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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KAIST;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올해(2014년)부터 대학원생에 대한 등록금 납입 기준을 변경했다.


작년(2013) 한 해 동안 대학의 기성회비 징수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법원의 판결 [1, 2]이 이어지면서, KAIST에서도 2010학번 이후의 대학원생에게 징수하던 매 학기 90만원 가량의 기성회비를 0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 대신 원래 매 학기 441,000원이던 수업료를 1,153,000원으로 만들었다. (본원 국비장학생 석/박사과정 기준)


이 내용은 KAIST 홈페이지의 학사공지에서 2013년도 납입금 및 기성회비 책정 현황과 2014년도 납입금 및 기성회비 책정표 문서를 보면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2013년 가을학기에 총 납부액 1,359,000원 중에서 수업료는 441,000원, 기성회비는 918,000원이었던 것이, 2014년 봄학기에는 기성회비가 모두 수업료로 전환되면서 동시에 수업료를 229,500원 감면하고 여기에 약 2% 가량의 인상분을 더해서 수업료만 1,153,000원이 되었다.


과연 지난학기에 비해 납입금의 총량이 줄어들었다는 것만으로 넘어가야 하는 사안일까? 나는 대학원생, 특히 전문연구요원이 상당히 많은 KAIST 박사과정에게 이것은 매우 불합리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KAIST에서는 군 미필자가 박사과정 진학을 하면, 행정적인 신청 절차를 거쳐서 자동으로 전문연구요원에 편입된다. 다른 대학의 박사과정도 학위 중에 전문연구요원에 편입될 수 있지만, 별도의 시험을 통한 TO 취득 절차 없이 KAIST가 교내 전체 전문연구요원의 TO를 보유하면서 별도의 시험 없이 학생들을 편입시키는 것이 차이점이다.

박사과정이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하기 위한 조건은 박사과정 중에 취득해야 하는 수강 학점을 모두 채워야 하는 것이다. 즉 졸업을 위해서 필요한 수업을 다 듣고 박사과정 "수료"를 해야 그때부터 전문연구요원 복무를 시작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그리고 병무청 기준에서 전문연구요원이 복무 중에 수업을 듣는 것은 불법이다.


이와 같이, 전문연구요원 복무 중인 박사과정은 수업을 이미 다 들었을 뿐더러, 법적으로 수업을 들을 수도 없다. 따라서 사실은 KAIST가 전문연구요원들로부터 수업료를 받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수업을 듣는 것 외에도 박사과정 학생은 매 학기 등록을 위해서 최소 9학점의 연구 학점을 신청하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지도교수의 연구 지도와 학과 세미나 수강(박사과정은 졸업 전까지 4학기 동안 학과 세미나를 수강하도록 되어 있다) 등에 들어가는 비용으로 설명될 수는 있겠다.


하지만 2013년 가을학기까지만 하더라도 수업료가 441,000원이었는데, 전문연구요원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오로지 수업료만 1,153,000원으로 한 학기만에 160% 인상이 되었다. 과연 지도교수로부터 논문 지도를 160% 더 받게 되는 것인가? 아니면 학교로부터 어떤 형태로든 160% 이상의 연구 보조 혜택을 받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것은 기성회비 폐지와는 분명히 별개의 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 총 납입금이 줄어들었다고 학교에서는 혜택을 주는 것처럼 생색을 내지만, 기성회비 관련 법적 분쟁을 피하면서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서 국내 대학 역사상 전례 없는 수업료 160% 인상이라는 말도 안되는 결정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처사는 수업을 전혀 듣지 않고 듣지도 못하는 전문연구요원 복무 중인 박사과정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이렇게 조삼모사 식으로 행정처리를 하는 KAIST의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대학원총학생회도 학교 관계자들과 만나서 충분히 토의를 했다고 하는데, 회의는 1월 초에 이미 끝나서 결정이 되었는데도 20일이나 지나서야 납입금이 229,500원 인하되었다는 것을 요지로 하는 안내 메일을 학생들에게 보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1월 9일 경에 납입금 안내를 했다고 주장하지만 그 때의 공지는 꽤 많은 학생들이 잘 모르고 있었기에 본격적으로 등록금을 납부하기 일주일 전인 1월 28일에 공지를 받은 학생들 입장에서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던 것이다.


매 학기마다 받던 90만원 가량의 기성회비를 갑자기 중단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만, 나는 2009년 이전까지 대학원생으로부터 기성회비를 전혀 내지 않던 때를 기억하는 입장에서 온전히 이해되지는 않는다. KAIST에서는 대학원생 2010학번부터 갑자기 90만원이 넘는 기성회비를 납입금에 추가로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2009학번 이전 석/박사과정 학생들은 예전과 다름없이 44만원 가량의 수업료만 등록금으로 내고, 2010학번 이후 석/박사과정 학생들은 아무런 교육의 질적 차이도 없으면서 수업료와 기성회비를 합쳐서 140만원 가량의 등록금을 내는 괴리가 발생했다. 다시 말해서, 같은 연구실에서 비슷한 연구를 하면서 전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는 09학번 이전 박사과정과 10학번 이후 박사과정은 매학기 약 90만원 가량 차이가 나는 등록금을 납입해야 하는 비상식적인 일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물론 09학번 이전 대학원생들은 이제 거의 졸업했겠지만, 내 주변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렇게 2010년부터 갑자기 걷기 시작한 기성회비에 대해서 나는 그 어떤 변명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KAIST에서 현재 기성회비는 교직원들의 인건비 일부, 학교 부서들(안전팀, 기획팀, 홍보팀, 리더쉽센터 등)의 프로젝트 사업비 및 운영비, 학생 복지보조(KAIST 클리닉, 의료상조회, 동아리 지원비 등) 목적으로 쓰이고 있다.

결국 학교에서는 법적 분쟁을 피하고자 기성회비를 표면적으로 없앤 것으로 보이는데, 차라리 기성회비로 쓰이는 비용이 여전히 부담이 된다면 정부와 협의를 거쳐서 일시적으로라도 정부 보조금을 조금지원받거나, 비록 분쟁의 요소가 있더라도 기성회비를 여러 학기에 걸쳐서 단계적으로 줄이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수업료는 작년 수준을 유지했어야 한다.


법적 근거도 없는 기성회비를 2010년부터 갑자기 걷기 시작해서 같은 연구실 안에서 선후배 간 등록금 차이로 인한 박탈감을 만든 것에 더해서, 올해부터는 수업을 듣지 않는 전문연구요원과 이미 복무를 마친 고연차/연차초과 박사과정들에게 납입금 총량을 깎아주는 척 하면서 실상은 160% 넘게 인상된 수업료를 받아 내는 카이스트의 태도가 매우 유감스럽다.




<참고자료>

[1] '국립대 기성회비 반환' 2심도 학생 승소, http://news1.kr/articles/1396067

[2] 대학가 최대 13조원 기성회비 대란 우려,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2401869

[3] KAIST 대학원 '기성회비 첫 실험' 시끌,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812/h20081222024844220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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