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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에 첫째를 키울 때는 경제적 여건과 육아에 대한 지식이 모두 부족하다 보니 육아 아이템의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없었다. 이번에 둘째를 키우면서부터는 몸의 고생을 아이템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면서, 첫째 때 쓰지 않았던 물건들을 사서 쓰게 되었다. 막상 둘째를 키우면서 써 보니 첫째 때도 진작에 사서 썼으면 좋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물건들이 몇 가지 떠올라서 정리한다.

 

1. 이동식 바퀴달린 3단 트레이

집안 어디서든 아기를 눕히고 바로 기저귀를 갈거나 옷을 갈아입히고, 수유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기저귀, 가재 손수건, 아기옷, 물티슈는 항상 손이 닿는 곳에 있어야 하는데 이걸 고정된 서랍장에 넣어 두면 매번 꺼내러 가야 하는 게 일이다. 따라서 바퀴 달린 트레이에 필요한 물건들을 넣어 두고, 아기를 안고서도 발이나 몸으로 밀거나 끌어서 이동시킬 수 있으면 편하다. 트레이 위에 뚜껑이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자유롭게 선택하면 될 듯.

 

2. 매직캔 쓰레기통

매직캔 쓰레기통은 보통의 쓰레기통과는 달리 기저귀를 버리는 데 최적화된 쓰레기통이다. 기본적으로 냄새 차단 효과가 있고, 뚜껑은 조용하게 열고 닫히고, 쓰레기통이 차면 편리하게(?) 비울 수 있다. 통 속에 쓰레기 봉투를 별도로 집어넣는 방식이 아니고, 내부에 아주 긴(...) 비닐이 들어 있는데, 용량이 차면 중간을 싹둑 잘라서 묶어서 버리고, 그 다음 잘린 부분을 묶어서 다시 쓰레기를 채우는 식이다. (무한리필 비슷한 느낌인데 그 반대 개념?)

매직캔 스텔라 휴지통 21리터.
속 뚜껑이 냄새를 차단한다. 그리고 겉 뚜껑은 닫힐 때 천천히 내려와서 소음이 없다.

 

3. 역류 방지 쿠션

제이앤제나 커버분리 역류방지쿠션

신생아부터 6개월까지는 식도와 위 사이의 판막이 미숙해서 수유하고 나서 역류가 잘 일어나는데(토하는 것과 다름. 그냥 줄줄 흘러 나오는 느낌... =_=;;; ), 역류를 줄이려면 아기 상체가 위로 가도록 비스듬히 안고 있어야 한다. 경험상 아기가 젖을 먹은 뒤로 한시간 이내에는 언제라도 역류를 하는 것 같고, 심지어 트름을 잘 시키고 나서도 역류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아기를 상체를 비스듬이 세운 채로 한시간 동안 계속 안고 있기는 힘들기 때문에 아기가 비스듬하게 누워서 역류를 방지하는 역류 방지 쿠션이 도움이 된다.

막상 써 보니 분유를 많이 먹고 나서는 역류방지 쿠션 위에서도 역류하는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있더라만... 그래서 내부에 방수커버도 같이 씌워져 있는 제품을 샀다. 평평한 바닥에 바로 눕혀놓는 것보다는 역류하는 양과 횟수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으므로 유용하다.

사실 부가적인 요소인데 오히려 좋은 점이 있다면, 아기가 역류 방지 쿠션을 편안하게 느껴서 잘 잔다는 것. ^^ 단점은 아기 침대보다도 역류 방지 쿠션을 더 좋아해서 정작 아기 침대에 눕히면 깬다는 점이 있겠다. ㅋㅋ

 

4. 젖병 소독기

젖병 소독기는 육아의 기본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우리는 그 기본적인 것을 첫째 때 안 썼다. ㅠㅠ 그 이유는 첫째가 표면적으로 혼합수유였지만 실상은 모유 대 분유 비율이 9:1이어서(...) 젖병을 쓸 일이 워낙 적었기 때문에...

스펙트라 젖병 소독기.

하지만 그래도 젖병을 10%라도 쓰니까 결국 소독할 필요는 생겼었는데, 그 때마다 냄비에 물 받아서 끓는 물에 젖병을 열탕 소독했던 기억이 난다. 몇번 안 하는 일이라고 해도 손이 많이 가는 위험한 작업이고, 밤낮없이 울어 대는 아기를 돌보다 말고 비몽사몽 간에 열탕소독을 하게 되면 난이도가 상승한다. ㅜㅜ

이번 둘째는 모유 수유를 시도했으나 안타깝게 실패해서 젖병이 많이 필요해졌고, 이에 따라 1) 여러 개의 젖병을 다른 식기와 분리하면서 일정한 위치에 보관하는 목적, 2) 젖병 소독과 건조, 3) 먼지 유입 방지 등의 목적에 부합하는 젖병 소독기를 들여 놓게 되었다.

막상 써 보니 값어치를 충분히 한다. 젖병뿐만 아니라 첫째딸이 쓰는 물통과 앞으로 쓰게 될 이유식 그릇을 소독/보관는 용도로 한동안 쭉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5. 전기 티포트

라이녹스 티엠포 전기 차 주전자

분유 탈 때는 40도 온도의 물이 계속 필요한데, 전기 주전자 중에서 일정한 온도를 유지시켜 주는 주전자가 도움이 많이 되고 있다. 이게 없으면 끓인 물과 찬물을 매번 섞거나, 적당한 온도로 식혀서 보온병에 보관하고 있어야 하는데(이것도 길게 보관하면 식는다)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온도 유지 기능이 있는 전기 주전자는 한번 끓인 뒤에 설정한 온도를 계속 유지시켜 주기 때문에, 분유 탈 때 필요한 40도의 물을 즉시 얻을 수 있다. 다만, 전기 주전자에 40도로 유지한 물을 하루가 넘도록 보관하는 것은 공기 중으로 유입되는 세균 증식 등 조금 염려가 되어서, 하루가 넘어가면 새로 물을 끓인 뒤에 다시 40도로 식혀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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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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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7일, 임신 38주차에 아내와 같이 예정된 진료를 받으러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로 확인해 보니, 아기가 자궁 아래쪽으로 많이 내려와 있었다. 5월 초까지만 해도 조산 위험 때문에 입원해 있었는데 퇴원 후에는 오히려 분만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언제 나올까 생각하던 차에 드디어 때가 되었다. 의사가 말하기를, 뱃속에서 아기가 고개를 살짝 든 상태라서 분만으로 유도되지 않고 있던 거라고... 정상적으로 고개를 평평하게(그러니까 정수리가 완전 아래쪽을 향해서) 있으면 벌써 분만했을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오늘(진료받던 날) 바로 분만하자고 하셔서 그대로 분만실로 갔다. ㄷㄷㄷ

낮 동안은 진통의 주기가 조금씩 짧아졌고, 중간에 무통 주사도 맞았다. 첫째를 출산할 때에는 무통 주사를 맞지 못하고 자연분만을 해서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었는데, 이번에는 적절한 타이밍에 무통주사를 맞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오후 1시에 첫째가 하교하는 시간이 되어서 첫째 딸아이를 데리고 와서 병원 바로 옆 카페에서 기다리던 중... 오후 3시에 와이프한테서 지금 곧 분만할것 같다는 전화가 걸려 왔다.

첫째와 얼른 병원 3층에 올라갔는데, 그 사이에 벌써 아기가 나와 있었다. 전화 받고 5분도 안 걸려서 달려갔는데, 오마이갓... 이렇게 빨리?! 산모아 아기 모두 건강하게 무사히 순산해서 정말 다행이다.

생후 2일째의 모습. 평화롭다.

첫째가 초등학생이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인데, 그래서인지 첫째가 동생을 이뻐한다. 나나 아내가 둘째를 돌보고 있으면 옆에서 거들기도 하고, 기특하다.

생후 3일, 동생을 안아 본 첫째.
생후 3일 잘때 모습. 옆에 인형보다도 작다. ㅠㅠ
생후 17일째 모습. 그 사이에 통통해지고 눈도 떴다.

첫째 때는 산후조리원에 3주를 있으면서 아기를 어느정도 키워서 나왔는데, 이번에는 아내가 완강히(!) 조리원 대신 산후도우미를 쓰겠다고 해서, 아내 의견대로 집에서 산후도우미와 함께 산후조리를 했다. 그래서 생후 3일부터 아기를 집에서 돌보게 되었는데, 아기의 몸집이 너무 작고 울음소리마저 너무 여린 것이었다. ㅜㅜ 그래도 아가 몸에 문제도 없고 집에서도 적응을 잘 해줘서 다행이다.

신생아는 2~3시간 주기로 분유를 주거나 모유 수유를 하고, 기저귀도 맘마 먹일 때 전후로 갈아주면 얼추 루틴(routine)하게 돌아간다. 하지만 가끔 배앓이를 하면 루틴에서 벗어나서 울기도 하고, 응가를 연속으로 많이 하기도 하는 등 오차는 있다. 낮과 밤에 상관 없이 2-3시간 주기를 거쳐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생후 100일까지는 통잠을 자는 게 아니니 피곤하겠지만, 그래도 이제 4인 가족으로 재미있는 일상을 쌓아 가기를 기대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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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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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회사에 입사한 지 1년 반쯤 되었는데, 이제서야 업무 프로세스가 대략 보인다. 그리고 회사 전반적으로 무엇에 '긴급함'을 느끼고 무엇에 '중대함'을 느끼는지도 조금은 분간할 것 같다. 물론 완전히 분간하지는 못한다. 아직도 모든 일을 우선순위 동일한 task로 보고 queue에 들어오는 대로 처리하는 경향이 남아 있어서...

처음 1년 간은 경력신입(박사는 경력 입사인데, 교육은 신입의 1/10도 안함) 포지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나라도 나한테 일이 오면 완전 그 업무의 끝장을 보려고 달려들었는데, 이제는 부서 차원에서 내가 어느 쪽 일을 맡아야 하는지 가이드를 해 주는 느낌이다. 사실 부끄럽고 아직도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왜냐하면 현장의 실제 돌아가는 상황을 먼저 파악하고서 기획이니 설계니 신기술이니 이런 얘기를 해야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안 될 테니까 말이다. 혼자서 아직 기획/설계/투자/구축/운영 과정 전체를 해본 적 없어서 온전한 1인분이라 말하기 좀 부족하다 보니 더 현장의 세세한 이슈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직접 확인해 보거나, 그걸 처리하는 다른 동료의 어깨 너머로 계속 나도 참견하게 되었었다.

그러다가 2021년부터는 오로지 타의에 의해서 중요한 보고 자료 정리를 두 가지 맡게 되었고, 문제의 원인 분석, 현황 조사, 개선 대책 등을 보고하기 위해 자료를 많이 정리했다. (보고는 고참 분들이 하심.. 아마 내가 보고하면 있는 대로 다 얘기해서 폭풍이 몰아칠 듯)

문제는 우리 부서 일이 아닌 것 같고, 문제 원인을 파악하면 할 수록 이건 우리 소관이 아니고 원인이 되는 장비와 그것의 담당 부서가 다른 부서임이 명백해지는데도 해당 부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다들 바쁘고 당장 직면해 있는 긴급한 처리 건들도 많아서 그러겠거니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 원인을 검증하려고 테스트도 여러 번 했는데(이 과정에서 협력사 등등 여럿이 미리 계획하고 결재도 받아 가면서 움직여야 했다.) 한 번도 참여를 안 하고 문제의 원인도 아니라고 발뺌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테스트도 하고 정리도 하고 자료도 찾아보고 등등 내가 다 하고서, 윗선(많이 높은 윗선...)에 본격적으로 보고를 했더니, 누가 봐도 빼박 저쪽 부서의 특정 장비의 뭔가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되었다. 사실 우리 부서 선배분께서 최대한 일반화된 표현과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빨리 개선하고 끝내는 방향으로 보고를 했지만, 집요한 질의응답 과정에서 결국 나도 "결과 데이터가 알려 주는 그대로" 얘기를 했고, 회의실에 한바탕 폭풍이 지나갔다. 대충 뭐 왜 그렇게 오랫동안 안바꿨냐, 그걸 관리하는 협력사는 왜 제대로 안하냐, 이러면 다른 데도 문제 있는거 아니냐 등등...

아무튼 보고가 끝나고, 그제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해당 부서는 이제서야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테스트 결과를 신뢰할 수가 없다고. 자기들+자기들이 관리하는 협력사와 함께 똑같은 테스트에 참관해서 여러 번 반복해서 똑같은 문제가 일어나는지 보겠다고, 그 뒤에 공식적인 의견을 만들어 보고하겠다고 한다. 이럴 거면 진작에 그것도 테스트를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반복하고 얘기도 많이 했는데 그 때는 왜 가만히 있었을까? 사실 원인 분석할 때에도 내가 맡은 일과 관련이 없는 다른 장비의 다른 서비스를 대신 해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래서 마지막으로 원인 분석에 대한 결론이 어느 정도 나와서 종료시키고 테스트 환경도 다 철수시켰는데 자기들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니까 이제서야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보니 매우 짜증이 났다.

내가 열심히 했던 것은 오로지 목표 지향적인 이유였다.
"문제가 발생했고, 원인을 분석해서 빨리 개선하는 것."
"테스트가 필요하다고 하니, 최대한 실제와 유사한 조건에서 반복 수행하고 데이터를 최대한 얻는 것."
"얻은 데이터를 있는 그대로 분석하고, 확실히 아는 데까지는 원인과 해결책을 도출하는 것."

그리고 근본적으로(네트워크 교과서적으로) 따지면 사실 우리 부서의 범위(즉, 네트워크 7계층 중 아무리 멀리 잡아도 4계층 이하의 범위)라고 볼 수 있어서 수긍하고 열심히 했던 것인데, 정작 문제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되는 장비의 명백한 담당 부서와 담당자는 수 개월 동안 "그럴 리가 없다", "다른 탓이다"고만 하면서 버텼었다. 내가 그 "아니"라고 잡아떼는 것을 다 불식시키기 위해서 조건을 바꾸고 반복도 하고 데이터도 더 만들고 자료도 더 찾아서 정리한 것인데 말이다. 결국은 보고하는 자리에서 한바탕 난리가 나고 나서야(우리 부서가 발표했으니 결국 우리 부서가 혼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방어 기제가 발동해서 적극적으로 나서며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고 있으니, 내가 너무 목표지향적으로 주어지는 일의 해결에만 몰두하는 것이 참 순진했던 것 같다. (현타 ㅋㅋㅋㅋㅋ)

일단은 자기 일이 아니라고 동의를 안 하고 "재검토 부탁드립니다"라는 예의바른 회신 이메일이 몇 주, 길게는 몇 달에 걸쳐서 오가는 것을 보며 어이가 없었는데, 그렇게 서로 일 안 맡으려고 총대 메고 메일 보내는 사람들이 다 10~20년씩 근속하신 베테랑 분들인 것을 생각해 보면 다들 산전수전 많이 겪고 나서 보호본능부터 발동하는 것일까 궁금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경영진이 대놓고 지시한 일인데! 상세히 파악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놓고 그건 아니라고 보고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보기에는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 그 문제를 오픈해서 개선하려는 의지도 없고, 그렇다고 그대로 계속 내버려 두면 나중에 또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도 누군가(즉, 내가) 먼저 움직여서 어떻게 해주는지 들어 보고 동의만 하고 넘어갈 궁리만 한다.

이래서 회사가 사람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 것이구나. 원래 졸업 전까지는 연구 주제 자체가 어려워서 그걸 해결하는 게 너무 막막해서 좀 목표가 명백하고 구현과 실행만 하면 되는 그런 일을 원했는데, 막상 회사에 와 보니(연구소는 다를 수 있다, 사업부라서 더 극명한 듯) 실행 자체에 벌써 이해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서 답답한 것이 현실이었구나.

그래도 이미 여기까지 왔고, 한 차례 보고 후 2라운드가 시작됐으니 뭐... 이제 나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저쪽 부서가 직접 움직이도록 얘기를 해 봐야겠다. (사실 손이 근질근질해서 결국 내가 또 나서서 셋업하고 진행하고 먼저 움직일 가능성이 높지만...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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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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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발단

아내가 임신 8개월에 자궁 수축 가능성 때문에 10일 가량 산부인과에 입원하게 되었다. 처음 며칠 간은 내가 휴가를 내고 8살 딸아이와 둘이 집을 지키다가, 그 뒤에 휴가를 계속 쓸 수는 없어서 장모님이 오셔서 일주일 간 딸아이 등/하교와 식사를 챙겨 주셨다.

그 와중에 딸아이는 원래 체질적으로 호흡기가 약해서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비염이 심해졌고, 병원에 정기적으로 가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 코로나19 아님).

오늘도 병원에 가서 코, 목, 폐를 살펴보고 약을 새로 처방받아야 해서, 내가 먼저 소아과에 가서 진료 예약을 하고 돌아왔다. 대기 인수가 꽤 돼서 1시간 뒤에 다시 나가면 되었고, 40분쯤 지나서 딸아이에게 병원에 가기 위해 옷을 입으라고 했다. 그런데 아이는 내복 차림에 가디건 상의만 하나 걸치고 나가겠다고 한다. 40분 전에 병원 진료예약하러 혼자 나갔을 때 바깥 공기가 의외로 쌀쌀해서, 나는 아이에게 추우니까 위/아래 활동복(어린이 트레이닝복) 혹은 평소 등교 때 입는 라운드 티와 바지를 입으라고 했다. 그런데 싫다고 한다. 그걸 지켜보던 장모님께서도 거들기 시작하셨다. 추우니까 입어야 한다, 그렇게 내복 차림으로만 나가면 부끄럽고 안된다 등등 잔소리를 하셨다.

 

*나의 역린을 건드린 아이

그러자 아이는 장모님의 잔소리를 듣기 싫다는 표현을 온 몸으로 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양 손으로 귀를 막는 행동을 취하고, 장모님을 곁눈질로 노려보더니, 급기야 자기 방에 드러누워 버렸다. 나는 옷을 입고 나올 거라 예상하고 현관문 앞에 벌써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5분 넘게 나오지를 않는 아이에게 들릴 수 있는 목소리로 "얼른 가자! 진료 순서 다 돼가!"라고 말했다.

결국 내가 아이 방에 들어가서 데리고 나와야겠다 싶어서 방에 가 보니, 여전히 내복 차림에 활동복은 내팽겨쳐져 있고, 방금 전에 분명히 걸치고 있던 가디건도 다시 벗어던져 놓았다. 양말도 아직 신지 않았고, 그 상태로 아직도 방에 드러누워 있었다.

"얼른 가야해!" 라고 소리치는 나를 보고 그제서야 일어나서 양말을 챙긴다. 하지만 트레이닝복은 여전히 입기 싫은가 보다. (※주: 이 옷은 아이가 평소에 외출할 때 즐겨 입는 옷이라서, 옷 자체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다.) 옆에서 한번 더 장모님께서 잔소리를 시전하시고, 결국 트레이닝복과 외투는 내가 직접 집어 들고 나왔다.

"빨리 나와!!"

내 목소리가 한층 더 커졌고, 그제서야 내 분노 레벨이 높아진 것을 인지한 딸아이가 양말을 주워 신기 시작한다. 나도 이미 화가 나서 양말을 신고 있는 아이를 다그쳤다. 빨리 신으라고, 늦었다고.

한시간 뒤에 병원에 다시 가야 하는데 70분이 넘어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나는 현관문을 쾅 닫았고, 여전히 내복 차림인 아이는 나한테서 외투만 뺏어서는 입었다. 평소에 외출할 때는 그렇게 자기가 입고 싶은 공주 옷이나 화려한 옷을 챙겨 입겠다는 아이가, 지금은 잠옷에 부스스한 머리 그대로 외투만 걸치고 나서는 상황도 어이가 없었고, 무엇보다도 진료 예약해 둔 시간과 진료 순서가 있는데 그 순서를 벗어난 상황에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빨리 따라와!!"

집을 나서서 병원에 갈 때까지 한 마디도 안하고 내가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었고, 아이는 눈치를 보면서 내 보폭을 빠른 잰걸음으로 뒤따라 왔다. 병원에 도착하니 역시나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해서 우리의 진료 순서가 다시 맨 끝으로 가 있었다. 한시간 10분 전에 내가 혼자 진료예약을 할 때 우리딸의 진료 순서가 16번째였는데, 지금 다시 가서 확인하니 새로 16번째로 되어 있고, 우리 아이 이름이 진료 순서 모니터에서 보이는 제일 마지막 이름이었다.

결국 나는 병원에 다른 부모와 아이들, 간호사와 사무원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아이를 노려보며 크게 소리치듯 말했다.

"너 때문에 늦었잖아! 옷 안입겠다고 난리 쳐서 바로 진료받을 수도 있는걸 지금 다시 순서가 꼴찌잖아! 한시간 더 기다려야 돼!!"

간호사가 멋쩍게 웃으며 우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보고 계시고, 주위 아이들도 핸드폰과 TV 애니메이션을 보다 말고 내 얼굴을 쳐다 보고, 엄마들도 나를 보고, 심지어 울던 아이도 잠깐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병원 밖 인도에 아이를 세워 놓고 한층 더 큰 목소리로 혼내기 시작했다. 병원 진료 후에 슈퍼마켓에서 장도 봐야 하는데 너 때문에 늦었다는 종류의 얘기를 큰 목소리와 씩씩거리는 표정, 나의 과장된 제스처에 발을 쿵쿵 구르는 행동과 함께 쏟아 부었다. 이내 딸아이는 울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병원에 있던 아내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무슨 일이냐고. 전화상으로 또 방금 있었던 일들을 시간 순서대로 얘기해 주었다. 대신 그 얘기를 아주 흥분된 어조로, 씩씩거리며 빠른 속도로 내뱉었다. 우리는 분명 병원 밖에 있었지만, 아마 얇은 유리벽과 유리문을 뚫고 목소리가 다 들렸을 것이다.

한시간 정도를 더 기다리기 위해서 바로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갔다. 나는 이미 온 몸으로 화를 표현하며 자리에 앉았고, 비어 있는 장바구니를 쿵 내려놓고, 핸드폰도 테이블 위에 던지듯 놓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하..

우리 테이블과 가까운 곳에 앉은 어른들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서 나를 한번 쳐다보며 한 5초 정도 정적이 흐르다가, 이내 다시 수다를 이어 가셨다. 아이는 내 건너편 의자에 마주 앉아서 내 눈치를 보며 쥐 죽은 듯 가만히 있었고, 그렇게 20분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병원에서 앞선 환자들의 진료 시간이 길어져서 잠깐 기다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딸아이가 심심해하지 않도록 태블릿도 미리 챙겨서 나왔지만, 집에서부터 시작된 이 답답한 상황과 내 머리 끝까지 차오른 분노 때문에 일부러 태블릿을 꺼내지 않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단 세 모금에 다 들이키며 열기를 낮추고, 딸아이를 우두커니 내버려 두고 혼자서 핸드폰으로 인터넷 뉴스를 보았다. 다만 세상 돌아가는 소식은 하나같이 성질을 돋구는 것들 뿐이라 역효과가 나서 다시 핸드폰을 던지듯 테이블에 두고, 이미 거의 얼음물과 다를 바 없는 아메리카노만 마시며 말 없이 카페에 앉아 있었다.

갑자기 아내로부터 다시 걸려 오는 전화...

병원에서 우리 진료 순서를 앞으로 당겨 주었으니 10분 안에 다시 병원에 가 보라고 한다. 병원에는 원래 아내가 매번 데리고 갔던 터라 병원에는 아이의 이름으로 아내의 전화번호가 등록되어 있어서, 아내가 병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이다. 방금 아이가 아주 많이 혼나고 있었던 것 같아서 너무 안돼 보여서 순서를 바꾸어 주었다고... 내가 대놓고 소리치듯 화를 내고 다그쳤으니, 심지어 도로 건너편에 지나가는 사람이 봤었어도 심하게 혼나는 줄은 알았을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내가 부끄러워하고 민망해야 정상인데, 갑자기 이상한 생각부터 먼저 들었다.

'내가 아이에게 평소에 거의 화를 안내는데, 잘못한 행동에 대해서 이렇게라도 크게 혼내서 정신적 충격(?)으로 행동이 달라지면 어떨까?'

당연히 미친 생각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 안의 다른 인격이 알아채고 '그건 미친 거다'라고 경고를 보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지?

 

*내가 대학원에서 혼나던 방식

항상 나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일부러 아주 빡세기로 소문난 연구실에 제 발로 걸어들어가서 맞닥뜨린 랩미팅... 선배들이 밤새도록 조사/분석하고 공들여 만든 슬라이드 십여 장에서 맨 첫번째 제목 페이지에서부터 지도교수의 지적이 시작되었다. 제대로 조사했으면 저런 아메바같은 생각으로 쓴 제목이 나왔겠냐며.
그 뒤로 두어 장 더 발표가 진행되기는 했지만, 결국 두번째 장에서 다시 신랄한 비난이 속사포처럼 회의실에 쏟아졌고, 맨 마지막에 지도교수는 위로를 한답시고 이렇게 말했다. "OO씨 그런 사람 아니잖아. 지난번 OOOO 내용 발표 때는 잘해놓고, 이번에는 왜 그랬나? 그건 학부생이 수업시간에 만든 프로젝트밖에 안 되고 이건 세계 탑급 연구다 등등..."
격려와 인격을 지긋이 밟아주는 것의 경계가 모호한 그 랩미팅을 대략 5~6년 정도 들었던 것 같다. 석사 1년차 때에는 위의 모든 선배들이 다 짓밟혔고, 2년차가 되고 나서는 내가 매주 타겟이 되었으며, 박사과정 때에도 대형 프로젝트 하나를 맡아서 하는 동안 웬만한 종류의 지적은 다 들었던 것 같다. 선배들처럼 아메바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초등학생은 자주 되었고, 학부생 2학년으로는 수백 번 돌아갔다 왔으며, 박사과정 중에도 석사1년차로 수십 번 돌아갔었다.

이 지독한 지도를 받으면서도 남들에게 욕 한번 시원하게 하지 않고 항상 배려를 우선하며 살았다. 이렇게 지적당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 독인지 알았다면, 진작에 지도교수를 갈아치웠을 테지만, 나도 너무 익숙해져 버리고 지도교수는 중간에 테뉴어 심사(종신직)를 통과하고 점점 나이가 들면서 어쩔 수 없이 지적의 강도가 약해지셔서 연구실이 지낼 만하게 되고 말았다. 마치 독극물을 가까이 두고도 죽지는 않으니까 계속 같이 살아가며 점차 인격이 악에 받친 비난에 중독되고 변질되는 것과 같았다.

 

*내가 끊어내야 한다.

결국 문제는 나에게 집중된다. 안타깝지만, 정말 싫지만, 내가 변해야 한다. 사실 평상시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나는 임계치를 넘어가기 전까지는 한없이 다정하고 착하고 다 들어주고 놀아주는 아빠의 모습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계치가 넘어서는 순간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임계치 = a*(나와 아내의 말을 반복해서 무시할 때) + (1-a){(웃어른-딸아이의 할아버지/할머니 등-의 말을 반복해서 무시할 때) + (바깥에서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
a는 0과 1 사이이고, 현재 0.1로 세팅되어 있다.

아이가 한없이 만만한 내 말을 무시할 수도 있고, 엄마 말을 무시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눈감아줄 수 있다. 하지만 할아버지/할머니/외할아버지/외할머니가 여러 번 부탁하는 데도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거나 기분 나쁠 정도로 거부를 하는 경우에, 혹은 집 밖에서 예의를 갖춰야 하는데 완전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난리를 치면, 나는 매우 빠른 속도로 정신줄을 놓게 된다.
그 순간 아이를 강한 힘으로 잡아끌어서 둘만 있을 수 있는 장소로 가서, 번개처럼 노려보며 우박처럼 아이가 저지른 나쁜 행동을 하나씩 지적한다. (말이 이렇지 사실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의 시선에서는 내가 하나도 안 무서워 보인다고 한다. =_=;; ) 하지만 그래도 아이한테 효과는 있어서, 대부분 아이의 대성통곡으로 이어지기는 했다.

아내가 지적하는 것은 내가 화내기 전 상태를 0으로 보고, 화가 많이 난 상태를 100으로 본다면, 한참 동안 계속 0을 유지하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100이 되면서 크게 폭발해 버린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대응할 새도 없이 아이는 놀라고, 자기 잘못에 대해서 반성하는 것보다는 갑자기 폭발해 버린 내가 무서워서 울지만 최종적인 행동 교정으로 이어지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내 감정을 다 쏟아붓는 것처럼 보인다고...

 

*부모님(아이의 할아버지/할머니)의 방식

최근 고향에서 부모님이 집에 오셔서 아내 대신 며칠 간 아이를 봐주시기로 하셨는데, 놀랍게도 아이가 하루가 지날 때마다 조금씩 협조적(?)인 태도가 늘어난 것이 느껴졌다.
부모님도 유별난 딸아이 때문에 혀를 냅두르시기는 했지만, 의외로 단순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계셨다. 그것은 아이가 잘못한 행동/발언에 대해 차분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그건 잘못된 거야. 그러면 할머니가 너무 속상해. 그건 이러이런 식으로 하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참 기쁠것 같아~"라고 그저 아이 옆에서 반복적으로 말하시며 듣기 싫은 아이가 스스로 잘못된 행동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마치 뛰어난 미사여구나 철저한 철학적 논리 대신 그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처럼,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올바른지, 올바른 행동이 얼마나 착하고 예쁜지를 지속적으로 옆에서 얘기해 주는 것이 학습효과가 되어 실제로 아이의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 계셨다.

그 과정에서 작은 팁도 하나 있었는데, 아침에 자는 아이를 깨울 때 "10분만 더 잘께요"라고 하면 알겠다고 해놓고는 1~2분 뒤에 가서 "10분 지났다~ 지금 O시 O분이야"라고 말씀하시면 10분 더 잔 줄 알고 일어난다고 한다. =_=;;;;;; 아직은 시간 개념과 시계의 분침을 정확히 못 봐서 가능한 수법인 듯...

 

내가 비록 연구실에서 정신적으로 독극물을 흡수하며 나쁜 영향을 받았을지언정, 아이에게 분노를 뜬금없이 표출하지는 않도록, 그보다는 명확한 메세지(옳다/그르다)를 단호하게 반복해서 전달하고, 이후에는 과감하게 집행(e.g. 세번 말 안들으면 밥을 치워 버린다고 약속했다면 진짜로 밥을 치워 버리기)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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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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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하고 나서 이제는 미루었던 둘째 계획을 실행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지속적으로(?) 노력했더니, '20년 가을쯤 되어서 드디어 임신이 되었다. '19년에 유산 이력이 있었고, 합쳐서 두 번의 유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초기 몇 주는 정말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 조금만 느낌이 이상해도 바로 병원에 달려갔고, 그 때마다 초음파 검사로 심장 소리를 듣고서야 안심이 되었었다. 집에서는 아내가 최대한 누워 있도록 했고, 그렇게 12주가 넘어갈 때까지 매주 (어떤 때는 일주일에 두 번씩) 산부인과에 갔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던 시기를 지나, 이제 아내 뱃속의 사랑이(태명)는 무럭무럭 자라서 30주차가 되어 가던 어느날, 아내가 자꾸 배가 뭉친다며 새벽에 자다 말고 병원에 갔다가 그 길로 입원을 했다. 자궁경부 길이가 짧아져 있어서 조산 가능성이 있다는 것. 이 때는 2박 3일 입원해서 자궁수축 억제제를 링거와 함께 맞고 나서 금세 괜찮아져서 퇴원할 수 있었다. 그런데... 4월 초에 다시 또 배 뭉치는 느낌이 강해서 (지난번 입원 때와 같이) 또 산부인과에 갔고, 이번에는 10일을 내리 입원해야 했다. 병원에서 확인해 보니, 자궁경부 길이가 다시 짧아졌을 뿐 아니라 태아의 머리가 벌써 출산을 준비하는 것처럼 아래쪽으로 많이 내려와 있다고... 휴가를 무작정 길게 낼 수 없어서 장모님의 도움으로 첫째를 돌보며 한 주를 보낸 뒤에 이어서 또 시부모님이 우리집에 오셨고, 때맞춰 10일째 되던 날에 퇴원이 결정나서 아내는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잠깐의 기쁨과 편안함도 잠시... 그날 집에서 12시간을 보내고 모두가 자고 있던 중에 또다시 아내의 배가 뭉치고 약한 진통까지 주기적으로 와서 결국 재입원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지금 도합 3주 이상 입원 중에, 앞으로 일주일 정도 더 입원치료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ㅜㅜ 첫째를 임신하고 낳을 때는 이런 일이 없었기에 (40주까지 아무 소식 없다가 자연분만함) 조산에 대해서 뒤늦게 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조산의 원인이 명확하게 한가지로 특정되지는 않는 것 같고, 산모의 나이, 자궁경부 근육, 태반 내부의 염증, 스트레스 등 여러가지 이유로 조산기가 생길 수 있다. 어느덧 30대 중반인 아내가 나이 기준으로는 노산이기는 하고, 임신 전에 엽산이나 철분 등의 영양소는 챙겼는데 산모의 체력을 충분히 관리하고 준비하지는 못했던 것 같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37주 이전에 출산을 하는 경우는 모두 조산에 해당되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34주 이후에 출산을 하면 태아의 생존과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임신 후반기에 태아의 폐, 눈 등이 많이 발달하는데, 너무 빨리 태어나면 호흡 기능이 부족한 상태로 태어나거나 눈의 발달이 미처 덜 된 상태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안경을 쓰고 생활해야 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34주 이후부터는 태아의 몸무게에 따라 출산 후에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지 않거나, 인큐베이터에서 머무르는 시간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

조산기가 있을 때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조치는 링거를 통해 자궁수축 억제제를 주입해서 상태를 완화시키면서 절대적인 안정을 취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혹시나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갑작스런 출산으로 이어질 것을 대비해서 스테로이드제를 써서 태아의 폐를 빨리 발달시키기도 한다 (의사의 판단에 따라 결정). 대부분의 시간을 눕눕.. 하고 있어야 하고, 수액은 입원기간 내내 맞으면서 초음파검사를 통해 태아의 태동과 자궁경부 길이 등을 확인해서 퇴원 여부를 결정한다. 수액을 맞고 있는 동안에는 진통도 거의 줄어들고 자궁경부 길이가 다시 길어져서 정상에 가까워진다. 유일한 문제가 있다면 정말 하루 종일 병원에 눕고 쉬기만 해야 해서 무지 심심하다는 것.

하루종일 유튜브만 보는 것도 한계가 있다 보니 아내는 일주일에 두세 권씩 책을 읽고, 마트에 가는 대신 집에 필요한 물건을 인터넷으로 대신 사는 것으로 무료함을 달래고 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맛없을 수밖에 없는 병원밥 외에 뭔가 먹는 즐거움을 더해주려고 내가 과일이나 디저트를 챙겨서 가기도 한다. 코로나19 시국에 입원 병동에는 보호자 한명만 출입이 가능한데, 아예 출입을 금지시키는 다른 병원에 비해 내가 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아내가 의연하게 버티고 있어 줘서 고맙고 짠하다.

그 와중에 뱃속의 사랑이는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어서 다행이다. 정말 수시로 엄마 뱃속에서 꼬물꼬물 움직이고, 발로 뻥 차서 쉬고 있던 아내를 놀래킨다. 첫째도 임신 후반기에 목소리나 배를 쓰다듬는 손길에 반응하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정말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사랑이가 언니를 빨리 보고 싶은 것일까? ㅜㅜ 아가야 그래도 34주까지만 엄마 뱃속에서 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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