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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말, 연구실에 실험용 스마트워치가 도착했다.


대만의 에이수스 사에서 만드는 스마트워치 라인업이 젠워치인데, 2016년에 세번째 모델인 젠워치3 (ZenWatch 3)를 출시했다. 적당한 가격에 적당히 많은 양의 배터리를 갖고 있어서 스마트워치를 차고 실시간으로 위치를 파악하거나 활동을 파악하는 등의 연구 목적에 적합해서 고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약 한 달 간 실험을 목적으로 차고 다니면서 느낀 점을 쓰고자 한다.



젠워치3의 첫인상은 깔끔하고 예쁘다.

이전의 젠워치 시리즈들은 모두 네모난 모양이었는데, 이번에 원형으로 완전히 디자인이 바뀌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원형 디자인이 훨씬 좋고 예쁘고 튼튼해 보인다.


어떻게 보면 깔끔한 디자인을 가진 LG전자의 스마트 워치와 비슷한 듯 하면서, 광택과 금빛 테두리를 이용해서 조금 더 고급진 디자인을 강조하려고 노력한 것 같다.


출시 당시에는 운영체제가 "안드로이드 웨어(Android Wear)"였지만 지금은 "웨어OS (Wear OS)"로 버전업 되었기에, 맨 처음에 부팅했더니 수많은 패키지들을 느린 속도로 재설치하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


스마트폰에 설치하는 젠워치 관리 앱에서 기본으로 제공하는 워치페이스(watch face)가 은근히 많았는데, 아쉽지만 고급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이 없었다. 왠지 모르게 중국 감성이 느껴지는 디자인들 위주라… 물론 예쁜 워치페이스는 페이서(Facer)라는 유료 앱을 통해서 충분히 얻을 수 있지만, 연구 실험 목적으로 산 것이므로 일단은 보류.


기본으로 달고 나오는 스트랩은 디자인 측면에서 특별함을 기대하기는 힘들고, 무난함 그 자체다. 가죽 재질이지만 물에 쉽게 젖지 않게 되어 있어서 실용적이다. 참고로 젠워치3는 IP67의 방수방진 등급을 갖고 있다. 손 씻고 샤워하는 정도는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샤워할 때 굳이 차고 있을 필요성까지는 느끼지 못했다. 연락과 알림을 놓치지 않아야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비슷한 시기에 출시한 삼성전자의 기어 S3와 비교하면 심박센서와 기압계 등 일부 센서가 빠져서 헬스 기능이 많이 약하다. 배터리도 기어 S3보다는 약간 적은 편인데, 그래도 충전없이 이틀은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한 가지 인상깊은 장점은 충전속도가 아주 빠르다는 점이다.

15분 충전에 대략 50%가 충전되고, 30분이 조금 지나면 완충이 된다.


충전 케이블과 시계와 접촉하는 부분(소켓?)이 일체형으로 붙어 있기 때문에 케이블을 교체할 수 없는 점은 아쉽다. 케이블은 언제든지 단선될 가능성이 있는데, 시계와 접촉하는 부분에 마이크로 USB 포트를 두고, 충전 케이블을 자유롭게 갈아끼울 수 있게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으면 가격이 더 올랐겠지…



4월 말부터 지금까지 써 보면서 느낀 점은, 예쁘기는 한데 쓸모가 많지는 않다는 점이다. 이것은 젠워치만의 문제가 아니라 "스마트 워치"라는 포지션의 기기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라고 봐야 한다.

작은 기기에 기능을 많이 넣자니 배터리가 부족하고, 공간이 작으니 강력한 모바일AP를 쓰지 못하니까 성능도 부족하다. 따라서 스마트폰에 종속된 채로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인데, 그 상태로는 알림을 손목에다 표시해 주거나, 통화를 손목에서 할 수 있는 것 그 이상의 가치를 찾기가 어려워진다. 결국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고 스마트폰의 알림을 보거나, 음악을 들을 때 리모컨 역할을 하는 것 정도가 된다.


여기에 더해서 젠워치3는 심박 센서 기능이 없기 때문에 운동할 때 만보기와 속도계 정도의 역할 말고는 더 해줄 것이 없고, 사실 이것은 스마트폰 혼자서도 다 할 수 있다.


유일하게 스마트폰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 주는 영역이 있다면 수면 트래킹일 것이다. 잠을 잘 때 젠워치3를 차고 자면 렘수면 시간이 얼마나 되고, 중간에 언제 깼는지 등 종합적인 수면의 질을 기록해 주는데, 아마 내가 뒤척이며 움직이는 것을 인식하고 기록하는 듯 하다.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스마트 밴드에서 해 주는 정도는 되겠지.


장점과 단점을 요약해 보았다.


<장점>

  • 가격 대비 깔끔하게 예쁘다. (고급지게 예쁜 디자인을 원하면 가격대를 젠워치 가격에서 최소한 10만원 넘게 올리면 된다.)

  • 매우 빠른 충전 속도



<단점>

  • 심박센서 등 일부 센서 부재로 인한 헬스 기능의 약화

  • 배터리가 많지는 않아서 충전에 신경써야 한다.

  • 기존 헬스 앱들과의 호환성이 별로 안 좋다. 삼성 헬스에도 호환이 안 되고, 구글 피트니스에는 데이터 공유가 되지만 수면 데이터는 공유가 안 된다.

  • 자려고 누워 있으면 젠워치가 수평으로 위를 보게 되는데, 이 때문에 자꾸 자기 혼자 화면이 켜진다.



<웨어OS 때문에 발생하는 단점>

  • 반응이 굼뜨고, 가끔 이유를 알 수 없이 느려진다.

  • 소리는 쉽게 끌 수 있는데, 진동은 쉽게 끌 수 없다. 그러니까 비행기 모드를 하면 스마트폰으로부터 알림을 받을 방법이 없으므로 소리와 진동 모두 울리지 않는 효과는 있지만, 스마트폰과 연결을 유지한 채로 진동을 끄려면 설정의 알림 부분에서 복잡하고 자세한 설정을 이해하고 변경해야만 한다. 안 그래도 느린데 손목 위에 있는 조그만 화면에서 이렇게 세밀하게 설정을 하는 것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결국 웨어OS의 인터페이스 문제.

  • 중구난방으로 서로 호환되지 않는 헬스 기능의 난립

    • 지금 스마트폰에 깔려 있는 삼성 헬스는 물 마시고 커피 마시는 등의 기록과 심박 센서를 이용한 스트레스, 산소 포화도, 심박수 등을 트래킹해 주기 때문에 유용해서 지울 수가 없다.

    • 젠워치3 때문에 그나마 호환성이 있는 구글 피트니스 앱을 설치했는데, 삼성헬스에서 해 주는 만보기와 운동 속도/거리 등을 중복해서 똑같이 측정하고 있다. 정작 젠워치에서 기록한 수면 데이터는 구글 피트니스에서 확인할 수가 없다.

    • 젠워치3의 모든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자체 헬스 앱인 젠핏(ZenFit)은 위의 두 개에 비해 기능과 인터페이스 측면의 편의성이 부족하다.

    • 그런데 내가 원하는 헬스 트래킹을 다 하고 싶으면 위의 3개의 앱을 모두 다 갖고 있어야 한다. 이게 뭐야…



결론적으로, 그냥 예쁜 패션 아이템으로 간주하고 여기에 스마트폰의 알림 또는 간단한 리모컨 기능이 손목으로까지 확장되었다고 생각하고 쓰는 것이 실망하지 않는 방법이다. 기존의 손목시계처럼 스트랩을 사용자가 원하는 디자인으로 갈아 끼우고, 워치 페이스도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것으로 바꿔 가며 쓴다면 나름 재미있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삼성 스마트폰을 쓰고 있는 입장에서 헬스 기능을 깔끔하게 쓰려면… 그냥 기어 S3 쓰는 게 낫겠다. ㅡㅡ (마찬가지로 아이폰이라면 애플 워치 말고 다른 것을 살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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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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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야나 영역을 막론하고 특정한 쪽의 극단보다는 균형을 맞추는 것이 아주 중요한데, 신앙에서도 마찬가지로 균형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신앙의 균형은 특히 요즘의 내 삶 속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 같다.


내가 처음 개신교 신앙을 접하고 주요 성경구절을 통해 구원의 교리를 알게 되었을 때의 희열은 놀라웠다. 말주변 없고 왜소하고 대인기피 증세도 있던 내가 매일 별 의미없이 보내던 10대 시절의 하루를 의미 있게 만들어 주었다. 흔히 말하는 "예수님을 영접했다"라고 하는 시점 이후로 내 삶에 물리적인 변화는 별로 없었지만, 이상하게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성경 구절과 찬양의 가사부터 생각하고 혼자 즐거워하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을 것인지를 잘 모르면서 진지하게 생각했는데, 신앙 교리나 성경에 대한 지식이 매우 얕았지만 열정만큼은 넘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에는 마치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예수님을 믿는 것에 대한 기쁨이 생겨나는 듯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기쁨이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결혼하고 아기를 키우며 박사과정 졸업을 준비하는 지금 내 시점에서 10대와 20대 싱글일 때의 패기 있는(?) 신앙의 열정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생각해 보면 '사랑'의 특성일 수도 있다. 처음 사랑할 때의 기쁨은 정말 놀랍고 세상이 달라 보이게 만드는 힘이 있는데, 그것은 누군가와 연애할 때와도 비슷하다. 그 사랑이 최고점에 이르러서 결혼을 하고 결실을 맺어서 가정을 이루고 아기를 키우기 시작하니, 여전히 똑같이 사랑하는 아내이고 사랑하는 자녀이지만 처음과는 다르다. 맨 처음 시작할 때처럼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사랑이 샘솟고 그 감정이 지속되면 가장 좋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의지'를 동반한 노력이 필요해지는 것 같다.


하나님(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현실적인 삶의 문제에 치여서 유지되지 않을 때, 나는 내가 저절로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처럼 사랑이 샘솟지 않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큰 실망감을 느꼈고, 나는 왜 (잘 믿는다고 생각되는) 남들처럼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지에 대해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시작된 오해의 불길은 내 삶의 근본적인 소명, 즉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동기부여를 상실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불길로 크게 번졌고, 지금의 대학원 생활에서 성취해야 하는 것(박사학위)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현실적인 결핍은 10대 때에도 있었고, 지금도 그 때와 종류만 다를 뿐이지 현실적인 결핍은 똑같이 있다. 한창 신앙의 열정이 커져갈 때에도 내 성격과 외모에 대한 불만은 하늘을 찔렀었다. 지금은 내 실력부족과 실력부족을 극복하지 못하는 의지박약까지 싸잡아서 나라는 존재 자체가 못마땅하고 싫은 상태지만, 결국 결핍이 인생 내내 존재한다는 점에서 똑같다.


하지만 부족함 속에서도 결혼 생활을 좋게 유지하기 위해서 내가 신경쓰는 것을 사실은 신앙에서도 똑같이 해야 하는 것인데, 나는 신앙에서만큼은 여전히 '저절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왜 요즘은 그게 안 되는지를 너무 골똘히 생각하느라 신앙의 균형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42:5)"


시편의 기자는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겠다고 의지를 다짐한다. 처음 사랑할 때의 기쁨에 힘입어서 초반에 저절로 삶이 살아지는 것 같겠지만, 알다시피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크기의 자극에는 매우 빠르게 적응을 하며, 더 큰 자극을 원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절로' 되지 않게 된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립보서 4:4)"

바울이 위의 말씀을 비롯한 여러 편지를 통해서 항상 초대교회 성도들을 격려하고 사실상 명령하다시피 가르친 것도, 신앙생활이 마냥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신앙의 기쁨은 내가 의지적으로 지켜야 하는 소중한 것이지, 한 번 믿고 나면 저절로 발동되는 패시브 스킬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끝까지 격려해 주시고 도와 주시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자유의지를 침범하시지는 않는 젠틀(?)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결국 그에 맞게 호응해서 합을 이루기 위해 나의 의지와 노력, 호응도 필요하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3)"

물론 내 의지만으로 사랑을 온전히 이루지도 못하는 내 모습 때문에 하나님의 입장에서 인간을 좀더 많이 배려(?)해 주시는 것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도 저절로 신앙의 기쁨이 솟아나고, 그 기쁨을 동력 삼아서 내 삶의 동기 부여도 무한정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는 쪽으로 균형을 더 맞춰서 전인적인 신앙생활을 통한 삶의 긍정적인 발전을 이끌어 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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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데이터를 뽑아야 해서 시뮬레이션 코드와 스크립트 파일들만 한동안 쳐다보고 살면, 어느 순간 자신감이 무지 많이 떨어져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거 다 이미 누군가 했던 것 아닐까?"

"이제서야 겨우 이 정도 결과가 나왔나? 한참 더 해야 되는 것 아닐까?"

대략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이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려면 논문을 읽어야 하는데,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기분이라면 참 좋겠지만 그런 종류의 읽기도 아니고 쉽게 되는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울함이 극단에 치닫고 논문을 어떻게든 써야만 하는 궁지에 몰려서 다시 내 분야의 논문을 읽기 시작하면 점점 그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게 된다. 특히 잘 쓰여진 논문을 연속해서 여러 개를 읽고 나면 머릿속이 정돈되고 내 연구를 어떻게 구상할 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내 겉모습에서 아무런 달라진 점은 없다. ㅋㅋ)

그런데 잘 쓴 논문과 그렇지 않은 논문을 구분할 줄 알려면 일단 많이 읽어봐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는 듯.
유명한 학회/저널에 출판되었고, 많이 인용되었으며, 오래된 (기왕이면 해당 연구 분야의 초석을 놓은) 논문은, 마치 고전 문학을 읽는 기분이 들겠지만, 분명히 유용한 측면이 있다. 깨끗한 산 속에서 자란 인삼을 자연주의 방식으로 숙성해서 진하게 달여 낸 홍삼 진액 같은 느낌이 있다. 버릴 것이 전혀 없고 몸에 양분과 에너지를 공급하고 부작용이 없는 그런 느낌.


그나저나 빨리 저널 논문을 완성해야 하는데, 당장 글을 쓰는데 필요한 2018년도 논문부터 찾아서 읽고 정리를 시작하는데도 불구하고 결국은 1995~2000년 언저리의 논문까지 다시 오고야 마는 나도 참 징하다. ㅜㅜ 내 연구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고 마치 모래 위에 쌓은 성 같은 허술한 기분은 여전히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쯤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는" 이라는 말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단계가 되면 좋겠다. 결국 일관되고 꾸준한 노력으로 귀결된다.

그동안의 집중력 부족과 끈기 부족이 초래한 시간 낭비를 이번에는 꼭 메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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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내와 함께 운전하다가 접촉사고를 당했다. T자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하기 위해 멈춰 있었는데, 뒤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오는 차에 꽤 강하게 들이받혔다. 당연히 뒷차의 100% 과실로 간주해서 뒷차에서 보험 처리를 하기로 했다.

어차피 보험사가 대부분 알아서 해 주기 때문에 일을 크게 벌리지 않고 원만히 해결하고 싶었지만, 최소한 내가 직접적으로 받은 피해는 잘 수습해야 되기 때문에 필요한 것들을 따져 가며 진행하다 보니 결국 범퍼를 교체하는 것뿐만 아니라 오른쪽 뒷바퀴 휀더에 도색도 해야 했고 (안 그러면 녹이 슬게 될 상황), 아내와 내가 이동을 자주 해야 돼서 차는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수리하는 기간 동안 렌터카도 사용했다. 어쩔 수 없나 보다. 이렇게 상대방 측 보험사로부터 대물사고 처리부터 다 하고 대인사고에 대한 처리는 일단은 안 하고 있었는데...

사고 발생 후 채 2시간이 되지 않아서 목 뒷쪽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사고가 발생한 그 순간에는 뒤에서 충격을 받았을 때 잠깐 놀라고 그 뒤로는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연구실에 와서 회의를 하면서 노트북과 프로젝터 화면을 번갈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릴 때마다 계속 목이 아파 왔다.
원래 하루 종일 컴퓨터 화면을 쳐다봐야 하는 전공의 특성상 가끔 뒷목 뻐근해지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평소에 뻐근하던 것과는 확실하게 다른 느낌과 더 센 강도로 목이 계속 아파 왔다.

원래 교통사고가 나면 그 순간에 괜찮은 것 같더라도 하루를 지나고 보면 몸 어딘가가 아픈 후유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사고 발생 다음날에 병원에 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사고가 난 뒤에 긴장이 풀리자마자 계속 목이 신경 쓰이도록 아파서, 가해자 측에 대인사고 접수도 추가로 요청한 뒤에 오후에 바로 정형외과에 갔다.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 보았는데, 다행히 뼈나 디스크에서 눈에 보이는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계기로 알게 된 것은 내가 일자목이라는 것이었다.
일자목은 정상인의 역C자형 목보다 충격에 취약하다고 하는데, 그래서 사고 후에 목이 아파진 것으로 진단을 받았다. 앞으로 2주 동안 매일 물리치료를 받기로 했다. ㅜㅜ



내가 일자목이라니…

사실 일자목과 거북목은 현대인, 특히 사무직에서 쉽게 발생하는 질환이다.
책상에서 컴퓨터 화면을 볼 때에는 모니터를 일부러 눈높이만큼 높게 두고 보려고 노력하지만, 내 자리뿐만 아니라 카페나 세미나실 같은 곳에서 노트북을 가지고 훨씬 낮은 곳을 오랫동안 쳐다보는 자세도 자주 취할 수밖에 없고, 스마트폰도 아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일자목이 되기에 너무 좋은 조건에 있기는 하다. 내가 특별하게 목 건강을 챙기고 자세를 주의해야 하는데, 사실 집중적으로 일하다 보면 다 잊어버리고 모니터에 빨려 들어갈 기세로 목을 앞으로 빼고 화면을 쳐다보게 된다.

하지만 의사가 엑스레이 사진을 꺼내 들고 명시적으로
"님 일자목임."
이라고 선언해 버리니, 이제 자세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일자목이 더 심해지면 거북목이 되는데, 그러면 보기에 안 좋은 것을 떠나서 허리도 나빠지고 팔다리도 저리는 등 건강에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물리치료를 마치고 연구실에 돌아오자마자 가장 먼저 내 책상에 놓여진 모니터를 조금 더 높였다. 원래 책상에 모니터 받침대가 있어서 모니터의 상단이 내 눈높이에 맞춰져 있기는 했지만, 이걸로는 내가 평소에 화면을 볼 때 자꾸 목을 앞으로 내밀고 아래쪽으로 쳐다보는 자세를 유발하게 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모니터 화면의 정 중앙이 눈높이와 맞도록 모니터 밑에 책을 괴서 더 높였다.

자리에 앉고 나서는 의식적으로 어깨를 펴고 목을 똑바로 세우고 턱을 집어넣는 바른 자세를 취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그리고 쉴 때마다 양손을 목 뒤로 보내서 양쪽 가운데 손가락으로 7개의 목뼈를 하나씩 지긋이 누르며 고개를 위로 젖히는 운동을 하게 되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일자목이나 거북목이 우울증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1, 2]. 충격… ㄷㄷ
바르지 못한 자세는 근육과 골격의 특정 부분이 스트레스를 받도록 만들고, 그렇게 스트레스가 계속 쌓이면 뇌도 부정적인 영향을 불필요하게 많이 받아서, 스트레스로 인해 평소보다 더 우울감이 커지는 식의 인과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

보통 우울증을 '마음의 병'으로 치부하고 심리적인 요소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지만, 의외로 뇌를 지탱하고 있는 신체가 뇌에 부정적인 영향을 지속적으로 끼치면 결국 '뇌'라는 신체기관 역시 병에 걸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위에서 위액이 과다 분비되면 위염, 위궤양 등의 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는 것처럼, 뇌가 스트레스 호르몬에 더 많이 자주 노출되면 뇌 그 자체에 문제가 생기면서 우울감이 증폭되는 것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역시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것이 우울증 극복에 도움이 된다는 조언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어깨를 펴고 양손을 허리에 두고 당당하게 서는 것만으로도 실제로 자신감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하는데 [3], 그만큼 나의 심리적인 상태를 긍정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신체적인 요소를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겠다.

이제 (능력은 쥐뿔도 없지만 ㅋㅋ)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들고 정면을 응시하며 당당하게 살면서 목과 정신 건강에 더 많이 신경써야 하겠다.



<참고자료>

[1] "일자목 증후군(거북목 증후군) 심하면 우울증이나 무력감으로 발전", http://news.bbsi.co.kr/news/articleView.html?idxno=806536

[2] 우울증, 절망감, 자살충동과 자세, http://blog.koreadaily.com/view/myhome.html?fod_style=B&med_usrid=posturedoctor&cid=675839&fod_no=4

[3] 당신의 자신감을 당장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 5, https://www.huffingtonpost.kr/2014/10/19/story_n_60099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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