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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 요즘 말하는 꼰대, 멍부(멍청함+부지런함)가 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 연구실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를 변명하고, 다른 장소에 가도 노트북을 통해서 일에 대한 on-line을 유지할 수 있다는 변명을 한다.


연구실에서 얼마나 오래 연구를 했는지가 중요하게 평가받기 위해서는 단위 시간마다 일을 진전시키기 위해 누구나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집중을 했다는 사실부터 전제가 되어야 한다.

부끄럽지만 연구실에 오래 앉아 있으면 오히려 그만큼 단위 시간당 집중도는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그 동안의 경험으로 알 수 있다. 내가 이만큼 열심히 하고 있다는 피상적인 것에만 집중하고 이것을 나의 변명 수단으로 삼는 것은 야근과 충성심을 강요하는 조직 문화의 근간이 된다.내가 싫어하는 겉만 번지르르하고 알맹이가 부실한 상황이 지금 내 삶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고, 매우 부끄럽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

어떤 일에 투입된 시간으로 결과에 대한 변명을 할 거라면, 진짜로 그 투입한 시간에 온전히 집중을 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철저하고 독한 사람은 아니다. 어쩌면 맡은 그 일 자체가 너무 재미있어서 빠져든 채로 하지 않는 이상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하는 시간 내내 집중만 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일처리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싶다. 그게 논문을 작성하는 작업이든, 실험을 위한 코딩이든, 연구과제 일처리든 상관 없이 말이다. 내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변명 거리를 만들기 위해 가족에 피해를 주고, 내 수면과 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끼치고, 일은 일대로 되지 않아서 심리적으로 더 쫓기기만 하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지금 내가 제 시간에 집중해서 일을 끝내거나 적어도 구색을 갖추는 수준까지는 처리함으로써, 내가 맡은 이 일이 가까운 미래에 주는 가치와 진짜 성취감을 누리고, 쉴 때는 마음 편히 쉬어야 하겠다.

밤까지 지속되는 일처리 과정에서 집중하지 못하겠고 자꾸 웹질에 빠지기 시작한다면, 차라리 얼른 하던 일을 일시중지하고 잠을 잘 것인지를 결정을 내리고, 한 번 결정을 내렸다면 빨리 실행에 옮기자 (그러니까 그냥 빨리 잠들자).

자려고 누웠는데 지난 하루가 비효율적이고 뚜렷하게 된 게 없어서 속상하다면, 내일은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하면 될 지 곰곰히 생각하자. 그러면 빨리 잠이 들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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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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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후배들이 고생하고 있던 국제학회 논문 작업에 갑작스럽게 due date를 5일 앞두고 참여했고, 결론적으로 논문 제출까지 어떻게든 성사를 시켰다. (그게 accept될 지는 알 수 없고, 현실적인 어려움도 크지만, 적어도 not bad라고는 말할 수 있는 레벨이었다.) 그런데 내가 내 졸업을 위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개인연구와 이를 위한 저널논문 작업은 거의 1년 반이 되도록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나의 생산성은 어째서 이런 엄청난 극단을 찍고 있는 것일까?

이대로라면 내 연구 주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거나, 내가 내 개인연구를 대하는 태도가 심각하게 잘못되었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은데, 아무래도 후자인 것 같다. 후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후배들과 같이 작업한 이 논문이었다.


이번에 후배들과 같이 작업했던 (원래 후배들이 이미 거의 5-6개월 전부터 연구를 시작해서 고생하고 있던) 논문을 작업하던 당시의 상황을 한번 되짚어 보았다.

  • 앞서 이미 언급했듯이, 나는 due date를 5일 남기고 지도교수의 요청에 의해 투입되었다. 
  • 그나마 후배들이 작성하던 이쪽 연구내용을 처음 구상할 때의 미팅에 몇 차례 참여했고, 후배들과 연구실에서 평소에 얘기를 나눴었기에 논문의 목표와 문제정의를 알고는 있었다.
  • 하지만 관련 분야 연구의 디테일은 약했기 때문에 후배들을 제대로 가이드하기 위한 related work가 절실했다. 5일 동안 우리 논문과 직접 연관된 논문 약 30편, 직접은 아니지만 작성 과정에서 참고하기 위해 약 10편, 합쳐서 약 40편 가량의 논문을 말 그대로 읽어'제꼈'다.
  • 연구내용을 따로 정리할 여유가 없어서, 오직 각각의 기존 연구 논문을 읽을 당시의 집중력과 기억에만 의존해서 바로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로 바꿔서 논문 여기저기에 써놓았고, 그걸 나중에 앞에서부터 읽어내려가면서 논지에 맞는 말로 바꾸려고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절반 가량은 버렸다.
  • 이미 아이디어를 검증하는 실험은 꽤 진행해 두어서 데이터가 있었지만, 그걸 설명하기 위한 구조 설계와 방법론에서 많은 보완이 필요한데 지도교수님도 그 부분은 제대로 확인해 주시지 않았기에 (새로운 패러다임 같은 거라서 vision 제시에 몰두하셨지만, 그걸 실현시키려는 여러 가지 실제적인 시도에 대한 지적에서 교수님의 일관성이 없었다. 교수가 학생이 아는 전체를 똑같은 수준에서 다 알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너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임) 지도교수의 vision과 후배들의 구현 사이를 최대한 이어붙이기 위한 설계를 매일 고쳤고, 제출 직전 몇 시간 전까지 구조 설계를 후배들과 같이 토의했다. 제대로 된 연구라면 당연히 좋은 방법이 아니다. 뭐 일단 완성해서 제출해야 하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 나름대로의 실험 결과가 있었는데 그걸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지도교수와 이야기해서 승인받고 진행하기에는 즉시 만날 수가 없어서 너무 느렸기에 내 선에서 후배들과 계속 얘기해서 '이 결과를 이렇게 보여주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해 계속 검토했다.
  • 서론과 바로 다음 섹션인 Motivation(연구의 필요성) 부분을 내가 전적으로 맡아서 썼고, 지도교수가 시나리오가 틀렸다고 하면 작성했던 시나리오 전체를 폐기처분하고 새로 썼고, 그게 실제로 실험했던 내용과 일치하는지 후배들과 틈틈이 검토했다.
  • 이미 써둔 부분에 대해서도 수정할 곳이 눈에 띌 때마다 고쳤는데, 결국 시간이 부족해서 전체를 다 내가 직접 수정할 수는 없어서 후배들에게 "이렇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했다"고 내용을 통째로 만들어서 그걸 영어로 써 달라는 구체적인 요청을 해서 검토하지 못한 부분을 마무리지었다.
  • 원래 개인적으로 쉬면서 포털 사이트 뉴스와 SNS를 보는 시간이 하루에 한 시간이 넘었는데, 이 작업을 진행하는 5일 동안 뉴스와 SNS를 보는 시간이 거의 없었. 사실 논문을 찾다가 얻어걸린 알파고 인공지능 관련 뉴스 기사가 하나 있었던 기억은 난다. 어이없는 것은, 그 쪽의 기술 진보가 신기해서 바쁜 와중에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 회사가 업로드한 arxiv 최신 논문을 또 읽어 보았. (...)
  • SNS 하는 시간 자체도 많이 줄어들었지만, 웃기게도 좋아요를 누르거나 내가 직접 포스팅을 쓰는 등의 활동에는 차이가 없었다. 즉, 한번 좋아요/댓글 등으로 반응했던 것을 또 보거나, 의미 없이 반복적으로 하던 눈팅이 논문 쓰는 동안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비록 후배 두 명과 같이 작업했고 이미 논문의 전체 뼈대와 실험 결과가 어느 정도 나와 있는 상태이긴 했지만, 논문을 제출하기 전 5일 동안 나는 '아, 내가 알고보니 이 정도까지도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라는 점을 깨닫게 해 준 매우 소중한 기회였다.

즉, 반대로 말하면, 내가 졸업하겠다고 선언한 나만의 연구주제에 대해서 거의 1년 반 동안 정말로 형편없는 집중력을 보여 주었음을 증명해 주는 생생한 반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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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비슷한 사례가 작년에도 있었던 것 같다.
나와 비슷하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던 후배가 재학 당시에 국제학회에 제출했던 (그 때도 내가 2저자로 같이 참여) 논문이 아쉽게 떨어지고 마침 후배는 졸업해서 나가는 바람에 리뷰를 보완한 후속 논문을 쓴다면 내가 혼자 작업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갑자기 지도교수님에 의해서 '어디어디 학회에 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당 국제학회 제출 마감 약 일주일을 남겨 두고 받게 되어서, 일주일 동안 실험을 더 하지는 못하고 대신 글을 많이 고쳤다. 특별히 서론의 시작 부분인 연구의 배경과 필요성 부분을 새로 썼고, 나머지 부분은 논리 진행을 유지한 채 문장과 표현만 바꿨다. 그렇게 해당 학회에 발표 게재가 되었다.

물론 그 당시에도 나는 지금 여전히 지지부진하고 있는 그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구체적으로는 실제 실험환경을 세팅해 놨다가 문제정의를 설명하지 못해서 개발을 중단하고 시뮬레이션 환경으로 포팅하던 중이었다. 기존의 실험 환경을 그대로 시뮬레이션으로 옮기는 것도 오래 걸렸지만, 새로운 문제정의에 맞게 보완하는 작업은 아직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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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것일까?
내가 온전히 책임을 질 수 있고, 그 책임으로 인한 피해가 나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 경우에 대해서는 내가 너무 마음을 놓아 버리는 것은 아닐까? 내가 책임감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위치에서는 그 반대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최근에 5일 만에 끝낸 논문 작업에 처음 투입되었을 때, 그 논문이 목표로 하는 학회는 분산시스템 분야에서 top을 달리는 유명한 국제학회였다. 내가 처음 투입되던 그 때의 논문의 작성 상태나 후배들과 지도교수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으로 인해 후배들이 제출할 수나 있을지 회의적인 마음이 컸었다. 무모한 도전이었고, 미친 짓 같아 보였다. 
나 스스로 내가 뭐하러 저 불구덩이에 뛰어드는가 하는 생각을 가졌을 법도 한데, 오히려 정 반대였다. 그 때 나는 이걸 뜯어고쳐서 "적어도 이 국제학회에 제출해도 부끄럽지는 않을 만한 구색을 갖춘 논문을 한번 만들어 보자"는 이상한(?) 목표의식이 생겨서, 스팀팩 맞은 테란의 마린마냥 날뛰었다. (...변태인가?) 후배들과 지도교수 사이에 거의 싸움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그 상황을 해결하고 싶었고, 후배들에게 결과물을 성사시켜 주고 싶었고, 이번 기회에 지도교수와 이 분야 연구하는 학생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간격을 최대한 좁혀야겠다는 쓸데없는 사명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 개인연구 주제로 논문 제출이 끝나면 바로 저기 후배들 연구에 뛰어들어서 공동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는데, 그게 강제로 실현되다 보니 마음껏 날뛸 수 있었던 측면도 있다.

내 것을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얼마 전의 그 5일 동안 느꼈던 이상한 희열(?)을 사실 내 개인연구에서 찾아야 하는데, 이게 참 어렵다.
내가 남들이 연관되어 있는 일에 대해서는 긴장감이 확 높아지는 반면에 나 자신만의 목표의식에 대해서는 역설적으로 책임지고 싶지 않은 것일까? 잘 하지 못해도 그 피해가 나를 넘어가지 않으면 그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는 쓸데없는 겸손 탓일까? (사실 이쯤 되면 겸손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겠지만...) 아니면 혹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 때문은 아닐까?

이번 겨울이 마지막 기회인데, 나 자신에 대해서 잘 생각해 봐야겠다.
나의 동기부여가 어디서 오는 것인지, 그걸 나 자신의, 내 인생을 위한 목표나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소명의식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를 잘 생각해 보고 내 개인연구에서도 목표를 향해 쉼 없이, 그리고 즐겁게 달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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