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내와 함께 운전하다가 접촉사고를 당했다. T자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하기 위해 멈춰 있었는데, 뒤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오는 차에 꽤 강하게 들이받혔다. 당연히 뒷차의 100% 과실로 간주해서 뒷차에서 보험 처리를 하기로 했다.
어차피 보험사가 대부분 알아서 해 주기 때문에 일을 크게 벌리지 않고 원만히 해결하고 싶었지만, 최소한 내가 직접적으로 받은 피해는 잘 수습해야 되기 때문에 필요한 것들을 따져 가며 진행하다 보니 결국 범퍼를 교체하는 것뿐만 아니라 오른쪽 뒷바퀴 휀더에 도색도 해야 했고 (안 그러면 녹이 슬게 될 상황), 아내와 내가 이동을 자주 해야 돼서 차는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수리하는 기간 동안 렌터카도 사용했다. 어쩔 수 없나 보다. 이렇게 상대방 측 보험사로부터 대물사고 처리부터 다 하고 대인사고에 대한 처리는 일단은 안 하고 있었는데...
사고 발생 후 채 2시간이 되지 않아서 목 뒷쪽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사고가 발생한 그 순간에는 뒤에서 충격을 받았을 때 잠깐 놀라고 그 뒤로는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연구실에 와서 회의를 하면서 노트북과 프로젝터 화면을 번갈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릴 때마다 계속 목이 아파 왔다.
원래 하루 종일 컴퓨터 화면을 쳐다봐야 하는 전공의 특성상 가끔 뒷목 뻐근해지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평소에 뻐근하던 것과는 확실하게 다른 느낌과 더 센 강도로 목이 계속 아파 왔다.
원래 교통사고가 나면 그 순간에 괜찮은 것 같더라도 하루를 지나고 보면 몸 어딘가가 아픈 후유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사고 발생 다음날에 병원에 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사고가 난 뒤에 긴장이 풀리자마자 계속 목이 신경 쓰이도록 아파서, 가해자 측에 대인사고 접수도 추가로 요청한 뒤에 오후에 바로 정형외과에 갔다.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 보았는데, 다행히 뼈나 디스크에서 눈에 보이는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계기로 알게 된 것은 내가 일자목이라는 것이었다.
일자목은 정상인의 역C자형 목보다 충격에 취약하다고 하는데, 그래서 사고 후에 목이 아파진 것으로 진단을 받았다. 앞으로 2주 동안 매일 물리치료를 받기로 했다. ㅜㅜ
내가 일자목이라니…
사실 일자목과 거북목은 현대인, 특히 사무직에서 쉽게 발생하는 질환이다.
책상에서 컴퓨터 화면을 볼 때에는 모니터를 일부러 눈높이만큼 높게 두고 보려고 노력하지만, 내 자리뿐만 아니라 카페나 세미나실 같은 곳에서 노트북을 가지고 훨씬 낮은 곳을 오랫동안 쳐다보는 자세도 자주 취할 수밖에 없고, 스마트폰도 아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일자목이 되기에 너무 좋은 조건에 있기는 하다. 내가 특별하게 목 건강을 챙기고 자세를 주의해야 하는데, 사실 집중적으로 일하다 보면 다 잊어버리고 모니터에 빨려 들어갈 기세로 목을 앞으로 빼고 화면을 쳐다보게 된다.
하지만 의사가 엑스레이 사진을 꺼내 들고 명시적으로
"님 일자목임."
이라고 선언해 버리니, 이제 자세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일자목이 더 심해지면 거북목이 되는데, 그러면 보기에 안 좋은 것을 떠나서 허리도 나빠지고 팔다리도 저리는 등 건강에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물리치료를 마치고 연구실에 돌아오자마자 가장 먼저 내 책상에 놓여진 모니터를 조금 더 높였다. 원래 책상에 모니터 받침대가 있어서 모니터의 상단이 내 눈높이에 맞춰져 있기는 했지만, 이걸로는 내가 평소에 화면을 볼 때 자꾸 목을 앞으로 내밀고 아래쪽으로 쳐다보는 자세를 유발하게 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모니터 화면의 정 중앙이 눈높이와 맞도록 모니터 밑에 책을 괴서 더 높였다.
자리에 앉고 나서는 의식적으로 어깨를 펴고 목을 똑바로 세우고 턱을 집어넣는 바른 자세를 취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그리고 쉴 때마다 양손을 목 뒤로 보내서 양쪽 가운데 손가락으로 7개의 목뼈를 하나씩 지긋이 누르며 고개를 위로 젖히는 운동을 하게 되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일자목이나 거북목이 우울증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1, 2]. 충격… ㄷㄷ
바르지 못한 자세는 근육과 골격의 특정 부분이 스트레스를 받도록 만들고, 그렇게 스트레스가 계속 쌓이면 뇌도 부정적인 영향을 불필요하게 많이 받아서, 스트레스로 인해 평소보다 더 우울감이 커지는 식의 인과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
보통 우울증을 '마음의 병'으로 치부하고 심리적인 요소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지만, 의외로 뇌를 지탱하고 있는 신체가 뇌에 부정적인 영향을 지속적으로 끼치면 결국 '뇌'라는 신체기관 역시 병에 걸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위에서 위액이 과다 분비되면 위염, 위궤양 등의 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는 것처럼, 뇌가 스트레스 호르몬에 더 많이 자주 노출되면 뇌 그 자체에 문제가 생기면서 우울감이 증폭되는 것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역시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것이 우울증 극복에 도움이 된다는 조언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어깨를 펴고 양손을 허리에 두고 당당하게 서는 것만으로도 실제로 자신감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하는데 [3], 그만큼 나의 심리적인 상태를 긍정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신체적인 요소를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겠다.
이제 (능력은 쥐뿔도 없지만 ㅋㅋ)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들고 정면을 응시하며 당당하게 살면서 목과 정신 건강에 더 많이 신경써야 하겠다.
<참고자료>
[1] "일자목 증후군(거북목 증후군) 심하면 우울증이나 무력감으로 발전", http://news.bbsi.co.kr/news/articleView.html?idxno=806536
[2] 우울증, 절망감, 자살충동과 자세, http://blog.koreadaily.com/view/myhome.html?fod_style=B&med_usrid=posturedoctor&cid=675839&fod_no=4
[3] 당신의 자신감을 당장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 5, https://www.huffingtonpost.kr/2014/10/19/story_n_60099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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