한 모습이 많이 보인다. 가령 일주일의 시간을 투입해도 생산성이 천차만별인 경우가 많다.
사실 속으로 잘 하고 싶은 마음은 가득한데, 그게 결과만 취하고 싶어하는 욕심이 아닌가 스스로 반성하게 된다. 좋은 논문의 뒤에 약력이 적힌 그런 멋진 연구자가 지금 당장 "되고는" 싶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 쌓아 올려야 할 노력과 훈련은 싫어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내 천성이 게으르고 노력을 투입해야 할 때의 인내심이 부족한 것이다. 이러한 게으름을 극복하고 인내심을 유지하려면 뼈를 깎는 심정으로 훈련을 하거나, 나의 동기 부여가 게으름을 뛰어넘어야만 한다. 아마 둘 다 병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어려움에 봉착하면 그걸 지속적으로 고민하면서 이리 찔러보고 저리 찔러보며 해결책을 찾아내는 노력을 하는 대신, 그 고민을 회피하고 잠깐의 즐거움을 찾기 위해 포털 사이트와 SNS를 헤매게 된다. 그래서 하루 종일, 때로는 며칠에 걸쳐서 그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해결해야 되는 그 연구, 그 문제가 정말로 내가 성취하고 싶어하는 것이라면 쉬지 않고 계속 파고들었을 것이다. 롤플레잉 게임을 하면서 아직 잡지 못하는 보스 몬스터를 꼭 내 손으로 잡아야겠다는 목표의식이 생기면 무서운 속도로 인내심을 갖고 레벨업을 할 수 있는데, 그런 목표를 상실하면 레벨업을 할 생각은 들지 않고 그저 내가 때려잡기 쉬운 잡몹(잡 몬스터)을 잡으며 채워지지 않는 아주 작은 양의 행복으로 공허한 마음을 계속 채우려고만 든다.
나의 목표의식은 무엇인가?
진짜 질 좋은 논문을 쓰는 우수한 연구자가 되고 싶은 것이 맞나?
솔직히 진짜 그런 사람보다 그냥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면서 주변에 존재하는 소소한 소비거리만을 소비하면 그저 좋다고 생각하며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맞는 것 같다.)
마음만 단단히 먹으면 5일 만에 논문의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다 새로 뒤집어 엎어서 쓸 수도 있으면서, 몇 달, 아니 실제로 실험을 시작한 것으로 따지면 일 년이 다 되도록 논문을 써내지 못하는 것은 결국 내가 동기 부여를 상실한 것으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나는 왜 욕심이 없는 것인가?
잘 되고 싶고, 인정받고 싶지 않은 것인가?
왜 스스로 그저 그런 별 볼일 없는 인생에 안주하려고 하는 것일까?
더 큰 목표와 더 큰 행복을 위해, 지금 당장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피해서 포털 사이트와 SNS에서 아주 작은 위안을 얻으려고 하는 잘못된 생각의 흐름을 끊자. 그리고 더 나은 나를 상상하며, 하나씩 작은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 기쁨을 습관으로 만들자.
나는 충분히 내가 맡은 연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나 자신을 믿고, (+나에게 근본적인 지혜와 힘을 주시는 전능자의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믿고) 지금 해결을 기다리는 문제를 향해 breakthrough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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