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일기] 2019.08.14

Life 2019. 8. 1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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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오늘은 새벽예배에 갈 수 있었지만, 아내가 많이 피곤해해서 가지 않았다. 내가 소윤이 바로 옆에 붙어서 같이 자고 있었는데, 내가 일어나서 자리를 비우면 옆에 사람이 없어서 허전함을 느끼는 소윤이가 결국 아내가 자고 있는 위치에 가서 안기고 아내의 숙면을 방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소윤이는 잘 때나 놀고 있을 때나 항상 아내 또는 나와 피부를 맞닿아서 붙어 있으려고 하는데, 그만큼 나와 아내를 믿고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요즘같이 더운 여름에 항상 붙어 있으려고 하니 가끔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기회가 넘칠 때에 많이 안아 주고 애정 표현을 많이 해 주려고 한다.


<오전>

어제보다 조금 더 일찍 하루를 시작하였다. 소윤이도 평소보다 일찍 어린이집에 등원하였다. 어제 목욕을 했기 때문에 머리만 얼른 감고 빨리 준비해서 집 밖을 나설 수 있었다. 덕분에 평소에는 항상 점심식사 이후에 왔었던 스타벅스에 아침부터 와서 여유롭게 주차를 하고 공부하기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요즘은 스타벅스에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독서실과 다를 바 없는 스터디카페에도 자주 갔었지만, 지나치게 조용해서 노트북을 갖고 뭔가 하기 어려운 곳보다는 적당히 소란스러운 곳이 더 좋다. 그리고 나는 주변 소음이 불편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하기 싫은 일을 스스로 지속하는 게 싫어서 딴짓을 하려는 경향이 가장 큰 문제), 스타벅스만큼 좋은 곳이 없다. 이렇게 된장남이 되어 간다. 그러나 나의 생산성을 높일 수만 있다면 평생 된장남이 되어도 상관 없다.

에스겔 21:18-32 를 묵상했다. 죄악과 불순종으로 점철된 원래 있던 이스라엘 왕이 칼의 심판에 넘어진 뒤에, "다스릴 권리가 있는 그 사람이 오면" 왕위를 그에게 넘겨 주겠다는 말씀이 있다. 새로 세워지는 왕은 역사적으로는 바빌로니아의 침공을 받은 뒤에 바빌로니아에서 직접 세운 왕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죄와 불순종에 있는 나 자신이 내 속에 있는 왕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앉으시는 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예수님을 주인 삼는 것이 글자처럼 쉬우면 좋겠지만, 평생 추구하고 지켜야 하는 싸움임을 조금씩 알아 간다. 오늘 예수님을 주인 삼기 위해 애쓰기로 다짐하였다.


<전산학 박사에 대하여>

컴퓨터 과학을 전공하면 취업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지만, 이것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상황에서 막상 살펴 보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에 실망하곤 한다. 박사학위 소지자는 경력직과 비슷하게 채용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산업계에서의 실무 경력과 비교하면 실무 수행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연구실에서 프로젝트를 많이 수행했지만, 프로젝트가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초보적인 수준의 구현에 머무른다. 

결국 박사에게 요구하는 것은 당장 생산 가능한 제품 개발보다는 프로토타이핑을 통한 연구개발에 가까운데, 이것을 다시 말하면 연구 측면에서 남들도 인정하는 성과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좋은 학회나 좋은 저널에 나의 연구 주제로 출판한 논문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상태로 회사나 연구소, 대학교에서 해당하는 연구 주제와 일치하는 채용 공고를 내서 내가 거기에 지원해야만 내가 채용될 확률이 가장 높다.

하지만, 인생의 수많은 결정 속에서 나는 가족을 먼저 선택했고, 프로젝트를 맡을 기회가 올 때마다 다양한 분야를 배우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고, 학교 내에 있는 외국인 친구들을 도와 주는 일에 집중하는 등의 선택을 통해 (누군가는 잘못된 선택이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나는 주어진 시간 동안 내 연구 주제에서 최대한의 성과를 내는 것에 실패했다. 프로젝트는 참 많이 했지만, 연구가 아닌 산업계에서는 그 어느 회사도 실무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 컴퓨터공학의 측면에서 내가 쓸 줄 아는 도구의 수는 많지만, 특정한 한 분야에서의 전문성(expertise)으로 나를 증명할 수 없었다. 다 제쳐두고 오로지 코딩 실력 하나만 놓고 보니, 정보올림피아드 대회를 경험해 본 학부 졸업생들에 비하면 나는 코딩을 못하는 인간이 되어서 그들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것저것 다 만져보며 연구실 서버들에 문제가 터지면 항상 내가 나서서 (그게 재미있었나 보다) 해결하다 보니, 내 연구주제보다는 DevOps 측면에서 오히려 더 잘하는 것 같지만, 요즘은 DevOps 엔지니어는 없어지는 추세인데 누가 뽑으려고 하겠는가?

이력서 상에서 나는 학위 기간은 평균보다 길고, 연구 실적은 많은 것 같지만 어느 한 분야에 특출나지가 않고, 프로젝트 수행을 많이 한 것이 그나마 봐줄 만 하지만 그것도 분야가 여러 갈래이고, 요즘 거의 모두가 맹목적으로 열광하는 인공지능이나 머신러닝 쪽으로 경험이 풍부한 것도 아니었다. 아마 내가 채용 담당자라고 해도 다른 박사의 이력서와 비교하다 보면 내 이력서를 거를 지도 모르겠다. 이력서의 문맥 사이에 감춰져 있는 나의 구구절절 스토리를 누가 알아 주겠는가?

그러나 여기서 자기연민이나 하며 계속 절망해 있으면 진짜로 나는 패배자가 될 뿐이다. 과거에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우울증이 심각해져서 기한이 임박한 일조차 미루면서, 자기 비하를 멈추지 못하면서 인생을 허비하던 내가 최근 들어서야 그 악순환에서 벗어났다. 다시 자기 비하의 늪으로 돌아갈 이유도 필요도 없다. 인공지능 관련 지식을 거의 컴퓨터와 연관된 거의 모든 회사에서 요구하기 때문에, 일상의 시간 중 일부를 떼어서 머신러닝 관련 지식과 도구 사용법을 습득하는 데 할당하면 되는 일이다. 박사까지 하고 보니,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 동영상 강의를 듣고 기억해 뒀다가 똑같이 따라하는 것이다.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는 강의들 중에서 괜찮아 보이는 것 하나를 정해서 그저 따라하면 된다. 코딩 실력도 알고리즘 분야별로 가르쳐 주는 동영상 강의와 문제 샘플과 풀이가 넘쳐나니, 그저 따라하며 이해를 하면 될 일이다. 온라인 문제 사이트에서 몇 개를 풀어 보니, 코딩 속도는 자연스럽게 높아지는 것 같으므로, 그냥 이것저것 쓸데없이 많이 생각하지 말고 해 보면 (just do it) 된다. 

마지막으로 논문을 한 편 쓰고 있으니, 이것도 쓰기 싫더라도 참고 써보자는 생각을 갖고 그저 손을 움직여서 실험을 하고 글을 쓰면 된다. '왜 나는 제대로 논문을 써내지 못할까?', '벌써 졸업하고 나서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난 논문 완성도 못하고 뭘 했나?'와 같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 때문에 오늘 해낼 수 있는 일도 내일로 미뤄지는 경우가 많다. 차라리, '오늘 논문 쓰는 것이 하기 싫지만, 나의 미래를 위해서 꾹 참고 조금만 고쳐 보자. 여기까지만 고치고 게임 한 판 해야지'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훨씬 나은 것임을 경험한다.

어제 또는 그저께와 비교할 필요도 없다. 오늘 주어지는 하루는 그냥 오늘일 뿐, 내가 개선되는 것에만 집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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