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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데이터를 뽑아야 해서 시뮬레이션 코드와 스크립트 파일들만 한동안 쳐다보고 살면, 어느 순간 자신감이 무지 많이 떨어져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거 다 이미 누군가 했던 것 아닐까?"

"이제서야 겨우 이 정도 결과가 나왔나? 한참 더 해야 되는 것 아닐까?"

대략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이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려면 논문을 읽어야 하는데,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기분이라면 참 좋겠지만 그런 종류의 읽기도 아니고 쉽게 되는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울함이 극단에 치닫고 논문을 어떻게든 써야만 하는 궁지에 몰려서 다시 내 분야의 논문을 읽기 시작하면 점점 그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게 된다. 특히 잘 쓰여진 논문을 연속해서 여러 개를 읽고 나면 머릿속이 정돈되고 내 연구를 어떻게 구상할 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내 겉모습에서 아무런 달라진 점은 없다. ㅋㅋ)

그런데 잘 쓴 논문과 그렇지 않은 논문을 구분할 줄 알려면 일단 많이 읽어봐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는 듯.
유명한 학회/저널에 출판되었고, 많이 인용되었으며, 오래된 (기왕이면 해당 연구 분야의 초석을 놓은) 논문은, 마치 고전 문학을 읽는 기분이 들겠지만, 분명히 유용한 측면이 있다. 깨끗한 산 속에서 자란 인삼을 자연주의 방식으로 숙성해서 진하게 달여 낸 홍삼 진액 같은 느낌이 있다. 버릴 것이 전혀 없고 몸에 양분과 에너지를 공급하고 부작용이 없는 그런 느낌.


그나저나 빨리 저널 논문을 완성해야 하는데, 당장 글을 쓰는데 필요한 2018년도 논문부터 찾아서 읽고 정리를 시작하는데도 불구하고 결국은 1995~2000년 언저리의 논문까지 다시 오고야 마는 나도 참 징하다. ㅜㅜ 내 연구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고 마치 모래 위에 쌓은 성 같은 허술한 기분은 여전히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쯤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는" 이라는 말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단계가 되면 좋겠다. 결국 일관되고 꾸준한 노력으로 귀결된다.

그동안의 집중력 부족과 끈기 부족이 초래한 시간 낭비를 이번에는 꼭 메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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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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